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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군벌가 망나니-126화 (126/134)

126화.

중앙의 기술력은 타 경계와 비교해 무척 뛰어난 수준을 자랑했다.

이렇게 기술이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뛰어난 연구자들, 그리고 은하 전역을 지배하며 채굴하게 된 다양한 금속들이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남부에선 이러한 금속 중 일부만을 구할 수 있었다.

내 머릿속엔 중앙에서 쓰였던 각종 1급 설계도가 들어있었지만 애석하게도 원재료를 구할 수 없어 생산이 불가능한 경우에 부딪히고 만 것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대체 금속을 찾아야 했고 정말 부득이한 경우엔 함선의 스펙을 낮추는 쪽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중앙급 함선을 제작하는 데 가장 애를 먹었던 금속은 바로 네메시스 메탈이었다.

충격을 받아 변형이 생겨도 금방 원래 형상으로 돌아가려는 성질을 가진 네메시스 메탈은 함선의 내구도와 유연성을 갖추는 데 빠져서는 안 될 금속이었다.

그러나 네메시스 메탈은 오직 중앙에서만 발견된 희귀 금속으로 다른 경계에선 아직 구할 길이 없었다.

그러한 이유로 라이언 코멧이 발표한 신형함의 성능은 현재 남부 전선에서 사용 중인 구축함 대비 90퍼센트 성능 향상, 중앙과 비교하면 25퍼센트 정도 모자란 수치로 완성되었다.

“90퍼센트라고…?”

발표를 듣던 군중들의 수군거림이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 신형함은 두말할 것도 없이 중앙급 스펙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아크팩토리에서 신형함을 찍어내는 순간 남부의 모든 군수 기업들은 전투함 사업에서 손을 떼야 할 거란 사실도 추가였다.

“이건 말도 안 돼….”

“연, 연락부터 넣어야.”

어디론가 통신을 넣기 위해 다급히 자릴 빠져나가는 인원이 있었고 니케아에서 날 응원하고자 찾아온 군 장성들의 반응도 이와 비슷했다.

단숨에 90퍼센트 성능 향상.

이건 혁신을 뛰어넘은 무언가였다.

간단히 스펙 공개를 마친 라이언 코멧이 질문을 받겠다고 하자 사방에서 우수수 손이 올라왔다.

연 생산량은 얼마나 되느냐.

언제부터 제조에 착수하는지, 단가 등을 물어보는 질문부터 향후 어떤 모델을 개발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도 있었다.

특히 군수기업 관계자들의 눈빛이 살벌했다.

이미 신형 미사일 생산도 발표한 마당 아닌가.

여기에 구축함, 더 나아가 순양함과 전함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신제품을 내놓겠다고 할 확률이 높았다.

“자, 한 분씩만 질문받겠습니다. 한 분씩만요!”

이만하면 라이언 코멧에게 뒤를 맡겨도 되겠단 생각에 난 조용히 발표회장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계속 내 쪽에만 시선을 두고 있던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 일부 쫓아오는 걸 볼 수 있었다.

-저 눈깔 희번덕거리는 거 봐. 이러다 사고 나는 거 아니야?

‘괜찮아. 검사 다 했어.’

진이 다소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였지만 일단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철저히 몸수색을 거친 인물들이었다.

갑자기 폭탄을 까며 너 죽고 나 죽자를 외치며 미친놈이 나타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았다.

만약 진짜 폭탄을 깠더라도 실드 한번 두르면 죽진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대장님! 아, 아니, 회장님!”

다섯 명이 황급히 달려 나왔는데 모두 군수 기업 관계자들이었다.

거의 달리다시피 하던 그들은 내게 접근하기 전에 발을 멈춰야만 했다.

삑삑-! 소릴 내며 무장 경호 중이던 크릭 병사들이 손을 번쩍 들고 다가오지 말란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특히 날 선 반응을 보이는 진저에게 난 괜찮다고 말한 뒤 얘기나 들어보자고 했다.

“회장님. 이러시면 정말 어떡합니까.”

“뭘 말입니까? 그리고 누구시죠?”

가장 선두에 서 있던 중년의 남성.

