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주 군벌가 망나니-90화 (90/134)

< 90화 >

“파티를 같이?”

<네. 원래···함께 참석하기도 한다고 들었는데 아닌가요?>

승전 기념 파티.

복장은 기본적으로 군복 그대로이고, 음식과 술을 나누는 자리인지라 딱딱하기보단 편하게 테이블을 잡고 사담을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함대 생활을 하는 젊은 장교들이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에 좋은 기회였고 연인이 없는 장교들은 이성에게 춤을 권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사람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카린이 말한 대로 이성과 함께 파티에 참석하는 케이스도 드물지는 않았는데 이런 경우, 이미 서로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호감이 있거나 연인 사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행동의 일환이었다.

그녀가 이런 사실을 모르고 권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할 때, 진이 말했다.

-존은 이제 내거니까 침 바를 생각 말라 이거지. 우리 엘프가 보기보다 독점욕이 있었군!

진은 낄낄거리다 말고 문득 그럼 왜 지금까지는 그런 적이 없었나 하는 의문을 품었다.

승전 기념 파티에 참석한 적이 없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 존은 지금까지 말 붙이는 여자 한 명 없었지?

‘나는 경우가 다르지. 혼자 다닌 적이 거의 없잖아.’

돌이켜보면 나는 군 생활을 하는 동안 외부행사 때 혼자 다닌 경우가 거의 없었다.

맘에 드는 이성에게 말을 거는 건 상대가 혼자 있더라도 나름의 용기가 필요한 법인데 나처럼 고위 장성을 서포트하던 인간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었다.

항상 모리더스 대장을 모시거나 마이클 소장과 함께했으니 설령 누군가 나를 마음에 두었다 한들 파티장에서 말을 붙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혹시 같이 가기로 한 상대가 따로 있어요?>

딴생각하는 사이 카린이 조금 서운한 음색으로 물었다.

아차 싶었기에 나는 그런 게 아니라며 파티에 함께 가자고 답했다.

그제야 그녀는 다시 본래 목소리로 돌아왔고 그럼 참석 전에 내 방으로 찾아오겠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그런데 존.

‘왜?’

-카린이랑 파티에 참석하면 주변 테이블이 다 밀려나는 거 아니냐?

‘그 생각은 못 했네.’

근위기사 특유의 마력.

카린의 투기에 놀란 사람들이 우르르 갈라지는 모습을 떠올린 나는 별문제 있겠나 싶었다.

어차피 그녀와 함께 가는 마당에 괜히 다른 사람의 개입으로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건 원치 않았으니 말이다.

*

세르톤에 세운 임시 연구소로 어비스데몬의 전투함이 인양되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북부는 적을 알기 위해 수백 번도 더 연구를 진행했으며 방대한 양의 자료를 쌓았다.

다만, 그런데도 다시 연구를 진행하는 건 혹시라도 북부군이 놓친 게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어비스데몬의 전투함을 낱낱이 분해한 결과, 이들에게선 마법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놈들은 융족과는 달랐다.

제국과 융족은 전투함 장갑과 안쪽뿐만 아니라 곳곳에 마법을 응용한 기술로 우주전 기술을 발전시켰지만 어비스데몬은 오로지 육체 능력에 의존한 전투를 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 어비스데몬의 육체라는 것은 인간과는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

생체전투함에서 수거한 수많은 전투기.

불에 탄 전투기 안에선 조종사로 짐작되는 그 어떤 생물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애초에 그런 작은 생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북부군의 자료에 따르면 어비스데몬의 전투기는 전투함의 명령을 받으며 뇌파 같은 거로 이어졌다는 모양이었다.

간단히 말해 놈들의 전투기는 모체가 조종하는 단순 공격 병기에 지나지 않는 셈이었다.

적 전투함을 격침하자 전투기들이 갈 곳을 잃고 우왕좌왕하던 이유가 여기 있었다.

뇌를 잃었으니 팔다리가 움직일 리 있겠는가.

즉, 어비스데몬이란 건 우주를 누비는 저 거대한 럭비공 생물체들의 군집이나 다름없었다.

-놈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만 알면 약점을 좀 더 빠르게 공략할 수 있을 텐데.

진은 어비스데몬의 전투함이 만들어지는 행성을 조사해보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냈다.

이놈들이 대체 무슨 수로 행성을 점령하고 생체전투함을 쏟아내는지 직접 파악해보자는 의견이었다.

놈들의 생산 매커니즘을 파악할 수 있으면 확실히 향후 전쟁에 큰 도움이 될 터였다.

