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전투함에 비하면 한참 작지만 무한한 에너지를 품은 그라프.
전투함의 주포 공격에도 끄떡없던 크라켄은 그라프의 검격에 녹색 피를 뿜으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꼴 좋다!>
<산성일 수도 있으니 조심해!>
걸쭉한 체액을 피해 날아다니는 전투기들.
한번 상처 입은 크라켄은 실드를 쉽게 발동하지 못했고 베테랑 조종사들은 날렵한 움직임으로 미사일을 발사해 놈의 숨통을 바싹 조였다.
특히 전투함을 잃은 전투기 조종사들의 분노가 대단했는데 그들은 날뛰는 다리를 피해 어떻게든 잘린 단면과 눈을 타격하려 위험천만한 기동을 시도했다.
연거푸 공격을 얻어맞으며 점점 둔해지는 크라켄.
마침내, 놈의 움직임이 확연할 정도로 둔해지자 전투함의 주포가 같은 지점을 타격하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목표 명중!>
<괴물, 완전히 움직임을 멈췄습니다!>
벌떡 일어나 환호하는 사람들.
엔터프라이즈호에서도 수고했다며 악수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이다.
<본대에 연락했으니 스크랩선이 도착할 때까지 주위를 경계하라.>
베데리스 소장은 죽은 이들을 짧게 애도한 뒤 이곳을 지키도록 했다.
전투함 수십 척이 쓰러진 자리.
당연히 엄청난 양의 자원이 나올 수밖에 없었고 이것을 수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스크랩선이었다.
전투가 상시 벌어지는 위험천만한 지대에선 일단 몸을 피하고 볼 테지만 지금은 본대가 이곳으로 오는 중인 데다 이 우주 크라켄의 사체도 지켜야 했다.
놈의 구조를 정밀 분석해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벌어질 경우,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일단 자리를 피해있으면 안 되나? 여기 남아있긴 찜찜한데···.
‘그 의견엔 나도 동의한다.’
눈을 뜬 채 죽은 우주 크라켄, 저놈들이 대체 어떤 존재인지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지만 만약 단체 생활을 하는 놈들이라면 우리는 지금 아주 위험천만한 대기를 하는 셈이었다.
부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초조한 시간을 보내던 도중, 나는 카린 대령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크라켄을 붙잡아두기 위해 오늘도 상당한 무리를 하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그라프의 격렬한 기동은 그녀가 자주 의무실 신세를 지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화상 통신이 아닌 짧은 단문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돌아왔다.
[나는 괜찮네. 중령이 선물해준 목걸이 덕분이 아닌가 싶어.]
그녀를 위해 만들었던 아티팩트.
마력 폭풍의 영향을 조금이라도 덜 받게 하려고 만든 목걸이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한 모양이었다.
[괜찮으시다니 다행입니다.]
[엔터프라이즈호는 어떤가? 많은 전투기가 크라켄에 의해 격추되는 걸 보았네.]
[다행히 저희 함선에선 부상자가 없었습니다.]
[정말 다행이군.]
현장에서 편대 비행을 조율하는 지크는 이제 우리 함에 없어서는 안 될 인재였다.
만약 그의 뛰어난 지휘가 없었더라면 새로 우리 함에 편성된 전투기 조종사 몇은 불귀의 객이 됐을 확률이 높았다.
[그럼 언제 다시 전투해야 할지 모르니 조금이라도 쉬어두게.]
[대령님도 편히 쉬시길.]
-그냥 누가 보고 싶다고 하면 안 되나? 답답해 죽겠네···.
투덜거리는 진을 놔둔 채 한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라이키니르 대장을 필두로 한 제1군 본대가 워프를 마치며 일대에 합류했다.
<이게···말로만 듣던 우주 괴물인가?>
비록 사체임에도 크기에서 전해지는 압박감은 여전한 크라켄.
전함보다도 커다란 괴물을 보며 사령관은 긴급회의를 소집함과 동시에 연구선에 일러 녀석의 시체를 살피도록 했다.
그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냉큼 기다리고 있던 중앙의 연구선들이 앞다투어 크라켄의 근처로 달려갔다.
