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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군벌가 망나니-70화 (70/134)

< 70화 >

진저 일행이 첫 실전을 무사히 완료하던 때, 나는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곳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반짝이는 은하수가 커튼처럼 늘어진 사막.

이전에 이클립스 미사일을 실험했을 때 들렀던 곳으로 트라카에서 이만큼 인적이 드문 장소는 또 없다고 봐도 좋았다.

그렇게 손님을 실은 헬기가 도착하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를 밟으며 걸었다.

“존! 이게 어떻게 된 게냐!”

“할아버지.”

내가 기다린 손님은 바로 윌리엄 백작이었다.

그가 항상 머무르는 메이어 빌딩은 보는 눈이 너무 많이 비밀스러운 만남을 가지기에 적당한 장소는 아니었다.

“제가 뵈러 갔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아니다. 뻔히 상황을 아는 데 무슨 소리냐. 개의치 말거라.”

건강해보여서 다행이라며 윌리엄 백작은 내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네가 이곳에서 기다리겠단 연락을 받았을 땐 어찌나 놀랐던지.”

윌리엄 백작은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부탁했고 나는 그간 있었던 일을 짧게 설명했다.

VV5610을 점령한 일, 니케아 행성으로 향해 반란군을 중심에서부터 무너트리는 작전을 시작했다는 대목에선 윌리엄 백작도 크게 걱정하는 눈치였다.

“막중한 임무를 맡았구나. 성공할 수 있겠느냐?”

“어렵더라도 해야겠지요.”

끝까지 중앙에 충성하기로 했으니 이제는 이판사판이었다.

위험하긴 해도 이번 작전만 성공하면 오스카 원수를 따르는 반란군 무리는 크게 흔들릴 것이 분명할 터였다.

윌리엄 백작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수송용 전투기 한 대가 더 날아와 기다리고 있던 사람 둘을 사막 위로 떨궈놓았다.

한 명은 진저가 구출해낸 라이언 코멧이었고 또 한 명은 피투성이가 된 채 입에 재갈을 물려둔 마르크 메이어였다.

윌리엄 백작은 반란군 감찰대원으로 활동하던 마르크가 이런 꼴을 당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던 모양이다.

그는 피투성이가 된 손주를 보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망설이는 듯했다.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듯 백작은 마르크가 불쌍한 모양이었다.

“···존.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놔두면 곧 죽을 것 같구나.”

“지혈제를 놔줬으니 멀쩡할 겁니다. 차가운 사막에 이대로 놔두면 또 몰라도요.”

그 말을 들었는지 마르크는 몸을 움찔거렸고 라이언 코멧은 나를 발견하고는 헐레벌떡 달려와 회장님!을 외치며 내 품에 안기려 했다.

‘어딜 사내 녀석이.’

카린 대령도 아니고 땀내 나는 사내놈을 안아주는 취미는 없었기에 나는 슬쩍 라이언을 피하며 말했다.

“안색이 좋아 보이는군. 라이언.”

“예?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요!”

그는 가족도 만나지 못하고 한 달 넘게 사람을 피해 다니며 공장에 숨어있던 일들이며 어려움을 속사포로 쏟아냈다.

물론 그런 라이언도 전투기 타고 우주 괴물이랑 싸워볼래? 라고 하자 금방 조용해졌지만 말이다.

“할아버지. 이쪽은 제 회사를 관리하는 친구인 라이언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존 메이어 회장님의 가장 믿음직한 오른팔! 라이언 코멧이라고 합니다! 아크 팩토리 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 직접 만나 얼굴을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지만 말이다.”

이후 라이언은 내가 언제 떠날지를 물었고 나는 시간을 확인하며 한 시간 정도 남았다고 말했다.

“예? 한 시간이요?”

“아직 전쟁이 끝나질 않았는데 내가 여기 계속 머물순 없지.”

“그럼···이제 어디로 가십니까?”

“니케아로 갈 거다.”

“니케아라면···.”

남부평의회가 위치한 니케아는 남방 경계에서 가장 유명한 행성.

그곳에 가서 어떤 일을 벌일지 상상했는지 라이언은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가 이번에 미카엘 스톤 거래하면서 남부 곳곳에 세운 지점들 있지.”

“예. 회장님.”

“니케아 쪽에 가장 가까운 곳이 어디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PDA를 꺼내 작은 우주 지도를 띄운 라이언은 트라카에서 제법 먼 곳에 위치한 아크 팩토리 지부를 콕 찍었다.

“이곳입니다. 니벨룽이라는 행성인데 인구는 천만이 안 되고 별 볼 일 없어서 유령 회사를 돌리기는 딱이었죠.”

“연락해서 하이퍼에테르 준비해놓으라고 해.”

“군용자산이라 뒷돈이 좀 들 텐데 괜찮겠습니까?”

내가 고갤 끄덕이자 라이언은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했다.

