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주 군벌가 망나니-83화 (83/134)

< 83화 전함 엔터프라이즈호 >

임관한 지 일 년 하고도 팔 개월.

나이 스물다섯에 별 두 개를 달게 되었다.

수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제국에서도 가히 최고 수준의 출세 속도였다.

황제의 총애를 받는 남부의 젊은 영웅이 등장했단 소식은 황성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스물다섯에 소장이란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핵심은 다른 데 있었다.

나를 황제가 직접 특무함 사령관으로 지목했다는 사실이었다.

특무함, 제국의 특수임무를 맡는 함선을 뜻한다.

중앙에서 제작되는 특무함은 그 성능이 동급의 함선과 비교해 훨씬 뛰어나며 황실의 신뢰를 얻은 자들만이 특무함 사령관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중앙 출신 장교도 아닌, 남부의 젊은 영관 장교가 단숨에 특진하여 특무함을 맡게 되었으니 소문이 크게 날 만도 했던 것.

행사가 끝나고, 나는 궁중백의 조언에 따라 곧장 함선 제조 공장으로 향했다.

이후엔 다소 지루한 일정이 될 수 있기에 공녀에겐 차후 다시 타워에 들르겠다고 말하니 그녀는 알겠다며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궁중백이 일러준 공장은 제국의 특무함 제조를 전문으로 하는 1급 보안 구역이었다.

안내를 맡은 드워프 대령은 이곳에서 특무함은 물론 원수에게 지급되는 초중전함까지 건조된다는 설명을 해주었다.

-기왕이면 내부를 좀 보고 싶은데. 어떤 장비와 마법으로 신형함을 건조하는지 봐두면 도움이 될 거 같지 않아?

나 역시 진의 의견에 동감했지만 드워프 대령은 연락을 받고 이미 함선을 준비해두었다며 우릴 착륙장 쪽으로 데려갔다.

특무함 제조 공장의 비밀을 알려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착륙장.

그곳에 자태를 드러낸 은빛의 전함을 보는 순간 나는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특무함 전용 사양인 아이콘급 신형 전함입니다. 전장 2150미터에 장기 임무를 상정하여 자체 하이퍼에테르 정제소를 탑재한 녀석이죠.”

레기온호도 그랬지만 특무함은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데 따른 기능을 전함에 추가한 것으로 함재기 숫자는 기존 전함에 비해 더 적은 경우가 많았다.

이번 전함도 그러한 경우였는데 보통 1800미터급 전함이 전투기를 350대가량 보유한 데 비해 신형 전함은 한계 대수가 300대밖에 되지 않았다.

전함의 크기는 더 크지만 다목적 기능을 우선하여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전투기 격납고를 다른 기능으로 대체하며 생긴 변화였다.

-함재기수가 좀 아쉬운걸. 뭐 그라프 격납고라도 만들어 뒀나?

그때였다.

전함 안쪽에서 나온 드워프들이 내게 경례를 하며 관등성명을 밝혔다.

이번 신형 전함은 중앙에서 제조한 것.

전투기도 최신의 것으로 중앙제가 실렸는데 이를 정비하기 위한 정비 인력들이었다.

“충성! 산왕 중령이라고 합니다. 사령관님을 보필해 특무함 정비를 명 받았습니다.”

“이름이 산왕인가?”

“예! 그렇습니다-!”

다소 특이한 이름이라고 생각할 때였다.

발 구르는 소리와 함께 달려 나온 그림자가 나를 향해 빠르게 달려왔다.

“존!”

나를 부르는 상대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렇게나 연락이 닿지 않던 엘프 대령님이었다.

달려오는 기세가 매서운 거로 보아 아마 폴짝 뛰어 나를 안으려고 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주변의 눈이 많아서였을까.

그녀는 덜컥 멈추더니 헛기침을 하며 내게 정식으로 인사했다.

“황실 근위기사단 소속, 카린 준장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함장님.”

-어? 우리 엘프 진급했네?

사실 근위기사단의 명예나 지위는 장성급 인재들과 비교해도 부족할 게 없으니 군 계급이야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그래도 진급했다는 사실은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환하게 웃는 그녀를 보며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기에 고민을 하다 장소를 옮기기로 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

공장 주변의 한 디저트 가게.

