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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군벌가 망나니-52화 (52/134)

< 52화 >

“자네가 지금 제안한 이야기 말이네.”

“예.”

“이미 중앙 귀족들 사이에선 뜨거운 감자였다네. 그렇지 않은가. 오크의 저 막대한 노동력을 놀리기는 아까웠으니까.”

라이키니르 대장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이 일을 맡으려 들지 않았지. 오크를 만족하게 할만한 식량을 주고 나면 이윤을 내기 힘든 것은 둘째 문제고 충돌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거든.”

“충돌···입니까?”

“자네도 잘 알고 있겠지만 엘프, 드워프, 라다만까지. 지금은 다들 제국의 일원으로서 사이좋게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국 초기만 해도 그렇지 않았네.”

초대 황제가 우주 전역을 향해 영토를 넓히던 시기, 인류와 맞닥트린 종족들은 연일 자유를 위해 격렬한 전투를 펼쳤다.

“심지어 드워프 같은 경우엔 혁명을 논하며 주기적으로 봉기한 적도 있었지.”

드워프 사건은 워낙에 유명해 역사를 대충 훑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크는 이제 막 제국과 조우했지. 저들이 지금은 배고픔에 고갤 숙이지만 언제고 그런 일을 일으키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나?”

라이키니르 대장은 그런 일이 일어나면 누구 하나 목이 날아가는 거론 끝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가문이 통째로 휩쓸려 사라질 수도 있는 일이지. 이미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고. 중령은 이 사업을 진행하며 그러한 모든 위험요소를 감당할 각오가 돼 있는지 묻고 싶군.”

만에 하나 정말 오크가 봉기라도 한다면 나는 물론이고 윌리엄 백작까지···.

메이어의 이름을 달고 있는 모두에게 화가 미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중앙 귀족이 괜히 오크를 데리고 사업하길 꺼렸던 게 아니었던 것.

대장의 질문에 나는 침묵을 깨고 나섰다.

“각오는 이미 했습니다.”

-백작이 알면 기절할지도 모르겠군.

“좋네. 그럼 원할 때 바로 사업을 시작하게. 세부 조율에 관해선 내 부관을 한번 보내도록 하지.”

“대장님께 누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네. 설령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 한들 내 목이 날아가진 않을 테니까.”

목이 달아나지 않게 열심히 하게-라는 무서운 소리와 함께 라이키니르 대장은 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총사령관의 허가가 떨어졌으니 이제 남은 건 최대한 빨리 자재를 수급해 공장을 돌리는 것뿐.

‘출정하기 전에 행성에 한 번 방문을 하긴 해야겠군.’

이는 내 목숨이 달린 위험천만한 사업.

두 눈으로 직접 일이 진행되는 것을 한번은 봐두어야만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

오크 행성 방문엔 호위함대 중 엔터프라이즈호와 구축함 두 대만이 동행했다.

카린 대령은 몹시 따라오고 싶은 눈치였지만 유일한 그라프 파일럿인 그녀가 자리를 비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중앙군 최고 전력인 레기온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왕복 20일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

엔터프라이즈호가 긴 시간을 낼 수 있었던 건 현재 VV5610에서 대규모 정비 작업이 시작된 덕분이었다.

융족의 EMP 공격에 대한 해결책이 드디어 완성된 것이었다.

그 방법이란 바로 형상기억합금.

제국이 발견한 모든 금속중 가장 복원력이 뛰어난 붉은 보물, 네메시스 메탈을 이용한 CPU를 중앙군 모든 전투함에 보급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함교의 메인 부품 교체는 중앙 연구원들이 직접 손으로 해야만 했고 현재 정박 중인 수만 척의 전투함을 일괄 교체하는 데는 당연히 시간이 많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제법 먼 거리를 다녀오게 된 엔터프라이즈호와 구축함 두 대는 루바니 중령의 도움으로 좀 더 일찍 신형 CPU를 장착할 수 있었다.

“오크 행성에 다녀오는 동안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 않겠나. 이제 EMP 공격은 충분히 대응할 수 있게 됐으니 안심하고 다녀오게.”

“감사드립니다. 선배님.”

말로만 하는 감사는 그저 인사치레일 뿐.

나는 루바니 중령에게 진심으로 고마웠기에 그의 집무실에 작은 선물을 보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루바니 중령 덕에 위기를 넘겼군.

‘그러게 말이야.’

우리가 말한 위기란 바로 엔터프라이즈 개조작업이었다.

