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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군벌가 망나니-46화 (46/134)

< 46화 >

연회장에서의 사건 이후, 대령은 한동안 의무실 신세를 졌고 나는 조금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우리한테 굳이 사정을 설명하려 할 필요는 없네.”

“제국에 폐를 끼칠 위인이라니···. 명예 훈장까지 받은 이한테 가당키나 한 소린가?”

“존 소령이 불온 세력과 내통한다? 그럼 연방군에 믿을 수 있는 장교는 단 한 명도 없다는 소리와 다름없지.”

상황이 진정된 이후, 평소 알고 지내던 장군들은 그럴 리 없다며 나의 결백을 옹호해주었다.

분명 착오가 있었을 거라고 말이다.

다만 베데리스 소장만큼은 갑작스레 의무실 신세를 지게 된 카린 대령을 보며 조금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대령과 오래 알고 지낸 사이였던 소장이 엘프의 특성에 대해 몰랐을 리는 없을 터.

하지만 베데리스 소장도 내가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굳이 관심을 두지 않는 눈치였다.

소장은 그저 평소처럼, 나와 마주칠 때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받아주었다.

나는 그것이 이번 작전에서 레기온 호를 구해준 데 대한 나름의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어찌 됐건, 한동안 임무를 같이 해야 할 소장이 날 꺼리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나둘 남부 연방군 소속 함선들이 VV5610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앞으로 엔터프라이즈호에 남을 사람을 추려야 했고 빈자리를 대체할 인원 또한 구해야 했다.

내가 임무를 계속하게 되었다고 해서 휘하 병사들을 이곳에 기약 없이 붙잡아둘 수는 없었다.

그건 함선의 사기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칠 터였고, 애초에 장교와 병사들을 기간이 찰 때마다 새로 받고 보내는 것은 연방군에서 자연스러운 일에 속했다.

나는 먼저 격납고에 들러 조종 장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오딘을 떠난 지도 어느덧 반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반년이라고 하면 그리 길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나 연방군 조종사들이 느꼈을 이 시간은 후방 근무를 하는 이들과는 완전히 달랐을 터였다.

그도 그럴게 24시간, 언제 어디서 적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 임무를 계속해왔으니 말이다.

게다가 엔터프라이즈호는 유독 적과 많이 교전한 편에 속했다.

다들 말은 안 해도 상당한 수준의 정신적 피로가 쌓여있을 게 분명했다.

괜히 상부에서 전 부대에 귀환 명령을 내린 게 아닌 것이다.

“그런 이유로···너희가 원한다면 집에 가도 좋아. 빠진 인원에 대해선 보충 요청을 해둘 테니까.”

길게는 훈련소부터, 짧게는 마이더스호까지.

나는 그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었다.

하지만 오래 알고 지내온 전투기 조종사들은 뭐 그런 소릴 하느냐는 투로 손을 저었다.

“함장 잘못 만나서 집에도 못 가고 이게 뭐야.”

“아, 또 지겹게 전투 뛰게 생겼구만.”

“···집에 돌아가도 괜찮다니까. 내 눈치 살필 필요 없어.”

“눈치는 무슨, 괜히 이 머나먼 행성에 버려두고 갔다가 귀신이라도 되면 꿈자리가 뒤숭숭할 거 같아서 그래!”

“솔직하게 말해! 남아달라고!”

“이미 운 거 아니야?”

“울긴 무슨···. 그래도 고맙다. 다들 그리 말해줘서.”

고향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끝까지 나와 함께하겠다는 뜻을 밝힌 동료들.

사실 연방군 최고 수준의 에이스 파일럿인 그들을 보내는 건 나로서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대체 인원을 보내준다곤 하지만 어떤 조종사가 오더라도 이들의 빈자리를 채울 수는 없을 터였다.

나는 그들 앞에서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고 그들은 낯부끄럽게 왜 이러냐며 내게 술이나 한잔 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쾌활하게 웃는 녀석들을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술 대신 빵은 어때.”

*

VV5610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갔다.

타란튤라 봇의 몇 배는 더 큰 로봇들이 24시간 가동하며 건물을 올렸고 카지노, 대중목욕탕, 식당, 빵집 같은 부대시설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다.

이는 앞으로 이곳을 거점으로 장기간 작전을 해야 할 군인들을 위한 것이었고 대다수 인원이 이런 시설에 대해 깊은 만족감을 표현했다.