이제 준비는 모두 갖춰진 셈이었다.

트라카에서 니벨룽으로, 니벨룽에서 다시 니케아까지.

최대한 빠르게 공간도약을 시도하며 반란군의 심장을 찌를 참이었다.

“할아버지.”

“말하거라.”

“제가 작전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저 녀석을 계속 데리고 있어 주시겠습니까? 대접이 너무 좋을 필요는 없고 살아만 있으면 됩니다.”

나는 그리 말하며 기절한 듯 움직임이 없는 마르크를 가리켰다.

진저 일행이 라이언을 구하고 놈을 확보했다고 했을 때, 나는 녀석을 어떻게 처분하면 좋을지를 고민했다.

진은 사지를 찢어 죽이면 어떻겠냐고 했는데 놈이 저지른 일에 비하면 그건 너무 간단한 처벌이 아닌가 싶었다.

‘분수에 맞지도 않는 욕심을 냈던 놈이니 오래오래 썩는 게 어울리지.’

이번 작전에 성공해 다시 남부의 질서가 회복된다면.

반란군에 가담했던 모든 일당은 적법한 처벌을 받게 될 터였다.

하지만 모든 일이 잘 풀렸을 경우였다.

나는 백작에게 일이 틀어졌을 때를 상정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신공장 지하에 레드옵테늄이 저장된 창고 있습니다. 만약 작전에 실패하거나 일주일 넘게 반란군이 패배했단 소식이 나오지 않으면 마르크를 거기다 놓고 공장을 날려버리십시오.”

반란군이 우위를 잡은 상황에서 감찰대원인 마르크의 행방불명이 길어지면 놈들은 자치령을 관리하는 백작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남긴 공장을 홀랑 먹으려다 안전관리 소홀로 공장 사고와 함께 날아갔다고 발표하면 의심은 덜할 겁니다.”

졸지에 손주를 사고사로 위장해야 할지도 모르는 처지에 놓인 백작은 굉장히 착잡한 얼굴이었다.

“꼭 성공하거라.”

“그럴 겁니다.”

“살아만 돌아오면 네게 트라카를 물려주겠다···.”

백작의 말에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라이언이 헉! 하고 놀랐다.

그 말인즉, 백작이 다년간의 후계자 경쟁을 마무리하고 나를 최종 승자로 결정짓겠단 뜻이기 때문이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럴 필요 없다고 답하자 백작이 그게 무슨 소리냐며 반문했다.

“할아버지. 이번 작전이 성공하면 저는 아마도 진급하게 될 겁니다. 반란군을 쓰러트리는 데 큰 공로를 세운다면 최연소 장성이 되는 게 꿈 같은 일은 아니니까요.”

“그렇겠구나.”

“제가 장성이 되면 저도 대귀족의 자격을 갖추게 되는 셈이니 기왕이면 가문의 자치령은 하나보단 둘이 되는 게 더 좋지 않겠습니까?”

자치령이 둘이 된다는 것.

그것은 곧 메이어 가문이 명문가로 발돋움하는 첫 관문을 통과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네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줄은 전혀 몰랐구나.”

“저도 제가 이렇게 빨리 출세할 줄은 몰랐습니다.”

윌리엄 백작은 내 뜻을 잘 알았다며 트라카의 주인은 향후 네가 원하는 인물로 채워놓으면 될 것 같다며 내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니 할아버지. 건강히, 오래오래 사셔야 합니다.”

메이어 가문의 이름을 크게 높여 보이겠다고 하자 백작은 감동한 듯 나를 꼭 안아주었다.

코 밑을 쓱 훔치는 라이언과 피떡이 되어 벌렁 기절한 마르크까지.

사막의 밤하늘이 한층 더 아름다워진 기분이 들었다.

*

트라카에서 백작의 도움을 받아 조용히 보급을 완료한 엔터프라이즈호는 다시 연속 도약에 나섰다.

함선엔 실피드 개조를 위한 블루 코어도 들어왔는데 이는 빈 깡통 수준인 실피드에 마법 능력을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이래서 마법도 모르는 녀석들은!

우리는 시간이 날 때마다 조종석을 개조해 용량 부족을 겪는 마력팩의 에너지 손실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진은 조종석에 몰아닥칠 마력 충격이 조금 강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기합으로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말을 곁들였다.

트라카에서 니벨룽까지 24시간, 니벨룽에서 다시 니케아까지 36시간.

다 합쳐봐야 고작 사흘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나는 실피드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역시···! 금세기 최고의 천재는 두말할 것도 없이 함장님입니다!”

“중앙 개발자들도 실피드를 보면 감동의 눈물을 쏟을 겁니다!”

물개박수를 치는 연구원들.

이로써 실피드는 최소 3분 이상의 추가 가동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우주 괴물의 마력핵을 두 개 정제해 연결했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없는 핵을 당장 구할 순 없었기에 우린 기존 전투기 기술을 이용해 이온엔진과 마력팩을 둘 다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으로 실피드의 배터리를 보강했다.

