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
<언제든 출격할 수 있습니다. 다른 전투기들도 모두 준비를 마쳤습니다.>
“알겠다. 확인 고마워.”
정체불명의 함대가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카린은 함교를 뛰쳐나가 고속이동 통로를 이용해 격납고로 이동, 곧장 실피드에 올라탔다.
아직 전투의 피로가 채 가시지도 않았을 테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한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카린 또한 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낌새를 느낀 모양이었다.
우리에게 안 좋은 쪽으로 진행될 확률이 높다고 말이다.
굳이 항성풍 활성화 기간의 마지막을 노려서 나타난 점.
나는 저들이 부패 귀족의 의뢰를 받고 출동해 나를 조용히 죽이려는 북부군이라 생각했다.
한 가지 의문스러운 부분은 그래도 명색이 황제의 명을 받고 파견된 중앙 특무함 사령관을 저렇게 많은 전투함을 대동하면서까지 처리하려 들까 싶은 점이었다.
전투함 2천여 척이라니···.
저만한 인원이면 아무리 입단속을 시킨다 해도 소문이 날 가능성이 컸다.
타락한 북부군이 대귀족의 의뢰를 받아 특무함 사령관을 살해했다.
이런 소문이 퍼지면 대체 어떻게 되겠는가.
일단 칼 원수부터 휘하 군단장에 이르기까지 줄줄이 처벌을 받을 거란 건 분명했다.
“저것들, 설마 너를 잡으러 온 거야?”
무료했는지 함교에 앉아 노닥거리던 공녀는 눈썹을 찌푸리며 전방을 주시했다.
“그럴 가능성도 있어 보이는군요.”
“건방진 놈들. 감히 이 몸이 누군 줄 알고···.”
-이봐. 드래곤 아가씨. 저쪽에서 댁은 관심도 없을걸.
진의 말마따나 만약 저들이 정말 나를 죽이기 위해 움직인 병력이라면 아마 공녀의 안전은 신경 쓰고 있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천년공의 이름이야 제국 어디서든 알아주지만 그의 딸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레하반 가문이 압도적인 권위를 내세울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무대가 중앙일 경우의 이야기였다.
수십 년 동안 전쟁이 지속 되어 한계까지 척박해진 북부에선 어디 귀족 가문 핏줄 하나 죽는다고 해서 눈 하나 깜짝할 것 같지도 않았다.
주제도 모르는 것들을 박살 내야 한다며 공녀가 화를 내는 사이,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두고 고민했다.
아군에 주포 사격을 준비하라고 명령을 내리려던 나는 그것도 쉽지 않은 일임을 느꼈다.
그러기엔 상대편 전투함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우주 함대전은 결국 물량 싸움.
2천여 척에 달하는 전투함이 적이라면, 그것도 같은 소속인 북부군이라면 지금 내 휘하에서 함께 싸워준 함장들도 내 명령을 따라 상대를 공격하기 난감할 것이다.
지금 함장들은 어차피 질 싸움이라면 차라리 저쪽 편에 붙어 목숨을 도모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일촉즉발의 상황.
엔터프라이즈호가 상대를 쏘아 맞출 수 있는 거리는 진즉 지났고, 이제는 양측 모든 전함이 서로를 타겟 거리에 넣은 상황에서 마침내 통신이 연결됐다.
이게 다 항성풍으로 통신 교란이 일어나고 있는 탓이었다.
“사령관님! 통신이 연결되었습니다!”
그렇게 화상 통신이 내 앞에 전개되었다.
여유로운 자세로 앉아 나를 바라보는 상대는 은회색 머리칼을 지닌 중년의 수인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수인이라는 점보다 놀라운 건 장군이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진급하는 데 성별에 따른 차별이 없다곤 하나 전투함 2천여 척을 이끌 정도의 고위 장성이 여성인 건 확실히 드문 편이었다.
