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주 군벌가 망나니-102화 (102/134)

102화.

외부와의 연락도 완벽히 단절된 시간.

항성풍의 영향으로 꼼짝없이 눈과 귀가 가려진 채로 우린 묵묵히 각자 맡은 프로젝트 진행에 몰두했다.

낡은 전투함의 교체와 신형 전투기 도입, 그리고 미사일 보급까지.

여러 안건이 매일 바삐 진행되고 있었지만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진 건 역시 공녀가 진행하는 적 전투기 인터셉트 기술이었다.

생체전투함이 발신하는 뇌파에 의해 움직이는 어비스데몬의 전투기.

전투 도중 그 수많은 전투기의 컨트롤 권한을 뺏어올 수만 있다면, 향후 전투에서 우리가 압도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생체 전투함 뇌파 연구 18일째.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다.

기껏 생포한 생체전투함이 그만 죽어버린 것이다.

식사를 못 해서 그런 건가?

배가 고프다고 입을 벌린 적도 없었는데 말이다.

애초에 우린 이 수백 미터짜리 거대한 럭비공 생명체의 생태에 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바늘 전투기를 싣고 다니며 끔찍할 정도로 많은 북부 시민을 죽였다는 것 외에는 말이다.

그러나 다행인 건 죽기 전까지 뇌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어떤 패턴으로 퍼지는지 충분한 데이터를 모아놨다는 거였다.

공녀는 이 자료를 토대로 유사 파장 재현에 들어갔다.

생체 전투함 뇌파 연구 29일째.

마침내 바늘 전투기가 움찔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연구에 따르면 전투함이 생명체인 것과 달리 이 바늘 형태의 전투기들은 생명체는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그저 뇌파 수신기를 달고 있는 공격 병기에 가까웠다.

생체 전투함 뇌파 연구 36일째.

연구를 지휘하던 공녀의 분위기가 날카로웠다.

항성풍이 예정보다 약 이틀 정도 빨리 끝날 거 같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보호막 설치를 돕느라 그녀는 애초에 일주일 정도 연구를 늦게 시작했던 상황.

어쩌면 우린 시간 내에 연구를 다 마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희망적인 건 이제 우리가 만들어내는 신호 때문에 어비스데몬의 전투기들을 띄울 수 있게 되었단 거였다.

전장에서 보았던 것처럼 부드럽게 움직이진 않지만 분명 장족의 발전이었다.

생체 전투함 뇌파 연구 45일째.

항성풍이 끝나기 채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우린 마침내 어비스데몬의 전함급 내에 남아있던 모든 전투기를 공중에 띄워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전투 능력도 아군 전투기를 괴롭히던 때에 보여줬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으로 연구는 대성공을 거둔 셈이었다.

다만 여전히 개선해야 할 요소들이 있었다.

첫 번째는 전장에서 아군과 적이 동시에 같은 신호를 보냈을 때, 적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다는 것.

두 번째로는 현재 연구 레벨로는 적함을 일대일로 교란하는 수준의 출력이 한계라는 점이었다.

세리스 공녀가 고안한 정신착란계 마법이 적용된 뇌파 교란 장치는 그 크기가 수십 미터에 달했고 한번 발동하면 엄청난 마력을 먹어치우기에 장치를 실을 수 있는 전투함이 전함급으로 제한되었다.

현재 세르톤에 모인 전투함의 숫자는 신형함 건조를 통한 재정비를 거치고 나면 3천 척으로 규모가 줄어들 예정이었고 이 중 전함급 전투함의 숫자는 93척이 전부였다.

다시 말해 장치를 통해 전투 중 적을 마비시킬 수 있는 숫자는 잘해야 100척 내외라는 계산이었다.

“연구 결과물은 무척 좋은데 성능이 아쉽군요. 소형화를 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요.”

“소형화를 못 할 건 없긴 한데.”

“방법이 있습니까?”

“이 커다란 장치의 핵심 부품을 사람으로 대체하는 거지.”

“사람이요?”

“마법사 말이야. 예를 들면 존, 네가 장치 안에 들어가는 식으로 설계를 변경하면 크기를 십 분의 일까지도 줄일 수 있을걸.”

“당장 소형화는 어렵다는 뜻이군요.”

“그런 셈이지.”

고위 마법사.

이 장치에 들어간 기술과 원리를 이해하고, 실행에 필요한 충분한 마력을 보유한 인원은 안타깝게도 수억 명이 모인 이곳에서 나와, 공녀, 단둘뿐이었다.

모인 인원이 제법 되다 보니 마법사가 몇 명 더 있긴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고 심지어 마력도 부족했다.

그만큼 쓸만한 수준의 고위 마법사란 제국에서 매우 귀한 인재였다.

“최선을 다했으니 이것으로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연구하는 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너도, 수고 많았어.”

공녀는 내가 옆에서 거들지 않았더라면 제때 연구를 마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내 공로를 인정했다.

그러면서 이번 북부 임무가 끝나거든 여전히 남부로 돌아갈 생각이냐고 물었다.

