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주 군벌가 망나니-112화 (112/134)

112화.

대관식이 치러지는 알현실에서, 내 이름이 언제 불릴지를 기다리는 사람은 아마 없었으리라.

오늘은 제국의 새 후계자가 정해지는 날이었고 사람들의 머릿속엔 온통 아딘에 관한 생각뿐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중앙군 대장 진급에 내 이름이 불리었을 때, 귀족들 사이에선 명백한 동요와 감정의 혼란이 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존 메이어라고?”

“화폐개혁의?”

“북방에서 대단한 일을 해냈다던데….”

소장에서 대장으로.

단순히 그 어렵다는 장성 계급 특진을 해냈기 때문이 아니었다.

훈장을 받고 당당히 중앙을 걸어 나오는 내 외견이 너무나도 젊기 때문이었다.

이 나이에 준장도 아니고 대장을 단다는 것은 수천 년 제국 역사를 찾아봐도 유례가 없을 정도의 진급 속도였다.

천재라 불리었으며 역대 제국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전설적인 인물들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

이러니 나를 바라보는 귀족들의 시선이 어지러운 건 충분히 이해가 되는 바였다.

-그래도 생각보다 적개심을 드러내는 사람은 안 보이네.

‘그렇겠지.’

발 디딜 틈 없이 인파가 몰린 황성에서 오늘 알현실엔 특별한 사람들만이 참석한 상태였다.

한 명, 한 명이 현역 대장이거나 그에 비할 만한 업적을 세운 이들이었으니 이들이 새삼 나를 적대한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다만 호오. 요놈 봐라? 하는 정도의 시선은 느껴졌다.

이들이 수십 년에 걸쳐 이룩한 업적을.

나는 불과 수년 만에 해치웠으니 말이다.

-빤히들 쳐다보는군. 널 파벌에 끌어들이고 싶은 모양이야.

‘나 같아도 손을 내밀고 싶을 거 같은데?’

자리로 돌아온 이후로도 내게 쏟아지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나이를 고려하면 향후 원수까지 노려볼 수 있는 사내.

그게 바로 나, 스물여섯의 존 메이어였다.

* * *

황제의 어린 손자.

아딘의 후계자 책봉식이 마무리된 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흘렀다.

후계자 선정이 마무리되었을 때 나는 다시 북방으로 향하게 될 거로 생각했었다.

적을 몰아내는 데 성공하긴 했으나 뇌파 교란 장치의 영향에서 벗어난 어비스데몬은 여전히 북부 최대의 위협요소였다.

상황이 정리되지 않은 건 아직 중앙에서 지원 나간 군단 병력이 돌아오지 않은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나는 여전히 황성에 머무르고 있었다.

정확히는 성 한쪽의 손님용 거처였는데 나는 이곳에서 지내며 궁중백으로부터 앞으로 황성에서 지내며 신경 써야 할 요소들에 대해 몇 번이고 가르침을 받는 중이었다.

내가 왜 이런 가르침을 받고 있느냐 하면….

이번에 내가 새로이 진급하며 얻게 된 타이틀이 중앙군 대장, 수도방위사령관이기 때문이었다.

원수 휘하에서 오직 황성(皇星) 방어에 전념하며 혹시 모를 쿠데타 등에 대비하는 무척 중요한 자리였다.

덕분에 나는 발령 대기 명령을 받는 순간부터 상당히 곤란한 처지에 놓인 상태였다.

‘진흙탕 파벌 싸움은 내 스타일이 아닌데….’

중앙.

모든 것이 안정되어 있으며 제국을 상징하는 곳이다.

남부에선 융족과 마찰을 빚고, 북쪽에선 어비스데몬과 전쟁을 했던 것처럼.

모든 제국의 주 경계는 사이가 원만치 않은 상대를 끼고 치열한 생존 경쟁을 펼치고 있으나 이곳만큼은 예외였다.

너무나 안정적인 덕에 조종사는 훈련이 가장 위험한 적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다.

덕분에 중앙 장교들은 늘 진급을 위한 군공 챙기기에 독이 바짝 오른 상태였다.