어깨 위의 별 세 개를 확인한 나는 먼저 그녀에게 경례했다.
“충성. 중앙 특무함 사령관 존 메이어입니다.”
<반갑네. 북부군 6사단장 세릴다 중장이네.>
상대가 대화를 건넸다는 건 일단 좋은 신호였다.
진짜 날 죽이러 왔으면 아군인지 적인지 식별도 안 되는 거리에서 일단 주포부터 쏘고 봤을 테니까.
<갑자기 만나게 되어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나는 자넬 기다리고 있었네.>
“절 말입니까?”
<아무리 내가 계급이 더 높아도 파견 사령관이 관리하는 전선 기지에 마음대로 전투함을 정박시킬 순 없는 노릇 아니겠나.>
세르톤에 전투함을 정박하려 한다고?
2군단이 도맡는 북부 방어 구역은 이곳 일대와도 상당히 거리가 떨어진 곳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까지 올 리가 없건만, 그녀는 휘하 전투함의 세르톤 착륙을 원하고 있었다.
내 표정이 이상해서였을까?
세릴다 중장은 이번 합류와 관련해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다소 피곤한 줄은 알지만 대화를 나누었으면 한다는 뜻을 전해왔다.
상대가 계급도 더 높거니와 일단 나를 죽이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자릴 피할 이유도 없었다.
내가 흔쾌히 응하자 그녀는 셔틀을 타고 엔터프라이즈호로 오겠다고 답하는 것으로 통신을 마쳤다.
-존.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후 회의실로 이동하며 중장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진이 소곤거렸다.
무엇이 이상하냐고 묻자 그는 저 바깥의 함선 상당수가 굉장히 낡고 오래되었다는 이야길 꺼냈다.
-북부군 함선의 질이 낮은 줄은 알고 있지만 이건 그보다도 훨씬 오래된 것들이야.
‘전투함이 아니란 거야?’
-전투함은 맞겠지. 한 수백 년은 되어 보인다는 게 문제고.
진은 어쩌면 저 2천여 척의 전투함이 모두 북부군 소속은 아닐 가능성도 있다고 답했다.
북부군 전투함이 아니면 대체 무어란 말인가.
설마 그녀가 전에 내가 했던 것과 비슷하게 해적을 규합해 데리고 다닐 리도 없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그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진저 일행이 중장의 셔틀이 도착했다는 통신을 전해왔다.
간단히 검사를 마쳤다는 이야기도 곁들여서 말이다.
상대가 중장이니 빡빡한 신체 수색을 할 순 없었을 테지만 그래도 멀리서 전자 스캐닝을 하는 것만으로도 어지간한 테러의 위협은 막을 수 있었다.
‘내가 너무 의심이 많은 건가?’
북부군 수뇌부가 중장을 미끼로 삼아 폭탄이라도 터트릴 확률은 사실상 거의 없었다.
임관 이후 전쟁에 전쟁만 거듭하다 보니 내 머리가 좀 이상해졌나 보다 생각할 때, 진은 목숨의 안전에 관해서는 아무리 신경 써도 넘치는 법이 없다며 의외로 나를 칭찬했다.
대체 세릴다 중장이 본래 방어구역도 아닌 이 먼 곳까지 전투함을 끌고 온 이유는 무엇이며,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그것이 궁금했던 인물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회의실엔 세리스 공녀와 카린을 포함해 일찌감치 건너온 장성급 함장들이 자릴 잡고 있었다.
“중장님 도착하셨습니다.”
매티스 중령이 회의실 문을 열자 달랑 호위병 둘을 데리고 온 세릴다 중장이 장성들의 인사를 받으며 착석했다.
“이렇게 소문 자자한 남부의 영웅을 직접 만나게 되어 영광이군. 반갑네. 존 사령관.”
“과찬이십니다.”
나는 그녀의 칭찬에 간단히 고갤 숙이는 것으로 감사를 표했다.
