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쩌다 배우-10화 (10/127)

〈 10화 〉 인연은 집을 나서야만 마주친다. (5)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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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 대표로 뽑힌 벤트가 참가비 문제를 코디네이터 가브리엘라에게 이야기했다.

그녀는 불쾌감을 드러냈다.

“나를 믿을 수 없다는 말이잖아. 다른 코디네이터를 보내라고 할게.”

가브리엘라의 강경한 태도로 난처해진 것은 봉사에 참여한 캠퍼들이다.

중국인 두 녀석만 빼놓고.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들이 가브리엘라를 믿지 못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벤트의 말을 스페인어로 전하던 이온이 그녀를 진정시켰다.

“이전부터 캠퍼들과 코디네이터들이 금전 문제로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그 부분은 기구에서 지침을 줘야 해. 현장에서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가브리엘라는 단호했다.

스페인어가 유창한 벨기에 여학생까지 나섰다.

한참을 가브리엘라와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페루 인구 약 700만 명이 338솔(105달러)로 한 달을 살아간다.

캠퍼 12명에서 걷은 2500 달러는 상당히 거금이다.

참가비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오리엔테이션까지 뒤로 미뤘다.

오전 내내 양측이 대화를 나눈 끝에 타협점을 찾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참가비에서 숙박료를 지불하고, 봉사와 관련된 물품 구입 및 진행비용은 가브리엘라가 관리하고, 남은 돈 중에서 부식비는 캠퍼 리더인 벤트가 관리하기로 했다.

“나는 납득할 수 없어.”

쯔시안이 또 딴죽을 걸었다.

캠퍼들은 그의 의견을 무시했다.

이 타협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참가비를 돌려줄 테니 빠지라는 암시도 줬다.

하오란마저 타협안을 받아들이자 쯔시안 또한 반대를 할 수 없게 됐다.

참가비 문제로 오전 시간을 통째로 날렸다.

점심식사를 마친 캠퍼들이 가브리엘라의 안내로 한 달 간 봉사활동을 할 도시 외곽지역으로 이동했다.

남미 대부분의 국가가 그렇듯 교육부의 예산은 부자들, 상류층, 백인들이 다니는 학교로 먼저 간다.

그리고 빈민가 학교보다 액수도 훨씬 많이 간다.

때문에 변두리나 시골의 학교는 예산이 아예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야쿠초의 저소득층 주거지역과 외곽 및 산간지역 역시 정부의 예산이나 정책적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었다.

가브리엘라가 캠퍼들을 아야쿠초 저소득층 지역의 한 공립학교로 안내했다.

방학이라서 그런지 학생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한 달 동안 함께 봉사를 하게 될 산 크리스토 발 데 우와망가 대학의 학생들이 미리 와 있었다.

캠퍼들과 현지 봉사단원들이 인사를 나누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계획을 같이 짰다.

가브리엘라의 앞으로의 봉사 진행 방법, 캠퍼들이 해야 할 일들 등 이런저런 설명과 함께 본격적으로 아야쿠초 지역에서의 워크캠프가 시작된 것이다.

“나는 저쪽 보이는 산간 지방 출신이야.”

“쉽지 않았을 텐데. 정말 열심히 했구나.”

이온이 산악 지역 출신으로 아야쿠초 대학에 진학한 것을 칭찬했다.

원주민 출신은 공공연하게 차별을 받는다.

이온은 지난 번 페루 봉사를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같은 팀원이 된 현지 리더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난관을 이겨냈을지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었다.

“나는 한다고 했지만 결국 리마로 진학하진 못했어. 그래도 장학금을 받고 다닐 수 있어 감사한 마음으로 공부를 하고 있어.”

자신의 이름을 파올로라고 소개한 현지 대학생 봉사단원이 앞으로 이온, 남매와 함께 조를 이뤄 봉사활동을 하게 된다.

페루의 소외지역의 학생들은 외국의 도움으로 가난과 끼니걱정을 어느 정도 덜며 학업을 이룬 후에 자신들이 받은 혜택을 똑같이 지역사회에 갚기 위해 외국의 봉사단이 오면 함께 자원봉사에 나선다.

일종의 내리사랑이라고 해야 할까.

