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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군벌가 망나니-78화 (78/134)

< 78화 >

아룬 장군의 함선에 올랐을 때, 장군은 내게 보안상 기밀 유지를 위해 며칠만 내게 객실 안에 머물러줄 것을 요청했다.

객실이 비좁거나, 시설이 낡은 건 아니었지만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고 작은 창 하나 없는 방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뒤, 아룬 장군이 나를 왜 방 안에 가둬두었는지 그 이유가 밝혀졌다.

-이봐 존. 일어나.

“뭔데···.”

이때 나는 피곤함 속에 곤히 잠을 자던 상황이었다.

식사하러 식당에 갈 때를 제외하면 방 안에만 있다 보니 시간이 남아돌았는데 이 시간을 활용할 겸 한동안 못했던 마법 수련에 몰두했기 때문이었다.

마법의 위력은 지난 전투에서도 익히 증명된바, 나는 정신을 바짝 집중해 수련의 효율성을 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수련은 체력과 정신 양쪽 모두에서 상당한 에너지 소모가 따랐다.

피곤함 속에 몸을 일으키자 진은 나를 깨운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

-지금 우리가 어딨는지 알아?

‘알 리가 있나.’

-남방 경계와 중앙 사이의 이름 없는 행성이야. 특징으로는 가스 행성이 주변에 많다는 거?

‘그런데 그게 왜?’

지난 며칠 동안 함선은 몇 번이고 공간 도약을 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객실에 있을 때마다 도약을 위해 모든 승조원은 안전한 장소에 머물러 착석해 달라고 당부하는 방송이 몇 번이고 흘러나왔었다.

조금 이상한 일이긴 했다.

공간 도약으론 하이퍼 에테르의 한계가 있어 중앙까지 도달할 수 없다는 게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네가 푹 자고 있을 때 함선이 대기권 강하를 하더라니까.

‘음?’

진의 말은 확실히 평범한 장거리 이동과는 거리가 있었다.

행성 지표면에 가까이 내려왔다는 건 더는 공간 도약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하이퍼 에테르 충전 기지라도 몰래 지어놓은 거야?’

-아니, 이제 곧 물속으로 들어갈 거 같은데. 지금 우린 바다 위거든.

‘뭐?’

반문하기가 무섭게 평소와는 다른 흔들림과 함께 함선이 바다 아래로 잠수를 시작했음이 느껴졌다.

‘전투함을 잠수시킬 줄이야.’

우주에서도 밀폐를 완벽히 유지하며 함내 산소를 지키는 전투함이니 잠수쯤이야 별문제가 되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전투함은 바닷속에서 굴릴 용도로 만든 물건이 아니었다.

행성마다 다르기야 하지만 만약 바다에 염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을 땐 무기 체계에 좋을 리 없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잠수한 채로 부드럽게 움직이던 함선.

진은 마침내 함선이 목적지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것은 바로 언제 만들었는지도 모를 바닷속의 메인게이트였다.

-중앙 녀석들 이런 걸 숨겨두고 있었군.

이제야 아룬 장군이 나를 객실 안에 가둬두다시피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 비밀스러운 메인게이트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아서였으리라.

‘진. 혹시 위치 기록 해놨어?’

-별자리를 봐뒀으니 시간이 걸려도 다시 찾는 건 가능할 거야.

잠도 안 자고 주변을 감시한 진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넬 무렵, 함선은 메인게이트를 통과했다.

어떠한 흔들림도 없이 순식간에 초장거리 공간을 뛰어넘는 마법과 과학 기술 융합의 결정체.

진은 함선이 알 수 없는 우주 공간으로 튀어나왔으며 십중팔구 중앙에 도착했을 거란 이야기를 꺼냈다.

중앙.

제국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며 부분적으로 왕래 가능한 타 경계와는 달리 이동이 엄격히 제한된 구역이었다.

메인게이트를 통과하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아룬 소장은 그동안 답답했을 텐데 미안하다며 이제는 자유롭게 함내를 돌아다녀도 좋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함선의 이름은 드래곤풋.

처음 이름을 들었을 땐 고개를 갸웃하게 됐지만 더 해괴한 이름을 붙이는 함장도 얼마든지 있었으니 이 정도면 양호한 편에 속한다고 봐야 했다.

드래곤풋은 인간 만큼이나 많은 드워프 군인이 탑승 중이었다.

인간과 달리 드워프들은 내가 어딜 돌아다니든 별 관심이 없었는데 그중에서도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함선의 격납고 구역이었다.

그곳에선 드워프 정비팀이 중앙의 전투기를 관리 중이었는데 나는 눈을 빛내며 진과 함께 무기 스펙 파악에 나섰다.

‘어때?’

-융족 전쟁에 투입됐던 것보다 성능이 조금씩 더 좋은 것 같다.

‘그 정도로 격차가 벌어져 있단 말이지.’

-구조를 해석 중이야. 나중에 돌아가면 써먹어 보자고.

남부에 파견 왔던 전투함만 해도 등급 차이가 엄청났는데 중앙은 여전히 여력이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불꽃 튀는 소리, 크레인 움직이는 소리.

