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
함선에서 근무하는 연방군의 주된 업무는 치안 유지다.
바깥 우주로부터 오는 적에게서 제국과 질서를 수호하는 것.
지난 5천 년 동안 제국은 무수한 피를 흘렸고 그 시간 동안 우주 괴물을 포함한 내륙의 적은 대부분 뿌리 뽑힌 지 오래였다.
당연히 해적 같은 건 책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구시대의 흔적에 불과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전투함이 어디 한두 푼 하는 물건인가?
가장 낮은 등급인 구축함조차 그 가격이 1조 크레딧에 육박하니 일개 해적이 전투함을 마련한다는 게 논리적으로 성립이 되질 않았던 것.
그래도 어둠의 경로를 통해 어떤 미친놈이 전투함 마련에 성공했다고 가정해보자.
단순히 해적질을 하기 위해 말이다.
거금을 들인 전투함으로 민간 화물선을 습격하고, 투자금을 회수하겠다는 달달한 꿈을 꾼 해적은 불과 하루도 안 되어 절망을 맛보게 될 것이다.
사방에서 나타난 행성 방위군과 경계 함대에 의해 해적선이 가루가 될 테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대체 뭐란 말인가.
아무리 북방의 치안이 엉망이어도 이곳은 메인게이트와 가까운 후방이었다.
북방군이 일부러 해적을 못 본 체하는 게 아니라면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감히 제국에서 해적질이라니! 저것들을 당장 엄벌해야 합니다!”
-저 새낀 대체 왜 여깄는 걸까.
함교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남자가 해적의 존재를 확인하더니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이번 작전에 마지막으로 승선한 이단심문관 제퍼슨이었다.
꼴도 보기 싫은 이단심문관을 데려온 건 당연히 내 의사는 아니었다.
황제의 명령으로 특무함에 승선한 제퍼슨은 대외적으론 북방의 부패와 반란 징후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물론 겉으로 그렇다는 거고 진실은 나를 감시하기 위해 황실에서 붙인 첩자일지도 몰랐다.
해적을 소탕해야 한다며 분개하는 제퍼슨을 향해 보다 못한 내가 말했다.
“제퍼슨 경. 거 입 좀 닥치시오.”
“······.”
그러자 제퍼슨은 얼굴을 붉히며 함교를 도망치듯 빠져나갔는데 말은 안 해도 오퍼레이터와 부관들 역시 통쾌하단 기색이었다.
이들 상당수는 나랑 쭉 함께 해왔던 이들이었기에 내가 적지 않은 고생을 했던 걸 잘 알고 있었다.
-꼴 좋다. 아예 함선 밖으로 사라져주면 더 좋을 텐데 말이지.
하지만 제퍼슨과 별개로 민간 함선은 구출해야만 했다.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건 군인의 의무.
나는 즉시 미하일에게 명령을 내려 구축함과 함께 적을 요격할 것을 명령했다.
“우선 경고하고 상대가 전투 의지가 없다면 함선을 회수하도록 한다. 만약 반격하려 한다면 본때를 보여주도록.”
<알겠습니다.>
레이더에 잡힌 크기로 보아 해적들의 함선은 소형 구축함급.
최신 기술로 무장한 중앙함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그렇게 전투기를 사출하여 전투태세에 들어간 순양함이 화물선을 지키기 위해 고속이동할 때였다.
우리의 접근을 눈치챈 해적선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래 봤자 이쪽의 속도가 더 빠른 데다 전투기까지 있어 도망은 어림도 없었지만 말이다.
기어이 엔진에 미사일을 맞고 나서야 붙잡힌 해적들은 반항하면 함선째로 날려버리겠단 소리에 얌전히 항복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유치장에 범죄자들을 가두고 구축함을 묶어 인양준비를 하고 있을 때, 위기에서 벗어난 화물선에서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 평생 군의 도움을 받을 날은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게 오늘일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개의치 않으셔도 됩니다.”
<혹시 중앙에서 오신 분들입니까?>
“그렇습니다.”
