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처음엔 또 자작극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전례가 있지 않던가.
황제가 쓰러졌다 하여 남부에서의 전쟁이 중단되었었고, 그 사이 옥좌를 탐한 무리는 되살아난 황제에 의해 목이 날아간 게 2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야심한 시각에 만난 궁중백의 얼굴에선 그 어떤 거짓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법으로 확인해보아도 그는 오직 진실만을 말할 뿐이었다.
궁중백은 황제가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며 최근 중앙의 인사들을 과격하게 정리한 것도 그러한 영향이 없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폐하를 한 번 뵐 수는 없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이미 성내의 의사와 마법사가 소집됐으며 그 누구도 면회가 안 된다고 하니, 나로서는 그저 다음 소식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로만은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현재 5명이 채 되지 않으며 군 수뇌부 쪽엔 내가 유일하다는 이야길 꺼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문득 묘한 기분을 느꼈다.
작전사령관이나 다른 사람들은 제쳐두고라도 대원수에겐 나보다 먼저 알려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원수껜 일부러 알리지 않은 겁니까?”
“폐하께서 자신의 병세를 알려도 좋다고 한 사람은 존 메이어 대장님이 유일했습니다. 아딘 전하를 잘 부탁한다는 말씀을 남기시면서요.”
-으음. 이거 또 시험 아닐까?
진은 영 내키지 않는단 투로 말했다.
내가 어떻게 움직일지 시험해보려고 일부러 앓아누운 걸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왠지 느낌이 이상했다.
궁중백의 말이 전부 사실이며, 조만간 거대한 폭풍이 황성에 닥칠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있었다.
“아딘 전하를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 일은 정리될 때까지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아주십시오.”
“사람을 모아 이 위기를 넘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아군인지 알 수 없는 게 문제입니다. 지금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으니 사령관께서도 부디 주의하십시오.”
* * *
원인 모를 병환으로 황제가 쓰러진 지 며칠이 흘렀지만, 황성의 분위기는 여전히 조용했다.
어린 아딘이 갑작스레 황제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며 내게 서운함을 토로하는 것 말고는 다른 때와 똑같은 일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평화가 오래 갈 순 없었다.
황제가 공식석상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타입은 아니라지만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자 서서히,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 돌기 시작한 거였다.
제일 먼저 반응이 올라온 건 익명으로 운영되는 황성 인터넷 커뮤니티였다.
Guest1511 : 최근에 폐하 얼굴을 본 사람이 없다는데? 혹시 뭐 소식 아는 사람 있어?
Guest549 : 헬리오스 또 뒈진 척 연기하냐?
Guest78 : 쉿! 그런 말을 하면 안 돼!
Guest549 : 이번에도 반항하는 귀족들 좀 치우고 싶었나 보지. 피에 미친 인간.
Guest78 : 저, 저런.
Guest7799 : 잘 가라. 친구. 멀리 안 나간다.
아무리 익명이라고 해도 제국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황제에 대한 존칭을 꼬박꼬박 붙이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이단심문관이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일단 사람들이 이상을 눈치챈 이상 소문이 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 일이 얼마나 심각하게 사안이었는지 오죽하면 나와 말도 섞고 싶어하지 않던 중앙 장교 일부가 내게 먼저 연락을 취해올 정도였다.
황제가 어린 후계자를 보필할 인물로 점찍은 첫 번째 인물이 나였으니 뭐라도 알고 있지 않겠냐며 지레짐작한 것이다.
물론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지만 행동에는 분명한 변화가 있었다.
“매티스. 감시망을 좀 더 세밀하게 운영하도록 일러라. 흘러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작은 조짐에도 주의해야 한다.”
“예. 알겠습니다.”
근래 위구 우주에선 그 어떤 위험도 발생한 적이 없었으나 황제의 소식이 모두에게 알려지면 상황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었다.
수천 년 동안 쌓인 제국의 역사는 옥좌가 위태로울 때 어떤 사고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아주 잘 알려주고 있었다.
지금이 가장 위험한 시기임을 직감한 나는 황성에 드나드는 인원에 관한 경계를 강화하는 한편, 인력을 총동원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자그마한 정보까지도 수집할 것을 지시했다.
제국의 과학기술과 마법이 결합하면 일반인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감시능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된다.
이를 이용하면 누가 수저를 몇 개 가졌는지까지 다 알아낼 수 있었다.
