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주 군벌가 망나니-67화 (67/134)

< 67화 >

패배 이후 다시 회의가 열렸다.

대책이 나오지 않는 대책 회의.

이번 전투에서 반란군이 사용한 전투기는 단순히 AI만 탑재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기계 병사는커녕 그 어떤 물체도 조종석에 앉아있지 않았다는 거다.

각 군단 사령관은 AI라는 것이 이렇게 빨리 실전 적용할 수 있는 물건이었느냐고 연구원들을 불러 물었고 진땀을 흘린 그들은 AI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그 기술이 대부분 완성돼 있었다고 답했다.

다만 기계가 인간의 일을 대체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중앙이 이러한 것들을 통제해 그동안 사라졌던 것이라고 말이다.

반란군에게 호되게 당한 3군 사령관, 콜린 프리먼은 EMP를 사용한 강력한 대응을 주장했다.

이번처럼 양측의 전투기가 엉키기 전에 선제 타격으로 EMP를 터트려 적을 제압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 의견 역시 연구원들은 쉽지 않다며 난색을 보였다.

애초 현시대의 전투함, 전투기는 기본적으로 EMP 차폐 기술이 다 적용된 물건들이었다.

제국엔 이미 어지간한 전자기 펄스는 쉽게 막을 수 있는 방호 기술이 존재했다.

이번 융족과의 전쟁에서 피해를 보았던 건 놈들이 EMP에 마법을 응용했기 때문이지 제국이 EMP 내성이 없어서 당한 것은 아니었던 셈.

이번도 마찬가지였다.

AI를 장착한 전투기를 다운시킬만한 고화력 EMP 미사일은 애초 제국의 주력 병기가 아니었기에 그 숫자가 많지 않았다.

범위도 넓지 않으며 대형 전투함엔 아무 쓸모도 없고 기껏해야 전투기 정도를 상대할 수 있는 미사일을 제국이 대거 생산할 필요가 없었던 것.

보급관과 연구원들이 한목소리로 EMP로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조언하자 콜린 대장은 콧김을 뿜었다.

한동안 소강상태에 들어간 회의.

새로운 화제로 대화를 재개한 것은 모리더스 대장이었다.

그는 보급 장교에게 각 군의 전략 자산 상태를 물었고 특히 하이퍼에테르와 퍼플옵테늄의 재고상황을 알고자 했다.

이에 해당 장교는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각 군 상황은 모두 동일합니다. 각 자원의 저장 탱크 활성화율이 모두 3할 아래로 떨어져 있으며 단독 작전을 펼치면 남부 후방까지 갈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VV5610에서 보급을 마치지 않고선 고향으로 돌아갈 수조차 없는 상황.

다들 음울한 분위기에 입을 다물자 모리더스 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방에선 지금도 오스카 원수에 맞서 싸우는 세력들이 우리의 귀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요.>

<그걸 누가 모른단 말이오. 방법이 없으니까 문제지. 방법이!>

<그렇다면 이런 방법은 어떻겠나.>

조용히 회의를 지켜보던 라함 장군이 입을 열었다.

라다만 특유의 냉철한 사고를 지닌 그가 어떤 비책을 꺼내놓을지를 두고 수많은 함장의 이목이 쏠렸다.

<지금 상황을 헤아리자면 남부 중심지까지 도달하는 데 필요한 하이퍼에테르가 부족한 것은 명백한바, 3군이 힘을 모아 군단 하나에 자원을 몰아주면 후방으로 향해 작전을 재개할 수 있소.>

남아있는 자원을 군단 하나에 밀어줘 후방으로 먼저 보내자는 제안.

그러나 이 의견엔 콜린 대장도, 모리더스 대장도 난색을 표했다.

그렇게 되면 이곳에 남는 2개 군단은 말 그대로 발이 묶여 샌드백 신세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곤란하오.>

<나도 마찬가지 의견이오.>

모리더스 대장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을 경우를 예로 들었다.

