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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군벌가 망나니-77화 (77/134)

< 77화 >

갑자기 나타난 중앙함대 소식에 나를 포함한 모두가 크게 놀랐다.

초장거리 워프를 가능케 하는 메인게이트는 그 입구가 중앙에, 그리고 남부에 각각 하나씩 설치되어 있었다.

양쪽이 모두 온전해야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물이었는데 반란군은 중앙의 간섭을 막고자 남부뿐만 아니라 북부, 동부, 서부에 이르는 모든 게이트를 파괴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메인게이트는 제국 초기, 황제가 제국의 영토를 넓히는 과정에서 더욱 보급로를 강화하고자 탄생한 것으로 인간뿐만 아니라 온갖 마법 종족이 달라붙어 이뤄낸 신비의 결정체였다.

이런 물건을 남부의 힘만으로 복구하는 건 불가능했고 수뇌부는 중앙의 연락을 기다리면서도 어쩌면 수십 년 이상 왕래가 끊기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중앙함대가 나타남으로 인해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수뇌부에선 즉시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이 일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를 의논하는 자리였다.

“이해가 안 가는군. 대체 고민할 게 뭐가 있단 말이오?”

제임스 대장은 부대를 편성해 중앙 함대를 맞이해야 한다고 했는데 조용히 듣고 있던 헥터 대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만약 저들이 중앙에서 건너온 게 아니라면?”

“그게 무슨 말인가. 중앙 함대가 중앙에서 오지 않았다면 대체 어디서 왔단 말인가.”

“이번 반란이 어떻게 시작된 지 벌써 잊었소? 오스카는 처음부터 중앙의 혼란이 오래갈 것이라고 못을 박고 이번 일을 꾸몄소. 반란군과 손을 잡은 중앙 세력이 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

그의 말에 모두가 침묵에 잠겼다.

그럴 가능성이 존재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만약 황제가 바뀌었고···.”

“그만! 헥터. 거기까지만 하시오.”

더는 끔찍한 소릴 듣지 않겠다는 듯 일부 대장이 헥터의 말을 끊으며 큰소릴 내었다.

“연락에 따르면 중앙 함대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고 했소.”

“양동작전일 수도 있지. 아니면 우릴 불러내어 각개 격파하려는 미끼일 수도 있고.”

“이미 반란군 수장인 오스카 원수는 죽었지 않소! 저들이 뭘 더 할 수 있겠소!”

말은 이렇게 했어도 회의장엔 불안한 기운이 감돌았다.

반란군에 이어 중앙함대까지 적으로 돌리는 상황을 걱정하는 기색이었다.

“일단은···좀 더 자세한 상황을 알아보는 게 어떻겠소. 니케아엔 충분히 많은 군단이 모여있소. 설령 중앙의 함대라 해도 방어를 굳힌 상태에선 쉽게 공격하지 못할 것이오. 어쩌면 저들이 적이 적이 아닐 수도 있고.”

모리더스 대장은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했고 상대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좀 더 많은 수의 전투함이 남부 후방 경계로 향했다.

몇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중앙함대의 규모는 불과 전투함 백여 척, 전함의 숫자도 다섯 척에 불과했고 전투를 위한 규모라기 보단 소식을 전하기 위한 사자에 가까웠다.

<대장님. 적 사령관은 아룬 소장으로 인간이 아닌 드워프입니다. 소장은 직접 니케아로 건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습니다.>

“드워프?”

게다가 적 함대를 이끄는 이들이 중앙에서만 거주한다는 드워프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드워프는 인간보다는 작은 키로 금속을 다루는 데 탁월한 재주를 지닌 종족이었는데 손기술이 워낙 좋아 제국 초기, 제국이 여러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이들이었다.

이런 드워프가 직접 함선을 이끌고 행차했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었다.

본래 중앙은 마법과 기술의 유출을 우려해 엘프, 드워프와 같은 연방 구성 종족의 이동을 극도로 꺼려했다.

웬만한 일이 아니고선 중앙 바깥으로 가는 것을 황제의 명으로 금할 정도였다.

그런데 드워프 장군이 직접 나타났다니.

이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중앙의 권력이 안정되어 황제가 직접 드워프를 바깥으로 내보냈거나, 아니면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개판이 되어 이종족들이 중앙에서 빠져나가고 있거나, 둘 중 하나로 생각됐다.

‘정확한 판단은 직접 이야기를 듣기 전엔 어렵겠어.’

-에잉. 카린 대령인 줄 알았는데 좋다 말았네.

진은 중앙에서 온 부대에 카린 대령이 없다는 것을 알고선 김이 샜다는 반응이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날 무렵, 황금빛을 뽐내는 중앙 전투함들이 니케아에 도착했다.