<어쩐지!>
우리가 중앙 소속이라고 하자 그는 왠지 북부군이 아닐 줄 알았다며 손뼉을 쳤다.
“왜 북부군이 아니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그야···.>
말하길 주저하던 함장은 내가 괜찮다고 하자 북방군엔 도리어 해적과 결탁해 뒷돈을 받아먹는 부패 장교들이 적지 않다는 이야길 꺼냈다.
장교가 해적에게 뒷돈을 받는다니.
상황이 이러니 당연히 사람들이 군을 신뢰하지 않을 만도 했는데 마침 내가 나타나 해적을 소탕한 것이었다.
화물선 함장은 답례로 화물칸에 실린 식료품을 좀 전해주고 싶다고 했는데 나는 식량은 충분하다며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답했다.
이후 그는 몇 번이고 감사를 표하며 다시 길을 떠났다.
맘 같아선 그들을 목적지까지 호위해주고 싶었으나 방향이 다르기도 했고 일단은 네오아르곤에 들러 좀 더 정확한 북방의 상황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군은 부패했고 해적이 들끓으며 먹고 살기도 빠듯한 세계라···.’
북방을 안정화하는 게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일개 사령관이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
-그래도 이 정도면 생각만큼 위험하진 않겠는데? 북부 재건 임무가 우주 괴물이랑 싸우는 것보단 낫다 이 말이야.
확실히···.
북부를 살피고 관리하는 일은 황제가 경고했던 ‘아주 위험한’ 일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였다.
기껏해야 해적이나 부패 군인이 우리의 목숨을 위협할만한 상대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진의 말에 동의한 것도 잠시, 네오아르곤에 도착한 뒤 우린 그 생각을 금세 고칠 수밖에 없었다.
*
“소문은 들었지만 그 나이에 소장이라니, 대단하군.”
네오아르곤에 위치한 북부군 사령부.
그곳에서 나는 북방 원수와 독대 자릴 갖게 되었다.
칼 빌헬름 원수.
나는 그에게 황제의 편지를 전했고 그는 안에 적힌 내용을 확인하더니 무슨 뜻인지 알겠다며 고갤 끄덕였다.
“소장은 북부 환경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사실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척박한 환경이라는 것밖엔···.”
그나마 동부나 서부는 인접 경계인지라 남부와 어느 정도 교류가 있어 조금이나마 사정을 아는데 북부는 왕래할 일도 없고 나로서는 소식을 접하기가 매우 어려운 지역이었다.
“메인게이트를 빠져나오는데 해적선도 한 척 보이더군요.”
“부끄러운 일이지.”
“병력이 부족한 겁니까?”
“단순히 무엇이 부족하다던가 하는 문제는 아니네. 이미 오래전부터 곯았던 것이 한꺼번에 터진 느낌이지.”
칼 원수는 이미 북방의 컨트롤이 자신의 손을 떠났음을 고백했다.
“이 문제를 가장 확실히 해결할 방법은 중앙의 전폭적인 지원뿐이네. 내 이미 수십 년에 걸쳐 폐하께 간언 드렸지만 바뀌는 건 없었지.”
“제가 도울 일이 없겠습니까?”
“특무함을 가져왔다고 했나.”
“그렇습니다.”
원수는 북방은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사방에 깔렸으며 일손 하나가 간절한 심정이라고 했다.
“이리 오게.”
나와 함께 북방의 거대 지도 스크린으로 다가간 원수는 외곽 전선에서부터 조여오는 붉은 화살표를 가리켰다.
“북방은 약 70년 전부터 어비스데몬으로부터 대규모 공격을 받고 있네.”
“어비스데몬입니까?”
“제국 역사상 손에 꼽을 만큼 악랄한 것들이지.”
어비스데몬.
공포와 함께 나타나며 손쓸 도리가 없는 재앙을 흩뿌리는 북부의 악마들이었다.
“무서운 건 여전히 우리가 놈들의 침공 목적을 모른다는 거야.”
융족이 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이유는 자원 때문이었다.
