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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군벌가 망나니-73화 (73/134)

< 73화 >

이후로도 수많은 의견이 오갔다.

그중 내 이야기에 동조하는 인원은 소수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항전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중엔 오히려 내가 의심스럽다는 의견을 낸 장성들도 있었다.

내가 이미 반란군 끄나풀이라 하콘을 비우게 하려는 수작이 아니냐고 말이다.

-이런 멍청한 놈들. 그랬으면 물자를 불태우잔 소리도 안 했겠지!

나 역시 진과 같은 의견이었지만 굳이 내 생각을 드러내진 않았다.

어차피 결정은 헥터 대장에게 달려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가 끝까지 항전을 고집한다면···나는 기회를 틈타 이곳을 빠져나갈 참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고뇌하던 헥터 대장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물자를 소각하고 전선에서 돌아오는 연방군과 합류할 것이다.”

“대장님!”

장성들이 벌떡 일어나 반대했지만 헥터 대장의 뜻은 완고했다.

“시간이 없으니 정리를 서둘러라. 곧 반란군이 들이닥칠 거다.”

“대령이 거짓말을 했는지 어떻게 안단 말입니까!”

“전쟁 영웅이니 뭐니 하지만 고작 대령 아닙니까!”

“대장님. 성급히 결정지을 필요 있겠습니까?”

버럭 소리치는 장군들.

그들의 외침에 헥터 대장은 날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했다.

“대령 같은 자가 반란군의 뜻에 따른다면 이미 대세는 기운 것이나 마찬가지겠지. 결정은 번복하지 않겠다. 그대들도 최선을 다해 명령을 이행하길 바란다.”

-그렇지! 이 정도 안목은 갖춰야 대장을 하는구나!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진.

장군들은 마지못해 알겠다며 고갤 숙였다.

나는 따라오라는 헥터 장군 옆에 붙어 회의실을 나섰다.

“그동안 하콘을 수성하며 많은 거주민을 화물선에 태워 내보냈네.”

반란군의 목표는 남부의 독립.

애초에 그들이 내걸었던 취지는 더는 중앙을 위해 무고한 피를 흘리지 말자는 것이었기에 하콘을 빠져나오는 민간인을 반란군도 딱히 제지하진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끝까지 떠나지 않겠다고 한 자들만 해도 수천만 명이 더 남아있는 상황이야. 이들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하콘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대부분이겠군요.”

“그렇네.”

“이번만큼은 데리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유는?”

“저는 물자 소각뿐만 아니라 공장시설까지 전부 폭파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장까지?”

하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공장을 모두 태워버리자는 의견에 헥터 장군은 다소 놀란 반응을 보였다.

“자네 계획대로면 이미 연방군이 크게 승기를 잡았을 터, 곧 반란은 진압될 텐데 너무 과한 게 아니겠나?”

“니케아에 주둔 중이던 경계 함대는 원수가 갑작스러운 성명을 발표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피해가 적은 편이었습니다. 저는 오스카 원수의 역량을 고려하면 만일의 사태까지도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음···사태가 더 장기화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인가.”

“그렇습니다.”

만약 그리된다면 단순히 물자만 소각하기보단 물자 생산의 기반이 되는 공장을 모조리 날려버리는 것이 후일을 위해서라도 더 도움이 될 터였다.

남아있는 사람을 전투함에 태우자는 의견 역시 이와 연관이 있었다.

삶의 터전이었던 공장이 불타는 모습을, 하콘 사람들이 곱게 볼 리 없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행성에 남아있으면 반란군은 이를 이용해 선전·선동을 펼칠 수도 있었다.

연방군이야말로 죄 없는 시민의 터전을 짓밟는 악마라느니 뭐니 하는 식으로 말이다.

지상으로 올라온 헥터 대장은 행성 전체에 사이렌을 울리는 한편 남아있는 시민들을 강제 소개할 것을 지시했다.

