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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군벌가 망나니-104화 (104/134)

104화.

대기권 바깥으로 뛰쳐나온 500척의 적함을 순조롭게 잡아냈을 때, 우린 이번 행성 탈환 작전이 손쉽게 끝날 것이라 기대했다.

역시 신형함이 최고다. 낙승이다. 하는 분위기가 병사들 사이에 가득했다.

“주포 사격을 실시한다.”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라며 분위기를 조율했고, 곧바로 지표면에 공격을 퍼부을 것을 명령했다.

대기권 바깥에서 지표로 향하는 대규모 주포 공격.

3천 척의 전함이 에너지를 끌어 모아 지표를 불태우자 마치 핵전쟁이 일어난 듯 행성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적 방공망 무력화 확인.>

<생체형 개체, 상당수 소멸했습니다.>

우주 바깥에서 쏟아내는 공격은 놈들도 전투함이 없는 한 반격하기 곤란할 터.

나는 곧 저곳으로 내려가 작전을 수행해야 할 아군을 위해 계속해서 주포 공격을 시도했다.

자원 채취와 플랜트 파괴를 위해 대기권으로 내려갔을 때, 놈들의 반격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지표 움직임. 8할 이상 감소했습니다.”

“대기권 강하를 시작한다.”

맘 같아선 아예 조그마한 움직임조차 없어질 때까지 포격을 퍼붓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었다.

이미 전투가 벌어진 순간부터, 어비스데몬의 주력 부대가 우리의 공격 사실을 눈치챘을 가능성이 있었다.

-놈들에게 공습 사실을 알릴 만한 지능이 없어야 할 텐데.

‘북부를 괴멸 직전까지 몰아넣은 놈들이야. 그 정도 지능이 없기를 바라는 건 너무 낙관적인 생각이지.’

언제 어디서든 적의 본대가 들이닥칠 수 있다는 압박감.

이번 작전은 시간을 최대한 줄여 전투를 끝내는 게 관건이었다.

그리하여 우린 주포 공격으로 붉게 타오르는 지표면을 향해 내려갔고 이후엔 자원을 수거하는 쪽과 플랜트 파괴 작전을 수행할 부대로 쪼개졌다.

위험도는 플랜트 파괴 쪽이 압도적으로 높았기에 엔터프라이즈호는 자연스레 플랜트 쪽으로 향하게 됐다.

미하일이 미리 확인한 플랜트 위치에 가까워지자 나는 함대에 전술핵 사용지시를 내렸다.

“전술핵 발사하라.”

“전술핵 발사!”

이미 주포 찜질로 대공망이 무력화된 어비스데몬은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고 그대로 플랜트로 쏘아진 미사일이 명중하는 순간 섬광과 함께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백여 개에 달하는 핵미사일이 만든 폭풍의 위력은 전투함의 실드를 뒤흔들 정도로 강력했다.

쿠구구구구-

지축이 흔들리는 소리.

심연의 입구처럼 보이는 플랜트 구멍 주변이 모조리 쓸려나가자 통신 채널에선 잔뜩 긴장한 함장들의 숨소리가 이어졌다.

<성, 성공인가?>

너무 긴장했던 것일까.

누군가 자기도 모르게 그런 소릴 내었다.

그리고 이내 함장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듯 흡! 소릴 내었다.

확실한 결과가 나오기 전에 요란을 떨면 부정을 탄다는 미신 때문이었다.

문제는 이 미신이 역사적으로 너무나 높은 적중률을 보였다는 것.

그 때문에 이러한 체험을 몸소 경험한 베테랑 함장들은 절대 상황이 종료되기 전까진 섣불리 좋아하거나 야단을 떠는 일이 없었다.

‘누구야?’

-보나 마나 3군단 쪽 지원 병력이겠지.

예상대로였다.

전선에서 활약한 베테랑 함장들은 부정 타는 것을 극도로 꺼렸기에 잔뜩 집중한 채였지만 비교적 안전한 곳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장성이 실수를 범한 것이다.

당연히 징계 사항까진 아니었기에 속으로 혀를 차고 말려는데 순간 경고음이 세차게 울리며 적의 출현을 알렸다.

