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존 메이어의 EMP 방어 장치 발표로 한동안 시끌벅적했던 연구단지는 이제 새로운 주제를 두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건 바로 대 크라켄 대응무기 관련 시연회였다.
남방 경계의 뛰어난 연구 장교들이 매달려 작업에 착수한 지 어언 두 달여, 슬슬 각 팀에선 내놓을만한 성과물들이 나오는 중이었고 다들 군공을 차지하기 위해 앞다투어 발표 시기를 당기는 중이었다.
그러나 일사천리로 진행돼 연방군 전략 자산으로 채택된 EMP 방어 장치 때와는 달리 시연회를 지켜보는 장성들의 반응은 다소 미적지근하기만 했다.
“공정이 그렇게 복잡해서야 시간 내에 충분히 보급할 수 있겠나?”
“전투함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대응 무기 제조 단가가 그렇게 높으면 효율성이 바닥 아닌가.”
“좀 더 현실적인 물건을 내놓아야 이야기를 들어줄 것 아닌가.”
앞서 열린 시연회 제품들이 하나 같이 하자가 있는 물건이었던지라 장성들의 기대치는 하루가 다르게 바닥을 쳤다.
결국엔 시연회 초청을 받은 장성들이 이를 아예 무시하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불량품 시연회에 시간을 버리느니 휴식을 취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오늘은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다른 때와 달리 오늘 대강당엔 제법 많은 인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연구팀 규모로도 상위권일 뿐만 아니라 최근 가장 주목받는 연구 장교 중 한 명인 매기 대령이 시연회를 진행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앞선 발표에서 장성들이 날선 비판을 쏟아냈기에 잡혀있던 시연회의 상당수가 슬그머니 취소된 상황.
그녀의 발표를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이번에야말로 수뇌부를 만족시킬만한 물건이 나올지를 두고 작은 내기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발표.
단상에 오른 매기 대령이 스크린에 연구팀이 완성한 제품을 출력했다.
그러자 순간 웅성거림이 커지며 대체 저게 무엇이냔 반응이 줄을 이었다.
원하는 반응을 끌어냈다고 생각했는지 매기 대령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저희 팀이 개발한 대 크라켄 대응 무기, 마력 감소장치입니다.”
대령이 개발해온 물건의 정체는 바로 크라켄이 실드를 펼칠 수 없도록 적의 마력응집을 방해하는 디스펠 계열 제품이었다.
“크라켄이 전투할 때 생성하는 실드는 에너지 실드가 아닌 마력핵에 의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우주 생물은 종류는 간단하지만 마법을 이용해 아군의 타격을 막는 셈이지요.”
매끄러운 진행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매기 대령은 제품의 스펙에 관해 설명했다.
순양함 이상급 전투함에나 실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중계기.
동력은 마력을 축적한 블루 코어이며 이 중계기를 총 여섯 대에 장착, 크라켄을 둘러싸고 디스펠의 원리로 크라켄의 실드 생성을 제한하는 것이 제품의 핵심 원리였다.
“본래 마법은 마법으로 상대해야 하지요. 이 마력 발생 제한 장치를 이용하면 크라켄을 효과적으로 타격해 손쉽게 쓰러트릴 수 있습니다.”
화면엔 포위망을 구축한 전투함이 가상의 크라켄을 붙잡아두고 주포와 미사일로 타격하는 영상이 흘러나왔다.
저대로만 진행된다면 분명 크라켄을 상대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듯 보였다.
실드만 없다면 현재 연방군에서 쓰는 미사일로도 놈에게 충분히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걸 앞선 전투에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제품의 설명이 끝나고, 본격적인 질의응답 시간이 돌아왔다.
그녀는 자신감에 찬 태도로 강당 안에 있던 장성과 연구 장교들을 바라보았다.
시연회의 질의응답 시간은 장성들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주는 것과 타 연구팀에서 들어오는 태클을 얼마나 잘 방어해내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연구팀 쪽에서 질문을 던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간혹 나오는 질문도 형식적인 수준이었다.
연구 특기 대령인 그녀에게 다들 질문하길 꺼려했기 때문이다.
이번 제품은 생산 코스트가 높을 뿐, 원리 자체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실전을 생각하면 불안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나 앞서 시연회를 했던 다른 팀들을 떠올리면 이만한 물건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
이번 일만 잘 넘기면 장성 진급이 유력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매기 대령과 척을 지고 싶은 연구 장교는 없었다.
결국, 본격적인 질문의 포문은 장성들이 열게 되었다.
“제조 단가가 너무 비싼 것 아닌가?”
“중계기가 여섯 개가 세트를 이루는 게 문제인 것 같은데. 합치면 1조가 넘는 돈 아닌가.”
장성들의 발언에 조종사들이 고갤 끄덕였다.
매기 대령이 제안한 마력 제한 장치의 제조 단가는 개당 2천억 크레딧.
이것이 여섯 개가 있어야 온전한 효과를 발휘하니 실상은 크라켄을 상대하기 위해 1조 2천억 크레딧에 달하는 생산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셈이었다.
