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주 군벌가 망나니-56화 (56/134)

< 56화 >

존 트라카 메이어.

내 이름을 가장 잘 아는 장교 특기 두 가지를 꼽으라면 단연 조종이 첫 번째고 그다음은 아마도 연구 특기일 터였다.

전투에서 워낙 많은 공을 쌓았으니 전투 장교들이야 그럴법하지만 연구 장교들이 나를 잘 아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연구 장교의 특성에 있었다.

보통 연구 계통은 진급 속도가 느린 편에 속하는 특기다.

자신이 연구 쪽에 특별한 재주가 없으면 평생을 위관 장교에 머무르다 전역하는 경우도 부지기수.

이 때문에 연구 특기를 고르는 이들은 대다수가 사회에서도 이쪽 계통에서 종사했거나, 관심을 가졌던 친구들이 대다수였다.

그렇다면 사회에서 연구 특기와 밀접한 관련을 지닌 분야는 어디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다고 할 수 있는 건 바로 군수 산업이었다.

장교 생활을 하며 두각을 나타내는 인재는 군수 기업이 바로 스카우트 제안을 보낼 정도로 연구 특기와 군수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많은 연구 장교가 전역 후 군수 기업에 몸담는 것 또한 이런 이유였다.

그런데 최근, 군수 기업 시장에 커다란 바람을 몰고 온 사건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아크 팩토리의 실드미사일 개발이었다.

전투함 제조 다음으로 군수 산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이 미사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관심 바깥에 있던 아크 팩토리가 모든 미사일에 두루 적용할 수 있는 실드 소형화 기술을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했던 것.

이 일로 인해 연구 장교 사이에선 내 이름이 제법 널리 알려진 상황이었다.

설령 존 메이어라는 이름을 몰라도 아크 팩토리 회장이라는 운을 떼면 아, 그 사람? 하는 정도의 반응은 자아낼 수 있게 된 것.

이런 이유로 연구단지 초기, EMP 방어 기술 개발에 착수한 우리 팀은 나름의 주목을 받았었다.

인원은 고작 열 명 남짓한 작은 팀이지만 내 이름값이 다른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휴게실이나 식당에 갈 때마다 연구원들이 저 사람이 그 사람이야. 라며 쑥덕거릴 때마다 베렐 중령은 자기가 칭찬을 들은 것처럼 어깨를 으쓱하곤 했다.

그러나 이런 관심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하필 비교 상대가 중앙인 EMP 쪽 개발을 선택한 것도 그렇고 한동안 아무 소식도 올리지 못한 탓이었다.

엄청난 숫자의 연구 장교가 몰린 연구단지엔 인원수가 수백 명에 달하는 대형 팀도 더러 있었는데 크라켄 대응 기술 개발을 택한 팀들은 프로젝트 착수 일주일 만에 성과를 내기 시작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 팀은 한 달이 지나도록 성과가 없었으니 다들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린 것이었다.

-이제야 좀 조용해지겠네.

‘그러게 말이야.’

주변의 관심이 사그라지고, 연구에 진척이 없자 베렐 중령은 상당히 초조한 기색이었지만 나는 전혀 걱정이 없었다.

애초 내 머릿속에선 어떤 식으로 연구를 진행해야 할지 로드맵이 완성된 상태였고 한참이나 느린 듯 보이는 진행도 전부 계획대로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계획을 전부 내가 짠 건 아니었다.

이번 EMP 대응 기술 개발 계획엔 진의 도움이 아주 지대한 역할을 했다.

네메시스 메탈 없이 적의 EMP 기술을 방어하기 위해선 결국 마법의 도움을 받는 것, 그것 말곤 뾰족한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나는 지난 한 달 동안 진의 가르침 아래 꾸준히 마력 수련에만 매달렸다.

내가 더 높은 경지를 개척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가능성이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마법이란 건 말이야. 굉장히 오묘하고 신비로우면서도, 동시에 위험한 세계지.

진은 아직 실력을 갖추지 못한 마법사가 허락되지 않은 힘을 탐했을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경고했다.

-일부 룬문자 중엔 그것을 입에 담고, 떠올리는 것만으로 위험해지는 것들이 있지.

‘세상에···. 누가 그딴 걸 만들었담.’

-악마가 만들었지.