파올로 역시 그렇게 여러 해외봉사단체의 활동을 시간 날 때마다 돕고 있었다.

“솔직히 대학을 졸업한다고 뭔가 획기적인 미래가 열릴 것 같진 않아. 그래도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것보단 나을 거라고 생각해.”

파올로가 다소 비관적으로 말했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들의 고민은 세계 어디나 비슷한 것 같지만.

어떤 국가에 살고 있는지, 어떤 처지인지에 따라 분명 다르다.

페루는 계급사회가 아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엄청난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다.

12% 남짓 백인들이 페루의 부와 권력을 모두 차지하고 있고, 인디오 원주민은 최하층의 삶을 살고 있다.

특히 산간지역 원주민 출신은 취업에 불이익을 받는 등 극심한 차별을 받는다.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캠퍼가 팀에 있어서 다행이야. 아직 나는 영어와 한국어가 그렇게 유창하지 않거든.”

“네 한국어 실력이 늘 수 있도록 한국어로 대화할까?”

“그래주면 고맙고.”

“파올로, 이온은 4개 언어를 할 수 있어. 영어도 상당히 잘해.”

“미안하지만 그건 내가 감당할 수 없어. 무리야 영재. 난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할 수 없다구.”

“하하하. 나도 마찬가지야. 암튼 한 달 간 잘 부탁한다. 파올로.”

영재와 파올로가 다시 한 번 악수를 나눴다.

“오늘 장을 보기로 했다면서?”

“응. 해가 지기 전에 다녀올 생각이야.”

“요리는 잘 해?”

“아주 훌륭한 요리선생님이 항상 우리 곁에 있지.”

이온이 스마트폰을 꺼내서 파울로에게 흔들어 보였다.

넷튜브에는 요리 레시피가 가득하다.

와이파이만 터지면 어떤 요리든 문제없다.

단 맛은 보장할 수 없다.

“시장에 함께 가 줄까?”

“가브리엘라가 함께 가줄 거야. 우리 팀이 요리당번일 때 초대할 게.”

“불고기를 먹을 수 있을까?”

“아마도.”

“그렇다면 나와 친구들이 쿠스케냐를 준비할 게.”

워크캠프팀과 현지인들이 짝이 지어지고, 근로봉사할 지역과 장소들을 돌아보고, 교육봉사 계획까지 수립했다.

쯔시안은 이상한 데서 의욕을 불태웠다.

“내가 아시아 문화 종주국인 중국의 위대한 전통문화를 페루 아이들에게 잘 알려주겠어.”

중국말로 뭐라 주접을 떨든.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았다.

어쨌든 첫날 오리엔테이션에서는 주말에만 자유시간이 허용되도록 계획을 짰다.

그 만큼 해야 할 일도 많고, 노동 강도 역시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워크캠프는 말 그대로 근로 봉사를 하는 것이다.

한 달 동안 매일 노동일을 한다고 보면 된다.

쯔시안과 하오란은 왠지 학교 밖에서 일하는 것이 더 고되고 힘들 것이란 생각을 했다.

따라서 쯔시안은 부득불 학교 내부 시설 보수를 맡겠다고 우겼다.

오전에 근로봉사를 하고, 오후에는 주로 보육원이나 학교에서 수업 및 체육활동을 하게 된다.

사실 외부에서의 작업과 학교 시설 보수, 어디가 더 힘들고 편한 것이 없다.

따라서 벤트를 포함해 유럽에 온 캠퍼들은 쯔시안팀이 무엇을 고르든 개의치 않았다.

이온과 남매 역시 마찬가지.

오리엔테이션을 얼추 끝나고 학교를 나서려는데.

“저기요! 혹시 한국인......? 맞죠?

40대 중반 정도 나이의 한국인 아줌마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이온과 남매는 한국말에 저절로 반응했다.

“안녕하세요.”

“맞구나! 한국에서 온 자원봉사자였구나.”

“저희는 이번 워크캠프에 참여하는 대학생들이에요. 한국인은 저와 여기 두 친구뿐이고 나머지는 여러 나라에서 왔어요.”

“오랜만에 한국에서 온 젊은 사람들을 만났네요. 이게 얼마만이야.”

“혹시......?”

“저는 이 학교가 아니라, 옆 마을 중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어요.”

“그러셨구나.”