이미 엔터프라이즈호는 대규모 전투를 가정해 에너지 융합로, 장갑 안쪽 방어 마법과 실드 생성기를 포함해 다양한 곳에 손을 봐둔 상황이었다.

만약 중앙에서 파견 나온 인력이 내가 과자 까먹듯 마법식 개조를 할 수 있다는 걸 알아차렸더라면 큰 문제가 빚어질 수도 있었던 것.

-그럼 정말로 이단심문관이 두 손 들고 환영했을 텐데.

‘끔찍한 소리는 관둬.’

워프를 마치고 미끄러져 나가는 함대.

나는 호위 임무를 돕기로 나선 남방군 15사단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지원 감사드립니다. 준장님.”

<우린 가족 아닌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도와야지.>

에스펜 준장.

그는 이번 대규모 로테이션때 남부에서 올라온 인원으로 모리더스 대장의 파벌에 속해 있었다.

그 말인즉, 모리더스 대장이나 마이클 소장과도 친하다는 뜻이고 내가 곧장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상급자 중 한 명이란 뜻이기도 했다.

이번 항해엔 전투함뿐만 아니라 식량을 가득 실은 화물선이 수십 척이나 동행 중이었다.

가능성은 작지만 엔터프라이즈호와 호위구축함만 대동한 채로 이동하다 전투가 벌어졌을 때, 이 귀한 식량을 날리는 것은 물론 목숨이 위험할 수 있기에 나는 부득이하게 준장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크의 안내를 받으며 우리는 우려했던 사고 없이 무사히 쌍둥이 행성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공전하는 쌍둥이 행성은 색이 서로 달랐는데 한쪽은 푸른색, 한쪽은 붉은색으로 빛났다.

토양에 섞인 광물 성분의 차이 때문에 그렇다고 하는데 평균 온도가 푸른 행성 쪽이 더 낮아 생산율이 높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둘 다 사막화된 별인가?”

“그렇습니다. 지하수가 있긴 한데 인구가 원체 많아 항상 수량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안내를 도맡은 오크, 야쿠차.

그는 내 옆에 딱 붙어서 행성의 전반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오크에 단둘밖에 없는 대족장의 아들이었으며 장차 수백억 오크의 절반을 이끌 미래의 우두머리이기도 했다.

“붉은 행성의 이름은 에이르, 푸른 행성의 이름은 피오라고 합니다.”

“아버지 대족장께선 어느 행성을 통치하고 계시는가.”

“피오입니다.”

우리는 먼저 공업단지를 우선 가동할 푸른 행성, 피오를 둘러보기로 했다.

식량 화물선과 함께 모래 바다에 전투함을 내리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엄청난 수의 오크들이 무릎을 꿇고 우릴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수십만 명의 오크가 모래바람을 견디며 두건을 쓰고 경건히 우릴 바라보는 모습은 모종의 신비함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다들 왜 저러고 있는 거지?”

“중령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단 사실은 오크들 사이에서 이미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저들은 모두 중령님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기 위해 모인 이들입니다.”

“무릎 아플 텐데 그만 일어나서 식량을 받아가라고 하게.”

나는 즉시 화물선을 개방했고 굶주린 오크들이 식량을 가져갈 수 있도록 조치했다.

배가 몹시 고팠을 텐데도 오크들은 질서정연하게 줄을 맞추어 식량을 받았고 나는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본 뒤 셔틀에 올랐다.

작지만 빠른 속도로 저공비행 하는 셔틀.

얼마 지나지 않아 끝없이 펼쳐진 공장 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지평선 너머까지 뻗어있다고 생각될 정도의 엄청난 규모.

순간 기계 대륙 위를 날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게 다 공장인가?”

“그렇습니다.”

“주거 단지는 어디 있는가.”

“일이 있을 땐 공장에서 숙식하는 비중이 높습니다. 주거 단지와는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습니다.”

퇴근 없이 일만 시키는 공장이라니.

완전 블랙기업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덕분에 생산량은 엄청나겠군.

나는 먼저 레벨이 가장 높은 공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레벨이 높다는 뜻은 첨단 부품, 전투함의 핵심이 되는 CPU나 에너지 융합로 등을 제조하는 공장으로 건축 비용이 가장 많이 드는 공장을 의미했다.

일찌감치 쓸고 닦았는지 모래바람이 부는 환경에도 공장은 깔끔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탈의실에서 방진복으로 갈아입고 공장 안에 들어서자 통째로 전투함을 생산하는 수 킬로미터 단위의 초거대 공장의 위용이 드러났다.