-아무래도 이곳에 진을 칠 모양이로군.
이대로 전투함 스크랩을 마치면 안전지역까지 후퇴할 줄 알았지만 총사령관의 생각은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제1군은 크라켄의 사체가 위치한 이곳에서 연구와 방어를 동시에 진행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우주에선 지상과 달리 사체의 부패와 분해가 크게 느려지기에 연구를 하기엔 총사령관의 판단이 실로 적절하다 할 수 있었다.
<실탄과 미사일을 소모한 함선은 보급함을 이용해 물자를 보충해두기 바란다. 이상.>
크고 작은 보급선이 함대 사이를 누비며 물자를 점검하는 동안 나는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다.
함교 인원은 앞선 전투로 내가 피곤하다 여기는 듯했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아주 단단하군.
‘우주 생물이면 숨은 안 쉬는 걸까?’
-몸속에 호흡을 위한 산소 생성 장치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르지.
나는 진의 도움으로 잠시 시야를 넓혀 크라켄을 조사중인 연구선 근처에 와 있었다.
유체이탈은 아니고 마법으로 시야가 이 먼 곳까지 닿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연구선의 군인들은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레이저 커팅을 실시하며 크라켄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예상치 못한 것을 봤는지 진이 오! 하는 소릴 내며 신기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뭔데? 무슨 일인데?’
-핵이다. 이 괴물에게서 왜 마력이 느껴지나 했더니 마력 핵을 가지고 있었군.
‘마력핵?’
마력핵, 그것은 마력을 저장하는 창고 같은 개념으로 마력을 다룰 줄 아는 생물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기관이라고 했다.
-모든 생물이 다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마력핵을 가진 녀석들은 대규모 마법을 사용하기에 편한 부분이 있지.
‘네 설명을 들으니까 저걸 응용하면 또 뭔가 재밌는 걸 만들 수 있을 거 같은데?’
-바로 그거다. 존.
진은 고갤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일전에 말한 적 있지. 그라프의 조종석에선 엄청난 마력이 휘몰아칠 거라고.
‘그랬지. 음? 설마···?’
-그 많은 마력을 무엇을 이용해 잡아두었는지 궁금했는데 이제 느낌이 왔단 말이지.
진은 아마도 그라프 안에 저런 식의 생체 마력핵이 내재 되어 있는 게 틀림없을 거라고 말했다.
‘마력 저장을 위해서라면 굳이 저런 괴물의 핵이 아니더라도 블루 코어도 가능하지 않아?’
대령에게 선물한 목걸이 역시 블루 코어로 만든 것이었다.
꼭 생물의 마력핵을 써야 하는 거냐고 물으니 진은 블루코어와 마력핵의 절대 수치가 크게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크기면 크라켄의 마력핵이 더 많은 마력을 저장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 말한 진은 크라켄의 몸에서 성인 남성 키를 웃도는 마력핵이 조심스럽게 빠져나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크라켄의 크기가 3천미터를 넘는 것을 생각하면 아주 작은 기관인 셈이었다.
‘그럼 이제 제국은 세 번째 그라프를 생산할 수 있게 된 거야?’
-그건 아니야.
진은 그럴 리 없다고 확신했다.
-그라프 안쪽에서 느껴지는 건 저것보다 훨씬 출력이 높은, 엄청난 마력핵이야. 순도가 아예 다르다고나 할까.
진의 설명에 나는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인즉, 중앙은 그라프를 만들기 위해 최소 크라켄보다 더 위험한 괴물을 쓰러트렸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저 마력핵을 우리가 가지면 더 많은 걸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진의 의견에 동의했다.
꼭 그라프 제작이 아니더라도 진의 말대로라면 마력핵을 이용해 전투함의 실드를 보강하거나 순간 출력을 높이는 식의 마법 장치를 만들어볼 수 있을듯했다.
‘이러다 나중에 괴물 사냥단이라도 꾸리게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군.’
*
예상치 못한 괴물의 등장으로 다시 제1군의 진격은 발이 묶이고 말았다.
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괴물이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 없는 게 문제였다.
