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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군벌가 망나니-76화 (76/134)

< 76화 >

<아군이 근소 우위를 점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자세한 상황은 통신차단 중이라 육안으로 파악 중이다 보니 정확한 집계가 되질 않고 있습니다.>

나는 함교로 뛰어가며 매티스 대위와 계속 상황을 주고받았다.

지금 전장엔 통신차단을 위한 전자파 차폐 시스템이 활성화된 상태였다.

통신차단이 시작되면 적군뿐만 아니라 아군까지 모두 방해를 받기에 아군도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만 AI로 무장한 반란군을 생각하면 이는 우리에게 훨씬 이득이 되는 상황이었다.

만약 전장의 통신이 자유로웠다면 반란군은 인간은 쉽게 해낼 수 없는 전략적인 기동과 움직임으로 아군을 훨씬 더 궁지로 몰아넣었을 터였다.

아직 균형추가 어느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지지 않았다는 매티스 대위의 답변에 진은 불만을 드러냈다.

‘아니 우리가 이 정도로 해줬으면 빨리 몰아붙여야지. 연방군은 대체 뭐 하는 거야?’

진이 연방군을 질책하는 사이, 나는 함교에 도착해 직접 상황을 살폈다.

실피드의 공격으로 확실한 타격을 받은 초중전함은 더는 움직이지 못하고 정지한 상태였다.

반란군은 오스카 원수를 지키기 위해 초중전함을 중심으로 재차 진을 펴고 있었고 연방군은 사방으로 흩어져 적의 밀집 대형을 향해 주포를 연신 쏟아붓는 형국이었다.

매티스 대위는 아직 어느 쪽으로도 승부가 기울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내가 볼 땐 이미 연방군이 크게 우세를 잡은 것으로 보였다.

주포 싸움에서 산개하여 흩어진 쪽과 밀집해 있는 쪽이 공격을 주고받을 때, 어느 쪽의 피해가 더 클지는 판단하기 쉬운 문제였다.

그렇게 양측의 주포 사격이 시작됐다.

반란군이 쏘는 주포의 상당수는 거리를 넓게 벌리고 선 아군함 사이를 스쳐 지나가곤 했다.

반면 연방군이 쏜 주포는 설령 목표를 맞추지 못해도 뒤쪽의 다른 적을 맞추게 되어 쏘는 족족 공격이 성공했다.

-통신 방해 상태라 잘 들리진 않지만 오스카 원수가 휘하 반란군에 화를 내는 모양이다.

‘어째서?’

-명령을 듣지 않는다는군.

AI가 명령을 듣지 않을 리는 없을 터.

그렇다면 각 함대 함장이 문제를 일으켰다는 건데···.

잠시 생각한 나는 어떤 이유로 문제가 발생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었다.

‘오스카 원수는 분명 반란군도 산개하란 명령을 내렸을 거야.’

-그런데?

‘적 함장들이 따르질 않았겠지. 원수를 지켜야 하니까.’

오스카 원수는 자신이 살기 위해 부하를 방패 삼을 위인은 아니었다.

그러니 연방군과 마찬가지로 흩어져 포격전을 개시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터.

하지만 적 함장들은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반란군 입장에선 정신적 구심점이 되는 오스카 원수를 도저히 잃을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무너지기 시작한 반란군.

전투기 싸움에선 적이 여전히 우위였지만 결국 전투기도 싸움을 하다 보면 다시 전투함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미사일과 연료 보급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반란군 전투함은 주포에 크게 상해 격침되는 숫자가 빠르게 늘었고 재보급에 실패한 전투기는 그저 움직이는 과녁에 불과했다.

그때였다.

이 상황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인지 초중전함의 엔진이 불을 뿜으며 그 거대한 동체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광경에 아군도, 그리고 적도 모두가 크게 놀랐다.

데미지를 받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이동했다간 함선이 쪼개지거나 통째로 폭발할 수 있었다.

이것을 오스카 원수가 모를 리 없을 텐데도 초중전함이 밀집 진형을 뚫고 나와 연방군을 향해 달려든 것이다.

‘원수가 죽음을 각오했군.’

