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제국이 망하다니.
대체 무슨 소린지 자초지종을 물으니 공녀는 느긋하게 설명할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턱대고 그녀의 말을 따를 수도 없는 일.
나는 조금이나마 이유를 알려줄 것을 그녀에게 부탁했다.
“공녀님. 저 수도방위사령관입니다. 다른 때도 아니고 전시에 황성을 놔두고 도망치면 바로 사형이란 말입니다.”
“하아…. 지금 시간 없으니까 요점만 전한다?”
그리 말한 공녀는 내게 실피드 밖으로 나오라고 하더니 자신의 이마에 손가락을 대고선 주문을 중얼거렸다.
내가 밖으로 나왔을 땐 공녀가 만든 것으로 짐작되는 녹색 실이 그녀의 손가락 끝에 모여 있었는데 그녀는 대뜸 그것을 내밀어 내 이마에 찰싹- 하고 때렸다.
-오. 기억 공유 마법.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말보다 빠르게, 공녀가 알고 있는 사건의 경과가 아주 명확하게 흘러들어왔다.
원인의 발단은 내가 중앙에 막 돌아왔을 즈음에 일어났다.
모두의 관심 속에 새 후계자가 책봉되고, 내가 대장으로 진급하던 날.
중앙 최외곽 자치령의 이단 심문소 연구소에선 비밀리에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곳엔 주기적으로 북부에서 온 함선들이 드나들었는데 정체불명의 물건이 컨테이너에 실려 연구소로 드나들곤 했다.
레하반 가문의 뛰어난 정보력을 통해 공녀는 그것이 어비스코어임을 파악했다.
라이키니르 대장이 플랜트를 격파하며 손에 넣은 수십 개 이상의 어비스코어가 지속적으로 중앙으로 흘러들어오고 있던 것.
그러나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황제가 어비스코어에 손을 대고 있단 사실을 안 순간부터 공녀는 황제와 이단심문소, 양쪽에 관한 감시를 강화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연구소 주변에서 이상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죄수들이었다.
인근 도시에서 죄수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중엔 금방 집으로 돌아갔어야 할 단순 경범죄자도 적지 않았으나 아무도 집으로 돌아간 이는 없었다.
그다음엔 군인.
해당 연구소가 위치한 행성엔 주기적으로 중앙군이 도착하곤 했는데 이상한 것은 들어간 병력은 있어도 다시 나온 병력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행성.
일주일 전, 인구 100만에 이르는 소규모 자치령이 통째로 증발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후 이단심문소는 즉시 정보 차단에 나섰으나 눈을 부릅뜨고 있던 레하반 가문의 정보원들을 속일 수는 없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이단심문소에 속한 고위 마법사가 최소 열 명 이상 죽었을 거란 추측이 있었다.
인간이 악마의 힘을 멋대로 휘두른 대가였다.
이후 연구소에서 출발한 이단심문소 함선이 위구 방면으로 향했다는 정보를 끝으로 공녀의 기억은 종료되었다.
“자, 딱 정해. 여기 남을 거야? 아니면 같이 튈래.”
사건의 전말을 파악한 나는 무척 심각한 얼굴로 답했다.
“공녀님. 이런 일이 있었으면 저한테도 알려주셨어야죠.”
“그래서 지금 알려줬잖아. 내가 삼촌이 미친 개사이코 새끼가 됐다고 떠들고 다녔어야 해?”
목적을 알 수도 없는 연구를 위해 100만 명이 넘는 무고한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전장을 누비며 그보다 더한 사상자도 보았지만 이건 경우가 달랐다.
그들은 제 발로 전장에 나선 이들도 아니었고 죽을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 미친 짓이 현재진행형이란 거였다.
이미 백만을 죽였으니 그보다 더한 일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린 어비스코어 마법을 위한 제물일지도 모르지. 전투함을 굳이 대기권에 머무르게 하는 것도 이상하잖아. 안 그래?”
확실히, 황제는 승리를 위해서라면 눈 하나 깜짝 않고 아군도 잡아먹을 인간이었다.
충성이고 나발이고 일단 몸을 피해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한 나는 공녀에게 탈출 계획을 물었다.
“도주할 때 함선을 쓸 수 있겠습니까?”
* * *
황성이 분주해지고 있었다.
밤하늘엔 황제가 말했던 이단심문소 소속으로 보이는 전투함이 하나둘 배치되기 시작했다.
중앙본부 소속 전투함은 방위사령관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는 먼저 긴급회의를 소집하여 지휘관급 간부들을 모두 불러들였다.