하지만 그건 지난 수십 년간, 북부군이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일이기도 했다.

어비스데몬의 정보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들이 북부 연구원들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적의 생산지로 전락한 북부 행성을 수복하여 적들의 비밀을 알아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그런데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죽음의 연기와 독가스로 뒤덮인 행성.

용케 전투에서 승리해 전투함을 끌고 대기권 아래로 강하했을 때, 그곳엔 남은 건 지표가 다져진 검은 모래뿐이었다.

어비스데몬은 지하 깊숙한 곳에서만 전투함을 생산했고 이쪽은 전투함을 끌고 내려갈 수가 없는 곳이었다.

제국의 전투함은 잠수를 할 순 있어도 땅을 파고 들어가는 기능은 없었으니까.

결국, 조사를 위해선 건설장비를 대동해 지표를 파헤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어비스데몬의 행성에서 발견되는 보랏빛 연무, 일명 죽음의 안개.

방사능 뺨칠 정도로 위험한 독기는 제국의 어떤 종족도 오래 머무를 수 없게 만드는 주범이었다.

한참 시간을 들여 공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지하 플랜트를 조사하려고만 하면 적들의 엄청난 지원군이 몰려온다는 점이었다.

수백 척의 전투함은 예삿일이고 조사를 방해하기 위해 군단급 규모의 적이 출현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지하 깊이 숨겨진 생산 공정에 뭔가 보여주기 싫은 비밀이 있는 건 분명한데 그것을 알아낼 방도는 요연한 상황이었다.

‘지하 생산 공정의 비밀이라···.’

이것이 길었던 어비스데몬과의 전쟁을 끝낼 중요한 단서가 될 거라는 예감.

방법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군사 기술 연구 파트를 방문했다.

이곳에선 북부에서 새로 쓰일 미사일과 전투기 제작이 진행 중이었다.

“충성!”

“나한테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 계속 하게.”

북방의 노후화된 기술력을 일단 남부와 맞추는 것.

나 혼자 저 거대한 적을 상대할 순 없는 일이니 지금은 북부의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였다.

너무 빠르게 기술을 끌어올리면 황제가 노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나는 남부에서 쓰던 이클립스 미사일과 파이어플라이급 전투기를 개발해 우선 배치하기로 했다.

만약 눈치를 보지 않고 일을 진행할 거였다면 현재 엔터프라이즈호에 실려있는 그리폰급 전투기를 역설계 해볼 법도 했는데 그랬다간 바로 황성에서 소환장이 날아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생산 공정 개발은 잘 돼 가나?”

“예! 실피드 연구진이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클립스 미사일, 파이어플라이급 전투기 모두 남부에선 주력 생산품목이었기에 개발에 별다른 어려움이 있을까 싶지만 전투기 쪽은 사정이 좀 달랐다.

이클립스 미사일은 내가 처음부터 진두지휘한 프로젝트라 생산 공정을 안착시키는 데 어려움이 없었지만 파이어플라이는 내가 만든 물건이 아니었다.

파이어플라이급 전투기 상당수가 순양함에 멀쩡히 실려있긴 했는데 그것을 잘게 쪼개어 어떤 순서로 생산할 것인지, 공정을 완성하는 일은 연구 특기에 몸담아온 베테랑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파이어플라이를 남부군에 보급, 개발한 곳은 남방 군수기업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나노 테크놀러지.

도움을 요청한다 한들 나노테크에서 자신들의 밥줄을 공유해줄 리 만무했고 잘 풀린다 한들 로얄티를 받고 라이센스 계약을 맺는 정도가 한계일 텐데 그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이 일을 생판 모르는 녀석들에게 넘길 순 없지.’

북부군에 신형 전투기를 공급하는 프로젝트.

일단 진행되면 상당한 이윤이 발생할 텐데 이걸 나와 아무 연관도 없는 기업에 넘기는 것은 너무나도 아까운 일이었다.

군수기업 순위 100위 바깥에 있던 아크팩토리는 미사일 하나 잘 만들어서 단숨에 순위를 42위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미사일 만으로도 그러한 성과를 냈는데 그것이 전투기라면 어떨까.

장차 남방경계 최고의 군수기업 오너를 꿈꾸는 입장에서 경쟁업체의 배를 불려주는 일은 삼가는 것이 마땅했다.

베렐 대령 휘하 실피드 연구팀.

그들은 이미 거대 기체를 개발해본 경험이 있고 그들 중 상당수는 본래 전투기 파트에서 몸담고 있던 이들이었기에 새 전투기를 만드는 일도 착착 진행되었다.