용접 마스크를 쓴 드워프들이 정비창을 돌아다니며 전투기 정비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바쁜데 미안하군. 뭣 좀 하나 물어봐도 되겠나?”

“그러시지요.”

상의는 전부 탈의하고 속옷 한 장만 걸친 털보 정비병이 땀을 훔치며 답했다.

“왜 이렇게 상한 전투기가 많은지 궁금해서 말이네.”

“아-. 근래 중앙에서도 반란군을 제압하느라 굉장히 전투가 잦았습니다.”

정비병은 끔찍했다는 듯 고갤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중앙에서 있었던 일에 관심이 동했고 그에게 음료를 사고 싶으니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아직 근무시간이라 그것은 좀 어렵습니다만···. 일과 이후엔 괜찮습니다.”

“고맙군. 한턱 사도록 하지.”

“미리 말씀드리지만 드워프가 마시는 술은 제법···.”

“주머니가 두둑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네. 원한다면 친구들도 데려오도록.”

통이 크신 분은 언제나 환영한다며 드워프는 활짝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

드래곤풋의 식당 옆엔 커다란 펍이 딸려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일과를 마치고 우르르 달려온 정비팀 드워프들에게 약속한 대로 술을 사주었다.

“오늘 자네들이 마시는 술은 내가 전부 사는 것이니 걱정없이 마시게.”

“정말 양껏 마셔도 되겠습니까?”

“천만 크레딧이건 일억 크레딧이건 상관없으니 배가 터질 때까지 마시게.”

“······.”

잠시간의 침묵.

이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 드워프들은 머리 위로 손을 번쩍 올리며 이야앜-!!! 하는 괴상한 소리와 함께 술을 주문하러 바텐더에게 달려갔다.

“존 메이어 대령님이시죠? 임무가 시작되기 전에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남부 반란 평정에 상당한 공을 세우셨다고요.”

“모두가 열심히 한 결과물이지. 만나서 반갑네. 위콘 소령.”

일할 때와 달리 그는 멀쩡히 군복을 차려입은 상태였고 나는 그의 계급장과 명찰을 확인하며 답했다.

그는 부하들이 간만에 술을 양껏 마실 수 있게 됐다며 내게 큰 고마움을 표했다.

“뭐든 물어봐주십쇼.”

“음. 남부에선 중앙의 소식을 제대로 들을 방법이 마땅치 않아서 말이지.”

나는 황제가 위독하단 소식이 들린 이후, 남부에 파견나왔던 중앙 함대가 다시 복귀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다.

“그럼 거의 반년 전이군요. 어디 보자···.”

위콘 소령은 기억을 더듬기 위해 머리를 톡톡 두들기더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폐하께서 위독하다는 소문이 중앙에 돌고 나서 약속이라도 한 듯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었습니다.”

공작부터 후작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사람과 세력이 그들이 지지하는 황손이 옥좌에 올라야 한다며 힘을 과시했다고 한다.

물론 이게 다 현 황제인 헬리오스가 후계를 굳건히 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지만 그렇다고 해도 엄연히 황제의 숨이 붙어있는데 황위 승계를 논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반역 행위였다.

“그런데 놀랍게도···사실 폐하께선 무척 건강하셨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애초 폐하는 아프신 적이 없었고 나중에 제국이 어지러워질 것을 우려하셔서 이런 일을 꾸미신 게 아닌가···하는 이야기가 항간에 돌았습니다. 실제로 보여주신 행보도 그러했지요.”

-황제가 숨어있는 반란군 목을 베려고 아픈 척했다는 거잖아?

‘그런 셈이지.’

-무서운 인간이네.

위콘 소령의 말대로라면 오스카 원수도, 중앙의 반란 귀족들도 모두 황제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꼴이었다.

아무튼, 그리하여 중앙에선 남부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피가 흘렀고 지금은 그 어떤 세력도 황제에게 감히 제 목소릴 내는 곳이 없는 분위기라는 이야기였다.

“중앙 분위기가 많이 흉흉하겠군.”

“말도 마십쇼. 지금 까딱 잘못하면 불똥이 튈까 다들 쉬쉬하는 형편입니다.”

위콘 소령은 내가 만약 남부에서 온 장교임이 확실하지 않았다면 절대 이런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하지 않았을 거라고도 했다.

“어려운 질문에 답해줘서 고맙군.”

“아닙니다. 저도 대령님 같은 영웅이 사주는 술을 마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후 우리는 무거운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드래곤풋의 음식 솜씨와 달콤한 술을 마시며 기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앙이 워낙 기술유출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이라 이런 주제를 안 좋아하면 어쩌나 싶었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아니. 얘들은 잠이 없나?

밤이 늦도록, 펍에선 드워프들의 커다란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

황성으로 이동하며 알게 된 사실은 중앙이 내 생각보다 훨씬 거대하다는 거였다.

이미 공간 도약을 몇 번이나 했지만 우린 여전히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다.