많은 영관 장교와 장성이 그들을 맞이해 회의장이 딸린 숙소로 안내했다.

니케아는 평의회가 위치했던 남부의 심장.

비록 반란군의 테러로 의회 건물은 크게 상했지만, 여전히 빼곡한 고층 빌딩들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먼 길 오셨을 텐데 이렇게 바삐 자리를 만들어 미안하오.”

“아닙니다. 기다리고 있으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갈색의 긴 수염을 세 갈래로 땋아 내린 아룬 장군.

철의 종족이라고도 불리는 드워프였기 때문일까?

아룬 소장은 여러 대장과 수백 명에 달하는 고위 장성을 앞에 두고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사람들을 압도하는 기백을 지녔는데 잠시 뒤, 소장은 자신이 황제의 명을 받아 이 자리에 온 사자(使者)라고 밝혔다.

폴짝 뛰어 의자에 앉은 아룬 소장은 의자를 높인 뒤 발언을 시작했다.

“폐하께선 여러분이 남부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애쓴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다 알고 계신다니···.”

“폐하께서 남부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미 알고 계신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특히 혁혁한 공을 세운 자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어 하십니다.”

그리 말한 아룬 장군은 주변을 슬쩍 둘러보더니 가장 끝에 앉아있던 나를 주목했다.

드워프의 푸른 눈이 나를 빤히 바라보자 나는 살짝 소름이 돋았다.

나를 정확히 확인한 걸 보면 정말로 반란이 어떤 식으로 정리되었는지 소상히 알고 있는 듯했다.

“이보시오 장군. 그보다 대체 여긴 어떻게 온 것이오.”

“메인게이트가 파괴되어 이동이 불가능하지 않소.”

“그보다 중앙의 사정은 어떠한가. 폐하께선 무사하신 건가?”

대장들은 앞다투어 아룬 장군에게 질문을 던졌으나 그는 모든 것을 알려주진 않았다.

그저 중앙은 이미 안정이 됐으며 황제는 여전히 건강하다는 말을 들려줄 뿐이었다.

끝내 자신들이 이곳까지 온 방법에 대해선 아룬 소장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장성들은 그 비밀이 몹시 궁금했지만 황제의 사자에게 꼬치꼬치 캐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그는 곧 통신이 복구될 것이며 메인게이트의 재건에 들어갈 거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미 게이트 복구를 위한 대부분의 기술자는 저와 함께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게이트 복구까지 얼마나 걸리겠소.”

“넉넉잡아도 반년이면 충분할 겁니다.”

회담은 그리 길지 않았다.

먼 길을 달려온 아룬 소장이 여독을 표하며 피로를 호소했기 때문이다.

“그럼 저는 잠시 쉬고 내일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아 참, 데리고 가고 싶은 사람이 있는 데 잠시 빌려가도 괜찮겠습니까?”

모리더스 대장이 누굴 데려가고 싶은 거냐고 묻자 아룬 소장은 나를 콕 집어 가리켰다.

“존 메이어 대령입니다.”

*

아룬 장군의 뒤를 따르는 동안, 나는 기분이 영 찜찜했다.

남부군이 사방에 쫙 깔린 니케아에서 별일이야 있을까 싶지만 나를 콕 집어 호출했다는 사실이 신경 쓰였다.

그렇게 호텔을 통째로 점하고 사용 중인 공간에서, 나는 아룬 장군과 개인적인 대화를 갖게 되었다.

“자네가 존 메이어 대령인가···.”

수염을 쓰다듬는 장군.

그는 소개해줄 사람이 있다며 또 다른 중앙 인사를 자리로 불러들였다.

-이런 젠장.

갑작스레 등장한 존재의 얼굴을 확인한 진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존으로 태어나 다시 사는 동안 만났던 이들 중 불편하기로는 손에 꼽는 존재.

바로 이단심문관 제퍼슨이었다.

“이렇게 다시 만나니 제법 반갑군. 이젠 대령인가?”

반짝이는 금니가 윗니에 달린 제퍼슨은 나를 보며 씩 웃었다.

나는 그런 제퍼슨을 말없이 바라봤고 우리 둘의 반응을 지켜본 아룬 장군은 고갤 갸웃거렸다.

“둘이 구면인가?”

“그렇습니다.”

“일전에 대령을 체포하려고 했다 놓친 적이 있지요. 지금 다시 보니 역시 제 감이 틀리지 않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그리 말한 제퍼슨은 눈빛을 번뜩였다.

당시엔 카린이 나를 도와줘 위기를 모면했지만 지금은 뭐라 변명할 거리도 없었다.

중앙이 이번 반란 사건에 관한 정보를 소상히 알고 있다면, 내가 시즈 일족에게서 받은 스텔스 장치를 적극 활용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자네도 그만하고 자리에 앉게. 대령은 이번 반란 사건 종식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이야. 별 것 아닌 흠으로 우리끼리 시끄럽게 할 필요는 없겠지.”

