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주 군벌가 망나니-48화 (48/134)

< 48화 >

미카엘 스톤 가격이 드디어 곤두박질을 치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별로 문제 될 게 없는 일이었다.

새로운 자원을 발견하고, 그에 합당한 가치로 가격이 재조정되는 것.

종족 혹은 거대 문명이 자웅을 겨루는 전쟁이 지나고 나면 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 경우가 조금 달랐다.

이제야 자원시장에 발을 걸치기 시작한 신진 상회에서 대규모 거래를 체결했기 때문이다.

물론 대규모라고 해도 남방 경계 자원시장 규모를 고려하면 눈물 한두 방울 수준에 불과했지만, 기존 군수 기업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엔 충분한 수준이었다.

그렇게 미카엘 스톤의 가격이 계속 내려가다 못해 반의반 토막이 깨졌을 때.

군수 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분노에 찬 비명을 질렀다.

“가름 상회라는 것들은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놈들이란 말이냐!”

전방위적으로 시작된 조사.

내로라하는 세력들이 이번 일의 배후를 캐기 위해 제국 남부를 이 잡듯이 뒤지고 있었다.

명령을 받고 일을 주도한 라이언 코멧은 똥줄이 타기 시작했고 타지에 나가 있는 회장을 애타게 찾았다.

그러나 회장은 기다리라고만 할 뿐, 적극적인 움직임은 취하진 않았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

대체 그때라는 게 언제인지는 오직 회장만이 아는 상황.

그렇게 시장엔 웬 놈들이 미카엘 스톤으로 거나하게 해 먹었단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고, 마침내 가름 상회의 배후로 트라카가 지목되자 악에 받친 기업들이 벌떡 일어났다.

<윌리엄 백작, 이번 일을 주도한 자가 자네 손자라고 하던데.>

<이번엔 장난이 너무 심했군.>

<손자를 설득해서 계약을 무르도록 하게.>

<그렇지 않으면 트라카엔 그 어떤 화물선도 도착하지 않을 테니 말이야.>

초거대 기업들의 배후.

명문가 가주들이 윌리엄 백작에게 거래를 무를 것을 강요했다.

한두 군데서만 압박이 들어왔다면 백작도 모르쇠로 버텨봤을 테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계약 체결로 손해를 입은 기업들은 암묵적 동맹을 맺고 트라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번 사건의 주동자가 아크 팩토리 회장, 존 메이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트라카의 물동량은 급속도로 얼어붙고 말았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교역로를 귀족들이 나서 전면 봉쇄해버린 것이다.

화물을 싣고 나르던 교역선 함장들은 갑자기 길을 막고 나선 연방군과 자치령 거세게 항의했다.

이렇게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돌아가게 되면 시간과 연료 등을 포함해 일방적인 손해를 보게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뒷배의 명을 받고 움직인 군인들은 이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죽기 싫으면 돌아가라는 군인들의 엄명에 민간 유통업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물론 이 업체들에게도 뒷배는 존재했다.

하지만 이번 상대는 우주에서 가장 강한 세력 중의 하나인 군수 기업.

아무리 생각해 봐도 득보다 실이 크기에 그들은 얌전히 물러서는 쪽을 택했다.

이렇듯 사방에서 들어오는 압박에 윌리엄 백작의 고뇌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온다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만 이대로 가다간 트라카가 정말로 망해버릴 수도 있는 판국이었다.

아크 팩토리도 윌리엄 백작도, 그렇게 압박에 시름시름 앓고 있던 어느 날.

드디어 이번 일을 계획한 주인공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상회의라고···?”

가름 상회와 계약을 맺은 상위 군수 업체들에 화상회의가 열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주최자는 아크 팩토리 회장 존 메이어.

한때 남부의 소문난 개망나니였던 그가 회의를 주최한단 소식에 각 기업은 코웃음을 치면서도 빠짐없이 대리인을 내보냈다.

그저 웃고 넘기기엔 이번 거래로 본 피해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회의.

테이블을 빌려 군복 차림으로 자세를 잡은 존 메이어는 속전속결로 회의를 진행해나갔다.