지구에서 자란 나는 어쩐지 이러한 작업이 조금 꺼림칙하게 여겨질 때가 있었지만 제국에선 변방 자치령에서도 으레 있는 일이었다.
“사령관님. 감시 체계 실시간으로 이상 없이 작동 중이라고 합니다.”
“알았어.”
카린의 보고를 받은 나는 고갤 끄덕여주었다.
그녀 역시 소문의 진실을 궁금해하는 듯했으나 내겐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대답하기 힘들지도 모를 나를 위한 배려였을지, 아니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그러한 행동이 고맙게 느껴졌다.
다만 모두가 나를 배려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대표적으론 세리스 공녀가 그랬다.
<존. 뭐 소식 들은 거 없어? 뭔데? 나한테만 살짝 알려줘 봐. 이거 비밀 회선이야.>
“…….”
<아, 답답하게 하지 말고! 혹시 삼촌 죽었어? 자꾸 말 안 하면 찾아간다?>
나는 비밀을 지켜달라던 궁중백이 떠올라 끝까지 입을 다물었지만 결국 본부까지 찾아와 난동을 피우는 공녀 앞에선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끝까지 비밀을 지키려 하다간 카린과 공녀의 대치로 집무실이 깡그리 터질 위기였기 때문이다.
결국, 공녀는 조용히 황제가 위독하다는 사실을 듣고 나서야 뒤로 물러났다.
별것도 아닌 일 가지고 왜 사람을 귀찮게 하느냐는 말을 곁들이면서 말이다.
그러나 본부를 떠날 때 공녀의 표정은 결코 별것 아닌 일을 마주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급히 무언갈 대비해야 하는 사람처럼 바삐 집무실을 떠날 이유가 없었다.
그야말로 폭풍 전야.
그러던 중 열린 정례회의에선 나를 향한 화살이 숨 가쁘게 날아들었다.
본래 정례회의는 제국의 대소사를 의논하고 연방군의 방침을 정하는 자리이건만 오늘은 대놓고 황제의 소식을 아는 게 있느냐며 나를 닦달하는 자리로 변해있었다.
황성 안전을 책임지는 수도방위사령관이 이 일을 모르면 누가 아느냔 논리였다.
심지어 매번 졸다가 회의 끝날 때만 눈을 뜨는 대원수마저 나를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이 중 적은 몇 명이나 있을까.’
-적이라고?
중앙군 수뇌부의 요직만이 참가하는 본부 정례회의.
수백 명 고위 장성들이 모인 이곳에서 황제가 쓰러지기만을 바라던 인간은 과연 몇 명이나 될지 나는 그것이 계속 신경 쓰였다.
헬리오스 황제는 무려 4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제국을 통치했지만, 그동안 제국이 평화롭고 행복했느냐고 물으면 물음표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기보단 피와 공포를 앞세운 시절이었다.
황제는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폭력을 효과적으로 사용했고, 필요하다면 전쟁을 방관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보는 당연히 적을 만들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가 2년 전, 피의 숙청으로 번졌다.
황제가 죽기만을 기다리는 야심 찬 황족과 권력가들은 지금도 제국 이곳저곳에 있었다.
분명, 이 자리에 모인 장성 중 일부는 그들과 끈이 닿아있을 터였다.
‘설마 대원수가 적은 아니겠지.’
문득 궁중백이 대원수에겐 황제가 쓰러진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다.
혹시라도 대원수가 내부의 적이라면, 정말로 황제가 쓰러진 거라면….
어린 후계자를 지키는 일은 불가능할지도 몰랐다.
그는 중앙 병력의 핵심인 위구 우주의 군단 모두를 통솔하는 자였다.
나는 수많은 중앙 장교의 질투를 한몸에 받는 수도방위사령관이었지만, 대원수가 지닌 힘 앞에선 그저 수도방위사령관 ‘따위’가 될 정도로 힘의 차이가 현격했다.
-대원수가 적일지도 몰라서 불안한 거야?
‘불안할 수밖에. 정말 대원수가 적이라면 우린 살아서 위구를 빠져나가지도 못할걸.’
-그렇게 걱정되면 회의가 끝나고 직접 대화를 해보는 게 어때.
진은 대원수를 상대로 마법을 쓰면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느 쪽에 서 있는지를 알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일단 나만 황제의 상태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대원수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알 수 없었고 만약 정말 대원수가 황제의 죽음을 기다리던 쪽이라면 괜히 공격의 빌미를 주는 꼴이었다.