“별 것 아닌 일이라니요.”

제퍼슨은 목소릴 깔며 외계 세력과의 내통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강조했으나 아룬 장군은 듣기 싫다는 듯 손을 저었다.

“정말 위험한지 아닌지는 폐하께서 판단하실 일이니 자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네. 그보다 본론으로 들어가지. 이러려고 자릴 만든 게 아니지 않나.”

쯧- 하며 혀를 찬 제퍼슨은 결국 자리에 앉았고 마지못한 투로 이야길 시작했다.

“존 메이어 대령. 그대는 곧 중앙으로 가게 될 것이다.”

“······.”

“궁금하지 않은가?”

제퍼슨은 즐거운 듯 보였지만 나는 전혀 즐겁지 않았다.

애초에 중앙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으니 말이다.

“폐하께서 자네를 직접 보고 이야기를 듣고자 하신다. 이는 더할 나위 없는 가문의 영광이니 그대는 속히 길을 떠날 채비를 하라.”

그냥 여깄으면 안 되나?

이 말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입 밖에 낼 순 없었다.

이단심문관 앞에서 황제와의 만남은 관심없으니 상이나 주고 돌아가 주시오- 라고 했다간 진짜로 목이 잘릴 테니 말이다.

“장군님. 함선도 준비해야 합니까?”

“아니네. 자넨 우리 함선을 타고 몸만 이동하게 될 거야.”

엔터프라이즈호를 놓고 가야 한다는 사실은 날 더 불안하게 했다.

위기의 순간에, 우리 편대원들의 도움도, 실피드도, 그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나는 홀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출발은 언제입니까···?”

“사흘 후네. 긴 여행이 될 수 있으니 가족들에게도 안부 전해두게.”

아룬 장군은 별 뜻 없이 한 말이겠지만 난 어쩐지 그것이 영영 남부와 이별하게 될 거란 소리처럼 들리기만 했다.

*

중앙으로 가야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 나는 모리더스 대장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고향에도 연락을 전했다.

어쩌면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긴 하지 않았다.

아마 후계자로 점찍은 내가 중앙으로 가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면 윌리엄 백작은 무척 슬플 터였다.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시지요. 대령님. 연구는 차질없이 진행해 더욱 성능을 끌어올려 두겠습니다.”

베렐 중령과 연구원들은 다시 VV5610의 연구소로 돌아가 실피드 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

울적한 와중에 좋은 소식도 하나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살아남은 의원들이 나에 대해 큰 고마움을 갖게 되었고 문서로 명시하진 않았지만 내가 원하는 곳을 하나 찍으면 그곳을 자치령으로 따로 빼주겠다는 이야기가 오갔다는 말을 모리더스 대장이 전해주었다.

원하는 행성을 자치령으로 경쟁 없이, 편하게 고를 수 있다는 것.

특히 융족과의 전쟁으로 영토를 넓힌 남부엔 가치 있는 자치령 후보군이 엄청나게 늘어난 상황인지라 이는 대단한 특혜임에 분명했다.

이에 나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VV5610을 내 새로운 자치령으로 마음에 두었다.

다른 어떤 행성보다도 월등한 크기에 다수의 자원을 보유한 보물 중의 보물.

VV5610을 노리고 있던 마이클 소장에겐 조금 미안한 이야기지만 어차피 같은 파벌이기도 하고 사정을 잘 이야기하면 장군도 이해해줄 것이었다.

간단히 짐 정리를 하며 나는 아무 사건이나 터져 내가 중앙으로 가는 일이 취소되길 바랐다.

어쩌면 아룬 장군은 나를 중앙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인질로 잡기 위한 연막이고, 실은 중앙의 혼란은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건 아닐까 하는 등의 상상이 내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이단심문관까지 나타난 마당에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황제의 명에 죽고 사는 그들이 반란군을 도울 확률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남부를 떠나기 전 마지막 날, 중앙과의 통신이 재개되며 아룬 장군이 우리에게 들려주었던 중앙의 사정은 모두 사실이었음이 밝혀졌다.

혼란을 틈타 황권을 노렸던 세력이 정리되었으며 다시 질서가 바로잡혔음을 알리는 황제의 전언이 전파를 통해 전달됐고 남부는 비로소 모든 혼란이 끝났음을 받아들였다.

다음날, 나는 엔터프라이즈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뒤 중앙으로 가는 함선에 몸을 실었다.

전투함이나 따르는 부관도 없이 간단한 가방 하나만 들고 떠나는 길.

마치 처음 군인이 되기 위해 오딘 훈련소로 떠나던 때를 떠올리며 나는 멀어지는 니케아를 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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