<이대로 VV5610을 공략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전은 게릴라전밖에 없소.>

게릴라.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쪽에서 고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선택지.

모리더스 대장은 이도 저도 안 되면 치고 빠지는 변칙적인 전투로 오스카 원수의 전력을 갉아먹겠다는 뜻을 비치고 있었다.

이번에 새로 점령한 남부 영토 곳곳엔 아직 알려지지 않은, 혹은 미개발 상태로 놓인 자원지대가 무수히 많았다.

그중엔 하이퍼에테르도, 퍼플옵테늄도, 그밖에 수많은 옵테늄 계열 광산과 코어류 광맥도 존재했다.

모리더스 대장은 최악의 경우엔 새롭게 영토로 편입된 신남부 지대를 떠돌며 자원을 보충하고 초장기 작전에 돌입하겠다는 각오를 드러낸 것이었다.

결국, 하이퍼에테르를 몰아주자는 의견은 무산되었지만 소득이 없진 않았다.

각 군단의 퍼플옵테늄을 모아 후방의 상황을 알아보자는 의견에는 모두가 동의한 것이다.

그리하여 잠시 전투부대를 뒤로 물린 연방군은 퍼플옵테늄을 한자리에 모아 후방과의 연락을 시도했다.

시간은 10분.

한 번 은하간 통신망을 발동하면 후방 어디든 연락을 넣을 수 있게 되기에 장성들은 물론이고 말단 병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원이 통신 기기 앞에 몰려 있었다.

사령부가 정보를 수집하는 사이 병사들은 고향과 통신하기 위함이었다.

<카운트다운. 3, 2, 1. 은하간 통신망 활성화.>

3개 군단에서 모인 퍼플옵테늄이 빛을 뿜으며 초장거리 통신망이 활성화되었다.

이때를 놓치면 사실상 고향과는 통신할 수 없기에 나는 재빨리 트라카에 연락을 넣었다.

‘어서 받아라. 어서···.’

길게만 느껴지는 신호음이 몇 차례 오가고, 마침내 통신이 연결됐다.

“할아버지? 저 존입니다!”

<존, 살아있었구나···!>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한 윌리엄 백작.

불과 몇 개월 못 본 것뿐인데 그사이 백작의 얼굴은 놀라울 만큼 초췌해져 있었다.

나는 가문의 안부를 물으며 다정한 대화의 시간을 나누고 싶었으나 허락된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할아버지. 후방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말도 마라. 이번 사건으로 이곳 분위기는 공포 그 자체다. 이미 오스카 원수가 휘하 군단을 이용해 남부 전역의 장악을 거의 완료한 상태다.>

백작은 오스카 원수가 후방에 남아있던 8개 군단 중 이미 여섯 개를 장악했으며 2개 군단만이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는 중이라고 답했다.

<원수는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자는 귀족과 장성에 상관없이 모두 처형하고 있다.>

“처형이요? 재판도 없이 즉결 처형을 한단 말입니까?”

<지금 여기선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니 다들 맞서길 포기하는 형국이고···. 그나마 뜻이 있는 자들은 숨어지낼 요량으로 미개척 행성을 찾아 떠돌고 있다는 이야길 들었다.>

“트라카는 괜찮은 겁니까?”

<괜찮다···다만···.>

선뜻 이야기하길 주저하던 윌리엄 백작.

하지만 내게 허락된 시간이 짧다는 것을 상기한 그는 결국 하려던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하비와 마르크가 오스카 원수의 편에 섰다.>

“두 형이 모두 반란군에 들어갔단 말입니까?”

-진짜 망나니는 따로 있었구만.

하비 메이어와 마르크 메이어.

그 둘은 이번 사건에서 반란군의 승리에 베팅한 셈이었다.

<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전쟁의 승자가 누가 될 것 같은지를 말이다.>

백작은 내 의견을 간절히 듣고 싶어했다.

