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
내가 그동안 알던 오크의 이미지는 흉포하고 잔인하며, 대개 인간의 적으로 나오던 것들이었다.
선입견 때문이었는지, 나는 다급히 적 구축함의 무장상태부터 확인했다.
그러나 저들이 타고 온 함선은 전투함이 아니었다.
크기만 구축함급일뿐, 자세히 살피니 그 흔한 대공포 하나마저도 달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무기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높은 확률로 화물선으로 추측됩니다.”
“방심하긴 이르다. 더는 다가오지 못하게 경고 사격하도록.”
“예.”
화물선으로 추측된다는 보고에도 나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화물선으로 위장한 대형 폭탄이면 어떡할 것인가.
나는 기껏 인계받은 엔터프라이즈호를 위험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다.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실탄을 실은 팰렁스가 발사되자 놈들은 깜짝 놀라며 소릴 질렀다.
고유의 언어인지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누가 봐도 살려달라는 의미인 것 같았다.
“그대들의 이름은 무엇인가.”
무슨 말인진 몰라도 한참을 의사소통한 끝에 저들 종족의 이름이 오크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들창코에 근육 돼지 종족은 오크로 통일하기로 모든 세상이 약속이라도 한 것 같았다.
“익숙해서 좋군.”
오크의 화물선은 즉시 자리에서 멈춰섰고, 오크는 화이트보드를 가져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실력이 좋진 않았지만 무얼 뜻하는 그림인지는 대강 알 수 있었다.
테이블 하나를 두고 인간과 오크가 마주 보고 있는 그림, 녀석은 우리와 대화를 원하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함장님.”
“일단은 기다리라고 하고, VV5610에 먼저 연락한다.”
회담 장소는 어디로 할 것이며 인원은 몇 명으로 제한할 것인지 등등.
이곳은 행성에서 너무 가까웠기에 시즈 일족과 마주했을 때와는 상황이 매우 달랐다.
그렇게 사령부에 통신을 넣자 예상대로의 반응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이륙한 전투함 수십 척이 부리나케 달려와 오크의 화물선을 포위한 것이다.
오크는 덩치에 걸맞지 않게 오들오들 떨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나는 겁에 질린 오크에게 떨지 말라고 위로해주었다.
어차피 말을 알아듣진 못한 것 같았지만 말이다.
*
대화를 원하는 오크.
녀석을 위해 중앙군 전투부대와 마법사가 동원됐다.
특히 마법사는 이번에 대규모 로테이션을 통해 VV5610에 도착한 인력으로 상당한 실력자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대우주시대에, 마법사의 가치가 과연 높을까 싶기도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전문적으로 마법을 다룰 줄 아는 인력의 가치는 이 시대에도 매우 높았다.
그들은 마법적 지식을 자신의 손으로 현실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자들이었다.
그런 이유로 마법사 중엔 전략 자산 개발에 깊이 참여하는 이들도 많았고 대귀족의 측근으로 일하는 자들도 상당수 존재했다.
그리고 대화를 위해 마법사가 참석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통역을 위해서였다.
-얼굴을 보고 마법을 쓰면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의사를 주고받을 수 있거든.
‘거 참 편리하네. 나도 할 수 있나?’
-물론이지. 머리는 좀 아프겠지만.
나는 저들이 오크와 무슨 얘길 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를 비롯한 엔터프라이즈호의 인원은 대화에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엔터프라이즈호의 최우선 임무는 레기온호를 호위하는 것.
우리에게 큰 도움을 받았던 베데리스 소장은 절대로 내가 오크 화물선으로 건너가는 걸 허락지 않았다.
내가 다칠지도 모를 작은 가능성조차 허락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작업을 중단하고 우주에 대기한 지 얼마나 됐을까, 오크로부터 얻은 정보를 듣기 위해 레기온호로부터 호출이 떨어졌다.
“다들 자리에 앉게.”
호위함대 함장들을 회의실에 불러모은 베데리스 소장.
“조금 전 사령부를 통해 들어온 정보를 공유하겠네. 현재 접촉한 외계 종족의 이름은 오크라고 하네.”
“오크···.”
“공간도약을 포함해 10일 정도 거리에 저들의 행성이 자리 잡고 있다더군.”
워프를 포함한 10일 거리.
분명 가깝지는 않은 거리였다.
오크는 본래 융족의 휘하에서 일하던 종족이라고 했는데 그 점을 고려하면 융족의 영토가 구·남방 경계 못지않게 엄청나게 넓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오크 종족은 지금껏 융족이 주는 일감을 처리하고 대금을 받는 식으로 생활을 유지해왔다고 하는군.”