-그럼 아크팩토리의 이름을 달고 북부와 라이센스 계약을 진행할 참이야?

‘수익을 생각하면 그것도 나쁘진 않지.’

하지만 그건 내가 떠올린 여러 방법 중 차선 정도에 불과했다.

지금은 황제의 신뢰를 쌓는 것이 우선.

여기서 눈앞의 이익이 아쉬워서 전투기 수익을 아크팩토리로 돌린다면 기껏 사재를 털어 세르톤을 활성화한 의미가 퇴색하는 느낌이 있었다.

‘이번까진 북부에 도움을 주는 형태로 가야겠지. 일단 세르톤에 부족한 게 한둘이 아니니까 칼 원수한테 이야기도 해보고.’

북부군을 징검다리 삼아 미사일과 전투기 기술을 양도하겠다고 하면 원수는 반드시 세르톤을 지원해줄 수밖에 없을 터였다.

이것이 북방군에 어떤 효과를 가져다줄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일 테니 말이다.

*

그날 저녁 나는 카린과 함께 자치령 영주들이 주최한 승전 기념 파티에 참석했다.

요즘 연구에만 몰두하는 공녀에게도 떠나기 전, 혹시 참석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그녀는 인파가 모이는 자리는 질색이라며 필요 없다는 말로 일축했다.

“다녀와. 다녀오고 나선 연구도 좀 돕고. 요즘 통 밥값을 못하는 거 같아. 알지?”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마법 개발 쪽도 신경 써서 진행하겠습니다.”

“그래.”

꼬리를 흔들며 그만 가보라고 하는 공녀.

진은 세리스! 넌 탈락이다! 라며 뜻 모를 말을 외쳤고 그렇게 나는 카린과 함께 파티에 참석하게 되었다.

내가 팔을 슬쩍 내어주자 그녀는 보란 듯이 팔짱을 끼고 옆에 붙었는데 파티장에 들어서기도 전부터 엄청난 시선이 쏟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엘프. 득의양양한 거 보소.

나도 조금은 멋쩍었던지라 제대로 그녀의 얼굴을 살피진 못했는데 진의 말에 따르면 카린이 보기 드문 표정을 지었다는 설명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우르르 흩어지는 사람들.

카린에게서 은연중에 흘러나오는 기운은 일반인이 감당할만한 것이 아니었기에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나는 옛 기억을 떠올리며 카린과 함께 파티장 구석의 테이블을 잡았고 조금 편안한 분위기 속에 그녀와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아마 카린과 같이 오지 않았더라면, 내게도 말을 붙이는 여성이 한두 명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였다.

인연 만들기에 실패한 장교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테이블에 합류했다.

“이렇게 선남선녀가 함께 있으니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 사령관님?”

“칭찬 고맙군.”

헨리는 입을 비죽 내밀고선 나를 보더니 카린을 보면선 헤 웃으며 고갤 꾸벅 숙였다.

“그나저나 그 소식 들으셨습니까?”

“······?”

“저희 동기 중에 사령관님보다 먼저 장가가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체 누가?

이렇게 소리소문없이 연애를 시작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헨리에게서 생각지 못한 이름이 흘러나왔다.

바로 지크였다.

감정 기복이 거의 없는 라다만은 짝을 이루기도 쉽지 않다고 들었는데 이건 상당히 놀라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상대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잘 아는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누군지 아십니까? 아이스 대위입니다.”

“연구팀의 아이스 대위?”

“예. 대체 언제 만나고 다닌 건지···.”

베렐 대령 휘하 연구팀 소속인 아이스 대위는 내가 갓 임관할 적부터 알고 지낸 이였다.

그런 재주를 가지고 있으면 괜히 전장에 나서지 말고 연구원으로 오래 사는 게 어떻겠냐고 충고했던 그녀.

하기야 함대에 라다만의 숫자가 워낙 적으니 둘이 만난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다.

내가 잘되지 않았느냐며 축하를 할 때, 헨리가 불쑥 말했다.

“하. 지크가 아까 아이스 대위랑 같이 파티장을 나가는 걸 보셨어야 하는데···.”

“벌써 갔단 말이야?”

“예. 거사를 치르러 갔나 보죠. 팔 네 개로 하는 라다만의 밤일은 대체 어떤···아차차.”

“헨리. 이만 꺼져.”

“옙.”

얼굴이 빨개진 카린을 보며 헨리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선 황급히 자릴 떠났다.

갑자기 어색해진 분위기.