속도를 올리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이 화상회의를 진행하는 데 엄청난 양의 퍼플옵테늄이 소모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남부 은하와 아주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VV5610, 이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기 위해 존 메이어는 수백억 크레딧이 넘는 회의 비용을 감수해야만 했다.

<어서 설명을 해보시오. 존 메이어 회장.>

<당신은 명백히 미카엘 스톤의 가격이 떨어질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어. 그런데도 이런 고약한 계약을 내밀어 이득을 취했지.>

<지금이라도 계약을 없던 것으로 한다면 트라카의 상태는 머지 않아 정상으로 되돌아갈 것이오.>

앞다투어 공세를 퍼붓는 기업 대리인들.

그러나 존 메이어는 깍지를 끼고선 그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을 뿐이었다.

그렇게 침묵이 계속되자 대리인들도 뭔가 느낀 게 있었는지 다시 회의 분위기가 차분하게 변하였다.

존이 처음으로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모두가 조용해진 시점, 존 메이어는 이렇게 말했다.

“계약을 물릴 수는 없습니다.”

<하!>

<겨우 푼돈에 고향을 박살내겠다 이건가!>

성난 대리인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났다.

그러나 이번엔 존도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음성만을 최대로 키워 모두의 입을 다물게 했다.

“저희 아크 팩토리와 미카엘 스톤 계약을 맺어주신, 친애하는 군수 기업 분들에게 전합니다. 아크 팩토리가 크롬원과 더불어 이클립스 미사일의 위탁 생산을 하고 있음은 다들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점을 고려하면 제 회사가 아주 개발 능력이 없는 곳은 아니란 사실도 아시겠지요.”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존의 말을 듣던 모든 이들의 표정이 딱 그러했다.

“제국은 현재 외부 세력과 거대한 전쟁을 치르며 미증유의 위기를 극복 중입니다. 이런 상황에선 그 어느 때보다 저희 군수 기업들의 도움이 필요한 법이죠.”

<하고 싶은 말이 대체 뭐요.>

“이번 미카엘 스톤 계약을 체결해준 기업들에게는 특별히 아크 팩토리에서 개발한 신제품의 라이센스 생산을 부탁드릴 참입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싶은 얼굴로 분위기를 살피는 대리인들.

<고작···아크 팩토리의 신기술로 수백조 크레딧의 손해를 갈음하겠단 거요?>

“계산은 정확히 짚고 넘어가죠. 이번 거래로 저희가 큰 수익을 올리게 된 것은 사실이나 여러분께서 보신 피해를 개별적으로 살피자면 고작 수조 크레딧에 불과할 것입니다.”

수조 크레딧을 고작이라고 표현한 존.

이것도 어떻게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일 수 있지만 군수 산업에선 워낙 천문학적인 거래가 이루어지기에 영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럼 뭐요. 이클립스 미사일의 라이센스라도 풀겠다는 거요?>

이클립스 미사일.

생산이 시작되자마자 단숨에 헬파이어 미사일을 뛰어넘어 남방 경계 최고의 전략 자산으로 등극한 제품이었다.

덕분에 없어서 못 팔던 헬파이어 미사일은 생산 이후 처음으로 재고가 쌓이기 시작했는데 이를 증명하듯 회의에 참여한 메탈렉시온의 대리인은 영 심기가 불편한 듯했다.

“아닙니다. 라이센스 생산을 제안 드릴 제품은 완전히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 만들었습니다. 아마 확인해보시면 다들 만족하시리라 생각합니다만.”

그와 동시에 각자의 앞으로 새로운 제품의 스펙이 도착했다.

“신형 미사일 실드 기술입니다.”

<미사일···.>

<···실드?>

“이번 전쟁에서 융족은 미사일에 실드를 둘러 전투함의 대공포 견제를 뚫고 착탄시키는 신기술을 선보였습니다. 이에 저희 아크 팩토리는 각고의 노력 끝에 놈들의 기술을 카피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이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선 당연히 미카엘 스톤이 필요합니다.”

다들 충격을 받았는지 말이 없어진 대리인들을 향해 존은 재차 공세를 진행했다.