내가 정말 모르겠다는 투로 묻자 그는 죄송하다며 고갤 꾸벅 숙이더니 두 손으로 명함을 건넸다.

“나노 테크놀러지 부사장 브라이언 마린입니다.”

“1위 기업의 높으신 분이 저는 왜 찾으셨죠?”

“잠시 따로 이야기를 드리고 싶은데….”

그는 자신의 뒤까지 따라붙은 다른 기업 관계자들 눈치를 보더니 조용한 곳으로 자릴 옮기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난 고개를 저으며 거절 의사를 밝혔다.

“업무가 바빠서 따로 시간을 내긴 어려울 것 같군요. 하실 말씀 있으시면 여기서 하시고 아니면 따로 약속을 잡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실제로 바쁘기도 했고, 따로 만나서 이야기해 봤자 별로 영양가 있는 이야기가 오갈 것 같지도 않았다.

내 얼굴에서 귀찮아 하는 기색을 읽은 것인지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용건을 꺼냈다.

“저희 나노 테크놀러지에서 곧 신형함 발표를 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래서요?”

“무려 10년 이상 공들인 작품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중앙급 함선을 내시면….”

아마 속으론 중앙 다녀오더니 설계도를 카피해 오면 우린 어떻게 하냐는 말을 하고 싶었을 거다.

다만 그러지 못한 건 내 기분을 건드려 봐야 조금도 득 될 게 없어서 그랬을 테고.

어느 정도 상대의 속내를 파악한 나는 퉁명스레 대꾸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뭡니까. 설마 출시를 미뤄달라는 이야기를 하려던 건 아닐 텐데요.”

“…….”

-이야. 진짜 미뤄달라고 하려고 했나 보네. 양심이 그냥 가출했는데?

진의 말대로였다.

미뤄줄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꼬우면 니들도 목숨 걸고 중앙 가서 설계도 얻어오든가.

조용히 옆에서 대화를 지켜보던 타 군수 기업 관계자들은 해도 너무한 거 아니냐며, 우린 이대로 망하라는 거냐며 언성을 높였다.

아니, 니들이 망하든 말든 내 알 바냐고.

라이언 얘기 들어보니까 대놓고 관여하지 않았을 뿐이지 저번 미사일 건이 아니더라도 상위 군수 기업들은 다방면으로 아크팩토리를 압박한 전례가 있었다.

쑥쑥 크는 새싹 짓밟기의 일환이었으리라.

그런데 이제 와서 내게 큰소리를 치는 걸 보니 확실히 제정신은 아닌 인간들이구나 싶었다.

업보 몰라? 업보.

하지만 꾹 입술을 다물고 있던 나노 테크놀러지의 부사장만큼은 다른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그는 품 안에서 급히 무언가를 꺼냈다.

순간 진저가 긴장한 듯 귀를 쫑긋 세웠는데 양복 안주머니에서 튀어나온 건 다름 아닌 종이였다.

그것이 무엇인지 자세히 보기도 전에 부사장은 내 손에 그것을 조심스레 쥐여주었다.

-백지수표를 주네?

‘백지수표라고?’

상대가 건넨 종이의 정체는 다름 아닌 백지수표였다.

뇌물 줄 테니 잘 봐달라 이건가?

이 상황에서 백지수표를 건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의도로밖엔 읽히지 않았다.

내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으려니 상대는 조만간 정식으로 다시 연락을 드리겠다며 정중히 고갤 숙여 인사한 뒤 자릴 벗어났다.

[대장님. 일단 자릴 옮기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목에 통역기를 걸친 진저가 말했다.

수백 명에 달하는 사람이 발표회장을 벗어나 우르르 빠져나오고 있었다.

저 많은 인파에 둘러싸이면 상당히 피곤해질 것 같았기에 일단은 진저의 조언대로 자릴 벗어나기로 했다.

조금 전에 큰소리친 인간들이 얘기 좀 하자며 뭐라 외쳐댔지만 무시했다.

어차피 저들이 꽥꽥대 봐야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남부 군수 시장 전체가 서서히 내 손아귀로 들어오고 있었다.

* * *

나노 테크놀러지에서 건넨 백지수표가 어떤 의미였는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졌다.

내 앞으로 작성된 한 통의 메일.

