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주 군벌가 망나니-50화 (50/134)

< 50화 >

“융족은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겁니까?”

우리가 차지한 융족의 영토는 약 4할, 아직 더 넓은 영토에 융족의 잔당들이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굳이 이곳을 찾아오지 않아도 융족에게 대금을 받아 식량을 사면 되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던 것.

내 질문에 오크는 가장 가까운 거리의 융족 행성을 향해 이미 출발했지만 가는 데만 한 달은 걸리는지라 소식을 받을 때쯤이면 이미 행성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있을 거라고 말했다.

이렇게 이동에 오래 걸리는 이유는 오크가 지닌 하이퍼에테르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연방군에 속해있을 땐 몰랐지만 하이퍼에테르는 우주 전체로 보았을 때 희귀옵테늄 만큼이나 귀한 자원이었다.

“제국엔 하이퍼에테르가 무척 풍부한 모양이군요. 이쪽에선 사정이 좀 다릅니다. 강대한 힘을 지녔던 융족조차도 하이퍼에테르는 그리 많이 보유하지 못했으니까요.”

“융족에게 하이퍼에테르 광산이 없어서 그런 겁니까?”

“광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주 괴물 때문인 것도 있습니다. 그 무시무시한 괴물은 하이퍼에테르를 쫓아 온 우주를 누비고 있지요···.”

우주 괴물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잊고 있던 크라켄에 관한 정보를 떠올렸다.

고도로 발달한 기술을 지닌 시즈 일족마저 연료를 버리고 튀어야 했을 정도로 강력한 우주 괴물.

오크의 말을 들으니 괜히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제국 영토 내에선 이미 우주 괴물이 사라진 지 오래지만, 이 미지의 땅에선 얼마든지 그런 괴물과 마주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럼 이제 어떡하실 겁니까? 만약 융족이 돈을 줄 수 없다고 하면 꼼짝없이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겁니까?”

나의 질문에 오크 노인은 눈을 감고 잠시 고민의 빛을 띠었다.

“내려오는 전승에 따르면 본래 우리는 우주 전역을 누비던 종족이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한 행성에 정착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 선조에겐 종족을 지탱할 수 있는 보물이 있었다고 합니다.”

“보물이요?”

오크라는 종족을 지탱할 수 있는 보물.

그것은 바로 콩이라고 했다.

“콩이요? 식용 식물 말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황금콩이라 불리는 그 물건은 우리 오크의 허기를 채워줄 수 있을 만큼 놀라운 포만감을 선사했다고 합니다.”

어릴 적 자신의 부모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던 오크는 눈을 뜨며 안광을 빛냈다.

“우리는 지금 긴 암흑을 지나고 있으나 절대 멸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선조가 지녔다던 그 보물을 누군가는 다시 찾아내어 다시 부흥기를 맞이하리라 믿고 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고개 숙인 오크는 이 은혜는 언젠가 꼭 갚고 싶다며 주섬주섬 자신들의 화폐를 내놓았다.

“이것은 저희 행성을 포함해 융족 전역에서 쓰이는 운카라 화폐입니다.”

“이걸 저한테 주셔도 쓸데는 없습니다. 그냥 가지고 계시지요.”

“그건 저도 알지만 뭐라도 드리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참고로 운카라 화폐는 융족이 만든 게 아니라 운카라 종족이 만든 것입니다.”

“운카라 종족이요?”

나는 또 다른 외계 종족 이야기에 화폐를 받아 빛에 비춰보았다.

그저 중세 시대 때나 쓰였을 법한 평범한 주화처럼 보였다.

그 종류도 세 가지로 금색, 은색, 동색을 띠고 있었다.

“운카라에 관한 정보도 가지고 있습니까? 지도라든가 뭐 여러 가지 것들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함장님. 아쉽게도 저도 우주에 화폐를 유통할 정도로 강대한 종족이라는 것밖에는 아는 게 없습니다. 다만 운카라 종족은 융족보다도 훨씬 더 커다란 세력을 이루고 있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습니다.”

확실히···.

호전적인 융족에게 자신들이 만든 화폐를 유통시킬 정도면 그 힘이 엄청날 것이란 짐작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중앙은 이 정보를 몰랐던 걸까?