짧은 시간 동안 무수한 성과를 올리며 대령까지 진급한 데다 사업 쪽으로도 커다란 성과를 낸 나를 백작은 무척이나 신뢰했다.

“저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은 중앙의 움직임에 달려 있으니까요.”

<중앙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오스카 원수가 얼마 전 메인게이트를 폭파했다.>

“게이트 파괴라니. 완전히 막 나가는군요.”

중앙과 남부를 잇는 유일한 통로인 메인게이트.

드래곤을 비롯해 수많은 마법사가 힘을 합쳐 만들었다는 전이문을 파괴함으로써 오스카 원수는 남부의 장악력을 더욱 높인 셈이었다.

<북부와 동부, 서부 쪽의 메인게이트도 오스카 원수의 특작 부대가 폭파에 성공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맙소사. 백작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반란, 정말로 성공할지도 모르겠어.

모든 경계의 메인게이트 파괴.

이게 사실이라면 중앙은 혼란을 정리하더라도 힘을 쓸 수 있는 수단이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렇듯 암울한 후방의 소식을 접하고 몸조심하라는 말을 건넨 내가 통신을 마치려 할 때였다.

이때 나는 남은 시간을 조금이나마 아크팩토리의 상황을 살피는 데 쓰려고 했다.

백작이 마지못해 꺼낸 이야기에 열이 받기 전까진 말이다.

<존···회사는 너무 걱정 말거라. 이 할애비가 어떻게든 힘을 써보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크 팩토리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단 말입니까?”

*

시간이 모자라 종료된 통화.

결국, 나는 백작과 이야기하는 데 10분을 전부 쓰고 말았다.

백작이 통화 후반부에 내게 전한 이야기는 무척 충격적이었다.

아크 팩토리는 현재 모든 공정이 중단됐고 연구원들은 내통 혐의를 조사받고 있으며 기업 계좌는 동결되어 역시 수사를 기다리는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오스카 원수입니까? 오스카 원수가 대항세력에 있는 이들이 운영하는 기업을 압박한 겁니까?”

처음엔 회사가 탈탈 털렸다는 소식에 오스카 원수가 손을 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백작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아크팩토리를 조져놓은 범인이 내 사촌들이라고 답했다.

하비 메이어, 그리고 마르크 메이어.

반란군에 가담한 거로도 모자라 놈들은 내가 열심히 키운 회사를 완전히 박살 내고 있었다.

-마르크 그 새끼를 아예 죽여놨어야 하는데.

흉흉한 소릴 하는 진.

물론 이때는 나도 진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 벌레만도 못한 놈이 이때다 싶어 다시 활개 치고 있다는 소식은 충분히 내 혈압을 오르게 할만했다.

하지만 의외였던 것은 하비 메이어였다.

존으로 다시 태어난 후로는 얼굴 한번 보지 못한 녀석.

놈이 이번 일을 주도해서 일으켰다는 건 녀석도 가주직 승계 건으로 나를 엄청나게 신경 쓰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이제야 발톱을 드러내셨겠다.’

하기야 이번 반란이 아니었으면 메이어 가문의 가주는 내가 될 것이라는 게 거의 확정적이었으니···.

만약 가주 자리를 둔 싸움을 포기할 게 아니라면 이번 기회를 살려보려는 하비 메이어의 판단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물론 그 대가를 받아내는 건 전혀 다른 문제지만.’

내 자본 기반에 타격을 준 두 사촌 놈들을 응징하려면 일단은 이 거대한 폭풍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단순히 살아남는 거론 부족하지. 모리더스 대장을 계속 따를 거면 오스카 원수를 어떻게든 해야 한다.

‘네 말이 맞아.’

손이 닿지 않는 남부 후방에 있는 오스카 원수.

나는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뭐가 있을지를 고민하며 잠시 눈을 감았다.

*

3만여 척에 이르는 전투함.

그리고 천만 명이 넘는 인원이 각자 통신을 나누며 얻은 정보들이 취합되기 시작했다.

