〈 20화 〉 친구 따라 강남 간다.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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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아카데미 오디션까지 일주일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이온이 따로 뭔가 준비할 것은 없다.
반드시 스턴트맨이 되겠다는 간절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집에서 빈둥거릴 수는 없는 노릇.
가장 먼저 누나와 두 달여 만에 외식을 했다.
개강을 앞 둔 학교에도 찾아가 교수님께 인사드리고, 동기생 조교들을 만나고 왔다.
단비가 연결 시켜준 영어과외 학생과 학부모를 만나기도 하고, 비보이 선배가 운영하는 연습실도 다녀왔다.
그리고 오랜만에 홍대 나들이를 했다.
여전히 거리 곳곳에 다양한 음식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했다.
이온은 아이스크림, 과자, 붕어빵 등과 같은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때문에 군것질을 거의 하지 않는다.
상당한 육식파다.
고기를 상당히 좋아한다.
다만 채소는 입에 잘 대지 않는다.
노래를 평소에 잘 듣지 않아 외출 시에도 이어폰을 잘 들고 다니지 않는다.
다만 노래 실력은 의외로 좋은 편.
이는 여사친 삼인방의 영향이 지대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틈만 나면 이온을 노래방으로 자주 이끌었기 때문이다.
암튼 이온은 오랜만에 영재를 비롯해 여사친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당연히 해외봉사 활동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화제였다.
들려줄 에피소드가 떨어질 즈음, 이온이 궁금한 걸 물었다.
“서준호 알지? 보자고 톡을 계속 보내더라. 너희들도 받았어?”
아담한 체구에 안경을 쓴 윤다경이 즉각 대답했다.
“그 문자 고것 고대로 씹으세요, 고객님. 차단을 하던가.”
“......?”
최근 한국 양대 포털사이트 중 한 곳 계열사에 채용연계형 인턴십에 뽑힌 이수정이 다경 대신 설명했다.
“준호가 넷튜버거든.”
“혹시 콘테츠가 힙합이나 스트리트댄스야?”
“아니. 일뽕들 열라 빨아주시지. 서준호님께서.”
“국뽕이 대세 아니었어?”
“일뽕은 꾸준히 세를 유지하고 있고, 국뽕이 치고나가는 추세라고 할까?”
참고로 이수정은 (주)바나나 엔터테인먼트의 웹소설, 웹툰 등을 서비스하는 계열사에서 두 달 간 인턴십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녀는 대학에서 소비자학을 전공했는데, 자신의 전공과 적성이 맞는 기업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었다.
정규채용으로 이어질 것인 알 수 없었지만.
“원래 엄마 친구 자식 소식이나 동창 소식 따위는 한국대 입학했다거나 오성에 취직했다거나 억대 연봉, 고시 패스 했을 때 알게 되는 건데. 요새는 이놈저놈 다 넷튜브나 빅스타그램을 하니 알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소식을 알 게 돼. 짜증나 죽겠어. 특히 친한 척 댓글 달 거나 DM 보내는 서준호 같은 놈.”
이번에는 최단비가 말을 받았다.
“혹시 알아? 서준호가 넷튜버로 빵 뜰지. 그래서 그래.”
“돌림노래 하지 말고 누구 한 사람이 알아듣게 차분히 설명 해 줄래. 뒈지기 싫으시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이수정이 입을 열었다.
“서준호가 최근에 구독자 30만 찍었대. 요새 분위기로 봐서 신상 털리면 넷튜브 접어야 하잖아. 동창 중에 누가 서준호 작정하고 신상 털면 우수수 털리지 아마? 털릴 것 중에 제일 센 게 학폭 인데. 그거 무마한답시고 요새 동창들 열라 찾아다니며 사과하고 술사고 난리도 아니라더라.”
“일뽕 치사량으로 처맞더니 개심했나?”
“난 서준호하고 같은 반 딱 한 번 해봤어. 말도 몇 번 안 해봤고.”
이온의 말에 영재가 코웃음을 치며 말을 보탰다.
“그러니까. 어떤 모지리가 전교 1등을 건드려. 한국대 갈 놈이라 학교차원에서 케어해 줬는데, 어떤 정신 나간 놈이 이온이를 따시키고 학폭할 생각을 하겠냐고?”