‘영리한데?’

-그냥 살려달라는 거 아니야?

내용을 함께 확인하던 우린 적잖이 놀랐다.

나노 테크놀러지 회장이 직접 제안한 내용은 지분 양도를 포함해 그 어떤 조건이라도 받아들일 테니 차후 아크팩토리에 의해 개발되는 신제품들을 생산할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이는 사실상 항복선언이나 다름없었고 상대는 현재 기술 격차를 단기간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고 판단한 듯했다.

하지만 아무리 승산이 없다고 해도 이렇게 빠르게 결단을 내린 건 대단한 일이었다.

나노 테크놀러지가 어디 구멍가게도 아니고 남부를 대표하는 초거대기업 아니던가.

능력 부족을 인정하고 어떻게 해서든 이 위기를 넘기려는 그들의 모습은 내게 또 다른 감각을 일깨웠다.

‘솔직히 이 정도 결단력은 전생을 통틀어서도 본 적 없거든.’

-엄청 대단한 일인가 보네.

‘저쪽 오너는 흐름을 읽는 능력이 아주 탁월한 사람이야.’

만약 뜬금없이 내가 제국 역사에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저들은 계속해서 1위를 차지할 만한 기업임엔 틀림없었다.

이를 증명하듯 나노 테크놀러지를 제외한 기업들은 아직 정신 못 차린 듯한 행동을 보여주었다.

기껏해야 판매수익 10퍼센트 정도의 로열티를 언급하며 라이센스 계약 제안을 해온 걸 보면 말이다.

-10퍼센트? 그럴 바엔 그냥 우리가 다 생산하고 말지.

진의 말대로였다.

지금 이게 어떤 상황인지 아직 이해를 못한 녀석들에겐 아주 따끔한 맛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한 가지만 잊지 않는다면 말이지.’

아직은 모든 남부 기업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거였다.

프로메테우스 프로젝트에 의해 아크팩토리는 남부 시장을 통째로 장악할 기술 가능성을 갖췄지만 안타깝게도 생산인프라는 그에 미치지 못했다.

수익을 아무와도 나누지 않고 단독 생산을 시작하면 그야말로 막대한 돈을 벌겠지만, 남부군이 원하는 물량 수요는 제시간 내에 맞출 수 없을 터였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이제 아크팩토리가 생산할 물품은 미사일, 구축함을 넘어 향후 순양함과 전함까지도 확장될 예정이었다.

아무리 오크의 쌍둥이 행성이 있다 한들 모든 물량을 단독으로 처리하는 건 불가능했다.

고작 공장형 행성 하나로 주 경계 하나에 필요한 모든 물량을 감당할 수 있었으면 그동안 제국이 물자 보급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으리라.

게다가 어느 정도 형편을 헤아려 줘야 할 기업들이 따로 있었다.

바로 군 수뇌부 요직 인사들과 연결된 기업들이었다.

예를 들어 지금 원수직에 앉아있는 모리더스 원수는 프랭크 가문 일원이었고 프랭크 가문 역시 군수 사업에 발을 걸치고 있었다.

소위 명문가라고 불리는 곳 중에 군수 사업에 손을 대지 않은 곳을 찾기가 더 힘들 정도로 이 시장은 대귀족들의 확고한 캐시카우였다.

그런데 내가 그들의 자금줄을 모두 틀어막는다?

이건 돈을 떠나 더 큰 것을 잃을 수 있는 문제였다.

‘군이 제일 먼저 내 편을 들어주고 정착 지지 기반을 마련해 줬잖아. 어느 정도 나도 양보를 해야지.’

-상생하자는 거군.

어차피 당장의 목표는 최고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저 중앙을 꺾는 데 있었다.

파이를 전부 차지하지 못한다고 해서 슬퍼할 이유도 없었고 맘에 안 드는 군수 기업을 상당수 쳐내는 것으로도 수익은 엄청나게 증진될 터였다.

그리하여 몇 시간 뒤, 아크팩토리에선 신속히 기사를 띄웠다.

남부의 시장을 독점하기보단 상생을 위해 다수의 거대 기업들과 협력 관계를 꾸리겠단 내용의 보도였다.