수뇌부는 군인들이 모아온 단서로 현재 후방의 상황을 정리했고 그동안 알 수 없었던 현장 정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일단 이번 사건의 주동자인 오스카 원수.

그는 평의회를 무력 장악한 뒤 여전히 평의회가 위치한 니케아 행성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과정에서 의원 신분을 지닌 대귀족 상당수가 목숨을 잃거나 감옥으로 끌려갔으며 헥터와 제임스, 두 대장이 반란군을 상대로 힘겨운 전투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북부와 동부, 서부 경계의 메인게이트가 폭파됐다는 내용은 높은 확률로 사실인 것으로 판단됐다.

이는 중앙이 반란 진압을 위한 힘을 쓰기가 더욱 어려워졌음을 의미했고 연방군의 사기는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VV5610은 여전히 난공불락에 다른 뾰족한 수도 없는 상황.

슬슬 이곳을 벗어나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던 때에, 나는 복장을 갖춰 입고 모리더스 대장의 전함을 방문했다.

후방의 정보를 정리할수록 반란군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번 일을 준비해왔는지만 드러나는 상황.

답답하던 찰나에 내가 방문하자 모리더스 대장은 어서 오라며 반겨주었다.

개인실로 나를 데려간 그는 무슨 일이냐며 이전처럼 위스키를 권했다.

“짐을 지우는 듯해서 미안하지만 이번에도 대령의 지혜에 기댈 거는 수밖에 없는 형편이군.”

“대장님. 저라고 매번 좋은 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알지. 알아···. 그래.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찾아온 건가.”

“일단 이 말을 꺼내기까지 굉장히 고민이 많았다는 먼저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군요.”

“자네답지 않구만.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서두에 공을 들이는 겐가.”

성격 좋은 할아버지처럼 웃는 모리더스 대장.

하지만 이내 튀어나온 대답에 그는 심각한 표정이 되어 자세를 바로 했다.

“이전에 제게 이단심문관이 찾아왔던 일을 기억하십니까?”

“그걸 잊을 리가 있겠나. 정확히 기억하네.”

“사실 그가 제게 주장했던 혐의는 나름의 근거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자네가 정말 불온 세력과 손을 잡기라도 했다고?”

“그렇습니다.”

“말이 안 되는 소리야.”

모리더스 대장은 불안한 듯 연신 손을 쥐락펴락했다.

내가 혹시나 오스카 원수의 끄나풀은 아닌지 긴장한 기색이었다.

“그 불온 세력이 오스카 원수는 아니니 그 점은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군. 그럼 대체 어떤 세력과 접촉했다는 건가. 자세히 말해보게.”

마이클 소장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그날 시즈 일족을 만나 하이퍼에테르를 건네고 그들을 도운 일을 모리더스 대장에게 자세히 알렸다.

마이클 소장에게 미안한 이유는 당시 그가 크라켄에 대한 보고를 상부에 올리며 내가 시즈 일족을 만난 사실은 보고서에서 슬쩍 빼주었기 때문이다.

-모리더스 대장 표정을 보니 마이클 소장에게 조금 실망한 눈치인데?

‘이번 일로 소장님이 피해를 보면 개인적으로 보답을 하는 수밖에.’

마이클 소장의 도움엔 따로 은혜를 갚겠노라고 생각하며 나는 이 자릴 만든 이유를 밝히기에 이르렀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도움을 받은 시즈 일족은 제게 큰 선물을 하나 남겼습니다.”

“선물···? 어떤 선물을 받았다는 건가.”

“현존하는 어떤 장치보다 우월한 진정한 스텔스 장치입니다.”

모리더스 대장에게 시즈 일족의 스텔스 장치에 대한 존재를 알린 나는 곧장 계획서를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쳤다.

“현재 고착된 국면을 전환할 임시작전 안입니다. 엔터프라이즈호의 스텔스 장치를 이용, VV5610의 행성 방어 시스템을 무력화한 뒤 제1군을 제압하는 작전을 제안드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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