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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군벌가 망나니-58화 (58/134)

< 58화 >

“감히···! 감히!”

시연회장에서 존 메이어에게 완전히 밟혀버린 매기 대령은 연구실로 돌아와 분노를 표출하며 애꿎은 서류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스물다섯의 나이에 마력을 각성해 20년 이상 마법사의 길을 걸어온 그녀에게 조금 전 있던 일은 그야말로 참기 힘든 굴욕이었던 것.

“연구원 전부 집합시켜.”

그녀가 눈에 불을 켜고 명령을 내리자 삽시간에 백 명 가까운 연구진이 우르르 달려와 열을 맞추었다.

비록 존 메이어에게 일격을 당하긴 했지만 매기 대령은 수완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연구 특기로 대령을 달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지금부터 시연회장에서 있었던 데이터의 오류를 찾아내. 반드시 문제가 있을 거야. 반드시.”

연구원들은 차마 존 중령의 제품이 오류가 없이 완벽하면 어떻게 하죠? 라고 되묻지는 않았다.

그랬다간 독이 바짝 오른 대령에게 뺨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미겔!”

“예.”

매기 대령은 팀 부팀장 미겔 중령을 불렀다.

“자네는 가서 시연회에서 나온 자료 정리한 다음에 이단심문관 찾아서 전달해. 허가받지 않은 마법사가 위험한 일을 꾸미고 있다고 간단한 보고서를 첨부하면 충분할 거야.”

“팀장님. 중앙에서 나온 이단심문관은 전부 중앙으로 귀환했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전달이 어려울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못 찾겠으면 남부 마법학회에라도 제소해.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타격은 줄 수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팀장님! 크라켄 프로젝트 진행은 어떻게 할까요.”

“거긴 후반부에 들어갔으니 소수 인원으로 마무리하면 돼.”

“알겠습니다.”

“지금 중요한 건 연방군에 커다란 해악을 끼칠 수도 있는 존, 그 새끼가 발표한 제품의 오류를 찾아내는 것이다! 알겠나!”

“예!”

연구원 일부는 지금 대령이 내린 명령이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고갤 숙이고 그녀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매기 대령은 현재 남부에서 대령 계급을 달고 있는 연구 장교 중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군공을 쌓은 인물이었다.

그 말인즉, 매기 대령이 그 힘들다는 연구 특기 장성이 될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뜻.

만약 그녀가 정말로 별을 달게 된다면 앞으로 수많은 연구 특기 장교들의 진급에 그녀의 입김이 작용할 테니 휘하 연구원들은 그저 얌전히 따르는 수밖에는 없었다.

“두고 봐라. 이 가짜 마법사놈, 네가 네놈의 밑천을 낱낱이 파헤쳐주마···.”

악에 받친 미소를 지으며 복수의 칼날을 가는 대령.

그러나 대령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길 어떤 정령이 조용히 듣고 갔다는 사실을 말이다.

*

내가 마법을 각성했단 소식은 아주 빠르게 퍼져나갔다.

물론 매기 대령처럼 내 말을 안 믿는 사람도 있었지만, 엔터프라이즈호를 비롯해 나를 원래부터 알고 있던 이들은 잘 된 거 아니냐며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본래 마법사라는 존재는 중앙의 눈치가 보여서 그렇지 연구 특기에 발을 걸치고 있는 이들에겐 상당히 축복에 가까운 힘이었다.

나는 비록 연구 장교가 아니지만 이미 아크 팩토리라는 거대 기업을 소유한 데다 이 능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이제 능력을 밝히기로 한 건가? 언제 밝힐지 궁금했는데 말이지. 아무튼, 축하하네! 중령. 이제 더 큰 무대에 오르게 되겠군.>

“감사합니다.”

내가 마법사가 되었다는 소식은 저 멀리 구. 남부 은하에 있는 모리더스 대장에게도 도착했던 모양이다.

나는 과거 죽어가던 모리더스 대장을 마법의 힘을 사용해 구해낸 적이 있었다.

대장은 이후 그 비밀을 쭉 지켜오고 있었는데 드디어 내가 마법사란 사실을 말할 수 있게 되어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고 했다.

<내 비록 마법사는 아니지만 자네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 정돈 알고 있네.>

죽을 위기에서 살려낼 정도의 내 마법 실력을 칭찬한 모리더스 대장은 앞으로 나를 둘러싸고 많은 세력이 접촉해올 것이라 말했다.

<이 세상엔 마법의 힘을 귀속시키고 싶어하는 집단이 아주 많지. 군수 기업은 물론이고 평의회, 혹은 명문가도 있고 말이네.>

“명문가···말입니까.”

많은 유전학자가 말했다.

인간의 마력 각성은 곧 진화의 증거 중 하나이며 앞으로 수 세대, 수십 세대가 흐르고 나면 제국엔 훨씬 많은 마법사가 나타날 것이라고.

즉, 나는 혈연관계를 맺고자 하는 거대 세력에 있어 상당히 우수한 사윗감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예전에 브리하이트 회장인 라말론 자작에게서 제안을 받았을 때와는 상황이 또 달랐다.

