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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군벌가 망나니-51화 (51/134)

< 51화 >

남부의 굵직한 대소사를 주관하는 기관, 남부평의회.

평의회 의원은 아주 큰 권력을 얻을 수 있는 자리이기에 귀족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의원이 되기를 희망했다.

시즈 일족과 황금콩을 거래하기로 한 다음 날, 나는 곧장 의회에 후원금을 뿌릴 준비를 했다.

의원과 다리를 놓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제국에서 의원이 정치 자금을 후원받는 일은 엄연히 합법이었고 충분한 돈만 후원하면 의원은 자연스레 후원자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번에도 라이언을 시켜야 하나?’

하지만 이 생각은 곧바로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로비스트를 고용해 접근할 경우, 후원금으로 소모될 크레딧 규모가 상상을 초월했던 것이다.

<최소 100조 크레딧은 예상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의견을 제안하는 데만 말이죠.>

제안에만 100조 크레딧이라니.

아크팩토리가 돈을 잘 벌고 있긴 해도 이는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후원 한 번에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이 들까 싶었지만 의원 대부분은 이미 자치령을 차지한 대귀족들인지라 어지간한 액수로는 꿈쩍도 안 한다는 게 문제였다.

결국 나는 방향을 우회, 장성급 인맥에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내가 아는 장성 대부분은 명문가 출신이었고 이들은 필연적으로 의회와 교류를 가질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였다.

아무 정치적 연관도 없는 트라카와는 달리 이쪽을 이용하자 로비에 필요한 자금이 대폭 줄어들었다.

모리더스 대장은 30조 크레딧 정도면 충분하다며 이번에도 내게 큰 도움을 주었다.

<그나저나 의회에는 무슨 일로 로비를 하는 겐가?>

“VV5610의 토지를 좀 임대하고 싶습니다.”

<토지를? 공업단지 조성용 토지라면 자칫 본전도 뽑지 못할 확률이 높네.>

공장을 건축하는 돈도 모두 내가 대야 하는 데다 결국 자치령의 주인이 결정되면 해당 귀족과 다시 의논해야 하니 VV5610의 땅으로 뭔가를 하려 하면 손해를 볼 확률이 크다는 조언이었다.

하지만 나는 공장을 짓기 위함이 아니라 농사를 짓기 위해서 땅을 빌리는 거라 상관이 없었고 이런 내막을 전하자 대장은 오히려 더 크게 놀랐다.

농사라니, 우주 시대에선 그다지 돈이 안 되는 산업이었던 것.

떨떠름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모리더스 대장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오크 종족을 염두에 두고 벌이는 일인가?>

“그렇습니다.”

<중앙에서 오크를 배척하진 않는듯하니 괜찮겠지만 솔직히 이윤이 남을만한 일로 보이진 않네.>

“이윤을 보고 하는 건 아닙니다.”

<허허. 자네에게 그런 면이 있는 줄은 몰랐군.>

모리더스 대장은 아마 내가 오크가 불쌍해서 선뜻 거금을 내놓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땅은 얼마나 필요한 건가? 작은 땅은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은데?>

“VV5610이 워낙 넓어서 농사짓기 좋은 평야가 여럿 있더군요. 임대 형식으로 빌릴 수 있을까요?”

나는 연방군이 임시 거점으로 차린 도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대초원을 콕 집어 이야기했다.

면적 28만 제곱킬로미터, 대한민국의 무려 세 배에 달하는 푸른 들판이었다.

VV5610은 워낙에 큰 별이라 정말 큰 초원의 경우엔 아메리카 대륙만한 곳도 있었지만 이런 곳은 현재 내 자금력으론 로비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었다.

<꽤 커다란 토지로군.>

“후원금으로 얼마나 더 필요할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업단지라면 훨씬 많은 돈이 필요했겠지만, 농업용 토지는 복구가 쉬운 편이니···.>

모리더스 대장은 평의회에서 안건을 통과시키고 평야의 주인으로 나를 선정하기까지 180조 크레딧 정도를 예상했고 나는 군말 없이 준비자금을 전했다.

대장에게 전한 크레딧은 190조.

10조 크레딧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아는 대장은 되묻지 않고 좋은 결과를 내보겠단 말만을 했다.

-다리 한번 놔주는 거로 10조 크레딧을 챙겨? 이거 완전 날강도 아니냐?

‘그래도 덕분에 지출은 많이 아꼈잖아. 그리고 당장 돈이 급한 쪽은 저쪽이고.’

얼마 전에 진급한 마이클 소장.

소장을 VV5610의 주인으로 앉히기 위해 모리더스 대장의 파벌은 매우 많은 돈이 필요한 상황이었으니 내 선물을 거절할 여유가 없을 터였다.

*

평의회를 상대로 로비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100척이 넘는 화물선에 실려 온 곡식을 보관했고 오크들이 직접 농지를 관리할 수 있도록 임시 막사 건설에 착수했다.

