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주 군벌가 망나니-100화 (100/134)

100화.

“좋아. 그런 제안이라면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지. 존 메이어, 마법진 완성에 제대로 도움을 준다면 내 이름을 걸고 공장을 보호해 주겠다.”

거래가 성립됐다.

공녀는 내 제안을 받아들였고 나는 즉시 집무실로 돌아가 천년공을 위한 마법진 개발 작업에 들어갔다.

이는 최대한 빠르게 처리해야 할 문제였기에 당분간은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을 듯했다.

내가 성과를 가져오기 전엔 공녀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성과를 내야 공녀가 움직일 테고 일주일 내론 일을 마쳐야 항성풍이 부는 동안 무사히 전력 증강을 마칠 수 있겠군.

‘빠듯한 일정이야.’

앞으로 두 달 동안 세르톤을 풀로 돌려야 하는 전력 증강 작업.

그동안 아무런 진전도 없었으면서 갑자기 성과를 내겠다고 했으니, 공녀가 날 탐탁지 않아 할 만도 했다.

그러나 나 역시 아무런 확신도 없이 말로만 그러한 보장을 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 시간 동안 나는 틈틈이 진과 천년공의 치료에 대한 방법으로 무엇이 좋을지 가설을 세우고 있었다.

주로 메인게이트를 통과하거나 장거리 이동으로 함교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냈을 때 말이다.

처음 떠올렸던 방법은 모리더스 대장을 도왔을 때처럼 마력으로 천년공을 치료하는 일이었다.

문제는 그러한 작업을 하려면 여전히 내가 직접 상대의 몸에 손을 대야 한다는 거였다.

물론 내 힘만으론 불가능한 일이지만 날 매개로 해서 진이 힘을 쓴다면, 충분히 놀랄 만한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놈의 독이었다.

몸이 젤리처럼 녹아버릴 뻔했던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면 다시는 그곳으로 내려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리하여 우린 조금 다른 접근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진이 새롭게 제안한 방법이란 바로 희생 마법, 다른 말론 제물 마법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이 마법을 이용하면 제물의 생명력을 이용해 좀 더 효과적인 치유력을 마법진에 부여할 수 있다.

‘어쩐지 어감이 좋지 않은데.’

소설이나 게임 속에선 악마가 인간 수천 명의 목숨을 대가로 부탁을 들어주기도 하던데, 그러한 마법이라면 손대고 싶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뭐… 네가 상상하는 그런 마법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만, 내가 지금 설명하려던 마법은 아니다.

‘그건 듣던 중 다행이네.’

-애초에 그런 것들은 누군가를 치유하고 보호하는 마법하곤 거리가 멀단 말이지.

그리 말한 진은 우리가 이번에 설계할 마법은 주력 마법이 아닌, 보조 역할을 거들게 될 거라고 말했다.

-마법과 마법의 결합이다. 공녀가 설계한 마법의 방향성은 틀리지 않았다. 단지 그 기둥을 받쳐줄 작은 기둥 여러 개를 주변에 배치하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지.

마법과 마법의 결합은 딱히 특이할 게 없는 일이었다.

이미 전투기나 함선에도 그러한 방식의 연구 결과물이 여러 군데 적용되어 있었다.

다만 그러한 마법이 최대한 도식을 단순화하여 문제를 줄인 데 비해 공녀의 마법은 아주아주 복잡하다는 게 문제였다.

그 자체로 이미 건드리기 어려운 복잡한 도식이 되어가고 있었는데 여기에 새로운 마법을 첨부해 부작용 없이 융화시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합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문제는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 제물이다.

진은 이 과정에서 강한 생명력을 지닌 제물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걸 당장 내가 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준비물을 구하는 건 공녀 몫으로 돌아갈 터였다.

‘거기서부턴 공녀에게 맡겨도 괜찮겠지. 일단 그럼 결합할 마법부터 완성해 보자고.’

* * *

어느덧 방에 틀어박혀 마법진 설계에만 매달린 지도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기초 개념은 진즉에 완성됐는데 제물의 효율을 최대로 뽑아낼 수 있도록 개조에 개조를 거듭하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말았다.

