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주 군벌가 망나니-125화 (125/134)

125화.

위구에서 있었던 전투의 피해가 어느 정도였는지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었다.

새롭게 권력을 잡은 대원수와 중앙군 일당들은 지금까지 벌인 모든 일들이 제국을 위한 것이었다며 언론 통제에 나섰다.

<헬리오스 황제는 자신의 권력과 영생을 위해 죄 없는 제국 시민 수천만 명을 마법 연구의 제물로 희생시켰으며….>

명분 쌓기에 주력한 그들은 황제가 저지른 악행을 크게 부풀렸고 대대적으로 선전, 황실의 위엄을 깎아내리기 바빴다.

이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반란이 일어날 만했구나, 황제가 말년에 노망이 났었군 등의 반응을 보였다.

선전이 계속될수록 반란을 일으킨 중앙군은 제국을 위해 나선 영웅이 되었다.

특히 옥좌엔 관심이 없다며 지금의 자리에서 묵묵히 소임을 다하겠다 말한 대원수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결국엔 꼭두각시 황제를 앉혀 제국을 쥐락펴락할 거란 사실이 뻔한데도 말이다.

이렇듯 중앙의 혼란이 빠르게 정리되어 가자 남부군 수뇌부와 의원들 사이에선 불안함이 감돌았다.

임무를 내팽개치고 도망친 수도방위사령관을 지원하며 감히 중앙에 맞서려 했으니, 이제 곧 서슬 퍼런 칼날이 자신들에게 향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중앙에선 황제를 깎아내리는 동시에 내 험담을 엄청나게 해댔다.

수도방위사령관 존 메이어는 황제의 악행을 알면서도 묵인했으며 전황이 불리해지자 냉큼 도망친 간신배라며 말이다.

중앙에서 나는 최악의 쓰레기 취급을 받았고 그나마 평판이 좋았던 남부와 북부에서나마 체면치레하는 정도였다.

이를 가만히 두면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한 남부군 수뇌부는 재빨리 반박에 나섰다.

황제가 비밀리에 악행을 벌인 것은 사실이나 존 메이어는 이 사실을 묵과한 적이 없으며, 이번 반란이 벌어진 이유가 화폐개혁에 불만을 품은 귀족들에게 있다고 말이다.

남부에서 발행된 기사에 따르면 내가 도망친 이유는 다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한쪽은 탐욕에 눈이 멀어 옥좌를 습격한 도적놈들이고 다른 한쪽은 죄 없는 시민들의 목숨을 담보로 마법을 연구하는 미친 왕이었으니까.

그렇게 이쪽에서 발행한 반박기사가 남부를 넘어 제국 각지로 퍼지기 시작하자 중앙은 크게 발끈하는 모습을 보였다.

남부를 아예 제국 역사에서 지워버리겠다는 말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아마 대원수는 날 잡아 죽이고 싶었으리라.

당장이라도 거병해 남부로 군단을 보내오는 게 아니냐 하는 관측이 나돌았다.

하지만 상황이 그것을 허락지 않았다.

여전히 엘다란의 대군이 서부를 종횡무진 휘젓는 중이었다.

기세만 보면 이대로 중앙까지 밀고 들어갈 수준이었다.

여기에 중앙군은 미친 황제를 끌어내리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고 선전한 판국이니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할 책임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서부 시민들이 엘다란에 의해 고통받고 있었다.

이들의 고통을 계속 모른 체한다면 탐욕에 눈이 멀어 옥좌를 찬탈했다는 의혹을 벗기가 쉽지 않았다.

생지옥을 겪고 있는 서부 시민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전란이 내게 시간을 벌어준 격이 됐다.

중앙이 아무리 날 잡고 싶어도 먼저 서부를 정리하기 전엔 손 쓸 도리가 없었다.

‘내 평판은 아예 지하실까지 내려가겠군.’

곧 서부를 구원하기 위해 대원수가 대규모 군단급 병력을 조직할 테고 그리되면 서부에서도 대원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게 될 터였다.

