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존이 황금콩 재배에 나선 그 시각.
남부 군수 업계에선 수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군 수뇌부가 남부 발전을 위해 변방의 외딴 행성을 지원하기 시작했다는 고급 정보였다.
군수 시장은 남부에서 가장 소문이 빨리 도는 곳 중 하나다.
기업 회장이 전부 대귀족이거나 명문가와 얽혀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군 수뇌부가 VV5610에 지원을 보내? 그것도 전시체제 수준으로?>
<그곳 아직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곳 아닌가.>
<대외적으로는 그렇지만 이미 내정된 자리라는 소문은 파다했지.>
<존 메이어 말이지?>
존 메이어.
예전엔 제국의 젊은 장교 중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란 평을 받았지만 이제는 그 격이 좀 더 올라 제국 최고 장교라는 타이틀이 붙은 남자였다.
남들은 태어나서 한 번 하기도 힘든 군공을 연거푸 쌓아 올린 것으로도 모자라 개발에까지 천부적인 능력을 지녔다는 인간.
실제로 그가 회장으로 앉아있는 아크팩토리는 현재 남부 군수 기업 순위 10위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는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업적이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아크팩토리는 군수기업 순위에조차 없던 비루한 기업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말이다.
<이 타이밍에 지원을 한다니 의도를 모르겠군.>
<누구 아는 사람 없나?>
<얼마 전 모리더스 원수 주도하에 최고위 장성급 회의가 있었다는군. 무슨 이야기가 오갔을지는 모르지만 말이야.>
군수기업 관계자들은 저마다의 추측을 하였고 그중 누군가는 VV5610에 있는 아크팩토리를 키우기 위한 게 아니겠느냔 의견을 냈다.
<여기에도 아크팩토리를 잡으려고 신규 프로젝트 돌리는 기업들이 많은 거로 아는데 말이야. 조심해야겠어? 군 수뇌부가 작정하고 밀어주는 기업과 척을 지면 어떻게 될지 뻔하잖아?>
이 싸움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기업의 관계자들은 상황이 재미있게 돌아간다며 낄낄거렸으나 당사자들은 독이 바짝 오를 수밖에 없었다.
특히 메탈렉시온이 그랬다.
그들은 군 수뇌부가 특정 기업을 몰아주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부당한 처사임을 강조했다.
<이건 명백한 오판이다! 아무리 존 메이어가 잘나간다곤 하나 그는 이미 중앙의 인물이라고!>
<남부의 경쟁력을 키워도 모자랄 판에…. 이건 남부를 중앙에 갖다 바치는 꼴이다!>
메탈렉시온 관계자들은 씩씩거리며 이번 사태를 비난했고 즉시 대응에 나섰다.
당장 내일모레 신형 미사일 발표회까지 예정된 마당이었다.
경영진 주도하에 대책회의가 열렸고 그들은 물러서는 일 없이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할 것을 결정했다.
군 수뇌부가 아무리 지원을 몰아준다 한들 결국 군수 사업은 기술력이 전부였다.
생산 인프라를 넓힐 순 있어도 기술 격차를 따라잡는 건 연구원들 몫이란 판단에서였다.
작정하고 칼을 빼 든 메탈렉시온은 여기에 여론몰이를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자신들은 남부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으로, 군 수뇌부의 특별지원을 받는 아크팩토리는 남부의 부를 중앙으로 유출하는 악덕 기업이라는 식이었다.
수뇌부는 화들짝 놀라 당장 흑색선전을 중단하라며 엄중 경고했지만 메탈렉시온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빠르게 기사를 접한 대중들이 자신들에 편에 서서 수뇌부를 비난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반란 사건으로 평의회가 물갈이된 탓에 남부에서 가장 강한 힘을 지니게 된 군 수뇌부지만 마냥 대중의 목소릴 무시할 수는 없었다.
수뇌부는 서둘러 기자회견을 열었고 이내 진화에 나섰다.
군수 기업 지원의 명백한 기준, 그것은 곧 기술력에 있다고 말이다.