연구선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크라켄은 중앙함의 주포로도 데미지를 주기가 쉽지 않으며 이번에 쓰러트린 크기의 괴물과 다시 마주칠 경우, 그라프 없이 놈을 잡기 위해선 최소 1천 척 이상의 전투함이 소모될 거란 계산을 내놓았다.
전투함 1천 척.
승조원 숫자만 수십만 명에 달하는 인원이 저 괴물 한 마리를 잡기 위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제국이 강대하다 한들 그 정도 피해를 감수할 순 없다고 판단한 라이키니르 대장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황성의 추가 명령을 기다리기로 했다.
지금은 잊힌 역사이지만 과거엔 분명 제국 영토 내에도 저런 우주 괴물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무서운 놈들을 죄다 쓸어버린 건 1500년 넘게 살며 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초대 황제의 공이 지대했다.
분명 과거엔 우주 괴물을 상대하는 기술이 제국에 있었다는 이야긴데 애석하게도 수천 년이 지나는 동안 기술이 사라진 모양이었다.
‘그런 중요한 기술을 잊을 수가 있나?’
-인간의 수명은 짧으니까 말이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는 어쩌면 이 모든 게 황제의 의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100년 남짓한 삶을 사는 인간은 수십 세대를 거치며 정보를 잊을 수 있지만, 역대 황제의 수명을 고려하면 황실에서까지 이 기술을 잊기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영원한 통치를 위해 정보 우위를 그렇게나 신경 쓰는 황실 아니던가.
그들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게 내 판단이었다.
이렇게 1군의 발이 묶인 사이, 남방군만으로 이루어진 다른 방면의 2군, 3군 역시 괴물과 조우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쪽은 피해가 훨씬 심각했다.
남방군엔 그라프와 같은 결전 병기가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괴물 한 마리를 잡기 위해 남방군은 엄청난 피를 흘려야 했고 첫 교전에서 전투함 600척이 대파당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나마 괴물이 돌아다닌다는 정보를 듣고 뭉쳐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전투부대가 각개격파 당하며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뻔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정확히 한 달이 지났을 때, 라이키니르 대장이 기다리던 황실에서의 명령이 도착했다.
그것은 바로 군을 뒤로 물리고 더는 진격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기껏 밀어두었던 지역까지 내주고 VV5610으로 다시 회군하란 명령에 라이키니르 대장은 이례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융족과의 전쟁 종식이 코앞이었다.
게다가 제1군엔 우주 괴물을 상대할 수 있는 그라프까지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후퇴하라는 건 그간 군인들이 쏟은 피와 땀, 노력을 모두 무시하는 일이었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진격을 명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총사령관뿐만 아니라 함장들 역시 다들 비슷한 생각을 품은듯했다.
그러나, 곧 퇴각 이유가 밝혀지자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를 바꾸어 침묵했다.
제국이 군을 뒤로 물린 이유는 간단했다.
현 황제의 건강이 위독하다는 것이었다.
헬리오스 황제는 즉위 이후 420년 동안이나 제국을 통치해온 살아있는 신, 그 자체였다.
많은 함장이 이대로 황제가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퇴각이 아니라 중앙으로 귀환하게 될 거라 예상하였다.
진의 조사에 따르면 황제의 슬하엔 손가락, 발가락을 다 써도 못 셀만큼 많은 후계자가 있었다.
수백 년을 살았으니 충분히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문제는 누가 차기 황제가 되느냐는 점이었다.
수많은 대귀족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서로 다른 후계자를 지지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이는 황제가 후계자를 제대로 키우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본래 이런 경우엔 장남이 그 자릴 물려받는 경우가 흔하지만 황가의 핏줄은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오래 살았고 장남은 나이가 너무 많았다.
애초 황제는 120년 전, 천재라 불리었던 서른여섯 번째 아들을 후계자로 지목했는데 재수 없게도 그는 100살을 넘기지 못하고 단명해버리고 말았다.
그 사이 황제의 자식들은 결혼을 거듭하며 계속 일원을 늘렸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중앙 명문가가 황실과 연을 맺게 되었다.
상황이 이러니 다들 어떤 생각을 했겠는가.