이러다 진짜 남부 빼면 제국 전 지역을 적으로 돌리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나는 서둘러 연구실로 향했다.

이 혼란이 끝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남부의 전력을 중앙급으로 끌어올려야 했다.

중앙의 칼끝이 다시 이쪽으로 향하기 전에 말이다.

* * *

5월.

중앙의 반란이 마무리 지어지고 순식간에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모두의 예상과 달리 제국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서부의 드넓은 영토를 전부 헤집어 놓은 엘다란은 공세를 멈추지 않고 중앙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메인게이트는 중앙에서 닫아놨기에 사용이 불가능했고 하는 수 없이 엘다란은 옛 개척자들이 그러했듯이 공간 도약을 이용해 새 거점을 만들기 시작했다.

게이트를 이용하면 한 번에 건너뛸 수 있을 거리를 차근차근 확보해 나가는 전통 개척방식이었다.

빈 행성이나 임시 정거장에 퍼플옵테늄 보급기지를 마련하고 다시 도약하고, 군수뇌부에선 이러한 방식으로 서부에서 중앙까지 길이 뚫리는 데까지 최소 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계산했다.

정복 의지가 명백한 적들이 대놓고 다리를 놓으며 들어오는 상황.

하지만 이상한 것은 중앙의 반응이 너무나도 조용하다는 데 있었다.

금방이라도 군을 정비해 서부로 지원군을 파견할 것 같았던 중앙에선 여전히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진은 혹시 녀석들이 남부를 먼저 정리하려는 거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비밀게이트를 포함해 이미 게이트를 통한 병력 출입을 이쪽에서 차단해 두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중앙이 남부를 공략하려면 엘다란과 마찬가지로 거점을 이어가며 새 연결로를 뚫어야 한다는 건데 우직하게 밀고 들어오는 엘다란을 놔둔 채 우릴 먼저 칠 거라고 생각하긴 어려웠다.

‘대응을 했어도 진작에 했어야 할 시간이란 말이지.’

반란에 성공하자마자 재빨리 황제의 악행을 선전하고 내 이미지에 똥칠하던 움직임과는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이 때문에 서부에선 잠시 치솟았던 대원수와 중앙군에 대한 평가는 순식간에 나락으로 처박혔다.

지옥도가 펼쳐진 서부를 금방이라도 구해줄 것처럼 해놓고 입만 턴 형국이 되었으니 말이다.

만약 엘다란이 누군가에 의해 물러난다 한들, 서부라면 충분히 중앙을 향해 반기를 들 정도의 진한 증오가 축적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에 반해 남부는 서부 시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게 되었다.

경계를 뛰어넘어 두 지역이 하나로 똘똘 뭉치는 순간이었다.

중앙이 미적대던 지난 한 달 동안 메인게이트를 타고 피난해 온 서부 시민의 숫자는 자그마치 8,600억 명에 달했다.

이렇게까지 대규모 인원이 피난할 수 있었던 데는 서부 쪽 게이트 입구까지 넘어가 엘다란을 상대로 공방전을 펼친 남부군의 희생 덕분이었다.

중앙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남부는 군대를 파견해 어떻게든 게이트만은 지켜내려 애썼다.

남부로 향하는 게이트만이 서부 시민들의 유일한 탈출구였기 때문이다.

모리더스 원수는 최대한 게이트를 지켜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시민들을 구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남부의 맹장.

헥터 로메로가 군단 병력을 이끌고 서부까지 건너가 게이트 수성전을 펼쳤다.

그는 오스카 원수 반란 당시 남부의 심장이라 불렸던 강철 행성, 하콘을 방어해 내며 반란군 세력 억제에 큰 공을 세웠던 인물이다.

헥터 장군의 수성전 성공엔 큰 운도 따랐다.

엘다란이 동원한 1차 병력은 무려 20개 군단 규모.