진도 흡족했는지 이 친구, 사람 볼 줄 아는군. 이라며 그녀를 칭찬했다.
그 주된 이유는 나를 ‘남부’의 영웅이라 불러주었다는 데 있었다.
다들 황제가 파견했다는 것에만 중점을 두고 중앙의 영웅이란 표현을 쓰곤 했는데 사실 내가 이 자리까지 출세할 수 있던 건 순전히 남부에서의 공로가 전부였으니 말이다.
인사를 주고받은 세릴다 중장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겠다며 대화를 이끌어나갔다.
“다들 내가 왜 그대들의 귀환 루트에 자릴 잡고 있었는지 궁금할 거라고 생각하네. 혹시 자네, 3군단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나?”
“그렇습니다.”
명목상 세르톤 주변의 모든 자치령은 3군단장, 안톤 슈피겔 대장의 관리하에 놓여 있었다.
고로 별도의 명령이 있었더라면 그에게서 연락이 왔을 텐데 나는 아무 명령도 받은 게 없었다.
그러자 그녀는 마치 예상했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그렇군. 본론을 말하지. 이번 항성풍이 진행되는 동안 수뇌부는 전선을 뒤로 당길 것을 결정했네. 지도를 펼쳐주겠나?”
그녀의 요청에 매티스가 테이블 위에 북부 지도를 띄웠고 그녀는 레이저 포인터로 어느 한 지점을 콕 짚었다.
그러나 회의실에 어!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절로 튀어나왔다.
세릴다 중장이 찍은 곳은 세르톤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3군단장 안톤 슈피겔이 자릴 잡아 방어 전선을 꾸린 베르데V보다도 한참 뒤였던 것.
이 정도면 북부는 어비스데몬에게 자치령을 있는 대로 다 내어주고 완전히 후방 방어에만 전념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셈이었다.
“이게 언제 내려진 결정입니까?”
“사흘 됐네.”
“사흘···.”
이만한 결정이 내려졌으면 적어도 전선에 주둔하는 방어군에게도 퇴각 명령이 내려졌어야 하지만 나는 그 어떤 이야기도 들은 바가 없었다.
심지어 소름 돋는 건 내가 불과 몇 시간 전, 전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며 3군단장에게 승전 소식을 전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도 아무런 답장이 없었으니, 이게 뜻하는 바는 명백했다.
‘안톤 군단장이 날 가둬서 죽이려고 했군.’
북부 일대의 항성풍은 약 두 달간 진행될 예정이었다.
중요한건 북부 지역 전체가 항성풍으로 마비되는 게 아니란 점이었다.
우주는 넓고 광활하다.
항성풍을 피해 어비스데몬의 대군이 움직일 길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럼 항성풍이 끝난 뒤 세르톤은 어떻게 되겠는가.
북부 수뇌부가 전선을 물리기로 하였으니 적들이 파죽지세로 병력을 앞세울 것이고 세르톤은 적들에게 포위된 꼴이 될 터였다.
-그 녀석들, 직접 손대긴 꺼림칙하니 적을 앞세워 우릴 죽이려고 한 거군.
수뇌부가 어비스데몬을 이용해 차도살인을 노렸다.
그리고 이 사실에 누구보다 큰 충격을 받은 건 다름 아닌 북부군 함장들이었다.
그들은 세릴다 중장의 말에 무언가 잘못 된 것 같다며 그럴 리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조금 전까지 나를 따라 전투를 거들었던 함장들의 본래 소속은 3군단장 휘하이거나 칼 원수가 보낸 이들이었다.
그런데 고작 나를 따라 작전을 거들었다는 이유로 함께 버려졌으니···.
수십 년간 몸담았던 조직에 대해 회의감이 물밀 듯 솟구칠법했다.
혼란에 빠진 함장들을 놔두고 나는 중장에게 물었다.
그 이야기를 전해줄 거였다면 이곳까지 직접 올 이유가 없지 않으셨냐고 말이다.