난데없이 군인들이 전투함을 타야 한다고 하자 시민들의 반발이 이어졌지만 이내 폭음이 들리기 시작하자 그들도 뭔가 상황이 크게 잘못됐음을 느낀 모양이었다.

수십킬로미터에 달하는 공장 블록이 통째로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소리.

공장 안에 쌓여있던 미사일과 폭발물이 터지며 나는 굉음이었다.

불벼락이 솟구쳐 멸망의 때가 도래하기라도 한 것 같은 광경에 시민들은 비명을 질렀고, 잠잠하던 새떼가 사방으로 날아오르며 혼란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빠르게 행성을 초토화할 수 있다니. 헥터 대장의 추진력도 대단하군.

‘하콘이라 가능한 거겠지. 워낙 전략 물자를 많이 쌓아두었던 곳이니까.’

주거단지가 확실히 분리되어 빠르게 시민을 대피시킬 수 있는 것도 장점 중의 하나였다.

공장이 가득 들어차 삭막한 행성이지만 이런 긴급 상황에선 예상치 못한 좋은 점들이 있었다.

다만 이런 신속함에도 나는 여전히 초조한 기분을 느꼈다.

언제 반란군이 이곳에 들이닥칠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수천만의 하콘 시민을 전투함에 탑승시키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30분.

이는 어디에 시민들이 모여있는지 일찍이 파악해둔 군인들과 곳곳에서 일어나는 폭발에 놀란 시민들이 앞다투어 튀어나온 영향이 컸다.

<지금부터 우리는 전선 군단과의 합류를 위해 안전한 장소로 이동할 것이다.>

니케아와는 멀리 떨어진 방향.

헥터 대장이 서쪽으로 이동할 것을 명하자 전투함이 일제히 일어나 비상하기 시작했다.

군단이 서쪽으로 머릴 트는 것을 본 나는 다급히 헥터 대장에게 의견을 전했다.

“대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하게.>

“서쪽으로 방향을 정하신 이유가 혹시 전자구름 지대를 이용해 공간 도약을 하기 위함인지 알고 싶습니다.”

<자네가 생각한 대로네.>

“대장님. 혹시 동쪽으로 향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동쪽이라는 말에 헥터 대장은 수염을 매만졌다.

<이유가 무엇인가.>

“오스카 원수는 현재 모든 반란군에게 니케아로 집결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통신 센터를 탈출하며 반란군 함대의 좌표를 손에 넣은 상태입니다. 그 결과, 동쪽 방면의 HF-32456336 포인트는 아군이 공간 도약을 하는 동안 적과 마주칠 확률이 가장 적은 곳이라고 판단됩니다.”

<안 됩니다! 그곳은 도약 없인 꼬박 4시간을 걸려 이동해야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 사이에 적과 마주칠 확률이 너무 높습니다. 대장님.>

일부 장성은 하콘 탈출 때부터 내가 의견을 내는 것에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전쟁 영웅이니 뭐니 해도 저들 눈엔 아직 내가 애송이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장성 중 상당수는 나만 한 아들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헥터 대장은 내 의견에 귀를 기울여주었다.

<다른 장군들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보는데 좀 더 설명할 부분이 있다면 이야기하게.>

“군단이 수 시간 동안 이동하는 경우엔 확실히 적과 마주칠 확률이 올라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 반란군 전투함은 기능 장애를 겪고 있어 감시에 전력을 쏟을 수 없는 상태이고 이쪽에서 계산한 루트로 이동하면 니케아로 복귀하는 반란군과 마주칠 확률은 현저히 낮다고 판단됩니다.”

<자료를 전송해주겠나?>

“예.”

통신 센터를 탈출하며 적들이 교신한 반란군 함대의 좌표, 그리고 항로를 확인한 헥터 대장은 고갤 끄덕였다.