아무리 그의 전술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군단 하나로 게이트를 지키는 건 어림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엘다란의 전투함 기술은 저 중앙과 비견할 만한 것이었기에 헥터 장군은 전투마다 고비를 넘기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게이트를 지킬 수 있었던 건 엘다란의 주력군이 게이트 파괴보단 중앙으로 가는 연결로 건설을 위해 대거 빠진 영향이 컸다.

애초에 남부로 군을 보낼 마음이 전혀 없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헥터 장군의 군단은 진즉에 소모되어 게이트를 포기해야만 했을 테니까.

‘상황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어쩌면 중앙은 저번 반란에서 생각보다 훨씬 큰 피해를 본 것일지도 몰랐다.

대규모 군단의 증발.

그렇게 생각하면 엘다란을 상대로 여전히 아무 반응 없이 웅크리고만 있는 움직임이 이해가 되었다.

황제는 정말 죽은 걸까.

중앙의 발표에 따르면 황성은 핵공격으로 성한 곳이 없으며 덩어리라 할 만한 것은 모두 녹아내려 옥좌의 작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고 했다.

뭐 황제야 죽든 말든 알 바 아니지만, 그곳에 있었던 어린 후계자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속이 시커먼 황제와 달리 천진난만한 웃음을 보였던 아딘.

황성을 탈출할 때 그 아이를 어떻게든 데리고 왔어야 했던 건 아니었을까.

나중에 따로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공녀도 탈출을 꾀하기 직전, 황성에서 아딘을 빼내려 했었다고 한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애한테 무슨 죄가 있겠나.

애초에 대원수가 지휘하는 중앙군 전 병력을 상대로 이긴다는 게 말이 안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황제는 공녀가 뭐라 말을 붙이기도 전에 축객령을 내렸고, 더 말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안 공녀는 나와 레하반 시티의 시민들만 데리고 탈출을 감행했다.

“너는 몰랐겠지만 나는 그때 마법으로 삼촌과 빠르게 의식을 주고받았어. 급할 땐 말보다 마법이 더 빠르거든. 수성전을 펼치더라도 아딘은 나랑 같이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말이야.”

하지만 끝내 황제는 아딘을 내어주지 않았다.

절대 질 리 없다고 생각했던 걸까.

어쨌든 결과는 공녀의 예상대로 반란군의 승리, 이후 아딘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알 길이 없었다.

어쩌면 황제와 같이 불길 속에서 숨을 거두었을지도 몰랐다.

공녀는 내 탓이 아니라며 더는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요즘도 그 아이를 떠올리곤 했다.

별 탈 없이 자랐더라면, 분명 헬리오스 황제보다 더 나은 인물이 되었을 터인 그 어린 소년을 말이다.

* * *

중앙의 침묵, 그리고 남부의 독립 준비.

군 수뇌부와 평의회는 내 손을 들어주었지만 모두가 이러한 상황을 반기는 건 아니었다.

오스카 원수 반란 당시 살아남은 소수의 기득권 세력과 귀족들은 중앙에 대드는 건 미친 짓이라며 야반도주를 감행했다.

재산을 대충 정리해 동부로 도망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우리는 이들을 굳이 잡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어차피 마음이 떠난 자들을 붙잡아 봐야 아무 의미도 없었다.

이제 중앙과는 연을 끊었으니 화폐 규격도 새로 정해야 할 테고 서부에서 들어온 시민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자치령 관리에 힘써야 할 시점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행보에 반대하는 세력 중엔 다소 과격하고 폭력적인 부류도 있다는 점이었다.

테러.

니케아에 있는 의회를 타격하거나 나를 죽여 중앙의 분노를 잠재우자는 무리들이 움직인다는 첩보가 들어오고 있었다.

2차, 3차, 4차까지.

계속해서 자치령으로 새 피난민 무리가 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매우 거슬리는 일이었다.

피난민으로 위장한 테러리스트가 언제 어디서 폭탄을 깔지 모르는 일 아닌가.