<그럼 아크팩토리의 기술이 더 뛰어나다는 거지?>
<하긴, 존 메이어 장군이 떠나기 전까지 아크팩토리는 남부 최고의 미사일 회사였어.>
<근데 지금 존은 중앙으로 가버렸잖아.>
<설계도 같은 건 단순히 통신으로도 보내줄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부에 있었어. 계속 바삐 전쟁하던 사람이 미사일 개발까지 할 시간은 좀처럼 없었을 거야.>
<그럼 결론이 뭐야?>
<뭐긴 뭐야. 더 좋은 미사일 만든 놈이 지원을 받으면 된다는 거지.>
<그게 제일 좋네.>
양쪽의 입장을 모두 들은 대중은 잠시 판단을 미루기로 했다.
어느 쪽 물건이 더 좋은지 판단한 뒤에 다시 이야기해도 늦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모두의 관심은 곧 있을 신형 미사일 발표에 쏠렸다.
이 싸움의 승자가 한동안 남부의 모든 미사일 파이를 쓸어 담게 될 터였다.
* * *
며칠 뒤, 메탈렉시온 연구소의 신무기 발표회엔 많은 기자가 찾아왔다.
군 수뇌부와 사이가 틀어질 것을 각오하고서라도 돌파를 감행한 그들의 용기로 미루어볼 때, 이번 발표회에 대단한 무언가가 공개되리란 사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군수 사업은 결국 성능이 전부.
아무리 제국이 귀족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라지만 성능이 떨어지는 물건을 무턱대고 밀어줄 순 없다.
황제가 그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돈이면 당연히 더 성능이 뛰어난 무기를 채택하고, 제국의 국방력을 강화하는 것.
이 당연한 일에서 벗어나 뒷돈을 받거나, 능력도 되지 않는 기업을 밀어줘서 방어에 구멍이 뚫릴 땐 아무리 귀족이라도 목이 잘릴 각오를 해야 했다.
언제 어디서든 부패를 감시하는 이단심문관들이 황제의 눈과 귀가 되어 제국 전역을 감시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이번 발표회에서 대중의 관심을 끌고 압도적 성능을 보여줄 수만 있다면, 메탈렉시온은 다시 미사일 시장을 평정할 수 있었다.
“이번 신형 미사일 발표를 맡게 된 힉슨입니다.”
박수 속에 단상에 오른 발표자.
열심히 손뼉을 치는 이들은 미리 메탈렉시온에서 푼 바람잡이들이었다.
동시에 반투명 대형 스크린에 거대한 설계도가 펼쳐졌다.
메탈렉시온의 야심작, 헬파이어-Ⅱ 미사일이 처음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헬파이어 시리즈는 융족과의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10년 넘게 남부군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제품입니다. 저렴한 데다 강력하기까지 했죠. 저희 메탈렉시온은 헬파이어 시리즈의 장점을 그대로 살려 높은 가성비 유지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한번 화면을 봐주시겠습니까?”
화면엔 헬파이어2 미사일과 기존의 남부군이 주력으로 사용 중인 이클립스 미사일이 나란히 펼쳐지며 스펙이 표기됐다.
“헬파이어2 미사일은 이클립스 미사일보다 더 빠르고 단단한 실드를 펼칠 수 있습니다. 제조비는 같으며 관통력은 20퍼센트 이상 증대되었죠.”
발표자의 설명에 기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저 멀리서 은하 간 통신망을 켜고 발표회를 지켜보던 존 메이어도 피식 웃으며 박수를 쳤다.
‘뻔뻔하기가 소름 돋는 녀석들이군.’
다른 건 몰라도 미사일에 적용된 실드 소형화 기술은 진의 조언이 주요했던 마법공학 기술의 결정체였다.
물론 기술을 카피하는 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보단 쉽다지만 그래도 실드 기술만큼은 대번에 따라잡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카피 제품이겠군.’
잘해봐야 이클립스 미사일의 카피.
존은 이클립스 미사일에 쓰인 실드 기술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헬파이어2 미사일에 적용되었을 거라 판단했다.
‘원리를 모를 테니 손을 댈 수도 없었겠지.’
다시 말해 발표자가 조금 전에 했던, 이클립스 미사일에 비해 실드가 더욱 강해졌단 이야기는 새빨간 거짓말이란 뜻이었다.
-이거 특허 침해 아니냐?
‘귀족이 어디 법 무서워하는 양반들인가.’