그때는 내가 촉망받는 장교 중 한 명, 긁어볼 만한 복권 정도의 가치를 지녔었다면 지금은 이미 당첨 확정인 복권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만약 자네에게 그럴 뜻이 있다면 우리 프랑크 가문에선 얼마든지 환영이라는 말을 해두고 싶네.>

“대장님. 죄송하지만 저는 아직 거기까진 생각이···.”

-옳소! 어딜 내 계약자를 마력도 모르는 애들이랑 엮으려고!

<부담을 주려고 꺼낸 이야기는 아니네. 그저 자네라면 어디서든 환영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지.>

껄껄 웃은 모리더스 대장은 이내 시연회장에서 있었던 신형 EMP 방어 장치로 화제를 돌렸다.

<내 능력 닿는 대로 알아본 결과 수뇌부에선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더군.>

“정말 잘 됐군요.”

<정식 프로젝트로 채택되어 전군에 보급을 시작한다면 아마 진급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네.>

모리더스 대장의 입에서 나온 ‘진급’은 다른 장성들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무게감이 있었다.

이번에 진급한다면 드디어 대령.

영관 장교의 가장 높은 계급이며 대귀족의 시작점인 장성 계급에 가장 가까운 위치가 되는 셈이었다.

<본래라면 자네의 연구가 정식 채택되더라도 진급을 논하기엔 무리가 있었을 테지.>

“그렇습니까?”

<연구 장교는 진급이 원체 어렵지 않나. 하지만 자넨 연구 장교가 아닌 조종사 아닌가.>

-조종사 하길 정말 잘했다. 그치?

말릴 땐 언제고 내가 대령이 된다고 하니 진이 신나 하는 게 느껴졌다.

모리더스 대장은 이번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되면 앞으로 전쟁 판도에 따라 대령 진급이 결정될 것이란 이야길 하였다.

이 연구의 목적 자체는 융족과의 전쟁 종식을 위함인데 EMP 방어막 장치를 장착한 연방군이 융족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둘수록 내 군공은 크게 치솟게 되는 셈이었다.

“저로선 어서 전쟁이 마무리되길 바라야겠군요.”

나는 속으로 웃으며 대령이 되면 달라지는 것들을 떠올렸다.

그중 하나는 바로 전함을 더 일찍 운용할 수 있는 자격이었다.

‘많이 비싸긴 하지만 지금 들어오는 수익을 고려하면 불가능한 수준도 아니지.’

통상적인 전함의 가격은 보통 100조 크레딧 전후.

정말 엄청난 가격이 아닐 수 없기에 많은 함장이 연방군에서 함선이 제공될 때까지 순양함을 더 타는 선택을 하지만 나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더 빠르게 전함의 함장이 되는 건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상당수 상황에서 내가 최종 결정권자가 되는 것은 물론 단독 작전을 통해 많은 부를 축적하거나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메리트였다.

그렇게 되면 시즈 일족과 거래를 하는 것도 수월해질 테고 군공을 쌓는 작업도 더 탄력을 받을 터였다.

그리고 이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모리더스 대장 또한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갔다.

<많은 세력 중엔 자네에게 신형 전함을 제공하겠다며 접근하는 곳도 있을 것이네.>

100조 크레딧은 개인에겐 엄청난 금액이지만 명문가 정도 되면 그리 부담되는 금액이 아니었다.

그들은 오히려 그만한 값을 치르고 마법사를 얻을 수 있다면 남는 장사라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 지원은 우리 쪽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최고의 선택을 해주길 바란다는 것이네.>

“대장님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바쁠 텐데 내가 너무 시간을 빼앗은 건 아닌지 모르겠군.>

“아닙니다. 대장님.”

<혹시 궁금한 게 있다면 얼마든지 물어보게나.>

자신이 아는 정보는 뭐든 알려주겠다는 대장에게 나는 중앙의 소식에 관해 물었다.

<중앙 분위기 말인가?>

“예. 연락이 두절 된 이후 별다른 소식은 없는지 궁금했습니다.”

<메인게이트의 불이 꺼졌다는 소식 외엔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중앙의 상황이 어떠할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

중앙과 남부 경계를 잇는 거대한 원형구조물.

이 거대 게이트는 하이퍼에테르로도 닿지 않는 물리적 거리를 이어주는 제국 유일의 통로로 이것의 불이 꺼졌다면 당분간 남부에선 중앙으로 갈 방법이 아예 없어진 셈이었다.

<중앙의 눈치가 보여 그간 중령이 추진하지 못한 일이 있다면 슬쩍 실력 발휘를 해도 괜찮을 것 같군.>

‘대장님은 참 눈치가 빠르시단 말이지.’

답변을 듣는 내 표정이 묘하다는 걸 눈치챈 것일까?

모리더스 대장이 또 무슨 일을 꾸미는 것인지 알려줄 수 없겠느냐며 궁금증을 보였다.

“별건 아닙니다.”

<자네가 말하는 별거는 죄다 중요한 일이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드네만.>

“다름이 아니라 추가 연구를 진행해볼까 했습니다.”