이에 특수 부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저를 필두로 한 크릭 대원들은 다수의 전투를 거치며 그 능력이 매우 향상되어 있었다.

정보 탐지뿐만 아니라 수색, 전투,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진정한 특수 부대로 발돋움한 것이다.

이들은 자치령 방어뿐만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전투함을 타고 원정을 나가 테러리스트의 본거지를 직접 타격하기도 했는데 무력이 모자랄 때면 카린이 직접 실피드를 대동해 전투함을 썰기도 했다.

이렇게 남부의 평화를 위해 일조하는 사이, 오크의 쌍둥이 행성에선 마침내 프로메테우스 계획의 첫 단추가 끼워졌다.

은회색의 신형 전투함.

이클립스급 구축함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낼 준비를 마친 것이다.

남부 국방력 강화의 본격적인 시작이라 할 수 있는 구축함 공개자리엔 바쁜 와중에도 고위 장성들과 의원들이 자릴 참석했다.

니케아의 본부를 비울 수 없는 모리더스 원수를 대신해 라함 도미니우스 대장이 와주었고 평의회를 이끄는 알피온 의장도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전투함 건조 사업에 발을 걸친 각종 군수 기업들이 빠짐없이 참석했는데 어떤 이들은 초대장을 보내지 않았음에도 한달음에 달려와 입국 심사를 받기도 했다.

그만큼 신형 구축함에 관한 관심이 높다는 뜻이었다.

자리를 가득 채운 사람들을 보며 나는 잠시 옛 생각을 떠올렸다.

마이크를 잡고 프로젝트며 새 제품을 홍보하던 시절의 나를 말이다.

-오늘은 발표 안 해?

‘내가 이제 직접 발표할 짬은 아니지.’

신형 구축함에 대한 발표 진행은 부회장인 라이언이 진행할 예정이었다.

신제품 설명회는 기술에 대한 질문을 받을 일도 없고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하는 자리였기에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상관은 없었다.

게다가 방문객 중엔 발표는 뒷전이고 나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인원도 상당했던지라 나는 꼭 인사를 해두어야 할 대귀족들과 대화를 나누는 쪽에 집중했다.

다들 남부의 요직을 맡은 권력자들이었다.

중앙의 정세가 어떻다느니, 서부에서 온 피난민의 흡수가 진행되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구석진 곳에서 눈을 흘기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인물들이 포착됐다.

‘누구지?’

테러리스트는 아닐 터였다.

위험인물이었다면 삼엄한 자치령의 입국 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했을 테니까.

정보를 따낸 진은 그들이 나노 테크놀러지 사람들이라고 알려주었다.

나노 테크놀러지.

여러 국방 사업에 발을 걸치고 있으며 남부에서 수십 년째 군수 기업 순위 1위를 지키는 대기업이었다.

-음. 재미있는 이야길 하는걸.

‘뭐라고 하는데?’

-우리 전투함의 성능을 예측하고 있어. 나노 테크놀러지도 신형함 출시를 앞두고 있던 모양이야.

융족과의 전쟁을 포함해 지금 전선에서 쓰이는 전투함의 5할 이상은 나노 테크놀러지가 만든 것이었다.

특히 이들은 엔진 분야에서 다른 기업이 쉽게 쫓아오지 못할 기술 격차를 보유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대화를 하는군. 우리가 주력함 성능의 20퍼센트를 웃도는 게 아니면 자기들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하고 있어.

20퍼센트.

단 1퍼센트 차이로도 명암이 갈리는 국방 사업에서 20퍼센트면 어마어마한 차이였다.

선두 주자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차세대 전투함 성능에 엄청난 공을 들인 모양이었다.

‘노력 많이 했겠네.’

군인보다 개발자로 살았던 시간이 더 긴 나는 그들의 노력에 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오늘 발표회에서 저들은 눈물을 쏙 빼게 될 터였다.

피할 수 없는 중앙과의 승부.

그때를 위해 매일 달려 나가는 중인 내게 20퍼센트라는 수치는 너무나도 작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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