<짧은 사이에 신경을 많이 썼군.>

“드릴 말씀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우리가 동쪽으로 향해야 하는 이유 말인가?>

“그렇습니다. 저는 조금 전 제가 적의 입장이라면 어디를 제일 먼저 확인하고 싶을지를 생각해봤습니다. 만약 제게 반란군 좌표에 관한 정보가 없었더라면 저도 대장님과 마찬가지로 전자구름 지대를 도약 준비 장소로 선택했을 것 같습니다.”

결국, 탈출 방향을 고민하는 가장 큰 이유는 뒤쫓아올 오스카 원수의 함대와 마주치지 않고자 함이었다.

그렇다면 적이 어딜 가장 먼저 살피고 싶을지를 읽는 게 우선 아니겠는가.

<확실히, 오스카 원수라면 우리가 전자구름을 이용해 빠르게 탈출하고 싶어할 거란 점을 놓칠 리 없겠지.>

전자구름 지대라면 다수의 적을 상대로도 일부 전투함은 무사히 탈출을 노려볼만한 장소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적의 숫자가 워낙 많기에 아무리 구름 지대를 이용한다 해도 뒤를 잡히면 최소 절반 이상의 아군이 목숨을 잃을 것이라 예상되는 상황.

고민 끝에 헥터 대장은 이번에도 내 손을 들어주었다.

<우리는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살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죽기 좋은 날이 아니니 존 대령의 의견을 받아들여 다 같이 후일을 도모하도록 한다.>

“감사합니다. 대장님.”

<탈출 작전이 무사히 끝나면 감사는 우리가 자네에게 해야겠지.>

-크으. 참 장군님!!!

고갤 끄덕여 보인 헥터 대장은 그 말을 끝으로 동쪽으로 방향을 돌릴 것을 지시했다.

이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력으로 탈출에 임할 때였다.

*

“이미 사라졌다?”

“그렇습니다. 각하.”

헥터 대장의 군단이 떠난 자리.

불타는 하콘을 궤도에서 바라보는 오스카 원수는 이미 행성이 비워졌단 보고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통신 차단은 완벽했을 터인데···.’

혹시나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해 하콘을 둘러싸고 감시용 전투함도 배치해놨지만 상대는 마치 오늘을 예전부터 준비했던 것처럼 일시에 뚫고 나와 감시망을 흔들어놓았다.

“동시다발적으로 적 함대가 튀어나와 정찰 함대를 밀어냈다고 합니다.”

“적 주력이 어디로 향했는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는 거군.”

“···그러합니다.”

“마치 우리가 올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불을 지르고 도망쳤단 말이지.”

차가운 웃음을 지은 오스카 원수는 우주 지도를 펼치더니 이윽고 한 지점을 찍었다.

“어차피 공간 도약을 하지 않고 후퇴할 리는 없을 터. 아군에게 명해 고속함을 보내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오스카 원수가 가리킨 곳은 다름 아닌 하콘 서쪽의 전자구름 지대였다.

레이더망에 잡히지 않는 곳으로 군단을 숨겨 도약에 나설 것으로 판단해 적 본대를 뒤쫓을 수 있는 고속 전투함을 움직인 것이다.

“운이 좋다면 아군 고속함이 적 뒤를 잡을 테니 우리도 서둘러 움직이도록 한다.”

“예!”

그렇게 움직인 경계 함대.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고속함이 하콘 주둔군의 뒤를 잡았단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해서야 결국 오스카 원수는 자신이 적의 뒤를 쫓는 데 실패했음을 인정했다.

“돌아가자.”

“각하. 저들이 이미 구름 지대로 들어간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미 도약 준비를 하고 있다면 무방비 상태일 테니 조금만 더 수색해보면···.”

“됐다. 다른 방향으로 향한 것이다. 우리는 니케아로 돌아가 집결하는 동지들을 맞이하도록 한다.”

“···알겠습니다.”

우주 지도를 치운 오스카 원수는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적 군단을 잡아냈더라면, 향후 있을 전쟁을 조금이라도 더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었을 텐데 결국 놓치고 말았다.