나는 진 덕분에 이 우주에 악마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악마라니, 이제라도 종교를 믿어봐야 하는 게 아닌지 싶었다.

아무튼, 진은 내 수준이 올라가면 말 그대로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될 거라고 말했다.

마법은 만능의 힘.

그 진리를 깨닫게 되는 순간 해내지 못할 일이 없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부지런히 수련에 임했다.

그렇게 딱 50일.

나는 어느 순간 내가 벽을 넘어섰단 느낌을 받았고 진으로부터 축하를 받게 되었다.

비록 마법에 관한 재능은 거의 없던 몸뚱이지만 스승이 워낙 뛰어나 좋은 결과를 얻은 셈이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발전이 더디겠지만 지금은 이 성과에 만족해야겠지.

‘그럼 이제 기술 개발에 힘을 쓸 차례인가?’

-충분할 것 같군.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베렐 중령은 머리카락까지 빠지던 상황.

팀은 지금이라도 EMP 연구는 집어치우고 크라켄 대응 무기 개발로 방향을 바꾸어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하던 분위기였으니 조금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나는 칩거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팀 인원을 모아놓고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설명하는 것이었다.

“자, 우리 팀은 이제부터 마법을 이용해 전자기 펄스를 막는 방법을 개발할 겁니다. 이 설계도를 한번 살펴보시죠.”

깔끔하게 정리한 설계도를 내밀자 다들 그것을 한 번씩 살피더니 머리 위로 물음표를 잔뜩 띄웠다.

당연한 일이었다.

기술의 핵심이 처음 보는 마법 문자로 되어있었으니까.

해당 문자는 내 실력이 오르며 진이 내게 알려준 새로운 룬문자였다.

세간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이었고 진은 어쩌면 이 문자에 대해 아는 이가 제국에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을 곁들였다.

그 정도로 희귀한 마법이다 보니 연구원들이 잔뜩 궁금증을 드러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중령님! 이 마법 도식이 전혀 이해가 되질 않는데요!”

“나, 나도 마찬가지네.”

베렐 중령까지 진땀을 흘리며 학구열을 불태우는 상황.

나는 이들에게 간단히 원리를 설명해주기로 했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기술의 핵심은 강력한 전자기 펄스로부터 전투함의 중추 장비를 보호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이 기술은 전투함의 CPU나 ECU에 적용할 만큼 작은 실드를 부품에 덧대는 구조입니다.”

“실드를 부품에 덧댄다?”

“기존에 있던 전투함 실드를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그것들은 에너지 융합로의 출력으로 만드는 순수 에너지 실드라면 이것은 마법으로 만든 장벽이니까요.”

-정확히는 새로운 마법이지.

겉보기엔 다 같은 실드처럼 보여도 속을 들여다보면 성질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나는 이번에 진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럼 마법으로 EMP를 방어한다는 것인데 내가 이해한 게 맞는가?”

“그렇습니다.”

“잠, 잠깐만 중령.”

베렐 중령은 잠시 어지러웠는지 이마를 부여잡고는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중령. 솔직하게 답해주게.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결국 최근 군수 기술 개발의 핵심은 얼마나 뛰어난 마법사와 함께하는 것이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

베렐 중령의 말에 다른 연구원들이 앞다투어 고갤 끄덕였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마법에 대한 조예가 없어도 이거 하난 확실히 알겠네. 이 기술이 정말 대단하단 것을 말이야. 중령, 자네 혹시 마법사였나?”

마법사.

워낙 몸값이 높은 데다 군수 기업들이 눈에 불을 켜고 영입하려 하는 존재.

특히 인간은 우주에서 마력 친화도가 상당히 떨어지는 종족에 속하기에 더욱 기술자를 찾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완전히 새로운 마법을 접목한 기술을 내놓자 중령이 이런 궁금증을 품게 된 것이었다.

혹시 내가 마법사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다들 비밀로 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물론이지!”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중령님 예상이 맞습니다.”

내가 작게 고갤 끄덕이며 수긍하자 모든 인원이 깜짝 놀랐다.

그중엔 입을 틀어막으며 경악한 친구도 있었다.

그만큼 마법사라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아주 희귀하고도 드문 존재였다.

어지간하면 놀라는 일이 없는 아이스 중위도 내 폭탄선언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제부터인가···? 설마 장교 임관 전부터?”

