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현역 복귀를 추진 중이던 오리온 백작을 위한 것처럼 기가 막힌 타이밍에 나타난 우주 괴수.
융족과의 전쟁 중에 마주쳤던 크라켄 무리였다.
놈들의 등장으로 전선의 전투함들이 상당한 피해를 보았다.
폐기 처분 판정을 받은 아군함만 구축함 23척, 순양함 11척, 전함 3척에 달했다.
이렇게 피해가 커진 건 크라켄의 강력한 체력 때문이었다.
전함급 크기에 달하는 괴물들은 그 방어력이 실로 엄청났다.
실드를 두른 전함을 잡아야 할 때 쏟아부어야 하는 화력과 미사일의 개수를 생각하면 크라켄을 잡기 힘든 건 당연했다.
‘하필 이럴 때….’
보고를 들은 나는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융족과의 전쟁 당시엔 이보다 더 큰 피해도 겪어봤지만 지금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모리더스 원수가 내게 전선 지역 방어를 맡겼기 때문이었다.
대장급 중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고 메이어 행성의 위치도 전선 쪽 부대를 통솔하기 적절한 위치였기에 나는 그 일을 흔쾌히 받아들였었다.
물론 그때만 해도 융족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우주 괴물도 자취를 감췄던 때라 이런 골치 아픈 일이 발생할 거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지만 말이다.
“괴물들은 잘 처리했나?”
<세 마리가 무리 지어 나타났고 그중 한 마리를 처치했습니다.>
“한 마리라도 잡아서 다행이군.”
<아닙니다. 그만한 피해를 보고도 전부 처치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니야. 전선 부대 규모를 뻔히 알고 있는데 더 바라면 그건 욕심이지. 마력핵만 잘 보관해 두고 있게. 곧 회수팀을 보내지.”
<알겠습니다!>
단기로도 강력한 크라켄이 세 마리가 나타났다면 그건 일선 부대에게 재앙이나 마찬가지였을 터.
그럼에도 피해를 이 정도로 막아낸 건 지휘관의 대처 능력이 무척 뛰어난 덕분이었다.
‘러셀 소장이라. 좋은 인재로군.’
그의 이름을 기억해 둔 나는 당장 추가 병력을 지원할 테니 지금처럼만 전선을 지켜달라는 당부를 남기며 통신을 마쳤다.
-음. 좋은 인재를 발견한 사령관치곤 여전히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데?
‘당연하지. 지금 전선에서 일어나는 모든 피해는 내 책임이 돼버렸으니까.’
생각해 보니 모리더스 원수도 너무했다.
새로 확장한 남부 국경이 얼마나 넓은데 이 지역의 관리를 몽땅 내게 일임했으니 말이다.
물론 원수가 나를 엿 먹일 심산으로 그런 건 아닐 터였다.
오히려 평화적인 시기엔 관리하는 지역이 늘어날수록 막대한 이익이 발생하곤 했다.
전시 중에 발견한 광산들의 보고를 생각하면 간단했다.
해당 지역 최고 관리자가 되면 의회와 수뇌부의 눈을 피해 적당히 주머니를 불리는 것쯤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불의의 사고가 계속해서 터지면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내가 책임져야 할 문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도 나를 시기하며 어떻게든 자리에서 끌어내릴 각을 재고 있는 놈들을 생각하면 더욱 주의가 필요했다.
-아니 그런 놈들이 아직도 있다고?
‘당연하지.’
최연소 대장 타이틀을 달았고 이젠 대놓고 수뇌부가 날 밀어주는 상황 아니던가.
군 내부에서도 나를 시기하는 부류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외적으로도 아직 많은 적이 남아 있었다.
‘지금은 민심이 좋으니까 티를 안 낼 뿐이지. 기회가 오면 언제든 물어뜯을 놈들이 한 트럭이야.’
적대 세력에게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전선 연방군의 피해를 막아야만 했다.
우주 괴수의 등장으로 나는 오리온 백작 복귀에 더욱 힘을 줄 수 있게 됐고 동시에 백작을 찾아가 과거엔 어떤 식으로 우주 괴수를 상대했는지 정보를 알아보았다.
“말을 편하게 해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고맙네.”
대장은 전역하면 후작 신분이 되고 현재도 그와 동등한 대우를 받는 위치였다.