실전 훈련으로 데이터를 확보하는 작업도 계속됐다.

처음엔 10대 1의 전투도 버거웠던 것이 지금은 가동 시간이 늘며 15대 1, 그 이상의 일대다 전투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전투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라프라는 타이틀을 달고 고작해야 전투기 열 몇 대를 상대하는 게 너무 약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엔터프라이즈호의 조종사들은 모두가 각 함의 에이스급 파일럿이었다.

평범한 연방군 전투기라면 수십 대 일의 교전도 가능한 격이었고 앞으로 마력 핵을 추가로 수급해 성능을 개선할 여지도 충분하니 단기간에 올린 성과인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피드 기동 테스트는 일단 여기서 마무리다. 이후 테스트는 작전이 끝난 이후에 하겠다.”

<수고하셨습니다. 함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연구원과 조종사들이 한목소리로 수고의 인사를 건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끝냈고 이제 남은 건 작전을 성공시키는 것뿐이었다.

남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니케아 한복판에 침투, 통신 센터를 장악하는 일만 남은 상황.

나는 함교에 앉아 차분한 목소리로 마이크를 잡았다.

“나를 믿고 이곳까지 함께해준 귀관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앞으로 15분 뒤, 우리는 니케아에 도착한다. 부디 끝까지 살아남아···승전 축하를 나눌 수 있길 바란다. 모두 건투를 빈다. 이상.”

자리에서 일어난 뒤엔 매티스 대위에게 함교를 부탁한다며 격려해주었다.

작전이 개시되면 나도 실피드를 타고 전투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너무 긴장하지 말게.”

“예, 예.”

작게 몸을 떠는 매티스 대위.

나는 그에게 심신 안정화 마법을 걸어주고선 격납고로 향했다.

엔터프라이즈호의 전투기 조종사 110명은 모두 조종석에 착석해 출격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다들 상태는 어떤가.”

<아주 좋습니다.>

<당장이라도 출격해 적들을 격추하고 싶은 기분입니다.>

“기분은 알겠지만 다들 흥분을 가라앉히도록.”

이번 작전이 순조롭게 진행되려면 전투기가 출격하는 일은 없는 편이 더 좋았다.

통신 센터 장악을 위해 병력이 투입됨과 동시에 구조 요청을 막기 위해 전파방해를 펼칠 테고 한동안 센터의 적들은 고립에 빠질 터였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쪽으로 적 전투함이나 전투기가 나타나면 그건 일이 크게 틀어졌음을 의미했다.

적이 우리의 침투를 아주 빨리 눈치챘다는 뜻이 될 테니 말이다.

심지어 이곳엔 오스카 원수가 이끄는 경계군이 주둔 중인 상황.

수천 척에 달하는 전투함을 상대로 전투한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기에 나는 부디 아무 일도 없이 이번 작전이 끝나기를 빌고 또 빌었다.

“자네들에게 무거운 짐을 맡기게 되어 마음이 무겁군.”

“아닙니다. 제국의 정의를 위한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어 영광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격납고 한쪽에 줄을 맞춰서 선 인원들.

위장크림을 바르고 각종 침투 장비를 걸친 그들은 특수 임무를 위해 제2군에서 임시로 넘어온 남방군 특수 수색대원들이었다.

<곧 워프가 완료됩니다. 함내 인원은 모두 안전한 장소에 착석해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

“후우.”

수색 대원들과 함께 장비 박스 위에 앉자 눈 깜짝할 사이에 공간도약이 완료됐다.

“도착한 모양이군.”

VV5610때도 이미 겪었지만, 눈을 시퍼렇게 뜬 반란군 함대 사이를 뚫고 목적지로 향하는 일은 아무리 스텔스 장치가 있어도 늘 긴장이 됐다.

반짝이는 니케아의 불빛.

혹시 모를 공격을 대비하는 궤도 방어군을 지나 엔터프라이즈호는 대기권 강하에 들어갔다.

나는 실피드에 올라타 혹시 모를 비상사태를 대비했고 동시에 통신 채널을 열어 지휘에 나섰다.

<목표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엔터프라이즈호. 통신 센터 상공 550미터 지점입니다.>

엔터프라이즈호의 크기를 생각하면 통신센터의 바로 위에 떠 있는 상황.

그러나 저 아래 사람들은 어떤 이상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스텔스 장치의 영향도 있겠지만 자전 주기를 맞춰 일대에 어둠이 드리워진 영향이었다.

나는 패널을 두드리며 작전 시작을 알렸다.

“수색대원들은 통신 센터 장악을 시작하라.”

<라저.>

제트팩을 메고 격납고 문 바깥으로 뛰어내리는 수색대원들.

백여 명의 유령이 소리 없이 통신 센터 위에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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