잘만하면 가문의 핏줄을 타고난 황손이 제국의 주인이 될 수도 있다는 꿈을 꾸게 된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황제가 세상을 뜨면 제국 전역이 혼란에 빠질 거란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5525년 2월 11일.
VV5610의 연방군 거점에 함박눈이 쏟아지던 날, 중앙군 전체에 긴급 명령이 떨어졌다.
외지에 나가 있는 모든 전투부대는 신속히 중앙으로 귀환하란 명령이었다.
중앙군은 마침내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었고 남방군은 조금 불안해하는 기색이었다.
이제 융족에게서 빼앗은 이 드넓은 영토를 오롯이 남부의 힘만으로 지켜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서둘러 귀환 준비에 들어간 중앙군.
나는 중앙 함선을 차례로 방문하며 그간 알고 지낸 인맥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라이키니르 대장은 자신이 없어도 뒤처리를 잘 해줄 것이라 믿는다며 내가 약속한 이윤을 다시 한번 점검했고 베데리스 소장은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건강히 지내라며 악수를 건넸다.
루바니 중령은 이렇게 헤어지려니 참 아쉽다며 언제든 중앙으로 전출 계획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하였다.
중령과는 며칠 전까지도 크라켄 해부를 함께하며 여러 가지 지식을 쌓아가던 중이었다.
아마 중령을 따라 중앙에 가면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을 테지만 그러기엔 내가 이곳에서 벌여둔 일들이 너무 많았다.
당장 오크들 일은 물론이고 아직 융족과의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었다.
중앙군이 빠지게 된 이상 남방군이 더 바빠지게 될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인사를 나눈 뒤 나는 다시 한번 레기온호로 향했다.
본래는 중앙에서 귀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카린 대령을 찾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연락이 닿지 않아 다른 사람들과 먼저 인사를 나누었던 것이다.
설마 얼굴도 못 보고 헤어지는 건가 싶던 그때, 거센 눈발을 맞으며 비행포드 입구에 나와 있는 대령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아니, 대령님. 왜 연락을 안 받으십니까?”
“미안하네.”
“아닙니다. 미안해하실 일까진 아니지요. 그런데 출발은 언제입니까.”
“···5분 남았네.”
“차 한잔하기에도 빠듯하군요.”
그렇게 나는 그녀와 나란히 서서 행성에 내리는 눈을 조용히 바라봤다.
다른 사람들하곤 편하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정작 가장 친했던 대령하고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쉬이 말이 나오질 않았다.
잠시 뒤, 이륙준비를 위해 모든 인원은 정해진 구역으로 향하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곧 비행포드의 문이 닫히고 이륙할 모양이었다.
“중령.”
“예.”
먼저 침묵을 깬 것은 그녀였다.
“언제라도 중앙에 들를 일이 있다면 꼭 한 번 나를 만나러 와주겠나?”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때는 대령님이 한턱내시는 겁니다.”
농담을 던지자 그녀는 꼭 그리하겠다며 조금 웃어 보였다.
이제야 긴장이 조금 풀린듯한 모습이었다.
“다음에 만날 땐 그대의 계급이 나보다 더 높을지도 모르겠군.”
그녀의 말에 나는 문득 상상을 해보았다.
지금껏 꼬박 대령님이라고 존칭을 썼는데 그때는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를 말이다.
평범하게 카린이라던가···.
-여보 좋다. 여보!
‘···뭐?’
진의 기습 공격에 순간 ‘여’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나는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답했다.
“그때는 편하게 대령님 이름을 부를 수 있겠군요.”
그러자 그녀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이때는 나도 모르게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볼 수밖에 없었는데 나는 이 순간,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알 수 없는 열기를 느꼈다.
그리고 잠시 뒤, 으악! 하는 진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꼭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라네.”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격납고 안으로 뛰어갔고 굉음과 함께 레기온호의 엔진이 점화하며 진동을 자아냈다.
평범한 사람은 압력에 못 이겨 뒤로 날아갔을지 모르지만 나는 꼿꼿이 그 자리를 지키고 섰다.
작은 별이 되어 멀어져가는 수많은 함선들.
여전히 뺨에 그녀가 전해준 온기가 맴도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