게다가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마력을 사용하는 모든 마법 장치가 그렇듯 소모성 마력 팩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 문제였는데 이 거대 중계기 여섯 대를 동시 작동시키기 위해 소모되는 마력 팩의 가격 또한 만만한 게 아니었다.
크라켄의 발을 묶고 한 번 전투하는 데 소모될 마력팩의 예상 단가는 6천억 크레딧.
이는 연방군의 주력급 미사일을 수백 발 생산할 수 있는 돈으로 결코 적은 게 아니었다.
장성들이 이 부분을 걸고넘어졌지만 매기 대령은 여유만만한 태도를 보였다.
“지난 크라켄과의 전투에서 남부군은 수백 척에 달하는 전투함을 잃었습니다. 무려 1만 척이 넘는 함선이 집결해 있었는데도 말이죠. 이로 인해 얻은 피해는 가히 천문학적인 수준입니다. 만약 마력 제한 장치 없이 작전을 재개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런 피해가 반복되지 않겠습니까?”
매기 대령은 2조 크레딧이 안 되는 돈으로 전투에서 승리할 수만 있다면 오히려 연방군은 엄청난 이득을 보는 것이라며 장성들을 설득했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에 장성들은 점차 설득되어 가는 분위기였다.
“이 정도면 불편을 감수하고 채택할만하다고 보이는군.”
“융족과의 전쟁을 언제까지고 질질 끌 수는 없으니 말이지.”
끈기를 가지고 기다리면 더 좋은 물건이 나올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렇게 분위기가 일단은 매기 대령의 안건을 채택하는 게 좋겠다는 쪽으로 기울어지던 때였다.
연구 장교들이 앉아있던 쪽에서 슥- 하고 손 하나가 올라왔다.
감히 어떤 녀석이지? 하는 표정으로 고갤 돌린 매기 대령은 상대방을 보는 순간 표정을 와락 구겼다.
“대령님께 질문 있습니다.”
녀석은 바로 증오해마지않는 인물, 자신에게 망신을 주었던 존 메이어였다.
중앙의 정식 허가도 받지 않은 주제에 감히 같은 마법사를 자처하며 궤변을 늘어놓는 녀석.
매기 대령은 이를 꽉 물고선 어디 질문해 보라며 턱만 까닥 흔들었다.
대강당 곳곳에 서 있던 그녀의 부하가 발언을 위해 마이크를 그에게 가져다주려 했지만 존은 괜찮다며 손을 저었다.
그리고 잠시 뒤, 존의 잔잔하면서도 또렷한 목소리가 대강당을 장악했다.
매기 대령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음성 증폭 마법의 수준이 제법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꼴에 마법사라 이거지?’
자신을 노려보는 매기 대령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한 존은 본격적인 질문을 시작했다.
“시연회는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생기더군요. 해당 제품은 여섯 개가 세트를 이루어 크라켄의 마력 실드 생성을 제한하는 장치입니다. 발표대로면 정해진 자리로 장치를 실은 전투함이 이동해야 하고 진형이 갖추어질 때까지 크라켄을 묶어두어야 하는데 그 시간은 어떻게 벌어야 합니까?”
“당연한 소릴 하는군요. 당연히 화력과 물량으로 막아야지요.”
“그 사이 아군함의 피해가 누적될 수도 있겠군요?”
‘이 자식이···?’
대놓고 자신을 망신주려 한다는 걸 깨달은 매기 대령은 이를 악물었다.
“대령님은 모르시겠지만 저는 특무함 레기온호의 호위를 맡으며 실제로 크라켄을 상대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놈의 순간 속도는 실로 엄청납니다. 연방군 전투함이 따라붙기 힘들 정도로 말이죠.”
“그래서요?”
“진형을 갖추기 전에 아군 전력이 각개 격파당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깁니다. 그게 운 나쁘게도 장치를 실은 함선이라면 1조가 넘는 돈을 들여 개발한 대응무기는 써볼 기회조차 얻지 못하겠군요.”
존의 말에 장성들이 일리 있다며 고갤 끄덕였다.
“존 중령의 말이 맞군. 매기 대령, 제한 장치를 실은 전투함이 파괴되는 경우는 상정하지 않았나?”
“···그럴 리가요.”
억지 미소를 지은 매기 대령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 상황을 대비해 전투부대의 규모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고정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렇다면 제한 장치를 실은 전투함의 숫자를 더 늘릴 수 있겠지요.”
“아-. 그러니까 크라켄이 날뛰어서 아군 함이 터지는 건 상수로 잡고 수천억이 드는 장치를 더 많이 싣는 것이 대령님이 생각한 대응 방법이로군요. 인상적인 답변, 잘 들었습니다.”
‘개새끼가!’
대놓고 날리는 조롱에 매기 대령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남부 은하에서 최고의 에이스 소릴 들으며 탄탄대로를 걸어왔던 그녀에겐 감히 참기 힘든 모욕이었다.
만약 이곳이 장성들과 더불어 수천 명이 자리한 대강당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진즉에 온갖 욕설을 퍼붓고도 남았을 터였다.