당연히 백작이 나를 윗사람으로 대해야 할 테지만 오리온 백작은 내 목숨을 구한 생명의 은인인 데다 살아온 시간도 수십 배에 달했으니 그에 대해 예우를 해준 것이었다.
“과거 중앙엔 코어 함선이란 특수 전투함들이 있었네.”
“코어 함선이요?”
“간단히 말하면 괴수의 핵을 이용해 무기 파괴력을 높인 함선들이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일반 군함의 화력으론 괴물을 잡아내기가 몹시 어렵지 않나.”
“그렇죠.”
“괴물의 마력핵을 이용한 주포는 파장을 상쇄시켜 놈들의 배리어를 효과적으로 타격하기 충분한 화력을 지녔었네. 다소 소모성이긴 했지만 말이야.”
당시 중앙은 제국 전역에 퍼져있는 우주 괴물 사냥을 위해 특수 전투함을 운용했는데 지금은 괴물이 사라지면서 함선도 함께 사라진 모양이었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필요하지.”
“무엇입니까?”
“뛰어난 기량을 지닌 조종사.”
“조종사 말입니까?”
“내 자랑 같아 그렇지만 나는 마법사네. 그것도 제법 일가견이 있는 편에 속하지.”
오리온 백작은 전투기를 탄 마법사들이 괴수의 시선을 끌거나 마법으로 움직임을 제약시킨 뒤 특수함의 주포를 먹여 잡는 식으로 토벌대 임무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마법사 파일럿이라니….
생각보다 당시 괴수 토벌대의 무력이 대단했던 모양이었다.
“내 이야기가 의외였나?”
“당장 적용하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마법사를 찾아 군인으로 만들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은 사회 어딜 가든 환영받는 존재들이었다.
마법만 쓸 줄 알면 부와 명예를 다 누릴 수 있는데 굳이 목숨 걸고 전장에 나설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다.
“여기 있지 않나.”
“예?”
-와. 진짜 복귀하고 싶은가 보네.
오리온 백작은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일단 조종사 문제 한 명은 해결된 게 아니냐며 어깨를 으쓱했다.
준장 전역한 할아버지를 다시 전투기에 태우라니….
본인에게 말하면 불같이 화를 내겠지만 그건 거의 노인 학대 아닌가.
혹시 복귀하게 되더라도 나는 그가 토벌대 함장 정도로만 있어 주길 바랐다.
설마하니 남부에 그를 대체할 인재가 아예 없을 것 같진 않았다.
* * *
크라켄의 재등장 이후 나는 전선 부대의 활동 영역을 뒤로 물리도록 지시했다.
감시 영역을 좁히고 일정 구간마다 도약을 준비한 전함 부대를 배치함으로써 능동적으로 괴수의 출현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한 조치였다.
이러한 지시는 즉각적 효과를 발휘했다.
괴물이 또다시 나타나 아군 부대를 공격해 왔는데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괴수가 나타난 것을 발견한 정찰기는 즉시 통신을 공유해 후방의 타격 부대를 호출했고 이클립스2 미사일을 실은 전함들이 출동해 반격에 나섰다.
예상 밖의 화력에 깜짝 놀란 크라켄은 으르렁거리더니 다시 자취를 감추었다.
만약 다수의 함선으로 퇴로를 차단하며 공세를 펼쳤더라면 또 한 번 토벌에 성공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경우, 또다시 아군에 큰 피해가 발생했을 터였다.
조만간 더 쉽게 놈들을 잡을 수 있게 될 텐데 굳이 무리할 것 없다는 생각이 있었고 나는 괴수를 잡지 못해도 좋으니 피해를 최소화하라는 지시를 내려둔 상태였다.
그렇게 얼마 뒤, 아군의 희생으로 확보한 마력핵이 메이어 행성에 도착했다.
기존에 실피드에 장착한 핵보다는 작은 크기였다.
마력핵을 인계해 스펙을 확인한 베렐 대령은 다소 아쉽다는 반응이었다.
“크기가 작아 실피드의 획기적인 개조는 어렵겠습니다.”
남부의 독자적인 그라프 개발을 담당했던 그는 여전히 메이어 행성에 머물며 각종 방산 연구를 진행 중이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파트는 역시 실피드를 비롯한 그라프 관리였다.
