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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군벌가 망나니-106화 (106/134)

106화.

-이번엔 빨리 일어났네.

푹 자고 일어났단 느낌에 시계를 살펴보니 고작 작전 종료로부터 3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회복이 빨라진 것을 보면 나도 실력이 제법 성장한 모양이었다.

이전 같았으면 종일 침상 신세를 지고 있었을 테니까.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매티스를 호출했고 작전 결과에 대한 추가 보고를 들었다.

“남반구에서 구출한 생존자 수는 총 20만 명입니다.”

“20만… 그게 전부인가?”

“그렇습니다. 생존자가 더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오래 시간을 끄는 것도 곤란했던 터라 바로 탑승 가능한 시민들만 수송했습니다.”

침공이 있기 전, 3군단의 거점 행성으로 근방에선 가장 번영한 행성이었던 베르데V의 인구는 무려 8억 명에 달했다.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면 인구 8억이란 숫자에 ‘무려’라는 수식어가 붙는 게 조금 어색할 수도 있겠으나 제국의 자치령은 그 기준이 지구와는 전혀 달랐다.

제국의 수많은 자치령은 평균 인구가 고작해야 천만 명 정도에 불과했다.

수십억 명 규모의 행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 많은 자치령이 존재하다 보니 평균치가 낮아진 것이었다.

인구 8억이면 자원이 풍부한 편인 남부 기준으로도 결코 적은 숫자의 인구가 아니었다.

메이어 가문이 소유한 트라카 행성이 윌리엄 백작의 대에 이르러 이룩한 시민 숫자는 5억 명.

그러니 훨씬 척박한 북부 지방에서 8억 명이란 숫자는 최상위 티어에 속하는 대규모 자치령일 수밖에 없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군….”

그런 베르데V의 생존자 수는 고작 20만 명.

더 끔찍한 건 이런 대량 학살이 북부 전역에서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단 사실이었다.

“폐허가 된 군 시설을 뒤져 마지막 통신 기록도 뽑아냈습니다.”

“어떻던가.”

“3군단이 전멸하던 때에, 베르데V엔 어비스데몬의 전투함 수십만 척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수십만…?”

“그렇습니다.”

그 정도 규모라면 아무리 군단급 병력이라 하더라도 대항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놈들이 어디로 향했는지에 관한 정보는?”

“군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네오아르곤 쪽으로 진격했다고 합니다.”

“어비스데몬이 얼마나 공간 도약을 자주 하는진 모르겠지만 시간을 고려하면 지금쯤 후방도 쑥대밭이 됐겠군.”

어쩌면 우리가 지금 귀환하고 있는 이 순간에 북부는 이미 멸망해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후방은 칼 원수가 이끄는 경계군이 버티고 있다지만 어비스데몬의 규모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었다.

만약 북부가 이대로 망해버린다면.

황제가 내게 내린 임무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나는 그러한 것들을 고민하며 잠시 침묵에 잠겼다.

* * *

세르톤으로의 복귀.

수많은 시민이 거리로 뛰쳐나와 우리의 귀환을 열렬히 환영했다.

그들은 우리가 자신들을 버리지 않고 돌아와 준 것에 무척이나 감동한 모습이었다.

이 열기가 어느 정도였냐면 화폐개혁으로 재산을 털린 귀족들까지 내게 다가와 수고했다며 감사 인사를 건넬 정도였다.

이번 임무의 성공으로 당분간 세르톤의 식량문제는 말끔히 해결되었다.

베르데V에 저장되어 있는 식량들.

8억 명에 달했던 시민과 3군단이 먹기 위해 비축해 두었을 식량 상당수를 확보한 덕분이었다.

다만, 나는 여전히 심기가 편치 않은 채로 추가 보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3천여 척에 달하는 주력 병력은 임무를 마치는 즉시 세르톤으로 건너왔지만, 아직 베르데V엔 순양함 한 척, 구축함 세 척이 남아 작전을 진행 중이었다.

그들의 임무는 여전히 남아있을지 모를 생존자들의 추가 구출 및 후방 지역과의 통신이었다.