가게 안으로 들어선 나는 눈을 살짝 크게 뜨고선 창가 쪽 자리로 향했다.

내가 익히 보아왔던 제국의 가게들과는 달리 이곳은 마치 시간이 오래전에 멈춘 것 같았다.

벽에 붙은 사진과 화보, 하늘에서 돌아가는 실링팬.

가게 안에 흐르는 감자튀김의 냄새는 실리콘밸리에 있을 적, 자주 드나들던 패스트푸드점을 떠올리게 했다.

카린은 이미 식사를 해서 디저트면 충분하다며 파르페를 시켰고 나는 오렌지 주스를 주문했다.

-달콤한 걸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널 좋아하는 건지.

헤실 웃는 그녀를 보며 진이 중얼거렸다.

“황성에 머물면서 연락을 자주 시도했는데 닿질 않더군요. 주변에서 제가 연락했다고 알려주지 않던가요?”

“아, 그게 엄청 바빴지 뭔가···요.”

나와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상급자 신분이었지만 이제는 계급이 역전된 상황.

익숙하게 내게 하대하려던 그녀는 이게 아닌데? 하는 표정으로 어색한 존대를 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편하게 말해도 된다고 했다.

“사석인데 뭐 어떻습니까. 편하게 이야기한다고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 없습니다.”

“그래도 앞으로 함장님으로 모셔야 하는데···그럼 안 되지요.”

머뭇거리던 그녀는 디저트를 먹으며 근황을 들려주었다.

내가 반란 진압에 대한 공으로 그녀를 내어달라 요청했을 때, 근위기사단에선 큰 소란이 있었다고 했다.

“전에 제가 말했던가요? 제국 그라프 파일럿은 저까지 둘밖에 없다고.”

“예. 들었습니다.”

“폐하께서 직접 기사단에 찾아오셔서 혹시 모르니 후임자를 물색하고 인수인계를 해두라는 명을 내리셨어요.”

그녀는 지난 일주일 동안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한 채 자신의 뒤를 이을 후임 교육에 모든 시간을 쏟았다고 했다.

그래서 대타 인원은 잘 해결이 되었느냐고 묻자 그녀는 고갤 저었다.

그저 빈 자리를 어설피 채우는 정도가 한계였다나.

역시 짧은 시간 내에 그녀만큼 그라프를 다룰 수 있는 인원을 육성하는 건 무리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뭐든지요.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되는데요? 함장님?”

-우리 엘프 친구는 편하게 대해주길 바라는 눈치로군.

어차피 계급도 더 높아졌으니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 때 진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카린 나이가 일흔여섯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몇이라고?’

아무리 엘프 수명이 더 길어도 그렇지.

아무래도 익숙해지기 전까진 그녀에게 존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궁금한 건 다른 게 아니라 그···목이 좀 허전해 보이길래요.”

“아.”

그녀는 목을 매만지더니 미안한 듯 말했다.

“아니,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요.”

남부를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차고 있던 목걸이, 우리가 만든 첫 아티팩트.

그것이 보이지 않기에 물어본 건데 그녀는 무척 당황한 기색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앙도 각지의 반란으로 상당히 혼란스러웠거든요. 그래서 저도 종일 출격할 수밖에 없었는데···.”

설명에 따르면 중앙의 반란을 빠르게 진압하기 위해 투입된 그녀가 연속된 전투를 치르던 와중에 아티팩트가 갑자기 깨졌단 거였다.

아무래도 첫 제작품이기도 하고 내구도나 세공 실력에 문제가 있었을 확률이 높았다.

이건 전적으로 내 문제이지 그녀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카린은 내가 준 목걸이를 잃어버렸단 사실에 무척 미안해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애초에 보석이 약해서 생긴 문제이니 부디 신경 쓰지 말아 달라고 했다.

“목걸이는 정말 별거 아니니 다음 주제로 넘어가죠. 제가 왜 폐하께 카린 준장님을 내어달라고 요청했는지 아십니까?”

“···아니요.”

-아직도 모르겠어? 널 사랑하니까.