-하긴 황제 말곤 무서운 게 없는 놈들이긴 하지.
다만 실드 방어력이 같다고 해도 헬파이어2 미사일의 위력이 이클립스 미사일보다 뛰어난 건 사실이었다.
관통력과 폭발력의 증대로 위력은 30퍼센트 가까이 차이가 났다.
이 정도면 물량전을 펼쳤을 때 중앙제 미사일과도 조금이나마 비벼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뭐 말 그대로 발끝이나 간신히 쫓아가는 수준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존과 달랐다.
<이 싸움은 메탈렉시온이 이기겠군.>
<왜? 아직 아크팩토리는 신무기 발표를 한 적도 없잖아.>
<군수 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나 본데 신무기 발표는 보통 몇 년의 텀을 두고 이뤄진다고. 근데 아크팩토리가 이클립스 신형 미사일을 발표한 지 얼마나 됐지? 2년쯤 됐나? 아직 신무기를 공개할 수준은 아닐 거야.>
<저 정도면 중앙도 긴장하는 거 아니야?>
<메탈렉시온이 정말 대단한 미사일을 만들어냈어.>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던 오스카, 감동의 물구나무.>
<고인 능욕 자제;;>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는 와중에 발표자는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사방에서 손이 올라왔고 발표자는 여유로운 태도로 기자 한 명을 콕 집었다.
“프라임통신의 애보턴 기자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소형화 실드 기술은 그간 아크팩토리의 대표 기술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그거야 당연히 저희 연구진이 밤낮없이 노력한 덕분 아니겠습니까. 충분한 답변이 되었길 바랍니다. 또 질문 있으신 분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뭡니까.”
“실드 소형화 공정엔 필연적으로 대형 아론다이트가 장착된 마력기계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만약 이번 헬파이어2 미사일이 전선 부대에 보급된다고 하여도 제때 물량을 맞출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물론 가능합니다.”
“메탈렉시온 사의 마력기계만으론 힘들 텐데요! 혹시 이번 프로젝트에 거대 군수 기업들이 연합했다는 소문이 사실입니까! 대답 부탁드립니다!”
“자, 한 명에게 너무 많은 질문 기회를 드린 것 같습니다. 다른 분에게 질문을 받죠.”
다시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왔다.
발표자는 형식적으로 몇 가지 질문을 더 받았고 그렇게 열띤 분위기 속에 헬파이어2의 발표회가 종료되었다.
그 결과, 대중은 완전히 메탈렉시온의 손을 들어주었다.
<군 수뇌부는 특정 기업에 부당이익 몰아주기를 중단하라!>
<중단하라!>
<우린 공정함을 원한다!>
<이미 중앙으로 가버린 사람의 뒤를 계속 봐줄 필요는 무어란 말인가!>
<군 수뇌부는 남부의 자긍심을 지키는 데 일조하라!>
* * *
발표회가 끝난 뒤, 남부 사방에서 군 수뇌부의 기준 없는 지원을 성토하는 의견이 올라왔다.
진의 조사에 따르면 이중엔 화폐개혁으로 피해를 본 귀족가문과 얽힌 이들, 메탈렉시온과 기업 연합체에서 푼 바람잡이들이 대거 섞여 있다고 했다.
-존. 왜 가만히 보고 있는 거야?
‘잠깐 기다려 보자고.’
내 손엔 성난 대중을 잠재울 수 있는 카드가 준비되어 있었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여러 미사일 설계도 중 뭐든 끄집어내면 헬파이어2 보다 우월한 성능을 발휘할 터였다.
다만 바로 화재를 진압하지 않고 지켜보는 이유는 이때다 싶어 튀어나올지 모르는 추가 세력들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일단 화폐개혁으로 손해 본 귀족들, 그리고 메탈렉시온 뒤에 숨어 힘을 보태는 기업들까진 확인했다.
이 밖에도 언제든 기회만 엿보는 세력이 또 있지 않을까 해서 잠자코 있던 어느 날.
라이언 코멧이 내게 통신을 걸어왔다.
<회장님.>
“무슨 일이야.”
<자원 거래처 중 일부가 더는 유통이 어렵겠다고 통보해 왔습니다.>
“협상 요청도 아니고 통보?”