‘더는 못하겠군.’

이만큼 연구에 몰두해 본 건 남부에서 한창 전략 무기 개발에 매달렸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시간을 좀 더 들이면 결과가 나아질 것 같기도 했지만 공녀가 보호막을 건설하는 데 드는 시간을 고려하면 이 이상의 투자는 후일로 미루어야 했다.

내가 서류를 정리하고 공녀에게 보여줄 결과물을 조용히 파일에 담고 있을 때, 작게 노크를 하고 고개를 빼꼼 들이민 카린이 좋은 아침이라며 인사를 건네 왔다.

지난 일주일 동안, 카린은 내가 방 바깥에 나가지 않아도 되게끔 음료며 식사를 부지런히 가져다주었다.

가끔은 내 옆에서 과일을 깎아주기도 했는데 그 덕분에 나는 화장실 갈 때를 빼면 꼼짝없이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있을 수 있었다.

원래는 부관이 해도 될 일이었으나 그녀는 자신이 하겠다며 사람들을 모두 돌려보낸 것이다.

“어? 책상이 깔끔하네?”

“다 끝났거든.”

“와!”

그녀는 정말 잘 됐다며 파닥파닥 손뼉을 쳤다.

“그럼 좀 더 맛있는 거로 가져올걸….”

“아냐. 이것도 맛있어.”

속에 부담되지 않는 음식으로 챙긴 치즈와 빵, 과일이 내 아침이었다.

우유 한 컵에 접시에 담긴 음식을 카린과 나눠 먹던 나는 아직 일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라고 했다.

“일이 더 남았어?”

“세리스 공녀가 맘에 든다고 해야 끝나니까.”

결국 서둘러서 마법진 개발에 착수한 건 공장 가동을 위해 공녀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였다.

일주일이나 시간을 들였기 때문에 사실 공녀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상당히 곤란해지는 상황이었다.

본래 계획했던 일정 전체가 틀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뒤, 나는 공녀의 방을 찾았다.

혹시 자고 있으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다행히도 그녀는 일찍 잠에서 깬 상태였다.

만약 자고 있었더라면 아까운 몇 시간을 허투루 소모할 수도 있었으니까.

“오. 표정을 보니 뭔가 들고 오긴 한 모양이군.”

“한번 읽어봐 주시겠습니까?”

내가 건넨 치유형 보조 마법진의 결합안.

제물을 이용해 강한 생명력을 뽑아내 그 성질을 마법진에 부여한다는 개념을 담은 연구 내용을 살핀 공녀는 내내 고개를 끄덕거리길 반복하며 좋은데? 좋아! 등의 추임새를 반복했다.

“역시 맘에 들어. 하면 잘하면서 말이야. 왜 꼭 화를 내게 만들어?”

“결과물은 마음에 드십니까?”

“마법 간 결합에서 어떤 충돌이나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을지 좀 더 검증을 해봐야겠지만 한번 훑어본 거론 별문제 없을 것 같은데? 마음에 들어. 합격이야.”

-누가 검증한 건데. 당연히 문제없지!

설계를 도운 진은 공녀의 대답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기색이었지만 나는 큰 고비를 넘겼다는 것에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이제 공녀가 보호막 건설 절차에 들어가면 며칠 내에 세르톤의 가동 가능한 공장 숫자를 크게 늘릴 수 있을 터였다.

“그럼 약속한 대로 보호막 건설을 도와주시는 겁니까?”

“물론이지.”

안도의 한숨과 함께 급한 불은 껐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문득 공녀가 눈을 비비며 말했다.

“그럼 이만 나가줄래. 요즘 몸이 좀 피곤해서.”

“어… 공녀님?”

“왜.”

침대 위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공녀를 보며 나는 떨떠름한 기색으로 물었다.

“저 재촉하는 것 같아 굉장히 죄송하지만 언제 일을 시작해 주실지 여쭤봐도 될까요.”

한번 자면 오래 자는 공녀의 성향상 한밤중이 돼서나 일어날 것 같았다.

그럼 날이 어두우니 작업은 내일 하자며 어영부영 하루가 통째로 날아갈지도 몰랐다.

