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주 군벌가 망나니-61화 (61/134)

< 61화 >

중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어떤 이유로 오스카 원수가 내게 이러한 질문을 했을지 그 속내를 짐작하기 위해 애썼다.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한 거지? 내가 중앙에 반기를 들었다고 생각해서? 애초에 원수는 중앙 편인가? 아니면 중립인가.’

원수는 황제에 의해 임명되는 자.

대대로 제국에 대한 충성심이 드높은 자들만이 황제의 부름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속내를 짐작하기 어렵군.

‘마법으로 어떻게 안 되겠어?’

-마법을?

‘정신 조작이라든지 뭐 그런 편리한 마법이 있을 거 아니냐고.’

-쯧쯧. 내가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존 너는 아직 일류마법사엔 한없이 모자란 존재다.

현 수준에선 어림없는 소리라며 일축하는 진.

계속 침묵으로 일관할 수만은 없었기에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중앙에 대해 딱히 어떤 감정을 품고 있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그런가? 자네같이 훌륭한 군인이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릴 뻔하지 않았던가. 나였다면 몹시 불쾌했을 거야.”

물론 불쾌하기야 했다.

만약 카린 대령이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쯤 이단심문소의 차가운 감옥으로 끌려갔을지도 모르는 일.

그러나 원수의 진의를 파악하기 전엔 그것을 솔직하게 말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이단심문관은 오직 제국을 위해 일하며 폐하의 신뢰 또한 두텁다고 들었습니다.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보게 중령.”

“예.”

푸근하던 오스카 원수의 표정이 순간 굳는 것을 보았다.

“솔직한 이야기가 듣고 싶었는데 중령은 이 자리가 많이 불편한 모양이군.”

“···아닙니다.”

“그럼 화제를 돌려볼까. 처음 전쟁이 시작됐을 때, 융족의 기습으로 남방 경계는 큰 피해를 보았지. 만약 중앙이 조금만 더 대처가 빨랐더라면 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이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오스카 원수의 말을 들은 진은 고갤 갸웃거렸다.

이건 누가 봐도 중앙의 늑장 대처를 지적하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원수도 중앙에 반감을 품고 있는 거 아닐까?

‘그야 모르지.’

흘러가는 분위기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근거가 부족했다.

이런 식으로 밑밥을 깔고 내가 중앙을 비난하길 기다리는 것일지도 몰랐다.

마치 함정처럼 말이다.

-함정이라고? 원수가 왜? 무슨 이득이 있어서?

‘이득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야.’

만약 함정을 판 게 사실이라면 그것은 어떠한 이득을 노리고 벌인 일이 아닐 것이다.

원수는 더 진급할 곳이 없는 수뇌부 최고 정점에 있는 자니까.

‘불온세력, 중앙에 불만을 가진 인원, 이 모든 걸 잡아내야 할 이단심문관은 이미 중앙으로 전부 돌아갔다.’

중앙과의 교류가 끊긴 시점에서 제국에 불만을 가진 자들이 고개를 들게 될 것은 당연한 수순.

그렇다면 충성심이 드높은 원수가 이를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다.

어떻게든 자신의 손이 닿는 선에서 그러한 자들을 색출해 싹을 자르고 싶을 터.

-모든 건 제국을 위해 벌인 일이다 이거군.

‘짐작이 맞다면 말이지.’

-그럼 반대로 정말로 원수가 중앙을 싫어해서 우릴 떠보는 거라면?

‘그건 더 위험하지 않을까?’

-뭐? 어째서?

남방군을 이끄는 원수가 중앙에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

그 말인즉, 언제든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말과 같았다.

이를테면 쿠데타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니 잘 대답해야 해.’

어느 쪽이건 일개 중령에겐 뒷감당이 쉽지 않은 것들뿐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끝까지 원칙적인 태도를 고수했다.

모든 군인은 제국을 지키고 황제의 명을 받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을 본분으로 삼는다.

나 또한 이 마음을 지키기 위해 늘 노력하고 있음을 어필한 것이다.

만약 오스카 원수가 정말로 중앙에 반감을 품고 이런 자릴 만들었다면.

당분간 내 출셋길은 다소 험난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반대의 경우보단 이게 나았다.

오직 황제에 대한 충성 하나만으로 남방군 통수권자가 된 원수 앞에서 중앙의 흉을 본다?

그것만큼 오싹한 상황은 상상하기도 쉽지 않았다.