“일감이요?”
“전략 자산 생산을 도왔다고 해. 오크 행성엔 빼곡히 공장이 들어서 있고 융족의 전투함을 건조했던 모양이야.”
융족이 주는 돈으로 다시 식량을 사서 생활을 유지해온 오크.
그들은 식성이 워낙 좋아 인구가 일정 수준 이상 늘면 행성 자체 생산량만으론 인구를 제대로 유지할 수가 없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문제는 이번에 융족이 거래 대금을 치르지 않고 도망쳤다는 건데···.”
“예?”
돈을 떼먹고 도망가다니, 회의장에 있던 장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융족 놈들이 이번 회전(會戰)에서 우리에게 대패하지 않았나. 대금은 나중에 줄 테니 지금까지 만든 함선들, 그걸로도 모자라 오크 전투선까지 모조리 징발했다는군.”
“그리곤 우리한테 완전히 박살이 난 거군요.”
“그래서 오크들이 찾아온 거야.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려고.”
오크는 오매불망 돈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는데 정작 의뢰인이 야반도주한 상황.
마법사의 도움으로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은 오크 함장은 벌써 망연자실한 상태라고 했다.
당장 행성 주민들이 먹을 식량도 부족한 판국.
사태를 좀 더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 중앙에선 오크 본성에 정찰대를 파견하기로 했다.
대규모 병력을 보내지 않는 것은 이 모든 일이 오크를 미끼로 한 융족의 함정, 혹은 또 다른 노림수가 깔려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탐사가 시작되었다.
오크는 정찰대를 맞이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대접하며 행성 안내를 도왔다.
융족이 자취를 감춘 상태에서 오크들이 살아남을 방법은 제국의 도움을 받는 것 말고는 없었다.
오크 말대로 모든 정황이 명백했던 덕분에 조사는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본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오크 행성은 융족의 함정 따위가 아니었다.
그들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으며 오크가 원하는 것은 그저 식량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리고 조사 과정에서 진짜 문제가 드러났다···.
오크에 관한 두 번째 브리핑을 위한 자리.
베데리스 소장은 다소 무거운 분위기로 말을 이어나갔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융족은 오크들을 모른체 할 수밖에 없었을 걸세.”
“모른 체하다니요?”
“조사대의 보고에 따르면 오크들은 공전하는 쌍둥이 행성에 터를 잡았네. 이 두 행성에서만 무려 천억이 넘는 인구를 보유하고 있지.”
과밀화된 행성.
인간과는 비교도 안 될 수준의 식성을 지닌 오크.
오크 한 명이 하루에 소비하는 식량은 인간 열 명이 소비하는 양에 달했으니 이는 배양육 기술을 이용해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천억 명이 넘는 오크네. 인간이었다면 1조 명 이상의 인원이 먹을 식량을 고작 행성 두 개에서 소비하고 있는 셈이지. 만약 융족이 오크의 식량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었다면 어떻게 생각했겠나.”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겠군요.”
오크는 많이 먹어도 너무 많이 먹었다.
아마 융족은 오크들의 식비를 감당하기 점점 어려워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조사대는 오크의 번식력이 인간보다 월등하며 본격적인 전투선과 항해 기술만 갖추면 우주의 핵심 종족으로 급부상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누군가 식량을 제공해주지 않는다면, 오크 스스로 식량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를 시작하는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었던 것이다.
“사령부에선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네.”
“아무것도 말입니까?”
“이미 오크들은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고 거리에선 폭동마저 일어나고 있다더군. 그 지옥을 우리가 무슨 수로 돕겠나?”
오히려 사령부에선 오크를 융족 이상 가는 위험요소를 지닌 종족이라고 평가했다.
이대로 식량을 지원해 저들의 생활을 도우면 장차 제국에 더 큰 위험이 닥칠 수 있다고 예상한 것이다.
“오크 무리를 강제 소개하진 않을 것이나 그들을 돕지도 않을 것이네.”
보고서에 따른 사령부의 판단에 따라 오크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그들은 앞으로도 영원히 고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굶주림을 겪을 운명이었다.
*
제국은 오크를 버리기로 결정했지만 알짜배기 정보는 속속들이 뽑아내었다.
오크는 융족 휘하에 터를 잡은 지 오래된 종족이었고 인근 은하계 지도를 아주 상세히 알고 있었다.
드디어 연방군은 융족 영토가 얼마나 넓었는지, 그리고 주변에 어떤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더 정확히 알게 된 것이다.
오크가 건넨 지도에 따르면 융족의 영토는 예상대로 남방 경계와 맞먹었고 현재 연방군은 영토의 약 4할 정도를 정복 완료한 상태였다.