다소 특이한 것은 장소가 중앙본부가 아닌 엔터프라이즈호에서 열린다는 점이었다.
본부를 놔두고 전투함에서 진행되는 회의.
전시엔 종종 있는 경우라 장교들은 긴급 출격을 염두에 두었나보다 싶은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모이게 한 걸까.
어딘지 불안한 분위기 속에 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곧 전투가 시작될 거란 보고는 다들 들었겠지. 상대는 작전사령관이 이끄는 1군단, 그리고 대원수가 지휘하는 중앙군 거의 전체 세력이다.”
예상만 하고 있던 반란이 내 입으로부터 현실화되자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시간이 없으니 본론만 말하겠다. 나는 전투 전에 황성을 이탈할 예정이다. 목적지는 남부가 될 확률이 높다.”
“예에?”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장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
그중엔 몸을 들썩거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다른 이도 아니고 수도방위사령관이 전장을 이탈해 도주한다.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사, 사령관님. 전시 탈영은 중죄입니다.”
“사령관님의 직책을 생각하면 최소 사형입니다! 재고해 주십시오!”
모두가 나를 뜯어말리기에 바빴다.
그래도 내가 군생활을 헛되이 하진 않았는지 이 배신자 새끼! 네가 감히 폐하를 배반해! 라고 큰소리치는 인간은 없었다.
혼란에 빠진 회의장.
나는 마법을 사용해 이들이 빠르게 감정을 추스를 수 있도록 도왔다.
“주목! 이것만은 믿어주기 바란다. 나는 임관 이후 지금껏, 단 한 번도 전투가 두려워 도망친 적은 없었다. 아무리 승산 없는 전투여도 그것이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이면 망설임 없이 몸을 던져왔다. 그것은 그대들도 잘 알 것이다.”
우리 사령관님은 그런 사람이지.
암! 고작 패배가 두려워 적을 두고 도망칠 분이 아니지.
다들 내 말에 동의하듯 고갤 끄덕였다.
“내가 지금 자릴 피하는 것은 더는 황실이 믿고 충성을 다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폐하, 아니 황제의 주도로 대량학살이 일어났다.”
“학살…!”
“고작 마법 연구를 위해서였다. 그렇게 자치령이 통째로 사라졌고 최소 백만 명 이상의 무고한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사령관의 전장 이탈 선언.
여기에 황제의 대량학살 소식까지.
충격적인 소식에 연달아 얻어맞은 장교들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지러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더한 학살이 이제 이곳에서 일어나려 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역시 제물이 될지도 모를 일이고.”
“그럼 사령관께서는…저희가 어떻게 하길 바라시는 겁니까?”
“혼란스러울 거란 걸 잘 안다. 그대들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겠다. 나와 함께 탈출할 인원은 여기 그대로 남으면 된다. 끝까지 황성에 남고 싶은 인원은 잠시 재워 내려줄 것이다. 10분이면 다시 깨어날 거고 이후 상황은 종료됐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10분이면 황성을 벗어나 탈출할 수 있다는 소리에 다들 놀랐으나 결정이 쉽지는 않았다.
결국, 소수 인원이 이번만큼은 따를 수 없다며 내리겠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그들 중 상당수는 중앙 출신 장교들이었다.
나는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 조용히 마법을 걸어주었다.
이후 나는 남은 인원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8할에 가까운 장교들이 끝까지 나를 따르겠다며 함선에 남아있었다.
만약 사령관의 예상이 틀렸다면, 자신의 인생이 지옥구덩이로 던져지게 될 것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나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탈출에 성공해야겠다고 굳게 마음먹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본래는 병사들에게도 의견을 물어야 하나 시간이 없는 관계로 그들은 모두 데려갈 작정이다. 다들 나를 믿고 남부와 북부에서부터 따라온 친구들 아닌가. 나는 내 목숨이 다하기 전까진 그들을 살려서 집으로 보내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탈출 작전을 개시하겠다. 각 인원은 정해진 자리로 돌아가 이륙을 준비하라.”
“예!”
잠시 뒤, 엔터프라이즈호가 호위 함선 열 척만을 대동한 채 이륙에 나섰다.
처음 막 북부로 떠나던 때보다도 조촐한 규모였다.
* * *
본부를 벗어난 엔터프라이즈호는 레하반 타워를 경유했다.
타워 근처엔 처음 보는 붉은 대형함이 두 대 있었는데 그것들은 전부 기존 전함을 훌쩍 뛰어넘는 크기였다.