어쩌면 이미 알고 있음에도 꼭 필요한 정보만을 각 사단에 공유한 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오크 가족에게 식량을 나눠준 뒤 그들을 배웅했고 이후엔 곧장 함장실로 향했다.

오크가 전해준 정보의 진실을 파악,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 욕구가 일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써보겠군.’

-소형 은하간 통신망 같은 원리인가?

함장실 구석에 위치한 개인 금고.

진이 직접 마법을 조율해 누군가 억지로 열려고 하면 바로 터지는 이 금고 속엔 누구에게도 들킬 수 없는 비밀스러운 물건이 숨겨져 있었다.

바로 시즈 일족에게서 받은 연락용 명함이었다.

‘퍼플옵테늄을 떨어트리면 된다고 했지?’

-중앙군 한복판에서 외계인과 연락하는 장교라···. 이단심문관이 와서 잡아가도 할 말 없겠는걸?

나는 재수 없는 소리 말라며 진에게 소음 차단을 부탁한 뒤 명함 위로 퍼플옵테늄을 뿌리기 시작했다.

스테이크 위에 소금을 뿌리듯, 퍼플옵테늄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명함이 빛을 내며 옵테늄을 꾸역꾸역 흡수하기 시작했다.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퍼플옵테늄의 가격이 소금과는 말도 안 되게 비싸다는 것뿐.

‘젠장. 이거 언제까지 뿌려야 해?’

물 쓰듯 뿌린 퍼플옵테늄의 가격이 족히 수억 크레딧을 넘겼을 때 명함이 오색광채로 물들더니 환영이 튀어나왔다.

<이게 누구야? 환영해! 존! 혹시 어디서 연락하는 거야? 설마 제국 영토에서 하는 건 아니겠지?>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여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융족 영토였으니까.”

검은 순양함의 함장, 삼각 귀를 뾰족 세운 시즈 일족이 고갤 끄덕거렸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정보를 좀 얻고 싶어서.”

<정보? 뭐든 말만 해!>

의자에서 폴짝 뛴 시즈는 거래를 무척 환영하는 모양새였다.

“물어볼 건 두 가지야.”

<좋아. 물어봐.>

먼저 물어본 것은 운카라 종족에 관한 것이었다.

그들의 세력이 얼마나 큰지, 기술 발전은 어느 정도나 되는지 하는 것들이었다.

<제국이 벌써 운카라 종족과 만났어?>

“그건 아니고 영토를 넓히다 보니 그들이 쓰는 주화를 얻게 됐거든.”

<오···.>

시즈 함장은 내 손에 들린 운카라 금화를 유심히 바라보며 눈을 반짝였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했는지 화면 너머에서는 더 많은 미어캣이 모이고 있었다.

<운카라 화폐, 가치 확실히 있어!>

<제국하곤 달라!>

시즈 일족은 운카라 화폐가 높은 가치를 지닌 이유는 화폐 재료에 있다는 설명을 했다.

<운카라 화폐, 옵테늄으로 만들었어!>

<주화 많이 모아서 녹이면 다시 추출할 수 있어!>

<휴짓조각 제국 돈하고 달라!>

“제국 돈이 별로 쓸모없다는 건 나도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만 언급해줄래···?”

녀석들은 키득거리며 운카라가 얼마나 대단한 종족인지를 설명해주었다.

그들은 이 우주의 메이저 종족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되었으며 그 영토는 제국보다 크고 기술력은 중앙보다 앞서있다고 했다.

시즈 일족의 설명에 나는 광활한 우주의 신비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대체 얼마나 강한 종족이길래 중앙의 기술력을 뛰어넘는단 말인가.

이 정도면 사실 인간은 우주 변두리에 있는 약체 종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럼 제국이 운카라랑 싸우면 무조건 지겠네?”

<그렇지 않아!>

<황제는 무서워!>

<운카라도 황제에 대한 소문, 알고 있어!>

‘대체 황제는 뭐 하는 인간이길래···?’

-저 정도 반응이면 이미 인간이 아닐 것 같은데?

시종일관 황제를 두려워했던 시즈 일족, 대체 어떤 힘을 지니고 있기에 이들이 그토록 경계하는 것인지 나도, 진도 몹시 궁금했다.