“이곳은 피오에 백 개밖에 없는 LV5 공장 중의 하나입니다.”

“백 개라고?”

LV5, 이는 전함을 제조할 수 있는 공장으로 야쿠차의 말대로라면 이 행성에서만 무려 백 대에 달하는 전함을 동시 제작할 수 있단 뜻이었다.

‘스케일이 말도 안 되는군.’

내가 순양함이나 구축함을 생산할 수 있는 LV4 이하 공장은 몇 개나 되느냐고 물으니 LV4는 1천 개, LV3 공장은 1만 개 이상이 세워져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규모였다.

융족이 도주하면서 이곳을 터트리고 가지 않은 게 용할 정도로 쌍둥이 행성의 생산량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그럼 대체 미사일은 얼마나 많이 뽑아낼 수 있다는 거지?

참고로 미사일은 LV2 이하의 공장에서도 생산이 가능한 수준의 전략 물품이었다.

이클립스 미사일은 커다란 아론다이트가 필요해 어려울 수 있겠지만 나는 이미 남부의 군수 기업들과 전략적 동맹을 맺어 라이센스 생산을 염두에 두고 있는 상태였다.

이곳에서 일단 생산을 시작하면 미사일 물량이 쏟아지게 될 터.

그 물량은 자연스럽게 전쟁 중인 연방군에 흘러 들어갈 것이고 이렇게 되면 다른 기업들이 기껏 비싸게 미카엘 스톤을 가져가 생산한 실드미사일의 판매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른 기업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라이센스 생산을 하는 건 거기서 발생하는 불만을 어느 정도 잠재우기 위한 계산이 깔려있는 셈이었다.

‘시설을 직접 보니 기술력이 부족해서 품질이 떨어질 일은 없겠어.’

-이만한 공업단지를 우리가 직접 지으려고 했으면 엄청나게 오래 걸렸겠지?

‘평생 매달려도 성공할 거라 장담 못 했겠지.’

오크의 말에 따르면 이곳에 대규모 생산기반을 닦아준 건 융족이라고 했다.

그들은 최신의 함대를 계속해서 뽑아내 우주 전역을 정복하려 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시설을 쭉 둘러보던 나는 깜짝 놀라 야쿠차를 붙잡았다.

“이보게.”

“예!”

“저거 아론다이트 아닌가?”

“맞습니다. 마력 각인을 하는 데 필요한 광석이지요.”

“세상에···. 대체 결정이 왜 저렇게 큰가.”

공장의 라인 한쪽을 지키고 있는 마력기계.

해당 기계의 중심부엔 일전에 모리더스 대장의 도움을 받아 임대했던 공장의 아론다이트보다 훨씬 큰 광석이 반짝이고 있었다.

주먹을 3개는 겹쳐야 저만한 크기가 될 것 같았다.

“저게 큰 겁니까?”

“당연히 크지!”

나는 야쿠차의 반응에서 뭔가 커다란 비밀이 숨겨져 있겠구나라는 걸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후 이어진 그의 대답은 내 속을 몹시 쓰리게 만들었다.

“붉은 행성 에이르에 아론다이트 광산이 있었습니다. 융족은 이 땅에 공장 건설을 지원하며 아론다이트를 채굴해갔죠. 저 정도는 작은 편이고 제가 알기론 사람 몸통만 한 것도 가끔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런 젠장!’

야쿠차의 말은 현재진행형이 아닌 과거형.

융족은 이곳을 개발해주며 저 귀한 아론다이트를 바닥까지 긁어간 것이었다.

-놈들이 모함을 뭘로 만들었나 했더니···. 그런 비밀이 숨어있었나?

마법 공학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융족의 거대 모함.

그 커다란 모함의 탄생 배후에 오크의 광산이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배가 아파! 너무 아프다고!’

왜 좀 더 일찍 오크와 접촉하지 못한 걸까.

그럼 아론다이트 광산을 우리가 차지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는 법.

나는 정신을 차리고 아론다이트가 장착된 정밀 공장이 몇 개나 되는지를 물었다.

“주먹만 한 크기의 아론다이트요? 함장님 주먹 말입니까?”

그리 말한 야쿠차가 내 주먹을 슥 쳐다봤다.

내 주먹은 야쿠차의 것보다 한참 작았으니 말이다.

나는 내 주먹이라고 했고 잠시 뒤, 머리를 긁적인 그가 놀라운 답을 내놓았다.

“함장님. 그 정도 크기라면 없는 공장을 세는 게 더 빠를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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