“글쎄요. 그건 폐하가 저를 보내주셔야 가능한 일 아닐까요.”

“기왕이면 중앙에 남는 게 어때? 엘프 고향도 중앙에 있잖아.”

“음. 생각해 보겠습니다.”

물론 북부 임무를 마친다고 남부로 돌아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애초 황제가 내게 명령했던 내용은 5년 동안 특무함 사령관으로 일하며 궂은일을 도맡으라는 것이었으니까.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남부로의 귀환을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였다.

그리고 당장 중요한 건 앞으로의 전투였다.

나는 이후 신형 함선 건조 막바지 작업에 들어간 공장에 들러 신형함의 상태를 점검했다.

블루옵테늄의 부재로 장갑 강도가 크게 약해졌지만 실드 출력을 올려 약점을 보완한 신형 함선들.

유려한 곡선이나, 스텔스 기능이 들어가진 않았으나 전투력만큼은 기존에 예상했던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본래 건조에 반년 이상 걸리는 작업을 두 달 만에 끝낼 수 있던 건 손재주가 좋은 드워프와 지치지 않는 체력을 지닌 오크들 덕분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모인 수억 명의 북부 시민들.

그들은 우릴 위해서라면 언제든 발 벗고 나서겠다며 24시간 교대 근무를 자청하며 공장 가동을 도와주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이 함선들은 우리 모두의 마음과 노력이 빚어낸 결과물인 셈이었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이제 남은 건 바깥 상황에 따라 기민하게 움직이는 일뿐.

본격적으로 북부 전장을 누빌 시간이었다.

* * *

<항성풍이 걷힙니다.>

<전투함 이동 가능합니다.>

<일대에 적 반응 없습니다.>

드디어 북부 항로가 다시 열렸다.

통신이 전면 차단된 지 58일째의 일이었다.

나는 구축함을 먼저 올려보내 인근에 적이 있는지 없는지 정찰할 것을 명령했다.

만약 대군이 깔려있다면, 그리고 우릴 노리고 있다면, 저 구축함들은 손써볼 새도 없이 무너지고 말 터였다.

물론 그 사실을 저들도 잘 알고 있을 테지만 그것이 상위 전투함을 호위하며 최전선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하는 구축함의 운명이었다.

내가 명령을 내리는 사이, 통신 채널에선 세릴다 중장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이곳에 모인 장성 중 가장 최고위 계급인 그녀.

하지만 그녀는 내게 모든 전권을 위임하고 뒤로 물러나 한 명의 전함 지휘관으로서만 맡은 바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다.

중장을 제치고 소장인 내가 총사령관이라니.

특무함 함장이라곤 하나 모습이 썩 좋지 않은 데다 그녀를 믿고 이곳에 온 북부 전선의 장군들이 워낙 많기에 나는 두 번이나 제안을 거절했으나 이 위기를 해결할 적임자는 나뿐이라며 세릴다 중장을 비롯한 북부 장군들이 나를 총사령관으로 밀어주었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좋으면서 빼기는.

‘좋긴 무슨. 이 상황에 총사령관 같은 건 허울 좋은 왕관에 불과해.’

-그래도 네가 지휘하는 게 이 상황에선 최선일 거다.

전장을 관조하며 누구보다 많은 정보를 내게 전해주는 진.

그 능력을 고려하면 나보다 더 전투 흐름을 잘 볼 수 있는 인물이 드문 건 사실이었다.

항성풍이 사라지자 우린 미리 정해둔 대로 베르데 V로의 통신을 시도했다.

베르데 V는 3군단장 안톤 슈피겔이 담당하는 행성이었다.

후방 상황을 알아보는 데 대장급 인력보다 더 나은 소식통이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의견을 처음 냈을 때 장교들 사이에선 제법 많은 반대가 나왔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장군이 내게 고의로 퇴각 명령 사실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말인즉, 세르톤 인원이 여기에 포위되어 죽길 바랐다는 것인데 설령 우리가 살아있다는 걸 알린다 해도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해 주겠느냐는 의견이었다.

그들의 의견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의 말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좋은 의견이 있으면 이야기해 보라며 자릴 깔아줬다.

하지만 누구 하나 시원스레 대답을 내놓는 사람이 없었다.

베르데V를 패스하고 다른 행성을 소식 교류지로 점찍는다고 가정했을 때, 어디가 제일 최선일지 다들 장담하지 못했다.

북부에서 제일 많은 고급 정보가 모이는 곳은 수도 행성인 네오 아르곤이다.

하지만 우린 베르데V를 패스하고 대뜸 네오아르곤에 연락을 넣을 수 없었다.

바로 퍼플옵테늄의 재고 때문이었다.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실시간 통신을 가능케 해주는 은하 간 통신망 기술.

이 기술의 활성화를 위해선 퍼플옵테늄이 필요한데 애석하게도 우리 군이 가지고 있는 퍼플옵테늄의 재고는 바닥에 가까운 상태였다.

어찌어찌 긁어모으면 한번 통신 시도를 해볼 수는 있겠으나 그럴 경우, 이쪽의 작전 수행이 곤란해지는 상황이었다.