<예. 메탈렉시온 발표회 이후 여론이 많이 안 좋지 않았습니까. 이쪽에서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서 조금 얕보인 모양입니다.>
“기회주의자들이로군.”
<슬슬 반격할까요? 언제든 명령만 내려주시면….>
“아니. 아직 아니야. 좀 더 두고 보자고.”
<알겠습니다.>
이미 군 수뇌부는 내 손을 들어주었다.
전과 달리 남부의 핵심 권력은 군에 있었고 이제 평의회가 설득되는 것도 시간문제의 일이었다.
나는 다시 사회의 전면에 나서기 전, 고개를 숙이고 기회를 엿보고 있을 적들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압도적 기술을 갖추고 내가 다시 남부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놈들은 다시 어둠 속으로 몸을 감출 터였다.
그런 음침한 놈들은 언제고 화근이 될 수 있으니 이참에 싹을 잘라내고 싶었다.
앞으로 커다란 풍파를 겪게 될 남부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렇게 딱 보름을 더 참고 기다리자 웹상엔 온통 수뇌부와 아크팩토리를 성토하는 글이 넘실거렸다.
모리더스 원수가 이끄는 남부군은 뭔가 다를 줄 알았더니 실망했다는 의견부터 존 메이어가 책임을 지고 사과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오죽하면 모리더스 원수가 이만하면 됐으니 슬슬 전면에 나서는 게 어떻겠냐며 나를 설득할 때쯤, 드디어 반격의 신호탄이 쏘아졌다.
“친애하는 남부 시민 여러분, 저는 연방군 대장, 존 메이어입니다.”
함교에 앉아 찍은 내 영상이 송출되자 남부의 모든 눈과 귀가 빠르게 스크린 앞으로 모여들었다.
<존 메이어 영상 떴다!>
<라이브임?>
<몰라.>
중앙군 수도방위사령관이 아닌 연방군 대장이라 직책을 밝혔지만 사람들은 이런 사소한 부분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저는 얼마 전, 그동안 남부에서 있었던 신무기 개발에 관한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제가 세운 아크팩토리가 남부군 수뇌부로부터 부당한 지원을 받았다는 소문은 결코 사실이 아닙니다.”
<그럼 그렇지.>
<형! 믿고 있었다고!>
“아크팩토리는 이미 경쟁사 측 미사일보다 더 뛰어난 이클립스2 개량 미사일의 양산준비를 확보해 둔 상태입니다. 순간 속도와 관통력을 향상시켰으며 종합 스펙으론 전작인 이클립스 미사일의 배를 뛰어넘는 위력을 갖춘 물건입니다.”
동시에 우수수 쏟아지는 감탄의 물결.
내 이름을 부르짖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웹상에 가득 찼다.
“비록 몸이 멀어졌을 때도 저는 늘 남부의 안전과 평화를 생각해 왔습니다. 이에 남부군의 도움을 받아 이번 신형 이클립스2 미사일의 전선 부대 배치를 상반기 내로 마칠 계획입니다.”
<우리 형 믿고 있었으면 개같이 박수!>
<어허. 존 트라카 메이어 님이 네 친구야?>
<말투 겸손하게 해 친구. 안 그러면 혼날 줄 알아.>
일련의 사건으로 잠시 고갤 숙이고 있던 내 추종자들이 다시 들고일어났다.
나는 남부를 위기에서 구한 영웅 아닌가.
당연히 날 좋아하는 시민들의 숫자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남부에 다시 내 영향력이 발휘되는 걸 시민들이 기뻐하는 사이, 나는 발표의 마무리를 이어나갔다.
“이클립스2 미사일은 남부군 역사에 기록될 역작이며 놀라운 제품이지만, 아크팩토리는 이 공을 홀로 차지하진 않을 것입니다. 그동안 쭉 믿음과 응원으로 보답한 파트너들은 그 보답을 받을 것이며….”
끝까지 믿고 함께해 준 동료들에겐 우리도 그에 걸맞은 성의를 보이겠다.
“반대로 회사의 자산을 도둑질한 자들과 기회를 틈타 얄팍한 수를 쓰던 세력들은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
언제 그랬냐는 듯 남부의 여론이 순식간에 뒤집혔다.
상황이 완전히 역전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