베렐 대령은 기존에 장착한 핵과 비슷한 출력의 핵을 하나 더 얻으면 실피드를 쌍발 엔진으로 개조해 파워를 크게 끌어올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번 핵은 그 크기가 작아 그 균형이 맞질 않았다.
“2호기를 만드는 건 어떤가.”
“출력이 실피드보다 떨어질 텐데 괜찮겠습니까?”
“어차피 전투기보단 나을 거 아닌가.”
“물론입니다. 눈 감고 만들어도 전투기보단 압도적인 성능을 보일 겁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하도록.”
실피드에 이은 그라프 2호기.
다수의 그라프를 실은 엔터프라이즈호의 격납고를 상상하면 벌써 가슴이 웅장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럼 이제 2호기 파일럿을 구하는 문제만 남는 건가?
‘그건 걱정할 필요 없지.’
-왜?
‘내가 조종하면 되잖아.’
-지랄 마!
나는 충분히 일리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진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험한 말을 쏟아내는 걸 보면 말이다.
사실 그라프라는 게 강력한 마력핵을 동력원으로 이용하다 보니 어느 정도 마력에 내성을 갖춘 쪽이 유리했고 더 나아가 마법을 다룰 줄 알면 그보다 더 좋은 게 없었다.
특성을 늘어놓고 보면 정말 나만 한 인재가 또 없는 셈이었다.
하지만 진은 사령관이, 그것도 대장으로 함대를 총지휘해야 할 내가 직접 그라프를 조종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못을 박았다.
-지휘가 장난이야? 내가 전황을 일러주면 진형을 조율해 피해를 최소화할 생각을 해야지. 네가 직접 발로 뛰면 어떡하겠다는 거야. 너 그라프 조종하면서 애들 지휘까지 다 잘할 자신 있어?
‘…….’
-동시에 다 잘할 자신도 없으면서 욕심만 많아가지고.
‘지휘는 다른 애들이 맡아도 되잖아….’
진의 일침에 내가 슬쩍 항변해 봤지만 어림없는 일이었다.
-그 친구들도 정령이랑 계약했대? 머릿속에 전장 지도가 막 보이기라도 해? 네가 그라프 타고 서커스 하는 거랑 수천 척 전투함의 위치를 조율하는 거랑 어느 쪽이 더 피해를 줄이는 데 효율적일까? 대장님. 생각이란 걸 좀 하세요. 예?
잔뜩 꾸지람을 듣고서 나는 파일럿 복귀에 대한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진이 마구 쏘아붙여서 그렇지 사실 맞는 말이었다.
추가 제작될 2호기의 성능은 고작해야 전투기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다.
백기사급이 아닌 이상 실시간 지휘를 버려가면서까지 이득을 보긴 쉽지 않았다.
그만큼 진과 함께할 때의 내 전장 조율능력은 사기적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2호기 조종을 위한 파일럿 모집 공고가 올라갔다.
아무나 받을 수는 없기에 조종 특기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엘리트 장교 혹은 마력에 소질이 있는 마법사들만을 대상으로 한 테스트였다.
엔터프라이즈호에서 근무하는 것은 물론 남부에 단 두 대밖에 없는 그라프의 조종사가 된다는 것은 곧 특진 코스 보장이었기에 실력 있는 현역 엘리트 조종사들이 앞다투어 지원서를 보내왔다.
그렇게 부관들이 열심히 서류를 검토하는 사이, 나는 꼭 보고 싶었던 친구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반가워. 존.]
[존. 오랜만!]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
통역기를 차고 맞은편에 앉은 건 커다란 미어캣 친구들, 시즈 일족이었다.
내가 주변 지역에 완전한 장악력을 가지자 시즈 일족이 초대에 응해준 것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좋은 거래라면 언제든 환영이야!]
시즈 일족은 지난번에 보았던 검은 순양함을 타고 왔는데 내 개조 덕분에 그들은 더 빠른 함선을 가지게 되었다.
나에 대한 신뢰가 높은 이유였다.
“너희에게 묻고 싶은 게 있거든.”
[정보는 이용료가 드는 거 알지?]
[존이라면 싸게 해줄 수도 있어!]
꼬리를 흔드는 시즈 일족에게 묻고 싶은 건 총 세 가지였다.
첫 번째, 크라켄 같은 우주 괴수를 추적할 수 있는 기술이나 장치를 구할 수 있느냐는 것.