“적습입니다! 적 전투기 지표면으로 올라옵니다! 엄청난 숫자입니다!”

-이런 젠장! 이래서 입방정을 조심해야 하는데.

주포 공격에 이어 핵미사일까지 퍼부었는데 대체 전투기들이 어디서 튀어나왔단 말인가.

그러나 채 파악을 하기도 전에 그야말로 엄청난 숫자의 바늘 전투기가 하늘을 덮으며 달려들고 있었다.

“숫자 3만! 4만! 계속 올라갑니다!”

수만 대에 달하는 전투기가 지하로부터 솟구쳐 올라왔다는 소식엔 나도 옅은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각 함 전투기 발진하라!”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튀어나오는 적 전투기는 아군함에 엄청난 위협이었다.

전함조차도 엔진부에 미사일 몇 번만 꽂히면 커다란 관짝이 되기 때문이었다.

실드를 펼치면 어지간한 공격은 방어해 낼 수 있다지만 물량엔 장사 없었다.

새카맣게 몰려오는 적들을 향해 아군 전투기들이 맞대응에 나섰다.

수적 열세.

3천 척이나 되는 전투함이었기에 이쪽도 수만 대에 달하는 전투기를 싣고 있었는데 적들의 숫자가 이미 아군의 2배에 달하고 있었다.

-플랜트화 된 행성치고 방어 병력이 적다 싶었는데 지하에 꼭꼭 숨겨두었던 모양이다.

‘정보가 너무 부족했어.’

수십 년째 얻어터지기만 했던 북부군이 역으로 플랜트화된 행성을 탈환하기 위해 작전을 펼친 적은 전쟁 초기에나 몇 번 있었지만 그조차 지표면에서 제대로 된 작전을 펼친 적은 없었다.

전부 대기권 강하를 하기도 전에 우주전에서부터 대패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엄청난 피해를 보자 이후 북부 사령부는 어비스데몬의 플랜트 행성 무력화 시도를 전면 중단했다.

애초에 죽음의 별이 되어버린 곳을 재점령해 봐야 손해가 날 뿐, 얻을 것은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적의 생산력을 줄여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금 북부엔 널린 게 어비스데몬의 플랜트 행성이었다.

나는 병력을 조율하며 지휘를 하는 한편 적 전투기의 컨트롤 타워를 찾기 위해 색적 지시를 내렸다.

90척이 넘는 아군 전함엔 적 전투기의 컨트롤 권한을 무력화할 뇌파 교란 장치가 실려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함선이건 센터든 간에 위치를 모르면 장치를 쓸 수 없다는 점이었다.

<색적 시작했습니다.>

연구실에 대기 중인 연구원들과 연구선 인력들이 곧장 적들의 신호 발신지 분석에 착수했다.

그 사이, 공중에선 치열한 접전이 펼쳐지며 물고 물리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무려 두 배에 달하는 적들을 상대로 아군 전투기는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며 분전 중이었다.

전투기 상당수를 항성풍 기간 동안 교체하며 체급을 크게 끌어올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놀라운 것은 북부 전선에서 활약한 베테랑 파일럿들의 기량이었다.

이들의 움직임은 결코 중앙이나 남부 파일럿에 비해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따금 우위인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는데 나는 새삼 이들의 실력에 감탄했다.

맘속 한편으론 반란진압을 함께하며 어려움을 함께한 남부 파일럿들이 제국 최고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는 그 생각을 고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과연 전장에서 십수 년 이상 살아남은 이들은 다르다는 건가?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진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존. 이번 전투가 끝나면 북부 파일럿들의 건강을 체크해 보는 것이 좋겠다.

‘무슨 말이야.’

-북부 전선 파일럿의 전투를 우린 오늘 처음 본 거잖냐.

세릴다 중장이 합류한 건 항성풍이 시작되기 바로 전의 일이었다.

항성풍이 활성화한 뒤로는 전투기를 띄울 수 없었으니 우린 북부 전선군의 기량을 제대로 확인해 볼 기회가 없었다.

그 흔한 합동 훈련조차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진은 저들이 약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내게 전해왔다.

-전투 시작 전에 북부전선 파일럿 대부분이 주사를 썼다.