느끼한 진의 목소리에 순간 주스를 뿜을 뻔했지만 나는 눈썹을 모으며 정신을 집중했다.

“소식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제가 그라프를 개발하게 됐습니다.”

“아! 그 이야기는 들었어요.”

“백기사처럼 대단한 물건은 아닙니다만 모양은 그래도 그럴싸하게 생겼습니다.”

나는 남부의 반란을 진압하며 어느 정도 실전데이터가 쌓인 실피드.

하지만 내 육체는 그라프 파일럿을 하기에 부족한 부분이 많았고 앞으로 있을 임무를 생각하면 그녀보다 뛰어난 적임자는 없었다.

“혹시 폐하께서 백기사까지 보내주시진 않았죠?”

“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두 대의 그라프는 계속 황성을 지키게 되어있거든요.”

카린은 남부에서 있었던 융족과의 전쟁에 그라프가 지원을 나온 것 자체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설명을 들려주었다.

“그라프 개발에 대해선 폐하도 문제 삼지 않겠다 하셨고 전 뛰어난 파일럿이 필요했습니다. 제가 준장님과 함께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씀드린 건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당신은 제가 아는 가장 뛰어난 파일럿이니까요.”

과찬이라며 얼굴을 붉히는 카린 준장.

그러나 우리의 앞에 펼쳐질 광경은 장밋빛 미래와는 거리가 멀었다.

“폐하께서 저를 5년 동안 특무함 사령관으로 근무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위험한 작전에만 투입될 거라고도 말씀하셨죠. 혹시 짐작 가는 임무라도 있으십니까?”

“글쎄요. 거기까진 저도 잘···.”

숟가락을 물고 고민하던 그녀는 북방이 내전으로 상당히 황폐해졌다는 이야길 꺼냈다.

“내전이요? 북부에도 평의회가 있고 원수가 있을 텐데 내전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그렇다고 들었어요. 외계 세력의 침입도 잦은 곳이고 원래 북부가 세력을 넓히기 좋은 환경은 아니라고 했으니까요.”

“북부···.”

남부에 이어 북부까지 가서 온갖 세력과 치고받는 생각을 하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최소 인력을 제외하면 임무에 함께할 인원을 전부 새로 꾸려야 하는데 추천할만한 사람은 없습니까?”

“제가 아는 인맥이래 봐야 대부분 근위기사들인데 레기온호 사람들은 괜찮을지도요.”

그녀는 이제 잠시 기사단 활동을 멈추고 전함에서 지내게 됐다며 방은 아무 데나 잡아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내가 아무 문제도 없다고 하니 실은 이미 방을 봐두었다며 그녀가 씩 웃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진이 말했다.

-안 봐도 알겠다.

‘뭐를?’

-딱 봐도 네 방 근처네. 이제 밤중에 누가 노크하면 역사가 시작되는 거야. 알겠어?

‘······.’

*

디저트 가게를 나온 이후엔 그녀와 함께 전함 내부를 둘러봤고, 이후엔 남은 일 처리를 위해 다시 성으로 향했다.

궁중백을 만나 남부에 있는 인원과 함선을 호출해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하루 뒤, 황제의 결재를 거친 허가가 떨어졌다.

이로써 그동안 남부에서 활약하며 육성한 인맥 일부를 다시 거둘 수 있게 된 셈이었다.

개조를 한껏 해둔 엔터프라이즈호를 다시 굴릴 수 있게 된 것도 좋은 일이었다.

물론 그 행운의 이름은 이제 신형 전함에 넘겨줘야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중앙으로 함선을 어떻게 끌고 오려는 거지? 우리도 눈을 다 가리고 이동했는데.’

-그거야 중앙에서 알아서 하겠지.

진의 말대로였다.

이제 막 남부에서 합류하는 인원은 우리처럼 바닷속 비밀게이트를 이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복구 중인 메인게이트를 통해 중앙에 도착했는데 하나같이 십 년 감수했단 분위기였다.

그렇게 불칸급 순양함, 엔터프라이즈호가 황성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안아주었다.

불과 한 달 만인데도 무척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충성! 함장님! 진급 축하드립니다!”