“서준호랑 같이 어울리던 애들이 이온이 고아라고 놀리지 않았어? 물론 우리 이온이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늘 한결 같은 모습으로 죽어라 공부만 했지만.”
“장하다 나이온.”
“셀프 아싸 나이온 선생.”
수정의 말에 최단비와 다경이 차례로 떠들어댔다.
“중학교 때는 몇 놈이 까불긴 했어.”
“그때 네가 한국대 갈지 어떻게 알았겠냐?”
이온은 비보이와 어울리는 것 외에는 이제껏 쭉 모범생 이미지였다.
보통 왕따 가해자는 의외로 학교에서 모범생인 경우가 많다.
학업성적이 우수하고 외형적으로 모범생이기 때문에 교사들도 눈치 채기 어렵다.
교사가 특정 학생을 편애하는 것이 교실의 왕따에 일조하기도 한다.
모두 이온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오로지 한국대에 입학하겠다는 일념으로 학교에서는 공부만 죽어라 했다.
교우관계, 학창시절의 추억 그 딴 건 안중에도 없었다.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
현재의 모습에 이온이 만족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언젠가 서준호 같은 애들 학폭도 다 밝혀져야 하지 않을까?”
“연예인도 아니고 운동선수도 아닌데, 일반인 폭로한다고 뭐가 달라져?”
“그래도. 꼭 유명한 사람만 죗값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 나는 지금 언론에서 크게 떠들 때 일반인들이 저지른 학폭이 더 많이 밝혀져야 된다고 봐.”
“맞아. 그래야 운동부 학폭이니 교내 학폭이니 조금이라도 줄어들겠지. 그런 거 한 애들 나도 나중에 성공하면 ㅈ되겠구나 생각하면서 말이야.”
여자애들 셋이 학폭에 대해 제법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요즘 얼굴 반반한 고교생들 사이에서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다니는 게 유행이래.”
중학교 예고준비반 연기 레슨을 하는 최단비의 경험담이었다.
“미래에 자기가 유명해지면 과거 학폭기록에 발목잡힐까봐?”
“응.”
“걸레가 빤다고 행주 되냐?”
“그래도 안 하고 생까는 것보단 나은 거 아냐? 연예인들 개망하는 거 보고 지들도 겁이 나겠지. 이게 다 좋은 영향력 아니겠냐. 조금이라도 학폭을 줄일 수 있으면 좋은 거잖아.”
“나나 이온이 그리고 수정이는 일반인이니까 크게 상관없지만, 다경이랑 단비는 잘 생각해 봐. 혹시 문제될 건 없는지.”
로스쿨에 다니게 될 다경과 뮤지컬배우 지망생인 단비가 걱정이 되어 묻는 것이다.
연예인이 될지도 모르는 단비도 그렇지만, 다경 역시 법조인 된다면 학창 시절의 과오가 뜻하지 않게 발목을 잡을 수도 있으니까.
“단비는 여자애들한테 워낙 인기가 많아서 나쁘게 보는 동창은 없을 걸? 나야 이온이처럼 공부만 했는데 뭘. 그래서 보다시피 친구가 너희들 밖에 없잖아.”
다경의 안심하라는 말이 왠지 술자리 분위기를 가라앉게 만들었다.
마지막 말 때문이다.
다경 또한 오로지 공부에만 올인했기 때문에 중고교 교우관계가 처참한 수준이었다.
물론 대학에 입학한 후로 백팔십도 달라졌지만.
단비가 활기찬 목소리로 분위기를 띠웠다.
“수정이는 판교로 출근해?”
“응.”
“언제부터?”
“다음주.”
“인턴십에 뽑힌 인원이 전부 채용되는 거야?”
“두 달 동안 근무태도를 보고 평가를 하겠지 뭐.”
수정이 500cc 맥주컵을 들어 이온과 영재에게 내밀었다.
“너희도 복학 하게 되면 슬슬 준비해야겠다? 울 게토레기는 한국대니까 부담이 덜 하겠지만.”
“블라인드 채용 같은 것들이 많아지면 한국대 졸업장 쓸모없어질지도 몰라.”
“엄살은.”
영재가 끼어들었다.
“한 10년은 일러. 학벌 따지는 거 아마겟돈이 열려도 안 없어져.”