초중전함의 움직임에서 나는 원수가 자신의 목숨을 내려놓는 것으로 전쟁을 끝내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통신차단이 된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원수는 항복 방송 정도로 사태를 수습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가까이 붙은 아군에게나 통신을 전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투를 끝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기 죽음을 모두에게 알리는 것밖엔 없었으리라.

겹겹이 실드를 두르고 달려드는 초중전함.

연방군 함선이 일제히 주포를 쏘며 대응했지만 두꺼운 초중전함의 실드는 쉽게 뚫리지 않았다.

만약 엔터프라이즈호가 측면 후미를 노렸던 것이 아니라 지금처럼 정면을 향해 들이받았더라면, 초중전함의 실드를 뚫긴커녕 주포에 관통당해 작은 폭죽이 되었을 것이다.

-이봐 존. 원수가 정말 죽으려는 게 맞아?

돌진하는 초중전함을 지켜보며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는 진.

실드를 중첩한 초중전함은 기어이 연방군 방어 1선 전투함에 부딪혀 아군 함을 찌그러트리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그 뒤로 반란군 전투함들이 일제히 꼬릴 물고 바삐 초중전함을 따르는 상황이었다.

산개 진형으로 재미를 보던 연방군은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초중전함의 상태가 멀쩡했더라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 됐을지도 모를 과감한 돌파였다.

하지만 이미 실피드에 옆구리를 뚫렸을 때부터 초중전함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육탄전으로 아군함을 박살 냄과 동시에 사방에 포격전을 수행하던 초중전함의 엔진이 큰 불꽃과 함께 폭발하더니 순간 동력이 끊긴 듯 모든 불꽃이 꺼졌다.

충격을 받은 상태에서 무리한 운용으로 융합로가 고장난 게 틀림없었다.

<공격을 멈춰! 진압병력을 투입해 오스카 원수를 사로잡는 거다!>

3군단장 콜린 프리먼 대장은 주변 함선에 초중전함에 대한 공격을 멈출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전장에 뿌려진 채프와 통신 차폐는 여전히 소통을 어렵게 했고, 공격 중단 지시를 한 콜린 대장과 달리 라함 대장을 따르는 전투함은 여전히 초중전함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이런 젠장! 라함! 멈추라고!>

제아무리 초중전함이라고 해도 실드가 없는 상황에서 군단 전투함이 쏟아내는 주포를 몸으로 받아낼 순 없는 법.

장갑이 빨갛게 녹는 것과 동시에 연쇄 폭발을 일으키기 시작한 초중전함이 마침내 하얀 섬광과 함께 번쩍이기 시작했다.

<제길! 모든 전투함은 충격에 대비하라!>

폭발하는 초중전함의 파괴력은 우주의 핵폭탄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령관들은 사방으로 피할 것을 지시했고 채 몸을 빼기도 전에 거대한 폭발이 전장을 휩쓸었다.

섬광이 오가던 전장에 잠시 적막이 내려앉았다.

*

남부 전역을 전란의 불구덩이로 몰아넣었던 오스카 원수의 반란은 그의 죽음으로 다소 허무한 결말을 맞이했다.

니케아 전투는 원수의 죽음으로 끝을 고했다.

남은 반란군 함장들은 항전하는 자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자결하거나 항복을 선언했다.

이후 연방군은 니케아를 점령, 그간 반란군에 가담했던 인원을 대거 잡아들였다.

이들은 오스카 원수의 명령에 의해 니케아에 남아 전투를 지켜보던 자들이었다.

아마 원수는 전투에서 승리하더라도 이들을 다시 전투함에 태울 생각은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가 꿈꾸었던 새로운 남부와 AI 군대는 지금처럼 많은 승조원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수천만 명의 범죄자를 한꺼번에 사로잡는 건 남부에서도 처음 있는 일.

여전히 혼란이 끊이질 않는 가운데 반란이 끝났단 소식에 살아남은 의원들이 다시 니케아로 돌아왔다.

의회 점거와 테러 속에서도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의원은 전체 인원 3천 명 중 고작 백수십 명에 불과했다.

의원들의 신분은 대부분 각 가문의 가주들.

이들은 누군가의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 집안의 큰 어른이었고 그들이 니케아에 인질로 잡혀 아직 살아있을 거란 기대를 했던 귀족가 사람들은 모두 큰 충격에 빠졌다.