제국의 주(州) 경계가 통째로 무너질지도 모를 사상 초유의 상황 속에 정보를 수집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현재 우리의 거점인 세르톤에 비하면 베르데V는 후방에 더 가까우므로 은하 간 통신망을 이용하자면 그쪽에서 자원을 쓰는 것이 훨씬 더 효율이 높았다.

그리고 마침내 3일이 더 지났을 때, 소식을 들고 남아있던 함선들이 돌아왔다.

그 지옥 속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생존자들도 함께였다.

“충성! 랜드호 순양함 함장, 그린 중령입니다.”

“수고했네.”

각을 잡고 경례하는 순양함 함장에게 나는 쉬어도 좋다고 한 뒤 보고를 건네받았다.

“후방과 연락이 닿았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그쪽 상황은 어떻던가.”

내 물음에 중령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칼 원수님께서 분전 중이지만 적들의 규모가 더 커져서 곤란한 지경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된다고 하던가.”

“적 전투함 규모가 약 70만 척에 달한다고 합니다.”

-완전히 돌았군. 짐승도 그렇게 새끼를 치진 못하겠다.

70만이란 숫자에 진도 혀를 내둘렀다.

그 정도면 북부가 문제가 아니라 이대로 쭉 밀려 제국의 대혼란을 걱정해야 할 수준이었다.

-중앙이 맘먹고 지원하지 않으면 이건 진짜 끝장인데?

‘전술이나 기술 우위로 뒤집기엔 이미 상황이 많이 가버렸어.’

전술로 적을 격파하는 것도 어느 정도 힘 싸움이 될 때의 이야기지 이렇게 균형이 깨지면 손을 쓰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후방 소식을 들은 나는 군을 이끌고 게릴라전으로 시간을 버는 칼 원수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북부의 부패에 찌들어 조금 빛이 바랜 느낌이 있지만 그는 한때 황제의 신뢰를 얻어 원수가 된 남자였다.

전쟁이 가장 치열했던 북부에서 가장 많은 군공과 승리로 영웅 소릴 들었던 칼 원수.

그의 노련한 지휘가 아니었으면 이미 북부는 메인게이트까지 밀려 멸망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네오 아르곤에선 살아있는 모든 북부군에게 후방으로 집결해 줄 것을 지시했습니다.”

“어떻게 간단 말인가.”

“그, 그것까진 전파받지 못했습니다.”

70만 척이나 되는 대군을 상대해야 하는 북부군 입장에선 한 척의 전투함이 아쉬울 것이다.

하지만 적들이 그렇게 많아서야 후방까지 도착할 방법이 없었다.

아군과 합류하기 전에 그 사이에 놓인 무수한 적함의 포위를 뚫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젠 우리 생존을 걱정해야 할 판이군.”

중앙이 끝까지 지원하지 않는다면 북부는 이대로 무너질 확률이 높았다.

그럼 북부는 완전히 고립될 테고 살아남은 시민들은 언제 죽을지 모를 파리목숨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것은 군인 또한 마찬가지.

북부 전체가 거대한 관짝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에 나는 서둘러 제퍼슨을 호출했다.

그가 도착하자 주변의 사람을 물린 나는 은밀히 물었다.

“솔직하게 답해주게. 북부로 이어지는 메인게이트 이외에도 황성에서 마련해 둔 비밀 통로가 있는가?”

내가 이러한 질문을 할 줄 몰랐다는 듯 제퍼슨은 조금 놀란 눈치였으나 이내 목청을 가다듬었다.

“제가 아는 사실 그대로 말씀드리면 그러한 통로가 있다는 소문은 들었으나 저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제퍼슨은 중앙이 비상사태를 대비해 탈출구를 마련해 두었을 확률이 높지만 그 존재는 극히 기밀로 유지되어 아는 자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했다.

-거짓말을 하고 있진 않군.

마법을 이용해 진위여부를 계속 파악한 바로 제퍼슨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차라리 거짓말이었으면 좋았으련만….