그라프 2호기의 제작, 그리고 파일럿이 정해지는 대로 나는 엔터프라이즈호를 끌고 본격적인 괴수 사냥에 나설 참이었다.
현재 확장된 남부 경계선은 내게 주어진 군단 하나로 커버하기엔 너무 넓은 게 사실이었다.
게다가 크라켄의 기습에 대비해 군을 뒤로 물린 상황 아니던가.
다시 정찰 시스템을 원래대로 돌리려면 이쪽에서 선공을 가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
부대를 쪼개어 정찰을 촘촘히 돌려도 될 테지만 그 와중에 크라켄과 마주치는 아군 부대는 모조리 갈려 나갈 게 뻔했기에 추적기술을 알아본 것이었다.
[추적기술 있어.]
[유인도 가능해. 하이퍼 에테르가 많이 필요하지만.]
[우주 괴수를 사냥할 거야?]
나는 고갤 끄덕였고 시즈 일족은 크라켄이 사라지면 자신들에게도 좋은 일이라며 싼값에 기술을 공유해 주겠다고 말했다.
[그럼 뭘 줄 거야?]
[존이 줄 수 있는 걸 알려줘!]
“진정해. 협상은 내가 원하는 것들을 전부 듣고 맞춰보자고.”
[좋아.]
그렇게 나는 두 번째 질문을 했다.
이미 다 소모해 버린 은신용 카트리지.
화이트 옵테늄을 사용해 충전해야 한다는 스텔스 기능을 다시 확보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가능해!]
[하지만 스텔스 카트리지는 제법 비싸.]
“비싼 건 알고 있어.”
[그런데 존 아직도 스텔스 기능이 필요해?]
[마력에 감각이 있는 애들한테는 은신 안 통해!]
[안 통해!]
시즈 일족은 마력 감각이 예민한 괴수를 상대로는 은신이 잘 먹히지 않을 수 있다며 제품을 너무 신뢰해선 안 된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판매하는 입장에선 굳이 제품의 약점을 드러낼 필요가 없었을 텐데도 말이다.
“조언 고마워. 그렇지만 괴수를 상대로 쓸 게 아니니까 괜찮아.”
[그럼 상관없지!]
[카트리지는 거래 가능 품목이야!]
내가 스텔스 기능을 살리려는 이유는 꼭 괴수를 상대하는 게 아니더라도 이 능력이 인간끼리의 전쟁에선 엄청난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전함급을 커버하지 못한다는 점은 다소 아쉽지만 순양함만 해도 적진을 휘젓는 덴 충분한 화력을 지니고 있었다.
수십 시간 이상 잠행이 가능한 스텔스 순양함은 중앙조차도 상대하는 데 애를 먹을 게 분명했다.
장차 남부가 승리하기 위한 핵심 열쇠인 셈이었다.
[또 필요한 게 있어?]
“하나 더 남았어.”
[오늘 존은 원하는 게 많네.]
[우리 부자 되겠어.]
[외상은 안 돼!]
나는 피식 웃으며 공짜로 물건을 받아 갈 생각은 없다며 마지막 질문을 건넸다.
중요도로 따지면 위에 물어본 두 가지 질문에 충분히 비견할 만한 것이었다.
“네메시스 메탈이 필요해. 구해줄 수 있겠어?”
형상기억합금을 제조하는 데 꼭 필요한 광물, 네메시스 메탈.
이것만 손에 넣으면 남부는 최소 중앙급에 준하는 각종 전략 자산들을 생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도 잠시, 미어캣 친구들이 처음으로 고갤 흔들었다.
[미안.]
[네메시스 메탈은 없어.]
[그거 엄청 희귀 금속이야.]
“아….”
안 된다는 소리에 아쉬움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동안 연구실에서 머릴 굴려본 결과 아무리 생각해도 네메시스 메탈이 없으면 중앙의 스펙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와서였다.
내가 아쉬운 반응을 보였기 때문일까.
고민하는 빛을 보인 시즈 일족이 재차 말문을 열었다.
[제국 말고도 네메시스 메탈 광산 가진 종족 있어.]
[다른 희귀 금속도 가지고 있을걸.]
“누군데?”
아직 희망의 끈을 놓기엔 너무 이르다고 생각할 때, 예상도 못 하고 있던 이름이 튀어나왔다.
[운카라!]
[죽음의 천사들이 네메시스 메탈 가지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