작은 초중전함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전함 아래로는 레하반 시티에 사는 주민들의 대피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차기 공작이자 도시관리자이기도 한 공녀는 시민들을 모두 데리고 갈 모양이었다.
나는 즉시 엔터프라이즈호를 착륙시켜 시민들의 대피를 도왔다.
수송 진행속도는 대상이 수십만 명에 이르는 것을 고려하면 무척 신속했다.
시민들은 이러한 때를 염두에 두고 지속적인 대피 훈련을 받은 것 같았다.
그러나 전투가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도 충분한 속도는 아니었다.
이를 염두에 두고 미리 중앙본부의 통신을 차단해두었지만 결국 이쪽의 행동을 알아챈 인원이 나왔다.
그리고 그 상대는 공교롭게도 우리가 잘 아는 인물이었다.
고속 셔틀을 타고 나타난 건 다름 아닌 제퍼슨이었다.
이단심문소 전투함들이 황성 하늘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되던 때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대피를 지휘하는 세리스 공녀를 보며 큰소리친 제퍼슨은 나를 보더니 눈을 부릅떴다.
시민 수송을, 그것도 사령부 소속 전투함으로 돕는다?
누가 봐도 곧 전투에 나설 인원이 할 일이 아니었다.
표정이 싹 굳은 제퍼슨이 나를 향해 일갈했다.
“존 메이어 사령관! 설마 지금 와서 폐하를 배신하겠단 건가!”
으르렁거리며 내게 달려오던 제퍼슨은 갑자기 힘없이 고꾸라졌다.
일이 커지는 게 싫었던 카린이 그의 목 뒤쪽을 내리쳐 기절시킨 거였다.
“어떻게 할까요?”
축 늘어진 제퍼슨을 들어 올린 카린이 의견을 물었는데 나는 일단 함선에 던져두라고 말했다.
그냥 놓고 가도 되지만 십중팔구 황성은 곧 지옥도로 변하여 시체의 바다가 될 터였다.
첫 만남은 악연이었지만 최근엔 나를 두고 악플을 다는 인간들을 처벌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고 또 북부에서의 공로를 생각하면 이대로 죽게 놔두기도 조금 찜찜한 게 사실이었다.
“공녀님. 서두르죠. 곧 발각될 겁니다.”
“거의 다 끝났어. 이륙 준비해.”
그렇게 수십만 명의 시민을 대피시킨 공녀가 이륙 신호를 주었다.
그와 동시에 이륙한 레하반 가문의 함선은 총 셋.
두 대는 시민들을 태운 거대 전함이었고 나머지 한 대는 북부에서도 보았던 붉은 연구선이었다.
그리고 그 연구선에는 봉인을 마친 천년공의 관이 실려있었다.
관이라고 하면 조금 이상하지만 흘러나오는 독기를 막기 위해 천년공은 오래전부터 관 속에 누워있었다는 게 공녀의 설명이었다.
“차도가 있었다곤 해도 독기가 강해서 접근이 힘들 텐데 저 함선은 누가 조종하는 겁니까?”
“우리 골렘이.”
골렘이 조종한다고?
그럼 지금 연구선은 무인함이라는 뜻 아닌가.
대체 골렘과 AI는 어떻게 다른 건지 생각하고 있을 때 함대가 유유히 대기권을 뚫고 올라갔다.
그때 대기권에 펼쳐져 있던 이단심문소 전투함 일부는 이쪽의 움직임을 눈치챈 것 같았으나 딱히 제재하려 들지는 않았다.
큰 전투를 앞두고 소모전을 피하고 싶었던 걸 수도 있고 이쪽의 덩치와 숫자가 훨씬 더 컸기에 그냥 보내준 걸지도 몰랐다.
그렇게 우린 황성을 벗어나 1군단이 조여오는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일단 전투를 피한 뒤 위구의 입구까지 향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첫 번째 계획이었다.
* * *
황성을 벗어난 뒤에도 우린 언제 적을 마주하게 될지 몰라 긴장했지만 정작 적과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공녀는 반란군 병력 대부분이 입구를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을 거라 말했다.
“녀석들한텐 일부 귀족이나 황족이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할 테니까.”
그렇게 조용히 입구를 향해 나아갈 때였다.
전방에서 전투기들이 날아다니는 것이 포착했다.
어딘가에 있을 적 본대의 정찰기였다.
전투기가 등장한 순간 공녀는 작전을 시작하겠다며 거대한 마력을 일대에 퍼트리기 시작했다.