“아크 팩토리는 이번에 미카엘 스톤을 거래하게 된 기업들과 라이센스 생산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만약 저희의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해당 선물 계약을 다른 기업에 넘겨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신기술은 현재 각 공장에서 생산 중인 모든 미사일에 대부분 적용할 수 있으며, 해당 회의에서 진행된 내용은 한 시간 내로 남부 은하 모든 군수 기업에 전달될 예정입니다.”

<잠, 잠깐! 이보시오 회장. 무제한 생산을 얘기하는 거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질문을 받은 존이 앞으로의 일이 기대된다는 듯 미소를 그렸다.

“라이센스 생산 제한은 저희와 맺은 계약 미카엘 스톤 1톤당 1천 발입니다. 그럼 이상으로 임시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

내가 던진 폭탄으로 남부 은하는 불이 붙은 듯 시끄러워졌다.

분명 그럴만한 기술이었다.

구형과 신형 미사일을 가리지 않고 실드를 둘러주는 신기술을 개발했다는데 이를 듣고도 가만있을 군수 기업은 없었다.

그들은 아마 내 설명을 듣는 순간 직감했을 것이다.

아, 이 기술을 공유받지 못하는 순간 미사일 사업에선 완전히 손 떼야겠구나- 라고.

대공포를 비롯한 적의 견제에서 미사일의 내구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기술.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되었고, 계약을 물러달라 말하던 군수 기업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계약서를 꽁꽁 감추기 시작했다.

라이센스를 같이 좀 나누자며 사방에서 계약서를 되팔라는 요청이 쇄도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1톤당 생산 제한 개수가 걸려 있다는 점도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400톤 계약을 맺었다면 생산할 수 있는 실드 미사일의 개수는 40만 발.

언뜻 보면 엄청난 숫자로 보이나 전쟁이 계속되고, 남부 연방군이 소모하는 미사일 규모를 생각하면 결코 충분한 숫자가 아니었다.

심지어 이 미사일은 굳이 남부가 어디더라도 동부, 서부, 북부 등.

각지로 팔아도 얼마든지 팔릴만한 제품이었다.

생산하는 즉시 돈이 되고 기업의 영향력을 키울 기회이다 보니 다들 라이센스에 발을 걸치고 싶어하는 분위기가 시장에 흐르고 있었다.

남부 은하 곳곳에선 이번 사건을 다룬 뉴스가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상황.

이제 아크팩토리는 더 이상 인지도 낮은 그저 그런 기업이 아니었다.

이번 계기로 141위에 위치해 있던 아크 팩토리는 단숨에 군수 기업 순위 42위에 랭크되는 기염을 토했고 각 기업들로부터 함께 일하고 싶다는 무수한 요청을 받게 되었다.

“뒷일은 자네가 알아서 처리해. 라이언.”

<아니 회장님?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저는 일개 자원관리팀장 아니겠습니까.>

“자네는 이제 아크 팩토리 부회장이야.”

<예? 제가 얼마나 열심히 회장님을 보필했는데 어떻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회장님이 여기 와서 직접 상황을 보셔야 합니다. 온갖 대리인이 매일 같이 트라카에 찾아와서 미팅 한번 하자는데 진짜 죽을 것 같단 말입니다!>

부회장이고 나발이고 힘들어서 못 하겠다는 라이언 코멧.

나는 그를 달래주기로 했다.

“조금만 더 고생해 줘. 내가 지금 타지에 나와 있어서 딱히 믿을만한 사람이 없어서 그래.”

망나니 존이었을 시절.

회사를 쫄딱 망하게 만든 건 전적으로 존의 책임이었지만 그렇다고 사장단이 딱히 유능한 것 같지도 않았다.

그에 비하면 라이언 코멧은 내가 직접 불러들인 사람이기도 했고 가진 바 능력도 출중해 믿을 수 있었다.

“라이언, 이번에 큰일 해냈는데 보너스 받아가야지.”

<···보너스요?>

“500억 크레딧. 지금 바로 입금해주겠네.”

<···충성! 죽는 그 날까지, 회장님을 보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일로 부대비용을 제하고 남은 예상 순수익은 610조 크레딧 가량.