그랬다면 제퍼슨의 머릴 쪼개서라도 비밀을 손에 넣을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면 우린 지금 최악의 결말을 향해 달리고 있는 셈이었다.

이대로 북부에 갇혀 어비스데몬과의 분전 끝에 모두 죽고 마는 끔찍한 결말.

그렇게 제퍼슨을 돌려보낸 뒤,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타개할 수 있을지.

그 답이 쉬이 보이지 않았다.

* * *

북부가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멸망을 향해 가는 사이, 안 좋은 소식이 또 하나 있었다.

“이거 완전 깡통이었네.”

팔짱을 낀 세리스 공녀가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냐며 인상을 팍 쓰고 있었다.

세르톤의 중앙 연구소.

이곳엔 어렵게 구한 어비스코어가 모셔져 있었다.

처음 코어를 접할 때만 해도, 무한의 동력원.

새로운 전략 무기를 만들 수 있겠단 생각에 흥분에 가득 찼던 연구진들은 지금은 다소 기운이 빠진 상태였다.

일이 이렇게 된 이유는 어비스코어가 우리가 생각했던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코어 자체엔 에너지를 생산하는 힘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이 작은 오브젝트가 그 많은 전투기를 띄우며 전투함을 생산했던 것인가.

그에 대한 해답을 꺼낸 건 공녀도, 연구원들도 아닌 진이었다.

-저건 에너지 동력원이 아니라 에너지 변환기다.

'에너지 변환기?’

-에너지를 끌어다 집중시켜 주는 역할 정도밖엔 못 한다는 뜻이지.

‘그럼 코어가 끌어왔을 그 무한한 에너지는 대체 어디서 온 거지?’

제국은 전투함 한 척을 건조하기 위해 엄청난 자원을 들인다.

그런데 어비스데몬은 그러한 과정도 없이 에너지만으로 생체전투함을 지하에서 뽑아냈다.

그럼 그 에너지는 대체 어디서 온 것이냐 물으니 진은 놀라운 답을 들려주었다.

-그 에너지는 전부 너희와 그 별로부터 온 것이다.

‘너희? 그게 무슨 말이야.’

-자치령에 살고 있던 수많은 시민과 동물, 식물, 그러한 모든 것들이 품고 있던 에너지 말이다.

‘…어?’

-네가 지하 플랜트 시설에서 보았던 룬문자와 저 코어가 하는 일은 별의 생기를 끌어 모아 정제하고 그것으로 생체전투함을 만들고, 전투기를 관리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어비스데몬은 자신의 개체수를 늘리기 위해 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 걸지도 모르지.

상상도 못 한 정체였다.

어쩐지 저 까만 코어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나쁘더라니.

멀쩡한 생명체의 에너지를 빨아들여 축적하는 물건의 분위기가 좋을 리 없었다.

내 기준에서 볼 때 어비스코어는 마치 악마가 만든 물건처럼 느껴졌다.

-악마가 만들었다고 해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전에 말했지. 계기가 없으면 위력이 강한 문자를 함부로 네게 전수해 줄 수 없다고.

그리 말한 진은 저 코어 표면에 새겨진 문자 상당수가 그러한 것들이라고 했다.

인간이 보기엔 한없이 악하고 무서운 존재들이 만든 힘.

만약 그것을 감안하고도 문자를 익히길 원한다면 어비스코어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는 게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다만 별로 추천하진 않는 것이 저러한 문자를 가까이 두고 연구하면 네 몸과 마음도 결국 저런 것들과 비슷하게 될 거다.

‘문자 연구를 하는 것만으로 내 정신이 오염된다거나 피폐해질 수 있단 말이야?’

-물론이지. 고위 마법은 늘 그러한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설명을 들은 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기껏 어렵게 구한 물건이 현재로선 별 쓸모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럼 저걸 활용할 방도는 없으려나?’

-굳이 쓰고 싶다면. 세르톤에 모인 수억의 인구를 쓸어 버리고 그 핏물과 원한이 서린 이 대지 깊숙이 다시 저 코어를 박아 플랜트를 건설하고 마법을….

‘기각! 됐으니까 그 얘긴 관두자.’