동시에 VV5610의 관리를 맡은 중앙군 사령부에 선물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미 행성에선 오크에게 일감을 주고 식량을 급료로 주기 시작한 가게도 있었기 때문에 진행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오크라는 놈들은 아무리 때려도 대들 생각은 안 하더군. 중령, 원하는 대로 일을 진행해도 좋네.”

“감사합니다. 이건 제 작은 성의입니다.”

“허허. 뭘 이런 걸 다 가지고 오고 그러나.”

말은 이렇게 해도 선물 싫어하는 장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농지를 가꿀 작물로 옥수수와 감자, 콩, 밀, 쌀 등을 선택했고 이 중에서 옥수수의 생산 비율을 가장 크게 잡았다.

농업 기술이 지구와 달리 엄청나게 발달한 이 시대엔 개량 옥수수의 인구부양력을 따라올 식물이 없었다.

본래 옥수수는 물과 토지의 질을 크게 따지지 않는 데다 노동력도 적게 드는, 재배가 가장 쉬운 작물이었다.

다른 작물에 비해 지력을 좀 많이 소모하긴 하지만 화학비료가 잘 발달 된 시대에선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

알이 튼실한 옥수수라면 오크의 식량난을 어느 정도 해소해줄 수 있을 거로 생각됐다.

‘사람이 풀만 먹고 살 순 없지.’

일부 지역엔 간이 공장을 지어 배양육 시설을 들이기로 했다.

방목으론 도저히 오크가 원하는 고기 수량을 맞출 도리가 없어서였다.

그렇게 착실하게 일을 진행하는 사이, 마침내 평의회에서 토지를 임대하겠다는 허가가 떨어졌다.

기간은 10년, 이제 이 드넓은 평야가 10년 동안 내 것이 된 셈이었다.

일을 시작해도 되겠다고 판단한 나는 오크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농사를 지을 땅을 구했는데 인력이 필요하니 식량을 원하는 자들은 당분간 이곳에서 지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소문은 삽시간에 오크 행성 전역에 퍼졌다.

VV5610에 가면 일자리도 주고, 식량도 준다는 소식에 엄청난 수의 오크들이 이주를 시작했다.

놀랍게도 보름 동안 도착한 오크 숫자가 600만 명에 달했고 이마저도 수송선을 구하지 못해 건너오지 못해 대기가 밀려있다고 했다.

내가 이 정도로 일을 크게 벌일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는지 사령부에서도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아무리 곡괭이만 들고 있다지만 수백만 명에 달하는 이종족은 무척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이쯤 해서 나는 혹시라도 중앙에서 사업에 어깃장을 놓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한 기분이었다.

토지를 임대하는 것과 수백만 명의 오크를 행성에 데리고 오는 것은 전적으로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오크 보고 다 방 빼라고 하면 어떡하지? 기계를 사서 써야 하나?

‘황제는 AI도 싫어해서 오크들이 없으면 농사 효율이 최악일 거야.’

하지만 천만 다행스럽게도 오크 퇴출 명령은 떨어지지 않았다.

이미 오크 일부가 임시 거주지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기도 했고 중앙 장성들이 나를 좋게 봐준 덕분이기도 했다.

목숨을 걸고 싸웠던 융족과의 전투.

만약 엔터프라이즈호가 레기온호의 동력을 살려내지 못했더라면, 우린 제국의 결전 병기를 눈앞에서 빼앗겼을 테고 그럼 VV5610에 있는 장군 상당수는 십중팔구 옷을 벗었으리라.

이렇게 보면 내가 그들에겐 정말 큰 도움을 준 셈이었다.

그래도 중앙의 심기를 더 불편하게 하고 싶진 않았기에 나는 남은 오크들에게 더는 건너오지 말라고 전했다.

이미 농사에 필요한 인원은 차고 넘치는 상태였다.

이 때문에 VV5610에 들어오지 못한 오크들은 좌절감에 털썩 주저앉기까지 했지만 이내 오해를 풀고선 내게 크나큰 고마움을 표했다.

그들이 돌아가는 길, 나는 식량을 싣고 온 화물선을 내어주며 작물이 자랄 때까지만 버텨보라고 조언하였다.

지구였다면 최소 수개월이 걸렸겠지만 우주시대의 종자는 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성장해 수확할 수 있었다.

이미 파종에 들어간 옥수수, 이 옥수수는 한 달이면 수확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배부르게 먹이진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식량난을 해소해줄 것으로 기대됐다.

땅을 임대하고 첫 수확까지 오크들을 살리기 위해 쓰인 크레딧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자그마치 350조 크레딧에 달하는 돈이 한 번에 빠져나간 것.

하지만 이것으로도 오크 종족을 배불리 먹이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이건 그저 숨을 붙여놓는 수준에 불과했고 천억 명에 달하는 오크를 먹이려면 농지를 더 늘리거나 다른 획기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여기까지 왔으면 물러날 수 없지.’