선교사가 아니라는 점이 다소 의외였다.

수도 리마와 쿠스코에 교민들이 주로 모여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외에 지역에서 한국인을 만나게 된다면 선교사 아니면 관광객이었으니까.

“혹시 우리 학교는 봉사하러 안 와요?”

“중·고등학교를 찾아가는 프로그램은 없는 것으로 알아요. 지역 환경정화 활동과 초등학교 두 곳에서 봉사를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아쉽네. 우리 아이들이 한국에 대해 궁금한 게 정말 많은데.”

“......?”

남매는 본인이 학생들에게 설명해 주면 되지 않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한국을 떠난 지가 근 10년이 다 되어가서.......”

이온은 워크캠프 일행들을 먼저 보냈다.

좀 더 학교에 남아서 한국인 교사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다.

10년 전 아야쿠초에 여행을 왔다가 열악한 페루의 교육환경을 보고 남편과 함께 무작정 이민을 왔단다.

그 당시만 해도 ‘빛나는 길‘ 반군조직 잔당을 정부군이 토벌하던 때에서 조금 위험하기는 했지만, 착하고 때 묻지 않은 이곳 아이들이 자꾸 눈에 밟혀 한국의 모든 걸 정리하고 아야쿠초로 왔다고 했다.

처음에는 아야쿠초 시내의 공립고등학교에서 사서로 일하다가 몇 년 전 교사 자격을 취득해 이 지역의 중학교로 옮겨왔다고 했다.

“대학에서 한국어 수업을 하시던 교수님도 계셨는데, 지금은 쿠스코 쪽으로 옮겨가셔서. 아야쿠초에는 우리 부부와 아르마스 광장 지역에서 가전제품 장사를 하시는 사장님 부부 그렇게 둘 밖에 없네요.”

그녀는 한국 사람이 그리웠는지 숨 쉴 틈도 없이 수다를 늘어놓았다.

“주말에는 근처 관광을 다녀야 하나......?”

“저는 아야쿠초가 두 번째지만 여기 친구와 여동생은 처음이라서요. 두 시간 거리 정도의 관광지는 주말마다 데리고 다니며 구경 시켜주려고요.”

“저녁 초대를 하고 싶은데, 가능하겠어요?”

“초대해주시면 저희야 감사하죠.”

“한국의 청년들이 객지 나와서 고생하는데 변변한 반찬은 없겠지만 집밥이라도 대접하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이온과 남매가 고마움을 담아 꾸벅 인사를 했다.

“캠퍼들과 장을 보기로 해서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어디? 시내 재래시장을 갈 건가요?”

“시장도 가고 마켓도 가볼 생각이에요.”

“한국 식재료는 구할 수 없을 거예요. 그나마 중국 요리에 들어가는 비슷한 재료들은 좀 있고. 이쪽 지역이 교통이 좋지 못해 물류가 원활치가 못해요.”

“전에 왔을 때 중국음식점에서 김밥을 팔았는데......?”

“중국계 페루비안이 한국음식을 만들어 팔긴 하는데, 일 년 내내 메뉴가 되진 않고 그때그때 재료가 들어오는 것에 따라 달라요. 우리도 한 번씩 날 잡아서 리마에 가서 한국 식재료를 사오거나 비싼 운임을 주고 로컬버스편으로 물건을 받고 있어서.”

한국인 교사의 말이 아니었으면 공연히 한국 식재료를 찾겠다고 온 도시를 헤집고 다닐 뻔했다.

“우리 집에 올 때 내가 밑반찬 좀 싸줄게요.”

“두 분이 드시기도 모자랄 텐데......”

“단 둘이 살아도 항상 음식은 넉넉하게 준비해두기 때문에 문제없으니까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내 정신 좀 봐! 내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네요. 내가 내일이나 모레 쯤 봉사하는 곳으로 찾아 갈게요. 우리 함께 저녁 먹을 스케줄을 잡아 봐요.”

“네. 선생님!”

이온과 남매는 한국인 교사에게 인사하고 변두리 지역을 떠났다.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벨기에 여학생들과 방부터 바꿨다.

이온과 영재가 짐을 풀고 있는데, 옆 침대를 사용하는 벤트가 말을 걸었다.