<추가 연구 말인가?>

“예. 융족의 EMP 공격에 대한 대책은 제가 만든 신형 방어막 장치로 어느 정도 보완이 됐지만 여전히 우주 괴물에 대한 위협은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이지 않습니까.”

<자네···설마?>

“우주 괴물을 효과적으로 상대할 수 있는 수단이 완성된다면 연방군은 마음 놓고 이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겁니다.”

크라켄 대응 무기 개발에도 참전하겠단 뜻을 비치자 모리더스 대장은 크게 놀란 기색이었다.

사실 마법사가 아무리 연구 쪽에 특화된 인재라고 해도 그 정도로 굵직한 성과를 연달아 올리는 경우는 전무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것마저 자네 말대로 된다면···이제 연방군에서 자네 이름을 모르는 이는 단 한 명도 없게 될걸세.>

나는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 생각했지만, 굳이 그것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중앙이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자네가 얼마나 대단한 재능을 지녔는지 훨씬 나중에서야 알게 됐겠군.>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령, 나는 조금 걱정이 되네. 중앙의 혼란이 정리되고 다시 왕래가 이어지면 자네의 그 뛰어난 능력을 문제 삼을지도 모르네. 특히 자네처럼 뛰어난 이들은 늘 시기를 받기 마련이니 매사에 신중하게나.>

한창 출세가도를 달리던 능력 있는 장교들이 불현듯 중앙의 호출을 받아 사라진다는 이야긴 괴담 아닌 괴담으로 지금껏 쭉 전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보여주는 이러한 행동들은 중앙의 타겟이 되기 충분한 수준임엔 틀림없었다.

그렇기에 모리더스 대장의 이러한 걱정은 분명 일리 있는 것이었으나 나는 이쯤 해서 달리기를 멈출 생각은 없었다.

그럴 거면 애초 마법사란 사실을 밝히지 않았어야 할 테고 무엇보다 지금은 손봐줘야 할 상대가 있었다.

“대장님의 조언, 꼭 명심하겠습니다.”

*

모리더스 대장과 통화를 나누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기다리던 소식이 도착했다.

연방군이 EMP 대책으로 우리 연구팀의 프로젝트를 공식 채택했다는 것이었다.

-수뇌부도 눈치가 영 없는 녀석들만 있는 건 아닌 모양이군.

단지 원리가 불분명하다고 걷어차기엔 우리 제품의 품질이 너무 훌륭했다.

나는 기쁜 소식에 주먹을 불끈 쥐었고 덩달아 연구실엔 만세!를 외치는 목소리로 가득 찼다.

“축하하네. 중령! 이젠 곧 대령님이라고 불러드려야겠어!”

“감사합니다.”

“자! 다들 우리 팀장님의 승진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잔을 드세나!”

부팀장인 베렐 중령은 내 승진이 마치 확정된 것처럼 모두의 호응을 유도했다.

그러자 언제 준비한 것인지도 모를 샴페인과 포도주를 따른 연구원들이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외쳤다.

“팀장님의 미래를 위하여!”

“위하여!”

“다들 고맙습니다. 그래도 너무 많이 마시는 건 금물입니다.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

달콤한 과일주의 향을 즐기면서도 연구원들은 그 정도를 벗어나지 않고 목을 축이는 정도로 마무리했다.

그 이유는 바로 연구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크라켄 대응 무기 개발 설계도 때문이었다.

-이제는 우리 능력에 다들 적응된 모양이로군.

‘이래야 우리 팀원들이지.’

저번 시연회를 마치고 얼마 되지 않아 우주 괴물 대응을 위한 추가 연구에 들어가겠다고 했을 때, 연구원들이 얼마나 놀랐던가.

EMP 방어 장치와는 다르게 크라켄 쪽 개발은 참가한 연구팀이 엄청나게 많았고 그중엔 이미 성과를 내기 시작한 팀도 더러 있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새로운 연구를 시작하겠다니.

아무리 봐도 후발주자가 따라갈 만한 프로젝트가 아니었던 것.

하지만 이미 EMP 방어막 장치 개발도 완료했겠다.

팀원들은 묵묵히 내 지시를 따라주었다.

성공한 연구 장교 중에 까탈스러운 양반들이 오죽 많던가.

나 정도면 무난하다고 생각할 법했고 이미 실적은 쌓았으니 이 정도 비위 맞추는 건 고생도 아니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본격적인 개발이 진행되며 연구원들은 금세 깨닫게 되었다.

내가 그저 남는 시간이나 때우고자 새 프로젝트에 참전한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모리더스 대장은 전쟁 결과에 따라 진급 속도가 달라질 것이라 했지.’

그 말대로면 빠르면 일 년, 늦는다면 진급에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뜻.

하지만 난 그 시간을 마냥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모처럼 중앙이 혼란스러운 시기 아닌가.

다시 없을지도 모를 절호의 순간이었기에 나는 가진 바 능력을 모두 펼쳐 보일 참이었다.

‘우선 크라켄 프로젝트까지 삼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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