‘주사라고? 약물을 말이야?’

전투가 장기화할 경우,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약물을 복용하는 경우는 남부에서도 종종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전투를 시작하기도 전에 약을 꼽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신체 능력을 향상하는 모든 약은 그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모두 몸을 갉아 먹는 것들이었다.

대규모 적을 앞두고 두려웠던 것일까.

아니면 출격 전 약물 사용이 북부에선 스탠다드이기 때문인 걸까.

어느 쪽이든 전투가 끝나면 제대로 확인을 해보긴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북부전선 인원의 활약으로 우린 더 많은 적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치열함을 보였다.

그사이, 아군이 적 지휘 센터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위치를 찾아냈다.

핵미사일을 쏟아부은 거대 플랜트 입구에서 수직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위치였다.

‘결국, 저 지옥의 구멍으로 들어가야 한단 소리군.’

-너무 위험하지 않아?

‘아군 피해가 너무 심해.’

전투는 아직 한창 진행 중.

공대공 미사일을 전부 소모한 전투기들이 함선으로 다시 돌아가 재보급을 해야 할 정도로 접전이었다.

이대론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겠단 생각에 나는 한창 전투 중이던 미하일 중령을 호출하는 한편 실피드를 엔터프라이즈호로 불러들였다.

<예! 미하일 중령입니다.>

“미하일, 지금 즉시 워커호로 건너가겠다.”

<예?>

“실피드가 본함으로 복귀 중이다. 돌아오는 즉시 준장과 함께 그쪽으로 이동할 테니 알아두도록.”

총사령관이 사령선을 떠나 순양함에 타겠다는 초유의 사태.

나는 다른 장성들이 반대할까 싶어 오직 미하일과 카린에게만 이 사실을 알렸다.

물론 통신 내역을 다 지켜보고 있던 함교 인원에게까지 숨길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순양함으로 건너가겠다고?”

“예.”

조용히 함교에서 전투를 지켜보던 세리스 공녀가 고갤 갸웃했다.

“대체 왜? 특무함에 비하면 종이쪼가리급 방어력인데?”

“완전 스텔스 장치를 보유한 함선이 워커호뿐이거든요.”

“단독으로 진입할 생각이구나.”

공녀의 말에 어느새 슬그머니 다가온 제퍼슨이 흠칫하는 반응을 보였다.

“좋아, 나도 따라갈게.”

“굳이 그러시지 않아도 됩니다.”

“너 때문에 따라가겠다는 줄 알아? 내 연구가 지금 아무 힘도 못 쓰고 있잖아!”

공녀는 무려 두 달 가까이 머릴 싸매고 만든 교란 장치가 무용지물이 된 것에 화가 난 모양이었다.

지하로 내려가 놈들이 어떤 식으로 대량의 전투기를 지휘하는지 그 체계를 파악해 연구를 보완하려는 모양이었다.

-마법은 곧잘 하니까 도움은 되겠지.

그렇게 워커호로 건너갈 인원에 공녀가 추가되었다.

진의 말마따나 제 몸 하나 지킬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여차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니 나로서는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그리고 이걸 자기도 따라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끝까지 머뭇거리던 제퍼슨은 내가 슥 한번 시선을 주자 뭔가 찔리는 게 있었던지 황제가 특별히 신경 써서 만든 엔터프라이즈호를 잘 지키고 있겠노라고 답했다.

이단심문관도 저 심연의 입구로 들어가는 건 어지간히 싫은 듯했다.

“그럼 매티스. 뒷일을 부탁하지.”

“함장님…. 나중에 북부 장성들이 이 사실을 알면 기겁할 텐데요.”

“차라리 기겁 좀 하는 게 아군이 죽는 것보단 낫잖아. 안 그래?”

* * *

짧게나마 실피드의 에너지를 보급하며 내가 오길 기다리던 카린.

콕핏 문을 열어두고 나를 보며 미소를 지어 보인 그녀는 잠시 뒤, 내 뒤를 따르는 공녀를 보자 눈매를 좁혔다.

“설마 공녀님도 같이 가는 건가요?”

“가는데? 불만 있어?”