“당장 저 범죄자 놈들을 처벌해야 하오!”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남은 소수 의원은 구금된 반란군 무리를 모조리 처형해야 한다며 목소릴 높였다.

그러나 군 수뇌부는 사안이 사안인 만큼 단독으로 처리하기 보단 중앙에 처분을 맡기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며 다소 미온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아마도 수뇌부의 속내는 너무 많은 피를 흘리길 꺼리는 것일지도 몰랐다.

제국의 역사를 미루어 볼 때, 반란에 가담한 자들은 그 가족과 친척까지도 처벌의 영향을 받았다.

니케아에서 잡힌 반란군 숫자만 수천만 명.

이들의 가문, 가족과 친척, 그리고 아직 잡히지 않은 자들까지.

대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이 사태가 온전히 정리될지···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번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에 관한 애도 기간을 가진 남부는 연방군을 중심으로 한 수사본부 설립을 진행했다.

이번 사건의 경위를 정확히 파악하고 가담한 자들의 죄질을 가리기 위한 전후(戰後) 처리의 일환이었다.

“제가 말입니까?”

“자네가 아니면 대체 누가 이 일을 맡아줄 수 있겠나.”

모리더스 대장과의 면담 자리.

그는 수뇌부가 만장일치로 나를 수사본부의 중책에 앉힐 것을 동의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것 참···.’

공적을 생각하면 나쁠 게 없는 일이지만 지금은 공적보다도 몸을 돌봐야 하는 상황인지라 나는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지난번 전투의 후유증과 피로가 아직도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대체 카린 대령은 이런 걸 어떻게 매일 탔던 걸까.

새삼 그녀에 대한 존경과 감탄이 우러나오는 대목이었다.

-안 되겠다. 우리도 아티팩트를 하나 만들자. 대령에게 선물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좋은 목걸이로 말이야. 아니지. 반지는 어때. 손가락에 하나씩 끼우면 열 개도 찰 수 있겠다.

연방군 장교는 늘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

장신구를 주렁주렁 차는 건 아마 안 되겠지만 그래도 아티팩트 제작은 서두르는 게 좋을 듯싶었다.

이런 격렬한 전투를 몇 번만 더 했다간 내 몸이 남아나지 않을 터였다.

“안색이 많이 안 좋아 보이는군.”

“실제로 그리 좋진 않습니다. 대장님.”

다른 때 같았으면 젊은 친구가 그리 비실대서야 어떡하나 같은 소리가 나왔을 테지만 모리더스 대장도 내가 초췌한 이유를 잘 알고 있기에 그는 무거운 짐을 맡긴 것 같아 미안하다는 이야기만 꺼냈다.

“이름만 올려두는 것으로도 충분하니 몸조리 잘하게.”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전면에 나서서 일을 처리하진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한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네 진급 문제 말인데.”

“예.”

“자네도 알겠지만 모든 장성 진급 인원은 중앙에 보고를 올리게 되어있네. 이게 말이 보고이지 사실 허가의 개념인지라 우리도 어찌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는군.”

전쟁은 끝났지만 여전히 제국의 운명은 안갯속이었다.

중앙의 소식은 여전히 알 길이 없었고 유일한 통로였던 메인게이트는 파괴되어 복구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모리더스 대장은 일단 시간을 두고 중앙의 연락을 기다리는 상황이 될 것 같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수개월.

충분한 시간을 가진 후에도 여전히 중앙과 연락이 닿질 않으면 그때는 남부에서 자체적으로 일을 처리하게 될 것 같다고 말이다.

-일단은 휴가나 좀 줬으면 좋겠는데.

진의 말에 백번 동감했지만, 모두가 전후 처리로 바삐 움직이는 상황에 나만 휴가를 받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니케아에 머물며 본부에 얼굴을 비추고, 아티팩트 제작을 위한 재료도 수집하고, 실전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피드 강화 작업에 매달리고 있을 무렵.

전혀 생각지 못한 엄청난 소식이 군 수뇌부를 강타했다.

“뭐라고? 틀림없는가?”

<틀림없습니다! 중앙 함대입니다!>

남부 후방에서도 가장 깊은 심처라 할 수 있는 영역.

이곳에 소식을 알 길 없던 중앙 함대가 나타났단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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