아직 황제의 건강 악화는 흐르는 소문에 불과했다.
황제의 능력은 평범한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었기에, 옥좌를 탐하는 자들은 아직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쓸데없는 정보를 주지 않으면서도 내가 원하는 답을 얻어낼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답을 내린 나는 정례회의가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대원수를 뒤쫓았다.
땅에 발을 딛고 중앙본부에서 지내는 나와 달리 대원수는 위구 우주 내를 떠돌며 전투함에서 지내길 반복했는데 이는 유사시에 조금이라도 더 빠른 대응을 하기 위함이었다.
“각하!”
“음. 그래. 사령관이 내게 할 말이 있는 모양이군. 따로 자리가 필요한가?”
“아닙니다. 가시는 길에 짧게 드려도 되는 이야깁니다.”
그렇게 나는 대원수 옆에 붙어 일상 대화를 나누듯 말문을 열었다.
“일전에 아딘 전하께서 말입니다. 각하와 함께 식사를 한번 나누고 싶다고 하셔서 말입니다. 혹시 언제 시간이 편하실지 여쭤보고자 했습니다.”
“아, 그 얘기였나. 나는 또 폐하에 관한 이야긴 줄 알았군.”
“회의 중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도 정말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런가. 뭐 그렇담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전하께서 나 같은 늙은이와 밥 먹는 걸 좋아하시겠나?”
“각하께선 중앙의 안전을 책임지시는 군 최고 통솔권자 아니십니까. 전하께서도 만찬을 기대하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기쁜 일이로군.”
알겠다고 답한 대원수는 차후 아딘의 일정에 맞추어 점심 약속을 잡겠다며 자리를 떠났다.
나는 미소를 띤 채 고갤 숙여 인사했는데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딘의 초대를 받았을 때 기쁘다고 했던 원수에게서 엿본 빛은 붉은색.
이는 대원수가 거짓말을 했다는 뜻이었다.
물론 이것만으론 그의 속내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위험한 대상으로 단정 짓는 것도 섣부른 일이었다.
대원수는 단순히 어린 후계자와 식사를 하는 게 거북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점점 느낌이 싸해지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먹구름이 머리 위로 드리우는 것 같았다.
* * *
황궁을 둘러싼 감시가 더욱 강화되고.
다소 불안해하는 어린 후계자를 위로하며 지내던 어느 날.
나는 한밤중에 눈을 떴고 머리맡 위의 물컵을 찾았다.
단잠을 깨운 것은 진이었다.
-존 뭔가 이상하다. 황성에 내 눈을 가리는 뭔가가 있다.
보통 일이 아님을 직감한 나는 벌떡 일어나 통신을 취했다.
황성과 중앙본부와의 거리는 불과 50㎞.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지만 연락이 되질 않았다.
‘눈을 어떻게 가렸다는 거야.’
-갑자기 보이질 않기에 널 깨운 거다. 마법적인 무언가가 발휘된 모양이야.
점차 올라가는 황성의 긴장으로 인해 나는 최근 진에게 아딘을 지켜봐 달라고 부탁한 상태였다.
마법의 정령인 진은 그 시야가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넓었고 몰래 인터넷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는가 하면 지금처럼 누군가를 지켜봐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 한밤중에 그 시야가 차단됐다는 건 성에 변고가 생겼단 뜻이었다.
심지어 궁중백과도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 아닌가.
나는 즉시 부하들을 소집했고 카린과 함께 중앙본부 지하 출격장으로 향했다.
암살 등의 사고를 막기 위해 수도에선 공간이동 등의 마법 사용이 불가능했다.
엔터프라이즈호는 황성의 지상 정거장에 착륙해있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그야말로 일분일초가 급했기에 나는 본부 지하에 가져다 둔 실피드를 찾았다.
“매티스! 사령부에 경계 태세를 지시하고 누구도 왕래할 수 없도록 하늘길을 차단해라.”
“알겠습니다!”
“엔터프라이즈호는 병력 무장시켜서 황성 위로 띄우도록.”
“예!”
그렇게 카린과 함께 실피드를 타고 수직 통로를 통해 본부 하늘로 빠져나오는 순간이었다.
거대한 섬광과 함께 절대 보여서는 안 될 형체가 성 위로 터져나가며 지상에 불벼락을 퍼붓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핵폭발의 상승 흐름으로 발생하는 커다란 버섯구름.
토성처럼 층층이 고리를 달고 터지는 붉은 버섯이 불사조처럼 솟아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