그러자 세릴다 중장이 희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내가 이곳까지 온 이유는···. 가능하다면 폐하께서 지닌 복안을 자네를 통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까 해서였네.”
“폐하의 복안이요?”
나도 모르는 황제의 속내를 중장에게 알려주는 건 불가능했다.
애초에 나는 아무것도 들은 게 없었으니까.
내가 받은 명령은 황폐해진 북부를 되살릴 방법을 모색하라는 것뿐이었다.
이렇듯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솔직히 전하자 중장은 실망했다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자네는 얼마 전, 화폐개혁을 통해 제국 전역을 크게 뒤흔들어놓지 않았나. 그런 거대한 프로젝트를 자네 혼자서 할 수 있진 않았을 테고, 나는 당연히 폐하께서 자네의 뒤를 받쳐주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했네.”
“소문이 와전된 것 같아 말씀드리지만 그 개혁은 철저히 폐하가 주도하신 것입니다. 저는 단지 거들기만 했습니다.”
“그게 사실인가···.”
그녀는 화폐개혁을 필두로 이 썩어빠진 북부를 깨끗하게 쓸어내는 것.
부패로 타락한 대귀족을 척살하고 벼랑 끝에 내몰린 북부를 다시 재건하는 꿈을 꾸었다고 했다.
“그 시작을 저라고 생각하셨단 거군요.”
“그렇네. 여기까지 왔으니 사실대로 말하지. 퇴각 명령을 못 받은 건 자네만이 아니네.”
세릴다 중장은 자신 또한 수뇌부로부터 퇴각 명령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하였다.
그 말에 회의실 안의 사람들이 다시 한번 크게 놀랐다.
다른 이도 아니고 중장급 인원을 배제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우리의 반응에 중장이 자조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북부는 이미 끝장이네. 이미 자력으로 재건할 수 있는 한계를 지난 지 오래지.”
세릴다 중장은 지난 시간 동안 청렴결백한 삶을 살진 못했으나 그래도 부끄럽진 않은 군인은 되었다고 고백했다.
“저 바깥에 있는 함선 중 태반은 민간 소속 전투함이네.”
“민간 소속이라 하시면, 용병이란 말씀이십니까?”
“용병보다도 더하지. 그들은 내 명령에만 따르니까.”
“···사병을 꾸리다니!”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제퍼슨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제국에선 반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로 귀족이 사병을 꾸리는 걸 엄히 금지하고 있었다.
반란의 조짐을 그 누구보다 경계하는 이단심문관 입장에선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이야기였다.
“세릴다 중장님. 이를 중앙에서 알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자넨 누구인가. 이단심문관인가?”
“그렇습니다. 이단심문관 제퍼슨이라고 합니다.”
“내가 사병을 꾸린지가 어언 십여 년이 넘었는데 북부 전선엔 이단 심문관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군.”
“······.”
“이단심문관들도 날마다 병사들이 죽어가는 북부 전선엔 관심이 없던 모양이야.”
노골적인 조롱에 제퍼슨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세릴다 중장의 말은 이단심문관들이 안전한 구역만 돌며 겉핥기식 심문을 한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그, 그것은 오해입니다! 저는 이미 저 험난한 남부 전선까지 나가 폐하께서 내리신 사명을···.”
거기까지 말한 제퍼슨은 문득 나와 옆에 앉아있던 카린의 눈치를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굳이 이 이야기를 더 해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무튼! 이단심문관들이 험지에 나서지 않는다는 건 지나친 편견이십니다.”
“뭐, 그게 나한테 중요한 일은 아니니까. 자네들이 일을 열심히 하는지 안 하는지는 아무래도 좋네. 중요한 건 내가 사병을 거느리게 된 이유지.”
그녀는 지금 옆에서 같이 이동중인 2천여 척의 전투함 중 그녀가 거느린 민간 전투함이 무려 1200척에 달한다고 했다.