잠시 뒤, 오스카 원수는 다시 푸근한 표정으로 돌아와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역시 뭔가 오해가 있던 모양이로군. 중령 같은 사람이 제국에 해가 될 일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좋게 봐주시니 영광입니다.”

-시험 통과인가?

결국, 끝내 원수가 내게 원하던 답변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위험했던 시험의 시간은 끝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차로 목을 축인 오스카 원수는 이후 내게 필요한 것이 더 없는지를 물었다.

“연방군에 큰 도움을 준 자네 얼굴을 한 번 보려고 괜히 귀한 시간을 빼앗은 것 같네.”

“아닙니다.”

“뭐든 필요한 게 있다면 지금 말해보게. 내가 처리할 수 있는 일이라면 힘써보도록 하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원수가 보장하는 기회.

비록 오스카 원수가 명문가 출신은 아니지만, 그에겐 어지간한 일은 가능케 할 힘이 있었다.

‘뭘 요청하면 좋을까.’

-2계급 특진은 어때?

단숨에 대령을 건너뛰고 장성으로?

오스카 원수라면 그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을 요구하는 건 장차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 같았다.

오늘 나누었던 대화를 떠나 원수에게 출세만을 탐하는 속물로 찍혀서 좋을 건 없었으니까.

한참 고민하던 끝에 나는 머릿속에 불꽃이 튀는 것을 느끼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지난 전투에서 얻은 크라켄의 마력핵 중 연구용을 제외한 나머지 하나를 수뇌부에서 엄중히 보관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그렇네. 워낙 희귀한 표본 아니겠나.”

지금까지 제국군이 융족 영토를 점령하며 크라켄과 싸운 적은 총 세 번.

그중 하나는 그라프를 대동한 중앙군이었고 나머지는 남방군 2군과 3군이 도맡아서 처리했던 전투였다.

그렇게 현재 남방군은 크라켄의 마력핵 두 개를 얻게 되었는데 그중 크기가 작은 것은 연구단지에 공용 연구를 위해 사용 중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VV5610 지하 보관소에 냉동 격리한 상태라고 알려져 있었다.

“크라켄의 마력핵에 관심이 있었는가?”

“소식을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얼마 전 마법사로 각성하게 되었습니다.”

“알고 있네.”

“마법을 쓸 수 있게 되다 보니 자연스레 거대한 마력을 담을 수 있는 핵의 존재에도 관심이 가게 되더군요.”

“그렇지만 이미 하나는 공용 연구를 위해 얼마든지 접근할 수 있지 않나. 그것으론 부족했나 보군.”

“외람된 말씀이지만 현재 연구단지에 있는 마력 핵은 그 손상을 우려해 대담하게 손을 댈 수가 없는 실정입니다.”

표피 조직을 떼어다가 단순 조사를 하는 것만 해도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니 마력 핵을 반으로 가른다거나 마법의 재료로서 연구한다는 건 거의 상상도 못 할 일이었던 것.

나는 보관 중인 나머지 마력 핵을 받아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설마 지금 그 플랜을···?

‘기회가 오면 잡아야지. 안 그래?’

-그렇지!

이런 요구를 할 줄은 몰랐는지 오스카 원수는 고민하는 빛을 보였으나 나는 절대 다른 뜻은 없으며 오직 제국의 발전과 영광을 위해 연구를 진행할 것임을 강조했다.

“그 연구가 연방군에 도움이 되겠는가?”

“물론입니다. 어떤 결과를 얻더라도 그것을 결코 제 사익을 위해 독점하거나 하진 않을 것입니다.”

이미 EMP 방어 장치와 크라켄 대응 무기 개발이라는 확실한 성과가 나를 뒷받침하는 상황.

오스카 원수는 고뇌 끝에 결국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썩혀둔다고 도움이 되는 물건이 아니니 굳이 맡긴다면 자네가 가장 적임자일 것 같군.”

“원수님의 배려, 꼭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중령.”

“예.”

“장차 제국은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네. 작금의 혼란한 상황만 보더라도 그렇지.”

중앙과 완전히 단절된 유례없는 상황.

오스카 원수는 머릿속에 많은 고민이 있는 듯 눈을 감고 말했다.

“앞으로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치거든 오늘 나와 나눈 대화를 기억하게. 제국을 위해 힘쓰겠다는 그 각오 말일세.”

“명심하겠습니다.”

“오늘 만나서 즐거웠네. 그만 가봐도 좋네.”