이미 지나온 영역의 크기만 해도 남방 경계를 훌쩍 넘는 수준이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그제야 왜 중앙이 다른 경계를 직접 통치하지 않고 의회며 원수를 두어 관리하는지를 이해했다.

그렇지 않으면 관리가 힘들 만큼 제국의 영토가 너무 넓기 때문이었다.

“곧 도착하겠군요.”

전투기 볼트를 조이던 위콘 소령이 말했다.

“어딜 말인가?”

“알파 구역의 입구 말입니다. 저는 하도 많이 봐서 감흥이 없지만, 대령님은 본 적이 없으실 테니···. 구경해보시겠습니까?”

“꼭 보고 싶군.”

중앙 안의 중앙.

또 다른 우주라고도 불리는 알파 구역.

이는 초대 황제가 말년에 이르러 제국의 중심지로 선언한 곳으로 위구 우주라고도 불리었다.

그러한 이름이 붙은 건 이 알파 구역의 형태가 쌍곡기하학의 위구를 닮았기 때문이었다.

알파 구역의 입구는 두 개.

우주에 어떻게 입구라는 개념이 있나 싶을 테지만 알파 구역은 입구를 제외한 나머지 공간이 크게 휘어있어 정해진 통로를 따르지 않고는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초대 황제가 끊임없는 전쟁 속에 이곳에 터를 잡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입구만 지키면 적을 상대로 수비가 쉽기 때문이었다.

‘책에서만 보던 곳인데 정말로 입구가 나 있군.’

일렁이는 공간 틈새로 난 입구.

강력한 중력이 작용하는 외벽을 전투함으로 그냥 뚫으려 하는 경우엔 흔적도 없이 몸이 짓이겨질 터였다.

창밖으로 드래곤풋이 입구에 다가가는 광경을 보고 있자 거대한 정거장이 눈에 들어왔다.

입구를 지키는 군단이 거주하는 우주 요새였다.

“입구가 굉장히 넓군.”

“그렇습니다. 수백 대가 넘는 전함도 동시에 지나갈 수 있지요.”

간단한 검문 끝에 드래곤풋은 알파 구역의 내부로 진입했다.

우주 속 천혜의 요새라 할 수 있는 알파 구역엔 G형 주계열성이 수백 개 이상 자리 잡고 있었다.

쉽게 말해 태양계 수백 개가 들어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목적지까지 앞으로 두 시간 정도면 도착할 겁니다.”

“정말로 얼마 안 남았군.”

“이렇게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아쉽습니다. 대령님과의 엔진 이야기는 무척 재미있었는데 말이죠.”

“미사일 이야기는 별로였나?”

“그럴 리가요.”

농담을 주고받으며 나는 드워프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이들 덕분에 함내에서 자유시간을 편히 보낼 수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짜증 나는 제퍼슨과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았다.

내가 함내를 돌아다닐 때마다 왠지 모를 음흉한 기척이 느껴지면 꼭 그곳에 제퍼슨이 있었는데 놈은 내 주변에 드워프가 붙으면 굳이 다가오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였다.

황성 알파.

제국 최중심부, 황제가 거주하는 수도 행성.

드래곤풋에서 내리자 제퍼슨은 나를 감시하듯 옆으로 붙었고 내 뒤로는 이단심문기관 소속으로 보이는 검은 군인들이 뒤따랐다.

-영웅을 대접하는 분위기가 뭐 이따위야?

‘개선식을 바란 건 아니지만 분위기 한번 참 그러네···.’

얼마 전까지 혼란스러웠음을 증명하듯 황성의 분위기는 몹시 조용하고 고요했다.

착륙장 근처엔 고층건물이 즐비했지만 오가는 인원이나 차량이 거의 없었고 이따금 사람이 보여도 검은 제복을 보고선 움찔하며 고갤 숙이기 바빴다.

그렇게 고급 리무진을 타고 이동하는 사이, 제퍼슨은 내게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렸다.

황제와 만났을 때 먼저 고갤 들지도 말고, 묻지도 말고, 그저 질문에만 답하라는 것이었다.

“그리 해도 살아 나올 수 있을지는 장담 못 하지만 말이야.”

코웃음을 치며 말하는 제퍼슨.

만약 내가 죽길 바랐다면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 확률이 더 높았을 텐데, 아마 내가 사고를 치면 제퍼슨에게도 불이익이 생기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저놈이 내게 충고 같은 걸 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충고 새겨듣지.”

내가 그리 답하자 제퍼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네놈···. 말이 짧군.”

“그랬나? 어깨 위에 달린 계급장이 나랑 같아서. 착각했나 보군. 이미 장성이신 줄 몰랐습니다.”

계급도 같은 데 나대지 말라고 돌려 말하자 제퍼슨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이런 위아래도 없는 놈이···.”

“위아래가 없긴.”

때마침 차량의 문이 열리자 나는 발을 디디며 기어이 한 마디를 더 날려주었다.

“무사히 돌아오면 제 계급도 바뀔 것 같은데, 그땐 위아래의 모범을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이단심문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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