세상에, 전투함 1200척이라니.
그만한 전력이면 아무리 함선이 노후화됐다고 한들 자치령 수십 개 정도는 우습게 밀어버릴 수 있는 전력이었다.
세릴다 중장이 마음만 먹으면 반란을 일으키는 건 일도 아니란 소리였다.
그 시점에서 제퍼슨은 목이 졸린 듯 켁켁거리고 있었는데 중장은 태연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이미 오래전부터 평의회와 수뇌부는 전선 지역에 제대로 된 보급을 주지 않았네. 어쩌다 퇴각 명령을 내릴 때면 자치령에 남은 시민은 전부 못 본 셈 하라고도 했고. 전방과 후방을 가리지 않고 해적이 들끓으며 보급도 제대로 되지 않으니 어떻게 수뇌부만 믿고 전선을 책임질 수 있었겠나.”
그녀는 사병을 조직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죄 없는 시민들의 얼마나 죽었을지 아느냐며 분노에 차 목소릴 높였다.
“사병 중 일부는 내가 직접 시민들을 모집해 훈련 시키기도 했네.”
“자체 훈련으로 병사를 양성하셨단 말입니까?”
“기계 병사를 쓸 순 없었으니까. 기술이 부족하기도 했고, 그것만큼은 폐하도 용납하지 않으실 것 같더군.”
이미 중장이 저지른 일만 해도 죄목으로 따지면 사형감인 것 같았지만 나는 잠자코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수뇌부가 이번 전선 퇴각 명령에서 나를 제외한 이유는 명백하지. 입맛에 맞는 장교들을 제외하고 전부 축출하겠단 심산인 게야.”
수뇌부의 입맛에 맞는 장교란 다시 말해 부패 장교들을 뜻했다.
저들이 보기에 사비를 털어 사병을 조직하고, 최선을 다해 전선을 지키며 입바른 소릴 하는 세릴다 중장 같은 인물은 분명 눈엣가시였으리라.
“처음엔 시민들을 전부 후방으로 이동시키고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그만둘까도 생각했지. 그런데 문득 자네 생각이 나더군. 화폐개혁 말이야. 그렇게 간단히 귀족들을 엿 먹일 방법이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했으니까.”
나는 이제야 그녀가 왜 직접 나를 찾아온 것인지 이해가 되었다.
황제의 복안을 꺼낸 것도 그렇고, 그녀는 어떤 기대를 하고 있던 게 틀림없었다.
이 썩어빠진 북부를 구해줄 영웅.
그것이 황제의 지원을 받아 움직이는 인물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고 말이다.
“폐하께서 자네를 통해 위대한 개혁을 펼치고 계시다는 게 아니란 점은 무척 애석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곳까지 온 게 헛수고는 아닐 거 같군.”
세릴다 중장은 내게 식량이 부족하지 않으냐며 세르톤의 비축 상태를 물었다.
내가 안 그래도 문제였다고 솔직히 말하자 그녀는 휘하 함선에 넉넉한 양의 식량과 광물이 실려있다며 무상의 지원을 약속했다.
나는 예상치 못한 그녀의 도움에 상당히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다 썩은 줄 알았던 북부에 중장 같은 참군인이 남아있다는 사실은 정말로 크게 위안이 되는 일이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자네가 계속해서 북부의 재건을 위해 움직이겠다고 하면 나는 최선을 다해 자넬 돕겠네.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말이야.”
“중장님의 큰 뜻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함께하게 되어 기쁘다고 말한 세릴다 중장은 매티스에게 항성풍 활성화까지 남은 시간을 물었다.
답을 들은 그녀는 얼추 시간이 맞을 것 같다며 고갤 끄덕였다.
“무슨 시간 말씀입니까?”
“오랫동안 북부 최전선을 지켜준 동지들에게 함께 이곳으로 합류해 달라고 요청했네. 다들 믿을 수 있는 친구들이니 사령관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