경례하고서 집무실을 떠나려는 데 깜빡했다는 듯 오스카 원수가 나를 불러세웠다.

“이런! 가장 중요한 걸 깜빡할 뻔했군.”

자리에서 일어난 원수가 내게 다가와 새 견장을 건네주었다.

영관 장교를 상징하는 나뭇잎 세 개.

이것은 내 계급이 중령에서 대령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순간이었다.

“진급 축하하네.”

*

스캔들보다도 빨리 퍼진다는 영관 장교의 진급 소식.

내가 남방군을 통틀어 가장 젊은 대령이 되었다는 소식이 돌자 VV5610은 다시 한번 충격에 빠졌다.

스물다섯의 나이에 대령.

융족과의 전쟁이 아직 진행 중이기도 하고 본래 조종 장교의 진급이 빠른 것도 사실이나 그것을 고려해도 엄청난 속도임엔 틀림없었다.

-그거 알아? 30살 이전에 장성이 되면 150년 만에 기록 경신이야.

‘어쩌면 그 기록, 내가 깰 수 있겠는데?’

앞으로 남은 융족과의 전쟁이 어떤 양상으로 흘러가게 될 진 알 수 없지만 이 기세라면 기록을 깨는 것도 충분히 기대해볼 만했다.

아직 5년이나 남은 시간.

그리고 내겐 오스카 원수의 허락하에 잡은 또 다른 기회가 펼쳐져 있었다.

VV5610에 세워진 연구단지의 지하.

지표로부터 300미터나 내려온 이곳에 1.5미터에 달하는 크라켄의 핵이 얼어붙은 채 잠들어 있었다.

“정말 이걸 우리 팀이 독점하게 되었단 말입니까?”

내 대령 진급이 발표되자마자 숨 쉬듯 자연스럽게 존대를 시작한 베렐 중령.

나는 그의 물음에 답하여 고갯짓으로 수긍했다.

두꺼운 방한복과 털모자를 쓰고 나를 따라온 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들도 연구자이니만큼 크라켄의 핵을 독점하게 됐다는 뜻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다들 표정에서 훤히 드러나는구만.

진은 팀원들이 내게 보내는 존경의 눈빛이 마음에 드는 듯 고갤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오스카 원수가 직접 연구를 허가했다는 건 당장 어떤 연구팀도 내 배경을 뛰어넘는 게 불가능함을 의미했다.

얼마나 많은 연구원이 크라켄의 핵을 연구하고 싶었겠는가.

하지만 제대로 쓸 수 있는 핵은 단 하나뿐이었고 그것을 내가 손에 쥔 상황이었다.

이 소식이 돌기 무섭게 무수한 연구팀이 내게 합류하고 싶단 뜻을 밝혔지만 나는 대부분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이제부터 시작할 연구는 보안이 최우선이었고 소수 정예로 진행해야 할 프로젝트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마력핵에 관한 연구허가를 받은 이후 딱 필요한 인원을 추렸고, 남부 최고의 연구 장교 스무 명이 추가로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후 팀원들은 비밀유지와 관한 서약서를 작성했다.

대체 무엇을 위해 이 정도로 보안에 신경을 쓰는 걸까.

궁금해하는 연구원들에게 나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당분간은 바깥에 나가기도 어려울 겁니다. 최대한 이 지하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정은 이해했습니다. 팀장님. 그런데 대체 무슨 프로젝트인 겁니까?”

“제법 장기적인 프로젝트가 되겠군요.”

장기 프로젝트.

내 능력이면 그 어떤 과제더라도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울 수 있다고 믿는 연구원들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화면을 봐주시겠습니까?”

손가락을 튕기자 내 뒤쪽으론 대형 화면이 공중에 떠올랐고 그곳에 이번에 만들어야 할 물건의 스케치가 나타났다.

“어···?”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연구원들은 설마 이런 게 나올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는지 몇 번이고 눈을 깜빡였다.

스케치를 통해 알 수 있는 명백한 정보들이 팀원들의 시선을 빼앗는다.

전투기엔 있을 리 없는 팔과 다리, 그리고 훨씬 큰 동체와 강한 출력.

이제야 자신들이 진행하게 될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깨달은 연구원들이 입을 쩍 벌렸다.

“우리는 이제부터 크라켄의 마력핵을 핵심 재료로 삼아 전투기를 대체할 탑승형 기동 병기를 만들 겁니다.”

나조차도 쉬이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난도 높은 프로젝트.

그것은 바로 제국의 결전 병기.

그라프 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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