그리고 이를 위한 제1 파트너로는 나노 테크놀러지가 선정되었다는 이야길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노 테크놀러지의 백지수표 제안.

나는 그들을 첫 번째 파트너로 올려주며 그 대가로 판매이익의 50퍼센트를 로열티로 받는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했다.

먼저 엎드렸으니 다소 너그러운 조건을 제시해 준 셈이었다.

50퍼센트 로열티 계약이 어떻게 너그러운 거냐고 거품을 물 자들이 상당했지만 이후 체결될 계약들을 생각하면 이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메탈렉시온을 필두로 한 기업연합체,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언론플레이를 펼치는 놈들에겐 거침없이 칼을 들이댈 참이었으니까.

* * *

군 수뇌부의 전폭적인 지원.

그리고 이제껏 본 적 없는 스펙의 신형함이라는 요소들이 맞물려 아크팩토리는 밤낮없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찌나 바쁜지 나는 모자라는 인력 충당을 위해 휘하 장교들을 잠시 회사에 빌려주어야 할 정도가 됐다.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는 것이 남부의 평화를 위한 길이니 딱히 거리낄 것도 없는 일이었다.

덕분에 서류 더미에 파묻혀 허우적대는 부하들은 죽을 맛이었겠지만 말이다.

시장에서 밀려난 군수 기업들이 앓는 소릴 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계약을 이미 체결한 기업과도 스텝을 조율해야 했으니 몸이 열 개 있어도 모자란 판이었다.

슬슬 계급을 가리지 않고 부하들의 입에서 살려달란 소리가 나올 즈음, 나는 햇볕 아래 쪼그리고 앉아 밭을 매고 있었다.

누가 보면 지휘관이 뺑끼 친다고 이놈의 짓거리 못 해 먹겠다고 잔뜩 화를 낼 법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 무척 중요한 작업이었다.

나는 아무리 해도 싹이 날 기미가 없는 황금콩을 대신해 각종 희귀 작물을 재배해 보는 중이었다.

종자는 식물학자들을 통해 얻기도 했고 일부는 세리스 공녀에게서 건네받은 품종이었다.

앞으로 늘어날 병사들을 배불리 먹이기 위한 필수 작업이었던 것.

-그래도 부하들보다 꿀 빠는 건 맞잖아. 안 그래?

그건 그렇지.

산더미 같은 종이 뭉치의 벽에 둘러싸여 있으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기분이 들지만 여기선 가끔 허리도 쭉 펴고 온실 밖으로 나가 서늘한 분지에서 머리를 식힐 수도 있었다.

“에고.”

손에 묻은 흙을 털며 허리를 펴고 있을 때 진이 말했다.

-오크는 대체 왜 그렇게 많이 먹는 걸까. 그냥 개량식물을 알아볼 게 아니라 오크 유전자를 개량하는 게 더 빠르겠다.

허기 개선을 위한 유전자 조작이라….

생명공학에 의해 유전자 레벨에서부터 조정을 거친 GMO 상품들이 있었으니 영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다만 오크는 상품이 아니니 그런 방식으로 허기를 해결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크나 인간도 결국엔 동물인데 마찬가지 아닌가?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런 이야긴 우리가 먹는 식물이 우주선 타고 문명을 이뤘을 때나 다시 논의해 보자고.’

먹거리에 적용하는 기술을 지성체에게 적용할 마음은 없다며 다시 일하려던 참이었다.

카린에게서 연락이 걸려왔다.

나를 찾는 손님이 있다는 보고였다.

<존! 할아버님께서 찾아오셨어.>

“할아버지가?”

트라카에 계셔야 할 분이 갑자기 찾아오시다니.

새삼 내가 너무 무심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자릴 잡은 지도 한 달 가까이 지나지 않았던가.

할아버지로선 손주 얼굴을 무척 보고 싶었으리라.

게다가 내가 어디 보통 손주던가.

제국을 두 번이나 구한 영웅이었으니 말이다.

작업을 중단하고 할아버지를 찾아뵈려는데 카린이 다급히 뒷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다른 손님도 같이 오셨는데?>

“누구?”

<모르겠어…. 근데 엘프야. 아마도 마법사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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