전투로 군공을 쌓을 수 없으니 자리가 보장해 주는 점수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이번에 받게 된 수도방위사령관 또한 그러한 ‘꿀’ 보직 중의 하나라는 것.

황성 방어를 책임지는 수도방위사령관은 중앙 원수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한 번은 거쳐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최고의 대우를 받는 자리였다.

그런데 그 자릴 아무리 업적이 충분하다 해도 웬 남부 촌놈이, 뜬금없이 비집고 들어와 떡하니 차지했으니 중앙 장성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특히 차기 방위사령관으로 은근히 기대하고 있던 다른 대장들의 분노야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어느 정도였냐면 중앙군 장교 커뮤니티엔 내 욕으로 온종일 도배가 되는 수준이었다.

제국을 구한 영웅한테 이거 너무한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욕설을 적는 자들의 대다수는 이미 파벌에 속해 있는, 상관을 모시는 자들이었다.

상관이 영전해야 자신도 출세를 할 텐데 내가 대뜸 튀어나와 그 길을 막은 격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장성급 파벌이란 것은 단순히 밀고 당기는 것 외에도 그 인사들의 가족들까지도 모임을 가지며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니 이제 막 중앙에 발을 디딘 내가 당장 비집고 들어가기엔 어려운 점이 많았다.

만약 내가 남부에서 계속 지냈더라면, 어느 자릴 가든 손이 닿는 인맥으로 커버를 했을 테지만 중앙엔 내 기반이라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게 문제였다.

‘이것도 황제의 시험일까?’

그렇다면 차라리 다행이었다.

목숨이 달랑거리던 북부 임무에 비하면 적어도 중앙에서의 일은 상대적으로 쉬울 터였으니 말이다.

* * *

내 진급과 더불어 휘하에 있던 장교들의 진급이 결정됐다.

전장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내가 올린 평가 보고서가 제대로 반영된 모양이었다.

그 덕분에 지크는 우리 동기 중 내 뒤를 이어 두 번째로 장성 계급을 달게 되었고 다른 동기들 역시 진급 축배를 들 수 있었다.

“모두 진급 축하한다.”

<다 지휘관을 잘 둔 덕분이지.>

<아니, 그런데 축하 인사를 이렇게 화상통화로 하는 게 맞아?>

“미안. 인수인계 받을 것도 남아 있고 모레쯤엔 엔터프라이즈호에 한 번 들를 수 있을 거야.”

<대장 됐다고 더 얼굴 보기 힘들어지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우리가 이해해야지! 이제 대수도방위사령관이시잖냐!>

<그럼 이제 엔터프라이즈호 함장도 바뀌는 건가?>

<어? 그건 싫은데….>

“엔터프라이즈호는 계속해서 지휘함으로 쓸 수 있도록 이야기해 볼 참이니 그 부분은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우린 대장님만 믿고 갈 테니 건강만 해! 건강만.>

동기가 모두 진급한 기분 좋은 날이건만 나는 이들과 화상통화로 술잔을 나누었다.

여전히 성에 발이 묶인 신세이기 때문이었다.

요즘 내 일과는 궁중백의 도움을 받아 방위사령부 인선 준비, 카린과 대화 나누기.

그리고 하루 한 번 어린 후계자의 얼굴을 보러 가는 것 등이 있었다.

황제를 따라 싹수도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는데 단순한 기우였던 모양이다.

아딘은 나를 볼 때마다 환하게 웃었고 오늘 간식이 무척 달다며 내게도 먹어보라고 건네주곤 했다.

“전하께선 간밤에 평안하셨는지요.”

“꿀잠을 잤지! 다만 오늘 할 공부를 생각하니 벌써 머리가 아프다네.”

인상을 쓰며 이마를 붙잡는 아딘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웃음이 나왔지만 나는 그러한 티를 내지 않고 그를 차기 황제로서 정중히 대했다.

“그런데 존.”

“예.”

“폐하께서 말씀하시길 그대가 중앙에 별 뜻이 없다고 말씀하시던데 무슨 말인가?”