“사실 난 홈스테이를 각오했거든. 이곳은 정말 호텔이라고 할 수 있어.”

“밤에 모기들이 엄청 극성일 텐데, 지낼 만 해?”

“말도 마.”

이어 벤트가 모기와 에어컨이 없는 것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벤트. 침대 앞에 놓인 신발은 다 누구 꺼야?”

“모두 내가 가져온 거야.”

벤트는 옷은 몇 벌 안 챙겨왔는데, 신발만 종류별로 6켤레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워크캠프에서 열심히 일 하려고 챙겨 온 것이란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나름 국제워크캠프 경험이 많다고 한참을 자랑했다.

이온이 영재에게 눈총을 줬다.

괜한 것을 물어봐서 수다를 듣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1년에 단 한 번 뿐인 휴가를 기꺼이 워크캠프에 사용하는 벤트가 참 대단한 것 같아.”

“그러게. 우리도 앞으로 저런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한국의 직장인이라면 어쩌면 할 수 없는 선택일지 몰랐다.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면 저 형처럼 살 수 없을지도.”

“IT기업에 다니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아닌가?”

“사표 내고 봉사하라고 하지 않으면 다행일 것 같지 않냐?”

“요즘 한국의 기업 문화도 많이 바뀌고 있다고 하던데.”

“비정규직만 졸라 늘리고, 경력자만 뽑지.”

대화가 잘 나가다가 미래에 대한 비관모드로 흘러갔다.

암튼 캠퍼들은 저마다 자유시간에 아야쿠초 주변을 여행할 부푼 꿈에 젖어 있었다.

“주말까지 반납하고 근로봉사를 하는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기를.”

벤트가 불길한 말을 중얼거렸다.

모두가 못들은 척 했다.

혹시 그의 말이 씨가 될까봐.

이온은 오전에 하지 못한 건강검진을 받느라, 따로 움직였다.

병원에서 오랜 시간을 잡아먹을 것 같았는데, 예상 밖으로 대기 시간 없이 곧장 간단한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었다.

형형색색의 과일과 닭이 지천으로 깔려 있고, 양파, 당근, 마늘 등은 물론이고, 배추나 무도 있는 재래시장.

빵이며 치즈, 옥수수 그리고 돼지고기와 소고기 등등.

해산물이 눈에 띠지 않는 것으로 봐서 내륙은 내륙인가 싶었다.

이온은 페루의 재래시장을 둘러보며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똑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의 시골 장터와 다를 것이 별로 없었으니까.

조금 특이한 것도 있다.

감자 비슷한 작물 종료만 적어도 100가지는 되는 것 같다는 것.

암튼 이온은 동료 캠퍼들을 찾기 위해 시장을 기웃거렸다.

그런데 마주치는 현지인마다 어디서 왔냐고 물어본다.

남한에서 왔다고 하면 굉장히 반가워한다.

한국 드라마를 물어보고,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한다.

넷튜버의 상징인 셀카봉을 들고 있지도 않고, 연예인은 더더욱 아닌데 현지인들이 무척이나 반겨주고 기념사진도 찍자고 해서 처음에는 당황했다.

그렇게 십여 명과 셀카를 찍어줬다.

그러다 노점에서 감자 비슷한 작물을 팔고 있는 노파가 말을 걸었다.

“꼬레아노.”

처음으로 한국인임을 단번에 알아본 현지인이었다.

“예. 할머니.”

“소용을 다 한 물건은 몸에 지니고 다니지 않는 것이 좋아.”

“......?”

“미련이야 미련.”

노파의 시선이 자신의 목과 가슴 언저리에 닿아있다.

토끼발이 옷 밖으로 나와 있지 않았는데, 한 눈에 꿰뚫어 봤다?

이온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제 목걸이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오래전에 그 쓰임을 다 했지. 청년도 알고 있잖아? 그것을 만든 분도 자연으로 돌아간 지가 꽤나 오래 된 것 같아. 그런가?”

“......?”

“청년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겠지만...... 장신구 노릇도 못할 못생긴 것을 굳이 몸에 차고 다닐 필요는 없지.”

용하다는 점집에 왔는데, 방석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무당이 애기 목소리를 흉내 내며 자신의 비밀을 낱낱이 떠들어대면 그걸 듣고 있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이온은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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