카린의 말에 공녀가 대꾸하자 카린은 셋이 타기엔 좌석이 좁아서요라고 답했다.

그렇다고 실피드에 매달려 갈 수도 없는 일.

바깥에선 전투기가 쉴 새 없이 추락을 거듭하는 판국에 불만을 토로할 여유는 없었다.

“좁아! 이거 발 누구야?”

“접니다.”

“꼬리 밟지 마!”

“죄송합니다. 하지만 계속 불편할 텐데 여기 계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간다고 했잖아!”

그런 공녀를 슬쩍 바라본 카린이 말했다.

“출발할게요. 이제 조용히 하세요. 말하다가 혀 깨물 수도 있으니까.”

“내가 알아서… 억!”

일분일초를 다투는 임무라는 걸 잘 알고 있던 카린은 전속력으로 실피드를 움직였고 이런 출력에 익숙하지 않았던 공녀는 기괴한 소릴 내며 콕핏 구석까지 짓눌려야만 했다.

그렇게 실피드는 순식간에 워커호 격납고에 안착했고 공녀는 카린에게 너 일부러 그랬지! 라며 씩씩거렸다.

나는 우주전 기체는 원래 다 그렇다며 공녀를 말린 뒤 미하일에게 지하 플랜트로 향하는 입구로 워커호의 머릴 집어넣을 것을 명령했다.

“함교로 갈 테니 워커호를 플랜트 안으로 진입시키도록.”

<맙소사….>

죽을 날을 받아놓은 사람처럼 신음하던 미하일은 이내 잔여 시간 30분 남은 스텔스 장치를 활성화하며 빠르게 미끄러져 나갔다.

고도를 낮춘 워커호 머리 위로 어비스데몬의 전투기와 아군 전투기가 어지럽게 얽히며 불꽃을 터트리고 있었다.

우리가 고속 통로를 이용해 워커호의 함교에 도착한 건 마침 워커호가 플랜트 입구를 통해 지하로 들어가던 때였다.

수백 미터급 전투함이 오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수직 통로.

본래라면 이 통로를 통해 어비스데몬의 전투함이 기어 나왔을 테지만 전술핵에 의한 열찜질 덕분인지 통로 안은 어둠이 가득할 뿐, 그 어떤 적들도 보이지 않았다.

-생각보다 훨씬 깊군.

지각을 지나 맨틀까지.

한 400킬로미터쯤 내려갔을까.

마치 개미굴을 연상케 하듯 복잡한 구조가 우리 앞에 펼쳐졌다.

만약 이 통로가 더 깊은 곳에서 다시 갈라진다고 생각하면, 이 플랜트 시설의 규모가 얼마나 클지 쉬이 짐작되지 않았다.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 레이더에 적의 움직임이 있어 오퍼레이터들이 크게 긴장했다

“전방에 적 포착!”

그것은 빠르게 지상으로 향하는 어비스데몬의 전투기 수천 대였다.

맘 같아선 저 꽁무니에 핵미사일 하나 붙이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았지만 그리하면 스텔스까지 쓰고 이곳에 잠입한 이유가 무색해졌다.

‘분명 여기 어딘가에 적의 관제 시설이 있을 텐데….’

방향을 두고 고민하던 그때, 진이 어떤 낌새를 파악한 듯 방향을 잡았다.

-저쪽으로 가지. 달갑지 않은 기척이 느껴진다.

달갑지 않은 기척이라니.

보통 그런 곳은 가장 위험한 장소일 확률이 다분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런 장소라면 분명 적에게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을 터였기에 나는 즉시 진이 잡은 방향으로 함선의 머릴 돌렸다.

그렇게 깊고 더 깊은 곳으로.

진즉에 지하 1천 킬로미터를 돌파한 지점에서 우린 마침내 북부군 최초로 플랜트의 실체를 마주할 수 있었다.

“야! 이거 관제 타워 아니잖아!”

공녀가 모니터에 정면에 잡힌 시설들을 보며 뜨악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보다 더 중요한 곳이죠.”

불칸급 순양함인 워커호가 작게 느껴질 정도로 터무니없이 큰 공간.

이곳에 호흡하듯 배를 불리는 어비스데몬의 거대 부화장이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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