드넓은 전장을 택하여 대규모 회전을 펼치는 우주전에서 함선끼리 긴밀한 통신이 가능한 것은 전부 퍼플옵테늄 덕분이었다.

그런데 정보 수집을 위해 남아있는 퍼플옵테늄을 모두 소진해 버리면 이후 전투를 할 때, 함선의 실시간 통신이 불가능했다.

아군의 피해 상황 파악 혹은 날개의 위치 변경 등등.

그러한 긴급 명령이 모두 수 초 이상의 딜레이를 가지게 되면 제대로 전투 진행이 되겠는가?

눈과 귀를 막고 제대로 싸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결국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우린 베르데V에 소식을 묻는 게 최선이라는 답을 내렸다.

“은하 간 통신망 전개됩니다.”

지표에 지어진 수백 미터 크기의 중계탑이 활성화하며 퍼플옵테늄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신호가 가는 중이라는 오퍼레이터들의 보고가 올라왔다.

그렇게 10초, 20초, 30초….

1분 이상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여기저기서 고갤 갸웃거리는 반응이 일었다.

“…상대 쪽 반응이 없습니다.”

“통신망 해제하라.”

“알겠습니다. 통신망 해제.”

베르데V의 3군단이 우리 연락을 고의로 씹는 것인지, 아니면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이유가 무엇이든 연락을 받지 않는다면 더 이상 자원을 허비할 순 없었다.

설마 연락을 아예 받지 않을 줄은 몰랐는지 함장들 사이에선 분분한 의견이 오갔다.

저들이 일부러 우릴 엿 먹이려고 무시하는 거다.

이래서 네오 아르곤에 연락을 해봤어야 한다는 의견 등등이었다.

하지만 칼 원수라고 내게 억하심정을 가지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차라리 베르데V라서 다행이지, 그보다 거리가 수십 배는 먼 수도에 통신을 넣었다가 불발됐으면 속이 쓰린 것을 넘어 앞이 캄캄했을 것이다.

나는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하자며 다음 단계 작전을 진행할 것을 지시했다.

그것은 바로 정보 수집을 위한 전투함 직전 파견에 나서는 것이었다.

* * *

불칸급 순양함 워커호.

훈련소 동기인 미하일 워커 중령이 함장을 맡고 있는 그 전투함은 과거엔 엔터프라이즈의 이름을 달고 있었다.

지난 반란진압에서 내가 큰 공을 세울 수 있던 원동력이기도 했던 그 함선엔 내가 가장 신뢰하는 장치가 실려 있었다.

바로 시즈 일족에게서 건네받은 전투함 스텔스 장치였다.

단순히 레이더에서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육안으로조차 아예 찾을 수 없게 되는 완전 은신.

배터리 교체식으로 소모품을 교체해 주어야 하며 이미 남부 반란 때 상당한 시간을 소모했지만 해당함엔 여전히 2시간이 넘는 스텔스 시간이 남아있었다.

해당 장치가 커버할 수 있는 전투함의 크기는 순양함급이 한계.

때문에 현재 엔터프라이즈호엔 적용이 불가능했고 미하일은 제국 최강의 스텔스 함선을 관리하게 된 것이다.

대규모 교전이나 침투 작전 등등.

모든 작전에서 스텔스 함이 가지는 가치는 수치로 따질 수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스텔스 장치가 없었더라면 나는 미하일을 베르데V로 보낸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않았을 것이다.

공간 도약을 한다 해도 두 번은 해야 닿는 거리.

언제 어디서 적이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믿을 구석도 없는 일반함을 정보 수집차 보낼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맘 같아선 내가 직접 순양함을 몰고 작전에 나서고 싶었지만 매티스를 비롯해 세릴다 중장까지.

주변 인물이 모두 말리는 바람에 나는 세르톤을 지키고 있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세릴다 중장은 이제 자네는 총사령관이 가지는 무게와 책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나는 단순히 특무함 사령관이 아닌, 3천여 척의 전투함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었다.

나를 가장 가까이서 모시는 매티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정찰 임무를 직접 수행하는 사령관은 없다고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말로 설명하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지금껏 나는 모든 일을 일선에 나서 처리해 왔다.

뭐든 내가 직접 해야지만 속이 제일 편했다.

그것이 어렵든지 위험하든지 간에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좀 더 동료와 부하들을 믿고, 일을 맡겨야 할 때인 모양이었다.

물론 지금도 내가 직접 뛰는 게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올 거라는 생각엔 변함없었다.

하지만 그런 마인드를 가진 장군이 사령관에 어울리는 자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나의 위치가 불과 2년 만에 완전히 달라졌음을, 이제는 다시 한번 깨닫고 그에 맞춰 움직여야 할 때였다.

“미하일, 무운을 빈다. 살아만 돌아와라.”

<염려 놓으시죠. 반드시, 총사령관께서 원하는 정보를 들고 오겠습니다.>

경례하며 충성을 외친 미하일은 그렇게 베르데V로의 정찰 수행 임무를 떠났다.

그렇게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한, 본격적인 작전이 시작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