헨리가 좀 짓궂어서 그렇지 사람은 괜찮다고 하자 카린은 나쁘게 생각한 적 없다며 괜찮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말없이 나를 깜빡깜빡 바라봤는데 그 순간 말로 형용하기 힘든 침묵이 나와 카린 사이에 맴돌았다.

카린이 보낸 시선의 뜻을 해석하느라 나도 잠시 머리가 깜빡깜빡할 때였다.

사람 한 명이 테이블로 다가와 내게 인사했다.

다른 동기들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안녕하십니까. 존 메이어 사령관님. 저는 이시오 백작님을 모시는 보좌관 미우라라고 합니다.”

-아이 씨. 분위기 좋았는데.

“무슨 일인가.”

“백작님께서 위층에 계신데 괜찮으시면 잠시 얼굴을 뵙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독대를 원하셨는가?”

“···그렇습니다.”

“카린, 잠시 여기서 기다려 줄래?”

“네.”

그녀는 후우- 하며 숨을 고르더니 신경 쓰지 말고 다녀오라는 말을 건넸다.

수만 명이 넘는 장교는 물론이고 수십만 명의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는 대형 축제.

상당한 출혈을 감수한 영주에게 감사 인사 정도는 해둬야 할 것 같았다.

그간 보급 사정이 열악해 장교부터 말단 병사까지 다들 허리띠를 졸라매고 식단을 조절했는데 오늘만큼은 원 없이 호화로운 음식을 즐길 수 있었으니 다들 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른 상태였다.

-사기 증진이고 뭐고 다 좋다 이거야. 좀 늦게 불렀어도 되잖아!

‘왜 화가 난 거야?’

-존! 이대로 지크에게 질 참이냐!

대체 뭘 진다는 건지.

헛소리 좀 그만하라고 할 때 보좌관이 2층의 귀빈실 문을 열며 나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독대라더니만.

그곳엔 이시오 백작을 포함한 인근 영주 다섯 명이 푸짐한 상을 차려놓고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어서오시오. 사령관. 꼭 한번 만나고 싶었소.”

“이런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그간 만난 북부인들은 다들 평범하거나 마른 체형에 속했는데 영주들은 상당히 식단이 풍요로웠는지 비대한 체구를 자랑했다.

“가레스 자치령을 맡고 있는 이시오 백작이오.”

한 명씩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는 귀족들.

이후 그들은 술잔을 주고받으며 이번 전쟁의 승리를 축하했고 나를 한껏 치켜세우며 영양가 없는 이야기가 한동안 이어졌다.

아래층에 카린을 홀로 두고 온 나로선 이 시간이 살짝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나를 따로 불러냈으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가 먼저 본론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영주들은 허허 웃으며 눈을 번뜩였다.

“실은 사령관께 우리가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소.”

“말씀하시지요.”

“귀하의 그 신묘한 용병술을 다시 한번 발휘해주시지 않겠소?”

“곧 항성풍이 불어닥칠 거란 건 사령관도 잘 알고 계실 거요. 1단계가 넘어가면 당분간 교류가 완전히 끊길 테지···.”

“문제는 이 사이에 어비스데몬이 행성을 점령하면 다시 되돌리기가 무척 어렵다는 거요.”

“우리 입장에선 돌아갈 고향을 잃는 셈이니 무척 중요한 문제요.”

“한 달 동안 어비스 데몬이 행성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견제해달란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항성풍이 심해지는 기간엔 놈들도 움직이지 못할 테니 조금만 더 방어하면 최소 두 달 이상 행성을 더 지킬 수 있소.”

-꿈도 야무지군.

이미 바짝 독이 오른 적들을 상대로 다수의 행성을 지켜내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칫 무리해서 군을 움직일 경우 오히려 호되게 당할 가능성이 컸다.

비록 지난 전투에선 압도적 대승을 거뒀다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일개 장성에 불과했다.

군단급 병력을 지휘하는 군단사령관도 아니고 고작 수백 척의 전투함으로 행성 여럿을 방어하러 나서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 표정이 다소 어둡자 영주들은 맨입으로 부탁하는 게 아니라며 내게 작은 패널을 내밀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우리의 성의요.”

“그만하면 사령관께서도 우리의 진심을 알아주실 거라 믿소.”

그렇게 패널을 살피는 순간, 나는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2,500,000,000,000,000.

0이 빼곡히 들어찬 화면엔 자그마치 2500조라는 숫자가 기록되어 있었다.

“뒤탈 없는 깨끗한 자금이오.”

“행성만 지킬 수 있다면 전부 사령관께 드리겠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