황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듣고 싶다고 하자 시즈일족은 그 정보는 지금의 내가 들어선 안 되는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존은 아직 자격이 없어.>

<시즈는 손해 보는 거래는 하지 않아.>

<존, 이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만약 정보료 내지 못하면, 우리 반드시 복수해!>

“야박한 놈들 같으니···.”

운카라 종족에 관한 정보 다음으로 내가 질문한 것은 오크의 선조가 지녔다던 신비한 콩이 가진 비밀이었다.

“오크 친구들이 포만감을 채워주는 황금콩을 찾고 있는데 혹시 어떤 식물인지 알아?”

내가 콩에 대한 질문을 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시즈 일족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꼬리를 반듯이 세웠다.

<황금콩을 찾는 거야?>

<그건 매우 귀한 식물이야.>

“내가 구할 수 없으면 위치만 알려 줘도 좋고. 직접 구하러 가면 될 테니까.”

직접 찾아보겠단 말에 녀석들은 생선이 꼬리 치듯 고갤 저었다.

<존이 직접 구할 수는 없어.>

<황금 콩의 주인. 매우 신비한 종족이야. 존이 감당할 수 없어!>

하나 같이 안 된다고 말하는 녀석들.

그럼 대신 구해줄 수 있느냐고 묻자 대가가 필요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존! 계산할 시간이야!>

<정보이용료! 내 줘!>

“정보이용료는 지금도 내고 있다고.”

나는 그리 말하며 한 움큼의 퍼플옵테늄을 다시 명함 위에 뿌려야 했다.

환영이 흐릿해지는 것이 옵테늄을 엄청난 속도로 소모하는 게 분명했다.

“기술 제안을 하지.”

<기술 제안! 좋아!>

나는 먼저 이번에 개발한 미사일 실드 기술은 어떻겠냐고 설명했다.

미사일에 실드를 둘러 내구도를 높이는 기술.

하지만 시즈 일족은 설명을 듣자마자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넣으라며 짜증을 부렸다.

‘역시 이걸론 안 되는 모양이군.’

-날먹 대실패···.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앞으로 연락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녀석들에게 나는 다른 대안을 제시했다.

“저번에 융합로 출력을 개조해준 것 기억나?”

<당연하지!>

“추가 개조를 해줄게.”

<거짓말하면 안 돼?>

“5퍼센트 추가 개조를 해줄게. 이 정도면 대가로 충분하겠어?”

시즈 일족이 잠시 고민하더니 답했다.

<그 정도로는 오늘 들려준 정보로 끝이야!>

<황금콩을 구해다 줄 순 없어.>

‘이건 변순데?’

-얼마면 구해줄 수 있냐고 물어보자.

개조를 어디까지 해주면 콩을 구해다 주겠냐고 묻자 시즈 일족의 입에서 50퍼센트라는 수치가 튀어나왔다.

-이런 도둑놈 새끼들.

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실제로 시즈 일족의 검은 순양함은 이미 엄청나게 발전된 기술을 갖추고 있어 중앙의 함선보다도 뛰어난 수준이었다.

기술의 절정에 달해있는 융합로의 출력을 5할가량 올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건 우리가 손해 보는 거래라고 하자 시즈 일족도 타당한 이유를 설명했다.

<황금콩, 아주아주 오래된 고대 식물이야.>

<씨앗 열 개로 넘겨줄 거야.>

<발아에 얼마나 성공할지 우리도 몰라.>

<존, 운 좋으면 나무 열 그루도 가질 수 있어!>

“운이 없으면?”

<그건 우리 탓 아니야.>

-씹도둑놈 새끼들···.

뭐 이런 놈들이 다 있냐며 화를 내던 진이지만 결국 우린 저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시즈 일족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그 콩을 구하기가 엄청나게 어려운 건 사실인 듯했다.

<정말 50퍼센트 개조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대신 설계도로는 안 돼. 워낙 정밀한 작업이 필요해서 내가 직접 융합로를 만져야 해.”

진은 아주 복잡한 작업이 될 거라며 융족과의 격전에 버금갈 만큼 어려운 개조가 될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시즈 일족은 마냥 좋다는 듯 손뼉을 쳤다.