“아, 일전에 제가 남부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길 기억하신 듯합니다.”

“남부…? 아, 원래 사령관 고향이 남부라고 하였지.”

“그렇습니다,”

“가지 말게.”

-이런.

황제에 이어 꼬맹이마저 나를 중앙에 붙들어 두려 하는 것인가?

남부로 돌아가기가 더욱 어려워지는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 아딘이 말했다.

“내가 황제가 되면 그대가 남부에서 가지고 싶었던 것들을 모두 챙겨주겠네. 그대와 내가 아직 만난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나는 허튼소릴 일삼는 사람은 아니야.”

허리춤에 손을 얹으며 당당히 선언하는 아딘.

그는 대귀족이면 누구나 자치령을 갖는다는 사실을 잘 안다며 그 부분에 대해선 이미 황제에게 부탁해 두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폐하께서도 들어주시겠다 하셨네. 자네도 아는가? 중앙 귀족이라면 누구나 이 위구에 자신의 자치령을 갖길 원한다는 사실을 말이네.”

모를 리 있겠는가.

위구는 황성을 둘러싼 천하 요새로 그 어떤 위기가 닥친다 한들 버틸 수 있는 제국의 심장이었다.

“내 그대에게 주는 첫 번째 선물이네. 이름만 대면 그 어떤 곳이든 안겨다 줄 테니 말만 하게!”

여기에 황성과 같은 구역이라는 상징성이 더해져 누구나 갖길 소망하는 곳이었는데 아딘은 위구의 그 어느 행성이라도 내가 원한다면 자치령으로 삼게 해주겠노라 선언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전하.”

“내 선물이 마음에 드는가?”

“물론입니다.”

-왜 맘에 안 든다고 말을 못 해?

‘어린 친구가 뭘 안다고 비수를 꽂겠냐고.’

-거 참 스윗하시네.

진이 툴툴거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중앙 위구 행성을 자치령 삼게 해주겠단 제안이 사실 빛 좋은 개살구이기 때문이었다.

제국의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위구의 모든 자치령은 내력이 깊은 가문들이 대를 이어 소유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여느 행성이 탐난다고 가지고 싶다고 주장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제국 후계자가 황제의 힘을 빌려 내리는 명령이니 대놓고 반대야 못 하겠지만 안 그래도 미운털이 박힌 내 처지가 더욱 가시방석이 되지 않겠는가.

앞으로 중앙에서 얼마나 더 일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겪게 될 여러 일을 고려한다면 중앙 명문가와 척을 지는 일만큼은 절대로 피해야 했다.

“그런데 존,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는가?”

“예.”

“저기 뒤따라오는 여인 말이네. 카린이라고 했던가? 폐하께선 원래 기사단에 있던 인재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둘이 어떤 사이인가?”

아딘이 말을 꺼내자 카린의 귀가 쫑긋 움직였다.

그녀도 내 대답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내가 먼저 맞춰보겠네. 혹시 사귀는 사이인가?”

“그렇습니다.”

-우리 엘프 귀 빨개졌다!

“역시! 볼 때마다 함께 있는 걸 보고선 왠지 그럴 것 같다고 생각했네. 둘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네.”

“감사합니다. 전하.”

“당분간 어려운 임무에 나서게 될 일도 없다고 들었네. 폐하께선 자넬 이곳에 계속 머무르게 하실 모양이야. 그러니 가정을 꾸리고 애를 낳는다 해도 아무 문제가 없지 않겠나?”

“예? 아, 그렇지요. 예….”

다소 아이답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아딘을 두고 카린은 이제 귀를 넘어 얼굴 전체가 빨갛게 물든 상태였다.

저러다 픽 쓰러지는 건 아닌지 조금 걱정스러울 때쯤, 다행히도 아딘이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려주었다.

“그건 그렇고. 새로운 사령부 인원을 구성하는 데 어려움이 많을 거란 이야기를 들었네. 귀족들의 반발이 심하던가?”