“아닙니다. 제가 이 힘을 깨달은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입니다.”

실제로 인간 마법사란 것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불쑥 되곤 한다는 이야기가 많았기에 이들은 내 말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었다.

“중령이 마법사라니···. 중앙이 알면 난리가 나겠군.”

예로부터 마법사는 기술의 발전을 놀라우리만큼 촉진하는 존재.

당연히 중앙의 경계대상 1호였고 늘 변방에서 마법사가 나타났다 하면 중앙으로 불려가 교육을 받는 건 거의 필수 코스처럼 여겨지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좀 달랐다.

중앙은 황제의 건강이 위독하다고 알려진 이후 외부와의 왕래를 끊고 연락조차 닿지 않는 상태였다.

설령 직접 가려 해도 방법이 없었다.

쌍방향 항해를 지원하는 메인게이트의 불이 꺼져버린 것이다.

이미 이단심문관을 비롯해 중앙에서 파견나왔던 모든 인원이 싹 중앙으로 돌아간 상태였기에 나는 심적으로 상당히 편한 상태였다.

마음 같아선 중앙의 혼란이 백 년, 천년 지속하길 내심 바라기도 했다.

내가 가진바 능력을 최대로 펼치는 데 중앙은 늘 걸림돌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보게.”

“예.”

“우리 팀 인원이야 입이 다들 무거워서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을 테지만 결국 기술 원리를 공개하면 누군가는 마법사라는 사실을 밝혀야 할 것 아닌가?”

이번 프로젝트는 군수 기업에서 펼치는 사업과는 달랐다.

그 원리를 설명하고 장성들을 설득하지 않으면 전군에 적용하긴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원리를 알 수 없는 기술을 무턱대고 적용한다는 건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고갤 저었다.

“중령님. 굳이 그럴 필요 있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인가?”

“말 그대롭니다. 저는 머리로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음을 이해한 것뿐입니다. 당연히 원리를 설명하는 데도 한계가 있겠죠.”

나는 이러한 이유로 이 기술을 우연의 산물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했다.

실제로 마법을 잘 알지 못하는 수많은 연구원이 룬문자의 점 위치를 바꾼다거나, 글자 모양을 조금씩 비틀다가 새로운 현상을 관측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이 경우엔 완전히 다른 문자를 사용한 것이라 그 변명이 먹힐지는 미지수였지만 말이다.

베렐 중령은 아무리 그래도 그런 설명이 통할까 싶은 눈치였지만 나는 저들이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렇게 되면 이 기술은 아크 팩토리의 이름을 빌려 새로운 제품이 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EMP 방어 기술 없인 융족과의 전쟁을 마무리 지을 수 없는 상황.

전자기 펄스를 막을 수 있는 제품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에 나서면 전투함의 함장들은 목숨이 아까워서라도 이 제품을 사들일 게 뻔했다.

물론 그 전에 다들 개인적인 루트로 물건을 이리저리 뜯어보며 진짜 EMP 공격을 막을 수 있는지 무수한 검증이 들어가겠지만 그거야말로 내가 바라는 바였다.

검증하면 할수록 이 물건이 반드시 전투에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테니 말이다.

그리하여 시작된 설계 검증 시간.

EMP 현상을 일으켜 전투함 주요 부품의 방어가 가능한지 알아보는 시험에서 예상했던 대로의 결과가 도출되자 베렐 중령은 한껏 흥분하며 콧김을 뿜었다.

“존 중령! 자네는 천재야! 천재라고!”

어떻게 한번 검증도 없이 이렇게 완벽한 기술을 만들었느냐며 베렐 중령은 감격에 몸을 떨었다.

-이 양반, 속옷에 지린 거 아닌지 모르겠네.

진이 흠칫할 정도로 열광하는 중령.

그는 내가 개발한 EMP 대비책의 완성도가 몹시 뛰어나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일사천리로 시연 계획을 추진했다.

장성들을 모아 기술의 우수성을 검증받는 것.

발품을 팔며 뛰어다녀야 하는 귀찮은 작업이지만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일을 베렐 중령과 연구원들이 처리한 덕분이었다.

그렇게 대망의 발표 당일.

대강당에 장군들을 비롯해 연구진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VV5610 연구단지에서 가장 처음 완성돼 진행되는 기술 시연.

모두의 이목이 우리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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