<그럼 약속 장소를 정하자!>

<개조를 마치면 그날 바로 물건을 줄게!>

지금은 중앙군과 함께 움직이고 있어 시간이 걸릴 듯하니 나는 콩을 구해놓으면 단독으로 움직일 수 있는 때를 다시 알려주겠다고 전했다.

<그럼 존, 건강히 지내!>

<다음에 또 봐!>

손을 흔들어주는 시즈 일족에게 똑같이 손 인사를 해준 뒤 통신이 종료됐다.

반짝반짝 빛나던 명함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범한 종이로 돌아갔고 나는 조심스럽게 금고 안에 넣어 문을 잠갔다.

-그런데 존. 너무 과한 대가를 지불하는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

‘뭐가?’

-콩 말이야. 우리가 굳이 위험을 무릅써가며 오크를 위해 그런 리스크를 감수할 필요가 있느냐는 거지.

현재 우린 레기온호의 호위 임무를 맡은 상황.

조용히 빠져나가기 위해 어쩌면 의심을 사게 될 수도 있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달랐다.

‘나는 다르게 생각해. 어차피 기술이란 건 우리가 나누어준다고 닳는 건 아니잖아. 혹시 시즈 일족과 전면전을 하게 된다면 아프게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흠. 그건 그렇지만 오크는 굳이 왜 도우려는 건데? 녀석들이 불쌍해서?

‘그 친구들이 불쌍한 것도 있지만 만약 융족 영토를 완전히 정복하고 난 이후엔 어떻게 되겠어.’

융족 영토를 완전점령하고 나면 남방 경계는 지금보다 두 배 이상 커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전투함과 군수 물품 생산을 위해 공장이 필요할 터.

그때가 되면 오크의 성실한 생산력은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오크의 고향은 행성 전체가 공장단지로 덮여 있다고 하잖아. 저들과 잘 친분을 쌓아두면 어지간한 공장단지 수십, 수백 개를 가진 것과 마찬가지의 효율이 나올 거야.’

-엄청 멀리까지 내다보고 있는 셈이군.

별들을 아우르는 절대 권력자가 된다는 목표는 여전히 유효했다.

오크 종족은 굶주림이라는 약점만 보완하면 내게 큰 도움이 되어줄 것이 분명한 친구들이었다.

‘해야 할 일이 많이 늘어났네.’

나는 내게 주어진 과제를 하나씩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곧 출항 예정인 중앙군을 생각하면 진행 중인 엔터프라이즈호의 개조도 완벽하게 마쳐야 했고, 진이 좀 더 수월하게 마법을 쓸 수 있도록 신체도 단련해야 했다.

마법을 좀 더 오래 쓸 수 있게 되면 시즈 일족의 함선을 개조할 때도 큰 도움이 될 터였다.

그리고 당장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없으니 콩을 구하기 전까지 오크가 너무 많이 죽지 않도록 도움을 줄 필요도 있었다.

기껏 콩을 구해왔더니 오크가 대부분 죽어 생산력이 떨어지면 의미가 퇴색하기 때문이었다.

일의 순서를 정한 나는 눈썹이 휘날리게 일하고 있을 라이언에게 연락했다.

<옙! 회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기합이 잔뜩 들어간 라이언의 목소리에 나는 화물선을 주문하란 명령을 내렸다.

“라이언. 여기 식량이 좀 필요하거든.”

<예? 식량이요?>

“기술자도 좀 필요해. 계속 남부에서 식량을 대려면 운송비가 너무 많이 들 것 같으니까.”

<회장님! 제가 우둔해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를 못 했습니다만?>

“메일 첨부했으니까 확인해 봐.”

<옙.>

본래는 VV5610의 주인을 결정하는 데 영향력을 실을 용도로 확보한 군자금.

하지만 돌아가는 정세와 의회 분위기를 귀동냥한 결과, 보물의 옥좌는 생각보다 늦게 결정될 것 같았다.

돈은 살아있다면 얼마든지 모을 수 있었기에, 나는 그것을 우선 급한 곳에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조금 이르지만, 의회에 줄을 좀 대야겠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