“그런데 대령님. 이 중계기 여섯 개로 제한할 수 있는 마력 수치는 정확히 어느 정도입니까?”
“흥! 시연회를 제대로 듣지 않은 모양이군요. 이미 300만 사이클이라고 설명한 부분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들은 게 맞나 싶었기에 착오가 좀 있던 모양입니다. 300만 사이클이었군요. 그런데 그 정도로 충분하겠습니까?”
“무슨 소리죠?”
“중앙에서 처치한 크라켄의 경우, 최대 500만 사이클에 달하는 출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결과가 나왔었는데요.”
“···그런 내용은 보고서에 없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매기 대령은 눈에 띄게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확실히, 남방군이 상대했던 크라켄 두 마리는 중앙군이 상대했던 것과 비교해 좀 더 크기가 작은 녀석들이었다.
해당 괴물의 최대 예상 마력은 200만 사이클 전후.
그 때문에 300만이면 괴물의 크기가 좀 더 크다 해도 충분할 거로 생각했는데 예상 밖의 변수가 발생한 셈이었다.
“이보게 중령! 그 말이 사실인가? 크라켄의 개체에 따라 마력 수치가 그 정도로 차이난다는 거 말이네.”
“그렇습니다.”
어느 소장에게서 질문을 받은 존이 답했다.
“아마 중앙에서 보고서를 공유할 때 누락시킨 부분이 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저는 특무함 호위로 일하며 실제로 보고서 작성을 지켜봤으니 확실합니다.”
“허어···.”
“개체마다 그 정도로 차이가 난단 말인가···.”
“더 강하고 큰놈이 있을 수도 있겠군.”
존의 답변에 탄식하는 장성들.
그리고, 다시 매기 대령을 바라보며 존의 공세가 재개되었다.
“대령님. 그럼 이 제품은 무용지물이 되는 게 아닙니까? 300만 사이클까지 감당할 수 있는 제품이라면 그 이상의 힘을 지닌 대형 크라켄은 효과적으로 상대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천만에요! 마력 제한 술식을 강화하는 건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에요. 제한 장치를 두 배로 늘리면 능히 600만 사이클까지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아···. 그럼 이젠 열두 대의 전투함이 진형을 갖출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겠군요? 날뛰는 크라켄을 상대로 아군함이 쓸리는 동안 최대한 빠르게 말이죠. 제 질문은 이상입니다.”
존 메이어는 이것으로 됐다는 듯 다시 착석했다.
하지만 대강당의 분위기는 분명 전과 달랐다.
장성들이 제품을 바라보는 온도가 확연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내려갔다는 것을 말이다.
짧은 시간 동안 난타당한 매기 대령.
그녀는 어떻게든 분위기를 수습하려 크라켄의 발목을 붙잡을 수 있는 대응탄, 마력포 등의 아이디어를 추가로 내놓았지만, 한번 잃은 장성들의 신뢰를 복구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이상으로 시연회를 마칩니다.”
박수는 없었다.
처음의 좋았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결국 망해버린 발표.
영관장교가 된 이후 언제나 밝게 빛나는 길만을 걸어왔던 매기 대령에겐 정말이지 끔찍한 굴욕이었다.
‘죽여버리겠어.’
그리고 시연회가 망하는 데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존 메이어.
고개 숙인 매기 대령이 반드시 놈을 박살 내겠다며 분노를 키우고 있을 때였다.
저벅저벅 울리는 군화 소리와 함께 단상 위로 누군가 올라왔다.
“······?”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매기 대령이 눈을 부릅떴다.
“너. 뭐야···?”
그는 바로 존 메이어였다.
매기 대령은 이 순간 어이가 없어 허탈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 녀석이 지금 왜 단상에 올라왔단 말인가.
아직 사람들이 강당에서 빠져나가지도 않았는데 대놓고 나를 도발하겠다고?
이건 엄연히 상급자에 대한 모욕.
잘만 하면 연방군에서 엄히 다루는 하극상으로 존을 엮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매기 대령이 눈을 반짝일 때였다.
존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령에게 말했다.
“시연회가 끝났다고 하셔서요. 자릴 비켜주시겠습니까?”
-어서 꺼져. 이 아줌마야.
“······?”
그러고 보니 뭔가 이상했다.
강당에서 사람이 빠져나가질 않고 있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오늘 대강당을 예약한 연구팀은 자신밖에 없었는데 말이다.
당황하는 매기 대령을 보며 존이 슬쩍 웃었다.
“아, 대령님은 시연회 준비를 하느라 모르셨던 모양입니다. 오늘 발표를 하는 팀은 두 팀입니다.”
대체 누가?
떠밀리듯 내려간 매기 대령은 얼떨떨한 얼굴로 단상 위를 바라봤다.
그곳엔 능숙하게 자릴 잡고 선 존 메이어가 마치 강당의 주인인 양 발표를 시작하고 있었다.
“잠시 화면을 주목해주시겠습니까?”
모두의 시선이 커다란 화면에 모이자 시작된 영상.
잠시 뒤, 매기 대령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럼 지금부터 대 크라켄 대응 무기, 디스펠 미사일에 관한 발표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