블루 코어나 옵테늄 등의 풍부한 광물을 노리고 쳐들어왔던 것.
보통 지성 종족간의 전쟁은 으레 자원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 어비스데몬은 달랐다.
전쟁이 시작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놈들은 점령지의 자원은 관심 없다는 듯 오로지 학살만을 자행했다.
나는 원수가 공유해준 어비스데몬에 관한 설명을 확인했다.
생체우주선을 타고 다니며 포자를 퍼트려 행성을 좀 먹고 인간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을 만드는 놈들.
그 땅에선 다시 어비스데몬이 대거 태어나 새로운 전투를 위한 괴물들이 탄생한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끔찍한데?
‘끔찍하군.’
이런 놈들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고?
남부의 전력을 모두 끌고 와도 승산이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황제가 날 죽이려고 특무함 사령관에 앉힌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 원수가 낮은 목소리로 경고를 전했다.
“그리고 해적 건은 되도록 모른 척하게.”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연방군 기술력이면 해적 따위 아무런 피해 없이 소탕할 수 있을 텐데도 원수는 해적을 정리하길 꺼리고 있었다.
“북방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부패가 만연해 있네. 해적과 손을 잡고 해적에게서 보호비 명목으로 뒷돈을 챙기는 자들도 수두룩하지.”
“전쟁만 생각하기도 벅찬데 내부 상황마저 그러면 작전을 진행하기 더 어렵지 않겠습니까.”
나는 넌지시 그들을 쓸어버리고 외부의 적에게만 집중하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고 운을 떼었는데 원수는 얼마 전 있었던 군 내부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정의감이 투철했던 장성과 장교들이 대대적인 해적 소탕을 선언하며 팔을 걷어붙였던 적이 있네. 처음엔 제법 성과를 올렸지. 그도 그럴게 전함 아닌가. 호위함대의 전력만 해도 일개 해적 따위가 범접할 수 있는 게 아니지. 그런데 그들이 결국 어떻게 된 줄 아나? 죽었네.”
북부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고위 장교의 죽음.
심지어 장성을 죽인 건 해적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은 다른 장교들이었다.
“독살당했네. 심지어 범인은 잡지도 못했지. 그 이후 북방에서 해적을 건드리려 하는 자들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네.”
다른 이들도 아니고 군의 요직을 책임지는 장성이 죽어 나가는 곳.
원수가 해주는 이야길 듣고 있노라면 이게 정녕 같은 제국령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래. 앞으로는 어떻게 지낼 생각인가.”
“일단은 작전에 임하기 전에 북부의 상황을 좀 더 둘러볼까 합니다.”
“폐하께서 편지로 내게 이르시길, 자네가 필요한 것들을 지원하되 성과가 없다면 언제든 중앙으로 복귀할 수 있음을 알리라고 하셨네.”
‘이런!’
-뭐야. 임기 보장도 안 해주는 한직이었어?
황제가 내게 이야기했던 기한은 5년.
5년만 험지에서 버티면 될 줄 알았더니만 이제는 꾸준히 성과도 내야 하는 제약까지 걸린 셈이었다.
“사람을 한 명 붙여주지. 북부에서 지내는 동안 궁금한 것이 있으면 그에게 물어보게.”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차후 다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수고하게.”
*
북부에 도착한 지도 다시 한 달이 흘렀다.
나는 그동안 정보를 수집하며 내가 원래 북부 사람이었던 것처럼, 이들의 분위기와 돌아가는 생리를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이 시간 동안 나는 세르톤이란 이름의 북부 외곽 행성에서 머물고 있었다.
이곳은 한때 북부군에 전략 자산을 공급하는 주요 생산거점이었으나 전쟁의 장기화로 자원 수급이 어려워지며 지금은 가동이 거의 멈춘 곳이었다.
농사도 지을 수 없고, 주변에 자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 거라곤 원자재를 공급받아 제조하는 게 전부인 공장형 행성이 가동을 멈추면 사람들은 무얼 먹고 살겠는가.