지금 우리는 하루빨리 공장을 돌려야 하는 처지인데 말이다.

“너 그거 연구하는 동안 계속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지?”

“예. 무슨 문제라도 있었습니까?”

“네가 이번엔 왠지 결과를 낼 것 같았거든. 식당에 코빼기 한번 안 비추길래 내가 인심 좀 썼어.”

그리 말한 공녀는 약속한 날부터 작업을 시작해 이미 공장 가동 준비를 마친 상태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블루 코어를 좀 많이 쓰긴 했는데 보호막은 일단 전부 펴뒀어. 이제 항성풍 때문에 공장이 다운되는 일은 없을 거야.”

-뭐야. 그럼 공녀가 우리가 집무실에 틀어박혀 있는 사이에 작업을 다 끝냈다는 건가?

진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원하는 대답 다 들었으면 가서 점검해 보라는 말을 끝으로 나를 방에서 내쫓았다.

정말로 많이 피곤한 모양이었다.

“매티스. 지금 어딘가.”

<충성. 함교에 대기 중이었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특이사항 없었나? 공녀님이 특수 작업을 지휘하셨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네.”

<저는 들은 바가 없었습니다.>

바삐 공장 단지로 이동하며 나는 일주일간 밀려 있었을 보고를 매티스에게서 전해 받았다.

살짝 찜찜한 점은 매티스도 공녀가 보호막 작업을 진행했단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설마하니 공녀가 이렇게 쉽게 들통 날 거짓말을 하진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며 공장에 도착하자 나는 강한 마력의 기운이 주변에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작업은 깔끔히 처리했군.

공녀의 보호막 전개 작업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남은 건 스위치를 올려 보호막을 펴는 일뿐이었고 활성화하는 즉시 마력이 소모되기에 공녀는 그 타이밍을 내가 결정할 수 있도록 양보한 것이었다.

‘나중에 다시 한번 더 고맙다고 해야겠어.’

인간과는 비교도 안 될 수준의 마력을 가진 드래곤이지만 대륙급 크기의 공장 단지를 커버할 수 있을 보호막을 손보는 일은 그녀에게도 분명 부담되는 작업량이었으리라.

나는 그녀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선 휘하 함장들을 자리에 모아 간단히 보호막 기동식을 치렀다.

보호막의 스위치를 올리는 일은 오직 마법사만이 할 수 있는 일로 내가 중심 코어에 마력을 불어넣어 시동을 걸자 거대한 빛이 도시 위로 솟구치기 시작하며 밝은 기둥을 이뤄냈다.

기둥 끝에서 퍼진 빛은 서로 얽히며 커다란 우산의 형태를 이루었는데 이는 마법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도 실로 대단한 광경이었다.

장성들은 홀린 듯 박수를 쳤고 잠시 뒤, 항성풍을 차단하는 보호막이 공장 위를 덮으며 가동 준비를 마치게 되었다.

“정말 수고 많았네. 자존심 강한 공녀님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꼭 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요.”

세릴다 중장은 정말 큰일을 해냈다며 나를 격려했다.

이로써 우린 신형 함선을 제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준비를 마친 셈이었다.

이후엔 남부에서 올라온 오크들과 드워프가 공장을 돌며 멈춰있던 라인을 돌리기 시작했다.

원자재 부족으로 멈춰 있던, 드문드문 숨만 토하던 세르톤이 오랜만에 전력가동에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 * *

공장이 무사히 돌아가기 시작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북부군 장성들과 모처럼 식사를 함께하던 중, 세릴다 중장에 내게 조용히 부탁을 하나 건네 왔다.

그것은 사실 부탁이라기보단 전적으로 내게 득이 되는 제안이었다.

“자네도 알겠지만 지금 세르톤에 합류한 북부군 인력은 북부 최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

당연했다.

수뇌부의 눈 밖에 났다는 이유로 최전선을 전전하며 가장 많은 전투를 치른 이들이다.

전투 경험치가 가장 높은 병력이었고 그 고물 함선과 전투기를 가지고 지금껏 살아남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다.