순양함을 편대로 만들어 수십 대는 굴릴 수 있는 수준의 거액을 벌어들였으니 이 정도면 500억 크레딧이 소소한 수준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사람도 좀 뽑고. 기술 개발도 게을리하지 말라고 해. 언제까지고 기업을 원맨팀으로 쓸 순 없으니까. 무슨 말인지 알지?”

<옙!>

“자네가 다 할 필요 없어. 인재 스카우트도 사람 시켜서 해. 자금은 부족하지 않게 밀어줄 테니까.”

우주 시대에도 결국 가장 귀한 건 사람이었다.

쓸만한 인재를 얼마나 많이, 빠르게 확보하느냐.

라이언에게 뒤처리를 맡긴 나는 통신을 끊고 사령선인 레기온호로 향했다.

급한 불은 껐으니 이제는 연방군 중령.

존 메이어의 소임을 다할 차례였다.

“그럼 가볼까···.”

*

부드럽게 우주 공간을 미끄러져 나가는 엔터프라이즈호.

귀환을 미루고 순양함에 승선할 인원을 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엔터프라이즈호에 붙어 있으면 병사여도 장교 전환을 노릴 수 있을 정도로 군공이 쌓인단 소문이 퍼진 덕분이었다.

덕분에 우린 면접을 봐가면서까지 승조원을 추릴 수 있었고 훌륭한 인재들로 함선 세팅을 마칠 수 있었다.

110대에 달하는 전투기를 담당하게 된 지크는 대대장 직책을 부여받아 매일 같이 기동 훈련에 열심이었다.

각지에서 올라온 에이스들이라곤 하나 죽음의 위기를 여러 번 겪은 오딘 훈련소 312기 에이스들에 비하면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렇게 빠르게 순양함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엔터프라이즈호는 VV5610 근처를 떠돌며 상층부에서 내려온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이번 임무는 적이 워프를 노릴만한 지점에 우주 기뢰를 설치하는 것.

기존 융족의 패잔병들은 웜홀벌레가 만든 통로를 따라 사라졌지만 여전히 많은 융족 전투부대가 이곳을 노리고 있을 수 있다고 중앙사령부는 추측 중이었다.

그 때문에 VV5610엔 많은 수의 생산 공장이 빠르게 들어섰고, 엄청난 숫자의 기뢰가 행성을 중심으로 빼곡히 설치되기 시작했다.

<함장님. 이 정도 기뢰면 감히 워프는 꿈도 못 꾸지 않겠습니까?>

“방심할 순 없지.”

나는 줄을 맞추어 설치되는 기뢰를 보며 생각했다.

기뢰는 행성 근처의 워프를 견제하는 용도일 뿐, 적을 완벽히 방어할 수 있는 체계의 무기는 아니었다.

그저 전투가 벌어졌을 때 시간을 버는 용도.

전투가 일단락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나는 조금 더 이 평온한 시간을 만끽하고 싶었다.

‘융족 부대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드라마에선 그런 소리 하면 꼭 무슨 일이 생기더라고.

‘말은 안 했거든? 생각만 했을 뿐이지.’

그때였다.

함교에 경고등이 울리며 레이더에 미확인 함선이 포착되었다.

-거 봐! 내가 뭐랬어!

“젠장! 무슨 일인가!”

“미확인 함선 포착! 구축함급입니다!”

“숫자는?”

“한 척입니다!”

대규모 워프를 위한 정탐선일지도 몰랐다.

정체를 확인하고 융족의 정찰이라면 숨통을 끊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던 그때, 상대 함선으로부터 통신 요청이 들어왔다.

“연결해라.”

그렇게 연결된 통신, 나를 포함한 모든 인원이 눈을 깜빡이며 화면에 잡힌 상대를 쳐다봤다.

“위박! 위박! 추르파!”

붉은 외계인이 손을 흔들며 거친 손짓으로 제스쳐를 시도했다.

들창코에 근육질의 덩치, 튀어나온 이빨까지.

저 외계인은 분명 처음 본 것인데도 나는 어디선가 상대를 본듯한 기분이 마구 들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나는 한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거 완전···오크 아니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