나는 이곳에서 과거 오크들이 겪었던 굶주림과 가난을 목격했다.
자치령을 관리해야 할 백작이 대리인만 놔둔 채 후방으로 몸을 피한 것만 봐도 이곳 현실이 얼마나 막장인지를 짐작게 했다.
나는 세르톤의 영주로부터 대규모 공장지대를 헐값에 임대했다.
쓸데없이 가격을 올리기 위한 귀찮은 흥정 따윈 일어나지 않았다.
북방 전선은 실시간으로 어비스데몬에 의해 밀리는 중이었고 영주는 곧 이곳 또한 쓸려나갈 거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손에 넣은 공장엔 야쿠차를 포함한 오크 인력이 긴급 투입됐다.
남부에서 가져온 아론다이트를 이용해 이클립스 미사일의 생산라인을 우선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현재 실린 중앙제 미사일을 모두 소진하면 북부군이 쓰는 주력 미사일을 사용해야 했는데 이것들의 수준은 과거 남부군 주력 무기였던 헬파이어 미사일만도 못한 성능을 지니고 있었다.
고작 이런 수준의 보급품을 믿고 장기전을 치른다는 건 아무리 함선이 좋아도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기에 나는 최우선으로 생산 공장을 확보한 것이었다.
‘몸이 여러 개였으면 좋겠다···.’
이 기간에 나는 몸과 마음이 상당히 피폐해지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단순히 공장을 재가동하는 준비뿐만 아니라 식량을 들어오기 위한 루트를 마련하고, 믿을 수 있는 거래처를 선정하고, 해적들을 잠재우기 위해 부패한 군인들을 살살 구슬리는 작업까지 모두 내가 도맡아야 하는 것들이었다.
일각에선 해적과 타협하지 말고 몽땅 쓸어버리는 게 더 낫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었는데 나는 아직 때가 이르다고 판단하였다.
북방의 치안 수준은 그야말로 최악.
식량을 옮기는 이동 경로, 미사일 생산을 위해 화물선이 오가는 루트까지.
이 모든 곳을 고작 전함 1개 선단만으로 지켜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세르톤은 전선 지역이라 언제든 어비스데몬의 침공이 일어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몇 안 되는 함선 전력을 해적 따위를 상대하기 위해 분산시키는 건 득보다 실이 훨씬 더 컸다.
게다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중앙에서 마련해준 전함 1개 선단.
나는 이들에 대한 개보수 작업을 직접 진행해야 했다.
나만큼 뛰어난 마법사는 이번 작전 인원을 통틀어 공녀가 유일했는데 그녀는 치료 마법진 개발 외엔 관심이 전혀 없었고 이는 고스란히 나의 부담으로 다가왔다.
전에는 내 함선만 책임지면 되었기에 잘 몰랐는데 스무 척에 달하는 함선을 개조하려니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신형 전함은 그 크기조차 커서 순양함이나 구축함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일단은 최대한 전함 위주로 작업을 하고 여유가 되면 다른 함선에도 손을 뻗치는 식으로 작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바빠서 눈이 돌아갈 지경일 땐 공녀에게 손을 싹싹 빌어 제발 전함 개조만이라도 맡아달라고 부탁할 때도 있었다.
실제로 공녀는 자신이 끌고 온 연구선이 아닌 엔터프라이즈호에서 지낼 때가 더 많았다.
나는 이 주력함이 터지면 우리 모두에게 득이 될 게 없다며 설득하여 간신히 그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하아. 드래곤을 뭘로 보고. 나니까 해주는 거야. 고마운 줄 알아야 해.”
“여부가 있겠습니까.”
-여부가 있긴 개뿔이. 밥값을 해라! 예쁘다고 봐주는 거 없어!
그렇게 피곤함 속에 북방에 대한 적응 준비를 해나가던 어느 날.
인근 행성 전역에 긴급 집결 명령이 떨어졌다.
한동안 잠잠했던 어비스데몬의 주력군이 재차 모습을 드러냈다는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