“요새 온라인 수업도 많이 활성화 됐거든. 철밥통 교수보다 온라인 무료강의 퀄리티가 훨 좋아. 바나나에서 인턴십 오리엔테이션 하는데, 이사님이 돈으로 산 학위 필요 없다고 딱 잘라 말 하시더라. 자기들은 이제 학벌, 학위 같은 스펙 안 본대.”
“앞으로 점점 그렇게 바뀔지도 모르지. 그런 미래를 대비하는 것도 다 좋고. 근데 우리가 취업 나갈 때는 그 정도는 아닐걸?”
나름 먼저 취업전선에 뛰어 든 수정이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충고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항상 한 발 늦는 거야. 바보야.”
영재가 발끈했다.
“한치 앞도 못 보는 주제에 무슨 10년 후 미래냐?”
“영재는 비관모드 끄고 우리 행복회로 돌리지 말자. 그래봐야 한국대 미만 잡. 시끄러워 이것들아! 술이나 마셔!”
단비가 친구들의 입을 다물게 하고 맥주잔을 높이 들어올렸다.
짠.
다섯 개의 호프잔이 힘차게 부딪쳤다.
“울 게토레기는 어릴 때부터 빨빨거리며 해외 돌아다니면서 시야도 넓히고 외국어도 장난 아니고 봉사활동으로 정신까지 올바르니깐, 한국대 중퇴해도 어디든 취업을 될 거야. 난 걱정 안 해.”
“좋으시겠어. 한국대에, 언어능력자에, 문과 주제에 이과도 잘해.”
“예체능도 잘 해 울 게토레기는.”
단비, 수정, 다경이 차례로 이온을 안주 삼아 씹어댔다.
“예능은 아니지 않나?”
“그러게. 비보이는 체육이야 예술이야?”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됐으니까, 체육 아닐까?”
“예술이야. 이것들아!”
이온이 깔끔하게 정리했다.
두 달 만에 술자리를 함께 하는 다섯 친구는 풋풋했던 학창시절, 팍팍한 오늘, 그리고 미래에 대한 걱정을 술과 함께 꾸역꾸역 위장에 채웠다.
직업.
이온과 영재에겐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다.
단비와 수정은 사회생활을 이제 막 시작했다.
이들 다섯은 가장 친한 친구이기 전에 소위 Z세대로서 현실인식을 공감한다.
그러니 삼포세대니 오포세대니 함부로 단정하지도 않았고.
어쭙잖은 동정도, 훈계도 하지 않았다.
소위 Z세대의 인생은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게 다 인 것이다.
무엇을 하든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란 내재된 좌절감이 있다.
저명한 작가, 교수, 셀럽들이 청년들에게 말한다.
최선을 다하면 설사 성공하지 않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는다고.
그런데 그것에는 전제가 있다.
최선을 다했을 때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란 것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
아무리 해도 안 되는 현실.
그런 현실 속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했을 때, 그래도 후회는 없다고 스스로 자위하는 것은 정리승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또 저축을 열심히 한다고 하더라도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가난해지는 현실.
반면에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성공이란 열매를 보란 듯이 따먹는 이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이온과 친구들은 개천에서 용이 탄생하는 그런 시대를 바라지도 않는다.
아버지 세대까지 존재했던 최소한의 계층 사다리라도 존재했으면 하는 바람.
이온과 친구들은 더 높은 곳을 향해 사다리를 오르는 중이 절대 아니다.
마치 미끄럼틀 중간에 위치해 있는 것과 같다.
지금 딛고 있는 위치에서 미끄러지면 끝이다.
다시는 원래 자리로조차 올라오지 못하는, 그런 미끄럼틀 위 말이다.
✻ ✻ ✻
일주일이 금방 지나갔다.
한국액션아카데미 액션캠프 면접 당일.
이온은 단비의 소형차 뒷좌석에 구겨 타고 파주로 향하고 있다.
차 안에는 영화 <레미제라블> OST가 흐르고 있다.
단비의 차를 얻어타게 되면 다른 음악을 듣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언제나 뮤지컬이다.
조수석에 앉아 있는 영재는 무료한 듯 테이크아웃 커피만 쪽쪽 빨아먹고 있고, 이온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오로지 단비만 복합적인 감정이 마구 소용돌이 치고 있다.