거액이 소모된 프로젝트.

나는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중앙군 총사령관, 라이키니르 대장을 만나길 원했고 그 연결 고리로 카린 대령을 점찍었다.

베데리스 소장이 중간 다리로는 더 좋을 테지만 호위함대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역시 그녀였기 때문이다.

“요새 얼굴 보기 힘들군. 중령.”

-한동안 얼굴 못 봐서 서운했나 보네.

“죄송합니다. 오크들 문제로 상당히 바빴습니다.”

“소식은 나도 들었네. 오크를 먹여 살리기 위해 대규모 농업을 시작했다지?”

“그렇습니다.”

“뭐 도와줄 건 없나?”

“한 가지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차를 마시던 카린 대령은 정말로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 줄은 몰랐는지 눈을 반짝였다.

“편히 말해보게!”

“라이키니르 대장님을 한번 뵐 수 있겠습니까?”

“이번에도 오크 문제 때문인가?”

“예.”

“중령이 대장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하니 나한테도 알려준다면 힘써보겠네.”

그녀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말씀드리는 건 어렵지 않지만 조금 이야기가 길어질 수 있습니다만.”

“괜찮네. 중령과의 대화는 지루할 틈이 없거든.”

-흐응···.

진의 묘한 시선을 느끼며 나는 대장을 만나 전할 이야기를 그녀에게 설명했다.

“평의회의 허락으로 이번에 제법 넓은 농지를 얻었지만 이것으론 천억 명에 달하는 오크를 부양하는 데 한참 부족하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겠지.”

“하여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선순환 구조?”

“본래 오크는 융족의 전투함을 생산하며 생계를 이어나갔다고 합니다.”

“그리 들었네.”

VV5610을 포함하여 융족이 모두 사라지자 오크는 우리에게 일감을 받고 싶어했지만 위험성을 들어 사령부가 반대했다는 사실은 이미 장교 중 모르는 이가 없었다.

“저는 오크들이 앞으로도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면 저 수많은 공장단지를 놀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융족이 어떤 수를 꾸몄을지 모르는 상황에선 어렵지 않겠나?”

“전투함이 아니라 미사일이라면 어떨까요.”

“미사일이라···.”

“여차할 때 위험부담도 적고 제조 과정에서 수작이 들어가진 않을지 감시하기도 훨씬 편할 겁니다.”

내가 노리는 것은 오크 행성의 엄청난 생산력을 바탕으로 이클립스 미사일을 필두로 한 실드미사일을 보급하는 것이었다.

“의견은 좋은 것 같지만 사령부에서 과연 허락해줄지···. 미사일도 불발이 난다든가 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고려하면 역시 신뢰하긴 쉽지 않을 걸세.”

“감시 인원을 대폭 늘리고 오크측에서 손을 대지 못하도록 제조 과정에 마법을 적용하면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음.”

내 이야기를 들은 카린 대령은 자리를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평범한 대령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테지만 그녀는 황제의 근위기사이자 그라프의 유일한 파일럿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만들어진 라이키니르 대장과의 독대 자리.

내 예상과 달리 자리의 분위기는 제법 부드러운 편이었다.

“반갑네. 몇 번 오다가다 본 적은 있는데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처음인 것 같군.”

“총사령관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편하게 앉게. 그래, 무슨 일로 날 보자고 했는가.”

나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전부 빼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목적은 오크 행성에서의 미사일 생산.

재료와 기술, 감시망을 구축하기 위한 작업을 전부 도맡을 테니 공장을 놀지 않게만 해달라는 것이었다.

“제조 과정의 안전성을 위한 기술 검증은 레기온호 휘하 연구선 치프인 루바니 중령을 포함한 중앙 연구원들을 거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시 인력을 늘리고, 공정에 불순한 의도가 끼어들지 못하도록 과정을 고도화하겠다는 건데···중앙 연구원들의 허락을 받아낼 자신은 있나?”

“자신 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눈을 빛내는 라이키니르 대장.

그는 이 상황을 재밌게 여기는 듯했지만 좀처럼 허락을 해주진 않았다.

이런 커다란 이권이 걸린 사업에서는 반드시 오가는 핵심이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카린 대령 앞에선 일부러 꺼내지 않았던 핵심요소.

나는 이번 일을 허가해주면 그에게 어떤 이득이 생기게 될 것인지에 대한 정보를 오픈했다.

“오크 공장에서 생산되는 물량은 전량 전선으로 향하는 전투함에 보급될 것이고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윤의 3할을, 대장님께 올리겠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나도 긴장이 됐다.

대놓고 뒷돈을 드릴 테니 허가 좀 내달라고 하는 셈인 데다 이 3할이란 수치가 과연 대장에게 만족스럽게 들렸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천천히 숙였던 고개를 들어 대장의 표정을 확인했을 때, 나는 테이블 아래 주먹을 불끈 쥐었다.

라이키니르 대장은 이야기를 시작한 이후 가장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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