“아닙니다. 전하께서 걱정하실 만한 어려움은 없습니다.”

“나는 우리가 작은 문제라도 서로 허물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나만 그런 것인가? 경은 왠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섭섭하네.”

아딘은 서운하다는 티를 내더니 자기가 폐하께 쓸 만한 인재를 추릴 수 있게 부탁을 드려보겠단 이야길 꺼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어느덧 교육받을 시간이 된 아딘은 내일 또 보자며 손을 흔들어주었고 나는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물러가는 것으로 대화를 끝마쳤다.

만약 이러한 시간이 반복된다면.

나는 차기 황제의 총애를 받는 굳건한 수족으로서 반드시 제국의 중심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조심스레 고갤 들었다.

* * *

알현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청명한 호수를 낀 한 누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는 황제가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조용히 집무하는 곳으로 용의 눈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것은 숙청해 버리는 황제의 입김이 가장 강한 곳으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릴 빼면 작은 잡담조차 듣기 어려운 이곳에 요즘은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일이 부쩍 늘었다.

“할아버지-! 이것 좀 보세요.”

어린 손자가 이룬 성취를 보는 것이 즐거웠던 것일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피의 숙청을 일삼던 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헬리오스 황제는 온화한 표정으로 손주를 바라보았다.

“장하구나. 공부하는 덴 어려움이 없느냐?”

“네! 공부도 재밌고 아직은… 없는 것 같아요.”

황제는 손주의 일과를 들으며 고민이 있는지를 물었고, 아딘이 아! 소릴 내더니 말했다.

“그런데 할아버지. 왜 성안 사람들은 다들 할아버지 이야기만 하면 몸이 바짝 굳는 걸까요?”

“몸이 굳더냐? 누가?”

“선생님도 그렇고, 시종장도 그렇고, 거의 전부요.”

손주의 말에 피식 웃은 황제는 무릇 거대한 제국을 다스리려면 덕만으론 해결되지 않을 때가 많다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럼 할아버지가 일부러 그들을 두렵게 했다는 말씀이세요?”

“옥좌에 앉는 이에겐 그것이 필수불가결한 일이란 것을 너도 알아야 한다.”

“혹시… 궁중백도 할아버지를 무서워하나요?”

“로만도 가끔은 그럴 때가 있겠지. 항상 그렇진 않다.”

“그럼 다행이네요.”

황제는 손주가 누굴 염두에 두고 다행이라 한 것인지 궁금해 했고 아딘은 곧 존 메이어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존 메이어?”

“네. 존과는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요. 할아버지 말씀대로 결혼에 관한 조언도 해주었어요!”

“아딘.”

“네?”

“군신관계엔 결코 좁혀질 수 없는 거리가 있고 너는 그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존과 친하게 지내지 말라는 말씀인가요?”

“가끔은 필요하지 않다 생각되어도 네가 날카롭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신하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의도적으로, 그리고 날카롭게.

신하들을 마냥 편히 놔두지 않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장차 제국을 이끌어 가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황제는 강조했다.

“존 메이어는 분명 훌륭한 인재다. 하나 역사가 증명하는 바로 지나치게 총명한 사람은 자주 더 높은 곳을 꿈꾸곤 했다. 너는 사람을 다루는 데 있어 이 점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황제의 뜻을 알아들은 아딘은 존은 괜찮을 거라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는데 이 순간, 황제는 어린 후계자의 마음속에 정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것을 반드시 고쳐주어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가 생각하기에 인정(人情)은 옥좌에 앉을 이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요소였다.

실제로 자신이 즉위하고 수십 년간, 정 때문에 곤욕을 치렀던 과거를 떠올리자면 더욱 그러했다.

그는 어린 손주가 자신이 겪었던 슬픔을 되풀이하길 원치 않았고 더욱 완벽한 제왕을 만들기 위해 손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아딘. 교육을 마치고 나면 저녁을 들고 매일 이곳에 들르도록 하여라.”

“내일도요?”

“그래. 내 너에게 따로 필요한 교육을 할 것이다. 장차 훌륭한 황제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예!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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