그녀가 마주한 이번 도전은 뮤지컬 오디션과는 완전히 다른 분야다.
과연 긴장하지 않고 가진 실력을 모두 보여줄 수 있을지.
아직 애송이다보니 오디션을 앞두고 담대해 질 수가 없다.
“단비야! 좀 밟아. 오늘 중에 파주에 도착할 수 있겠냐?”
영재의 잔소리에 단비가 정신을 차렸다.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차를 몰아 탄현면으로 들어섰다.
탄현에는 영어마을, 출판단지, 드라마, 광고 사운드스테이지(세트장) 등이 모여있다.
연예인이라면 자주 오갈 수밖에 없는 지역이다.
한국액션아카데미 주차장에 차를 대자마자, 이온이 재빨리 차를 빠져나왔다.
으드득.
경차다 보니 이온 입장에서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단비야! 뭐부터 해야 돼?“
“수험표부터 받자.”
이온과 영재는 단비가 이끄는 대로 행동했다.
연예계는 단비가 전문이니 굳이 두 사람이 나서서 잘난 척 할 이유가 없다.
수험번호 83번.
이온이 받은 번호다.
수험표에는 한국무술연기자 협회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괜히 일찍 왔나 싶은 생각이 드는데.
“부지런한 사람들 많다.”
영재의 말처럼 오디션 시작을 삼십 분 앞두고 있는데 벌써부터 많은 이들이 와서 몸을 풀고 있었다.
격투기와 무술 유단자들이 득실득실했다.
다들 도복을 입진 않았지만, 몸을 푸는 것만으로 기합이 느껴졌다.
우슈가 특기로 보이는 이들은 각종 병장기를 준비해 왔다.
삼절곤도 보이고, 창, 검을 준비한 이도 보였다.
무협영화에서나 볼 법한 유성추인지 구절편인지 모를 무기를 가볍게 휘두르는 이도 있다.
격투가나 무술가만 응시한 것이 아니다.
“단비 말이 맞네. 우리 같은 일반인들도 많잖아.”
뮤지컬 배우인 것으로 보이는 어떤 응시자가 노래를 하기 전 목을 풀어주고 있다.
마임을 연습하는 응시자도 있다.
팝핀을 추는 이를 발견했을 때는 동료를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이 밀려왔다.
그렇다고 말을 걸지는 않았다.
“단비는 따로 스트레칭하는 방법 있어?”
“학교에서 배운 게 있긴 해.”
“영재 너는?”
“도수체조밖에 몰라.”
세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몸을 풀었다.
이온은 매우 신중하고 꼼꼼하고 진지하게 몸을 풀었다.
영재는 페루의 아야쿠초에서 아침마다 자주 보던 풍경이라 별 감흥이 없었다.
단비는 아니었다.
발레리나처럼 쫙쫙 찢어지는 다리와 큰 신장임에도 굉장히 유연한 스트레칭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10년 가까이 알고 지낸 사이지만, 스트레칭, 비보잉, 트릭킹을 위한 이온의 예열동작을 이렇듯 자세하게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뭘 놀라? 저 사람들도 다 꼼꼼하게 몸을 푸는구만.”
“삼십분 풀었어. 더 해야 돼?”
단비가 다소 질렸다는 듯 물었다.
“당연하지. 꼬고, 비틀고, 떠받치고, 준비운동 제대로 안 하고 하면 꼭 부상이 오더라. 비보잉이나 트릭킹이나 굉장히 예민한 동작들이 많아서 적당히 하면 큰 일 나.”
이온은 자신의 차례가 오기 전까지 계속해서 스트레칭과 준비운동을 했다.
응시자들은 특기를 먼저 펼쳐 보인 후, 간단한 면접을 봤다.
기본적으로 5분을 넘기지 않았다.
간혹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실수를 연발한 이에게는 융통성을 발휘해주기도 했다.
한 번에 세 명씩 오디션을 봤기 때문에 차례가 휙휙 지나갔다.
그럼에도 제법 응시자가 많다 보니 1시에 시작했는데 어느새 3시가 훌쩍 넘겼다.
영재가 가장 먼저 오디션을 봤다.
이어 단비가 현대무용을 선보이고, 액션캠프에 임하는 포부를 당당하게 밝혔다.
4시가 가까워질 무렵.
드디어 이온의 차례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