남은 융족의 영역에 얼마나 되는 잔당이 남아있을 진 알 수 없으나 연방군은 계속해서 정복 전쟁을 이어가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연방군이 다시 원정을 떠나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사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화물선을 끌고 VV5610을 방문하는 오크의 횟수는 더 잦아지고 있었다.
오크는 돈이든 노동이든 원하는 대가를 제공할 테니 식량을 팔아달라고 애원했지만, 중앙사령부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애초에 오크가 쓰는 화폐라는 것은 제국에선 전혀 쓸모가 없었고 이들의 노동력을 이용하기에도 상당히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손재주는 성인 남성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오크지만 이들의 공장 기반 대다수는 융족이 닦아준 것이었다.
만약 오크가 만든 함선에 저들도 모르는 약점이 내재하여 있다면, 수많은 병사가 우주에서 억울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었다.
제국은 이러한 리스크를 지고 싶지 않았고 자연히 저들과의 식량 거래도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사정이 이러자 오크 일부는 대체 왜 멀쩡한 융족을 몰아냈느냐며 화를 내기도 했고 연방 군인의 주먹에 얻어터지는 일도 벌어졌다.
체격 조건이나 힘은 인간보다 월등하게 좋은 오크지만 이들은 군인에게 맞서 싸우진 않았다.
주먹을 휘두르면 육탄전은 이길 수 있을지 모르나 연방군이 전투함을 들이밀면 종족 전체가 휩쓸리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오죽하면 어떤 오크들은 먹여주고 재워주기만 하면 된다며 스스로 노예를 자청하기도 했다.
이런 이들을 보며 나는 일말의 동정심이 이는 것을 느꼈다.
보통 기존에 알던 오크라고 하면 흉폭하고 광기에 차 있는 존재를 떠올랐지만, 이들은 그저 배가 고픈 것일 뿐.
내가 알던 오크와는 그 성격이 많이 달랐다.
‘그저 많이 먹는다는 이유로 생존의 위협을 받아야 한다니.’
나는 그들이 불행한 운명을 타고났다고 여겼고 어쩌다 엔터프라이즈호로 다가와 식량을 구걸하는 오크가 있으면 대가를 받지 않고 식량을 나눠주곤 했다.
인간이었다면 한 달은 푸짐하게 먹고도 남을 양이었지만 오크 식구들에겐 며칠 요깃거리도 안 될 양이었다.
식량을 나눠주는 것 자체는 사령부에서도 크게 반대하지 않는 걸 보니 그들도 천억 명 이상의 오크를 굶겨 죽이겠다고 결정한 데 따른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우연찮게 오크를 식당칸에 앉히고 식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비쩍 마른 어린 오크 손을 붙잡고 함선에 탑승한 그들은 음식이 나오자마자 허겁지겁 그릇을 비우기 시작했다.
최고 연장자로 보이는 수염 달린 오크는 고도의 인내심으로 가족들의 먼저 배가 채워지길 기다리며 내게 고갤 숙였다.
“큰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함장님. 앞으로 있을 항해에 행운이 가득하길 진심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합장하며 공손히 고개 숙이는 오크.
중앙에선 전에 마법사를 이용해 오크의 말을 통역했고 그 정보를 토대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언어 데이터를 각 함에 공유했다.
현지인 같은 능숙한 언어를 구사하진 못하겠지만 서로 의미를 주고받을 정도는 되는 물건이었다.
“개의치 말고 어르신도 식사하시지요.”
“감사합니다.”
통역기를 통해 답하자 노인은 더욱 공손한 태도로 고갤 조아렸다.
“사정이 매우 어렵다고 들었는데 그쪽 행성은 지금 어떻습니까.”
“그저 끔찍할 따름입니다. 동족끼리 잡아먹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 할 정돕니다.”
노인 오크는 고향의 모습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융족이 떠나고 버려진 사이, 그는 수십억 명이 넘는 오크가 굶주림으로 사망했다는 말을 꺼냈다.
“우리 행성은 물이 거의 없고 사막화된 곳이 많아 경작하기 좋은 땅이 아닙니다. 심지어 융족을 돕느라 경작이 가능한 땅마저 공장이 들어선 상태죠.”
오크는 천억이 넘는 인구가 1억 미만이 되기 전까진 이 문제를 자력으로 해결하는 게 불가능할 것이라 말했다.
인구의 99%가 행성에 고립된 채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는 상황.
나는 지금 오크들이 겪고 있을 두려움이 얼마나 클지, 감히 짐작하기도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