붉은 대형함으로부터 시작된 그 마력은 전투함 여럿을 동시에 감쌀 만큼 대단했는데 인간인 나로서는 감히 흉내도 내기 힘든 수준의 대마력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거센 파도처럼 대열을 맞추어 몰려드는 전투함들의 접근이 눈에 띄었다.
대원수의 명령 아래 황성을 향해 이동 중인 군단 병력이었다.
<정지!>
상대가 먼저 이쪽을 알아보고선 정지 신호를 보냈다.
<혹시 세리스 공녀님이십니까?>
“알면서 물어봐? 죽고 싶어?”
공녀가 흉흉한 기색을 드러내자 적 지휘관은 크게 당황하며 공녀를 만나거든 대원수가 통신을 연결하라고 했다며 잠시만 기다려달란 말을 전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은하간 통신망이 연결되어 대원수의 얼굴이 화면에 나타났다.
<어딜 가는 중인가. 세리스 공녀.>
“황성을 쑥대밭으로 만들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이거 완전 미친 새끼 아니야!”
몰래 통신을 지켜보던 나는 저래도 되는 건가 싶었으나 대원수는 공녀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덤덤한 표정을 유지했다.
<미안하지만 그대를 보내줄 순 없네.>
“대원수 따위가…. 레하반 가문 차기 가주의 행차를 막겠다고?”
<사태가 엄중하니 이해해주길 바라네.>
“이해 못 하겠는데? 이 반역자 새끼야.”
반역자라는 말에 대원수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왜? 나까지 잡아다가 모가지 썰어보게?”
<화를 가라앉히게. 그럴 생각은 조금도 없었으니까. 이것은 우리 인간들의 일이지. 그대들 드래곤에게까지 불편을 끼치는 일은 없도록 하지.>
“이미 불편해! 폭발 때문에 아버지 치료를 제대로 할 수가 없잖아!”
공녀는 진심으로 화났다는 듯 분노를 드러냈고 이대로 보내주지 않으면 다시 종족전쟁이 일어나는 꼴을 보게 될 거라며 대원수를 압박했다.
종족전쟁.
제국이 아직 기틀이 채 잡히지 않았을 무렵, 우주시대를 맞이한 인류의 가장 큰 적은 다름 아닌 드래곤이었다.
오직 마법을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존재들은 압도적인 무력과 마법기술로 인류와 수십 년에 달하는 전쟁을 펼쳤었다.
드래곤과 드워프와 연합했고 인간은 엘프와 연합해 은하 전역이 불바다가 되었던 역사.
오죽하면 그 자존심 강한 황제들이 다른 것은 다 제쳐두어도 드래곤과의 평화만큼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고 꼭 강조할 정도였다.
“마크 딜런, 나는 아버지의 치료에 전념하느라 인간사에 관여할 여유가 없어. 그러니 날 더 귀찮게 하지 마. 만약 이번 일로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잘못되는 날엔…. 반드시 제국을 잿더미로 만들어주겠어.”
또박또박 음절을 눌러 담아 여과 없이 분노를 전한 공녀.
고민하는 빛을 띤 대원수가 수염을 매만졌다.
<지금 그쪽엔 누가 타고 있나.>
“나랑 아버지. 그리고 식솔 몇 명.”
<레하반 가문의 대전함을 타고 올 줄 알았는데. 굳이 작은 연구선을 골랐군.>
대원수는 마치 연구선을 제외하면 다른 함선들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했다.
대규모 인식저해마법.
이것이 바로 대마력을 이용해 공녀가 펼친 마법의 효과였다.
“너희가 황성에서의 소란을 마무리 지으면 다시 돌아갈 거야. 그러니 짐도 간단히 할 수밖에.”
<그 말은 차기 황제와 드래곤의 맹약이 계속 유지된다는 뜻으로 봐도 되겠나?>
“알게 뭐야. 나중에 아버지 깨어나면 그때 다시 물어봐.”
<알겠네. 위구를 빠져나갈 수 있도록 손을 써두지. 대신 통과할 수 있는 건 지금 그 연구선 한 척뿐이네.>
“잠깐! 나도 하나만 물어보자.”
<뭔가.>
“왜 갑자기 반란을 일으킨 거지? 2년 전에도 가만히 있었으면서?”
그 이유를 묻자 대원수는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말했는데 그 답을 듣는 순간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다.
<화폐개혁. 황제가 수백 년에 걸쳐 이룬 가치를 송두리째 파괴하지 않았나. 그럼 우리도 들고일어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