적의 주력은 살아서 포위망을 빠져나갔고 남부 후방에서 가장 큰 생산 플랜트였던 하콘까지 터진 상황.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단 말인가.’

유령에게 당한 듯 흔적도 없이 뚫린 니케아 통신 센터에 불타는 하콘까지.

오스카 원수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돌아가는 길에 침묵을 지켰다.

그는 꿈에도 알 수 없었다.

이 모든 일이 고작 한 명의 군인 때문에 벌어졌다는 것을 말이다.

*

-결국, 해냈군.

‘그래.’

니케아 통신 센터를 장악하고 반란군을 일거에 무너트린 총공세 작전이 시작된 지 사흘이 지난 8월 26일.

하콘을 사수하던 헥터 대장의 군단이 전선의 연방군과 무사히 합류하는 데 성공했다.

내가 니케아에서 활약하는 사이, 전선의 연방군 규모는 이미 5개 군단 규모로 불어나 있었는데 이는 지난 융족과의 전쟁을 위해 나섰던 군단 중 상당수가 황제에 대한 충성심을 지킨 결과였다.

여기에 헥터 대장과 제임스 대장의 군단까지 후방에서 합류해 다시 7개 군단이 편성, 니케아에 집결한 반란군과의 최종 전투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근데 존.

‘왜.’

-우리가 대체 얼마나 더 해줘야 해?

‘흠···.’

일곱 명의 대장이 모여 연일 언제 진격할지를 두고 회의하는 상황.

모리더스 대장은 하루라도 빨리 진격해 오스카 원수의 목을 베야 한다고 주장했고 후방에서 미친 듯 시달리다 간신히 탈출에 성공한 제임스 대장은 보급을 완벽하게 하고 무장을 풀로 갖춰 맞서자고 외치는 쪽이었다.

이런 대립각이 세워진 건 아직도 반란군 세력이 무시 못 할 정도로 크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1군단을 맡았던 반란군 대장 오리온은 구금됐고, 하콘 점령에 나섰던 베이몬드 대장도 헥터 장군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지만 여전히 오스카 원수 밑엔 수만 척에 이르는 반란군 전투함이 남아있었다.

니케아의 통신 센터를 장악하고, 해킹에 성공해 무수한 반란군 전투함을 격침했음에도 이 정도였으니···.

만약 나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애초 남방 경계는 반란군 손에 떨어졌을 운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나는 대령임에도 불구하고 장성급 회의에 매일 같이 불려가야 했다.

다들 나를 둘러싸고는 영웅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며 매일 같이 내 얼굴만 바라보는 게 아니겠는가.

아니···. 장군님들. 이 정도 해줬으면 됐잖아요.

제가 뭐 공격 날짜까지 점지해줘야 합니까?

“존 대령이라면 언제나 최선의, 아니.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는 전략을 생각해내니 말이네.”

“제국의 홍복이란 대령을 두고 하는 이야기지. 암.”

‘제 밑천은 이미 다 까발린 지 오랩니다. 제발 그만 하세요.’

이미 일개 대령의 능력을 아득히 초월했다고 외치고 싶었지만 나는 결국 무수한 시선 속에 또 한 번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이쯤이면 적들도 엔터프라이즈호의 스텔스 능력에 관한 정보를 입수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겁니다.”

“그렇겠지.”

“워낙 피해가 막심했으니 말이네.”

“하지만 스텔스는 알고도 못 막는 기술이지요.”

“설마 또 한 번 침투하겠다는 건가?”

눈을 반짝이는 콜린 대장을 보며 나는 순간 이게 정녕 같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행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원래 하려던 말을 끝마쳤다.

“그건 아닙니다만, 전투가 시작되면 남은 스텔스 시간을 이용해 적 지휘 체계를 타격해보겠습니다.”

주변에서 오오! 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지휘 체계라면 오스카 원수의 초중전함을 노리겠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작전 개시와 동시에 후방으로 이동. 엔터프라이즈호로 적 지휘선을 타격해 보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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