“이번에 새로 함선을 제조하면 그 숫자가 크게 줄어들어 필연적으로 인원 조정을 할 수밖에 없네. 그래서 말인데 내가 원하는 인원 일부를 특무함으로 보내고 싶은데 괜찮겠나?”

세릴다 중장은 어설픈 인원을 보낼 생각은 없으며 자신이 알고 지낸 이들 중에서도 최고의 파일럿들.

북부 최정예 조종사들을 엔터프라이즈호에 승선시키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내 왔다.

사실 이상한 제안이긴 했다.

아무리 인원 조정이 필요하다 한들 엘리트 파일럿을 내어주고 싶은 함장은 없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유에서 그런 제안을 하셨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숨기는 것 없이 이야기하겠네. 엔터프라이즈호로 보내고 싶은 파일럿 중엔 내 자식이 둘 있네. 두 녀석 모두 사내고 나를 닮아 조종 실력이 훌륭한 편이야.”

조종 실력이 훌륭한 엘리트 파일럿.

하물며 다른 이도 아니고 자식이라면 최대한 곁에 두고 싶을 텐데 내게 보내려는 그 의도가 무엇일지, 나는 그녀의 이어지는 말을 경청했다.

“자넨 이번 항성풍이 끝나면 우리가 어떻게 될 거라고 보는가.”

“글쎄요. 저흰 고립당한 상태고 어비스데몬이 바깥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상황을 파악하고 난 후에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군요.”

“향후 일이 어떻게 되든 지금 이곳에 모인 함장 대부분이 본래 방어 구역을 이탈해 무단으로 세르톤에 모였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네. 운이 좋다면 옷을 벗는 정도로 끝날 테고 어쩌면 처형 등의 징계를 받겠지.”

“특무함으로 적을 옮기면 자녀분들에겐 화가 미칠 확률은 줄어들겠군요.”

“그것뿐만이 아닐세. 특무함은 제국의 기술이 집약된 최강의 함선이지. 앞으로 어떤 전투가 일어나든지 간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확률이 가장 높은 건 엔터프라이즈호겠지.”

수십 년째 이어져 내려온 어비스데몬과의 전쟁.

그중에서도 가장 혹독했던 북부 전선에서 반평생을 지낸 세릴다 중장은 지금껏 좋은 부모 역할은 해줄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자식들을 아낀다고 말했다.

“북부에선 보기 드물지만 장기전이 되면 예비 파일럿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가. 내가 부담되는 부탁을 한 건 아니겠지?”

“물론입니다. 제겐 오히려 크게 도움이 되는 일이니 부담스러워하실 것 없습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내가 북부군 엘리트 파일럿을 특무함에 받아들이겠다고 하자 그녀는 한결 마음이 놓이는 모양이었다.

어비스데몬과의 전투에선 그런 양상을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융족처럼 전술과 지능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적과 전투를 치를 경우, 전투가 장기전으로 돌입하는 경우가 있었다.

전투가 하루를 훌쩍 넘어 이틀, 사흘 단위로 계속되면 파일럿은 엄청난 피로를 느끼게 되는데 이때 필요한 게 전투기에 교대로 탑승할 예비 파일럿의 존재였다.

물론 우주전을 치르는 파일럿은 가진 바 재능이 특출 나야 하고 양성이 쉽지 않아 예비대까지 운영하는 부대는 극소수였지만 말이다.

엔터프라이즈호조차 예비 파일럿의 숫자는 고작해야 본대의 1할을 조금 넘기는 수준에 불과했다.

특히 본함엔 그리폰급이라는 최고 스펙의 전투기가 탑재되어 있기에 실력을 충족하는 파일럿을 구하기가 더 까다로운 구석이 있었다.

그 와중에 중장이 직접 엘리트 조종사를 내어주겠다고 하니 나로선 이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우리의 앞날을 위해 건배하지.”

이후 중장은 앞으로를 위해 건배하자는 제안을 했고 자리에 모인 함장들이 모두 잔을 들어 올렸다.

부패한 이들을 빼고 한마음 한뜻으로 모인 사람들.

이제 북부의 운명은 여기 모인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북부의 미래를 위하여.”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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