충격적인 이야기에 난 손을 저었다.

뭐? 수억 명의 시민을 죽이고 에너지를 녹여?

어지간한 악마도 울고 갈 일이었다.

골치가 아파진 나는 당장에라도 저 코어를 박살 내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워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당장 북부에선 어비스데몬들이 저 코어를 이용해 자치령의 생기를 빨아들이고, 전투함을 제조해 전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적어도 어떤 식으로 놈들을 막아야 할지 그 방법을 연구하려면 코어의 실물을 남겨둘 필요가 있었다.

나는 진과 정리한 내용을 추려 공녀에게 전했는데 그녀는 대체 자기도 모르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느냐며 정보의 출처를 궁금해 했다.

제국 마법에 대해 훤히 알고 있는 자신도 모르는 사실을 인간 마법사인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신경 쓰인 모양이었다.

“너… 수상해.”

“어떤 점이 말입니까.”

“네가 나보다 마법적 지식이 높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나는 제국 마법사 그 누구보다 다양한 지식을 접하며 공부를 해왔다고. 근데 네가 어떻게 나보다 마법을 잘 알 수가 있어?”

그야 그렇겠지.

레하반 타워엔 천년공이 제국 각지에서 모은 희귀 식물이며 서적이 즐비할 테니까.

아마 마법 서적도 어지간히 많을 터였다.

물론 그래 봐야 내 머릿속에 있는 정령 하나만도 못할 테지만 말이다.

나도 진의 존재를 알리기는 곤란했기에 대충 둘러댈 수밖에 없었고 눈을 가늘게 뜬 공녀는 콧김을 뿜기까지 했다.

“너 혹시 인간 아닌 거 아니야?”

“아쉽지만 전 순수 인간이 맞습니다만.”

“아니야. 아닌 거 같아. 행성 에너지를 빨아들여 생체전투함을 낳는 놈들도 있는 마당에. 네가 인간의 탈을 쓴 어디 외계 종족 단말기라고 해도 이상할 건 없지. 흐음. 네가 그동안 보여준 능력을 생각하면 오히려 그쪽이 더 신빙성이 있는걸. 나한테만 털어놔 봐. 외계인 맞지? 그렇지?”

“상상력이 상당히~ 풍부하시네요.”

“말투 뭐야? 거슬리네.”

“아닙니다.”

실눈을 뜨고 째려본 공녀가 정강이라도 걷어찰 것 같았기에 나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일단 연구도 중요하긴 한데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습니다. 소식 들으셨죠?”

“뭐. 북부 후방지역 쑥대밭 됐다는 거?”

“이대로 가면 저희 목숨이 위험합니다. 만에 하나 메인게이트가 파괴라도 되면 우린 완전히 고립된단 말입니다.”

이단심문관인 제퍼슨도 비밀 게이트의 위치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지만 공녀는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 다시 코어로 다가가 문자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저건 드래곤이란 종족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여유로움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공녀가 이 일에 대한 경각심이 없는 탓일까.

그 답을 고민하고 있을 때 그녀가 툭 하고 한마디를 던졌다.

“비상용 예비 게이트의 위치는 내가 알고 있어.”

-호오?

“그게 정말입니까?”

“그걸 누가 만들었다고 생각해. 우리 드래곤이랑 드워프야. 뭐 드워프는 그저 시키는 대로 손만 움직인 수준에 불과하지만.”

공녀는 설마하니 내가 이런 제국 변두리에서 저런 괴물들에게 갇혀 죽을 줄 알았느냐며 코웃음을 쳤다.

“근데 존.”

“예.”

“우리끼리 탈출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을 테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을 다 데리고 가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거든. 한번 잘 생각해 봐. 너는 지금 총사령관이라며. 미리 말하지만 말도 안 되는 계획 들이밀면 나 혼자 도망갈 거다?”

공녀는 처신 잘하라며 내게 눈치를 주었다.

그녀가 말한 처신이란….

지금 세르톤에 남아있는 수억 명의 시민들.

전투함을 모두 동원해도 다 데리고 갈 수 없는 저 시민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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