“진급 축하드립니다!”

“오는 데 불편하진 않았나?”

“메인게이트가 혹시라도 터질까 봐 걱정했던 거 빼면 별일 없었습니다.”

“세상에···진짜 소장님이 되다니.”

동기들은 부러운 눈빛을 하면서도 내가 올린 군공을 생각하면 당연히 받아야 할 걸 받았다는 분위기였다.

“뛰어난 함장님 덕분에 황성에도 다 와보고, 이제 우리도 출세할 일만 남은 거라니까.”

하하핫 웃으며 신형 전함을 바라보는 동기들.

그 반응에 고갤 갸웃한 내가 넌지시 물었다.

“이봐. 다들 여기 올 때 못 들었어?”

“뭘 말입니까?”

“이제 우린 특무함을 타고 위험한 작전에 나서게 될 거야.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고.”

나는 분명 이번 특무함 배속의 위험성을 설명하며 남부에 남을 사람은 넘어오지 말라고 경고했는데 놀랍게도 기존 순양함 인력의 9할 넘는 인원이 중앙에 도착한 상태였다.

오죽하면 궁중백이 자네 혹시 세뇌 마법을 쓴 게 아니냐며 농을 건넬 정도였다.

“위험이요?”

“우리가 지금까지 한 작전 중에 위험하지 않았던 게 하나라도 있었나?”

“없었지?”

“그럼 지금이랑 다를 게 뭐야?”

새삼스레 갑자기 왜 그런담?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녀석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면서도 한편으론 무척이나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너희 계급장은 아직 그대로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저희도 진급 좀 시켜주시죠.”

“남부는 아직도 진급 적체 상태라니까요. 느려터져 가지고선.”

“중앙만큼 진급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곳도 없지. 내가 따로 황실 쪽에 말해볼게.”

“역시 우리 함장님이 최고다!”

“기왕이면 특진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궁중백에게 논의하는 것으로 부하들의 진급 문제는 빠르게 처리되었다.

대다수 장교가 빠짐없이 진급에 성공했고 장기 복무를 희망하거나 장교 전환을 원하는 사병들도 가산점을 크게 확보하여 원하는 업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남부의 일원으로 이제 막 합류한 크릭족도 곧장 연방군 장교 코스를 밟을 수 있는 특혜가 주어졌다.

트라카에서 첫 실전을 뛴 진저를 비롯한 크릭 친구들이 소위로 임관하게 된 것이다.

장교 임관을 위해 1년 이상 훈련을 받은 장교들이 알면 배가 아플 수 있지만 본래 전시 상황에서 급히 실전에 투입돼 장교가 되는 일은 예로부터 종종 있던 일이었다.

심지어 크릭들은 이번 전투 동안 함대전 대공포 사격까지 맡았으니 그 공이 결코 적다 할 수 없었다.

현장 전투로 혁혁한 공을 세운 훈련소 동기들에겐 4급 청색 훈장이 수여되었고 특진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지크는 단숨에 대령, 찰스를 비롯한 친구들은 단숨에 중령 계급을 달게 되었다.

동기를 제외한 이들 중 특진을 하게 된 인물에는 매티스 대위가 있었다.

그는 조종 특기가 아님에도 이례적으로 특진하게 되어 중령으로 진급했고 추가로 조종 특기 이수 교육을 받기로 했다.

대형함의 부관은 장성급 인사의 추천을 받아 추가 특기 교육을 받는 게 가능했는데 이는 내가 부재중일 때 좀 더 원활한 함선 운용을 맡기기 위함이었다.

이 자리에 오진 않았지만 VV5610의 연구 시설로 돌아간 실피드 개발팀도 군공을 인정받아 대거 진급이 확정된 상태였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실피드 조율을 제시간에 맞출 수 없었을 테니 당연한 결과였다.

덕분에 베렐 중령은 꿈에 그리던 연구 특기 대령을 달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천 명이 넘는 사람이 거쳐간 엔터프라이즈호의 인원이 다들 진급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을 때, 호출이 들어왔다.

-아차. 이쪽도 신경을 좀 써야 했는데.

레하반 타워에 있을 세리스 공녀에게서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