함선 내부가 아무리 좋아도 결국은 함선이다.

드넓은 대지에 지어진 주거단지와 휴식공간을 함선이 따라갈 수는 없었다.

연일 근무환경이 좋아지는 덕분인지 엔터프라이즈호에서 귀환 의사를 밝힌 인원은 생각보다 훨씬 적었다.

전체 인원의 삼 분의 일.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이곳에 남겠다고 의견을 내주었고 나는 기쁜 마음에 그들을 위한 복지를 보강했다.

지금 VV5610에 올라가는 시설의 상당수는 이용에 돈이 필요했다.

장거리 파견을 나온 군인들이기에 이용료는 무척 저렴한 편에 속했지만 그래도 돈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나는 다시 행성을 떠나기 전까지, 잔류 의사를 밝힌 인원이 부대시설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이번 전투 승리로 엄청난 거금을 벌게 됐으니 이 정도는 잔고에 티도 나지 않는 수준이었다.

카지노에서도 일정 금액의 칩을 지원해 주겠다고 하자 병사들은 신이 나서 거리로 달려갔다.

멀쩡한 병사를 도박꾼으로 만드는 게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즐거움이라도 없으면 위험천만한 장기 임무를 버티기가 무척 어려웠다.

그렇게 착실하게 임무 수행 준비를 이어나가던 어느 날, 군공을 세운 장교들을 대상으로 한 단체 진급식이 있었다.

마침내 내 계급장이 바뀌는 날이 온 것이었다.

“존 메이어 중령의 활약은 연방군 장교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기에 녹색 명예 훈장을 수여한다!”

어깨엔 하나뿐이던 나뭇잎이 두 개가 되었고, 가슴엔 새로운 명예 훈장이 수여되었다.

녹색 명예 훈장, 4급인 청색 훈장보다 한 단계 더 높은 등급이었다.

3급 훈장이라고 해서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녹색 명예 훈장을 받는 인원은 남부 은하를 통틀어 1년에 수여자가 열 명이 채 되지 않는, 매우 값진 영예를 지니고 있었다.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중령,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나는 무수한 악수 신청을 받으며 연신 감사합니다를 반복해야 했는데 오늘 바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중엔 엔터프라이즈호를 위기에서 구해준 베른 중령도 있었고 우리 함선만 해도 진급자가 엄청나게 나왔다.

조종사 열두 명이 전부 진급에 성공한 것이다.

조종 특기가 아무리 진급이 빠르다고 해도 전원이 진급에 성공한 함선은 우리뿐이었다.

이제 지크는 엄연히 자작 대우를 받는 소령이 되었고, 찰스, 헨리, 로저는 대위를 달아 베테랑 조종사의 느낌을 물씬 풍겼다.

부관으로 열심히 일해준 매티스 중위는 대위가 되었고 병사들에겐 군공 기록과 함께 금일봉이 지급되었다.

2년만 근무하면 전역할 수 있는 일반병에게 군공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부사관을 지원하거나 장교를 희망하는 병사들에겐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애초에 장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야 했고, 자질이 부족하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게 연방군 장교였다.

연방군 병사의 상당수는 장교 코스를 지원했다 떨어진 이들의 비율이 제법 적지 않았는데 군공을 쌓다 보면 낙방으로 내려놓아야 했던 장교의 꿈을 다시 키울 수가 있었다.

이렇게 사병에서 장교로 특별 진급 코스를 밟으면 출세 가도에선 다소 멀어지겠지만 일단 소위가 되기만 하면 최소 준남작 신분은 확보하는 셈이기에 어떻게든 장교가 되고 싶어하는 병사가 무척 많았다.

그날 저녁, 나는 동기들과 저녁 식사를 하며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시간을 가졌다.

화제는 순양함을 지급받게 되면 현재의 엔터프라이즈호를 어떻게 할 거냐는 것이었다.

“엔터프라이즈호 말이야. 엄청나게 돈 많이 들여서 업그레이드 했다고 하지 않았어?”

“맞아.”

“그럼 이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원하는 장교가 있으면 돈을 받고 매각하든가, 아니면 순양함은 어차피 호위로 구축함이 필요하니까 임대 형식으로 아래 두는 방식도 있고.”

내가 원하는 쪽은 엔터프라이즈호를 쭉 끌고 가는 것이었다.

중앙군 구축함과도 능히 견줄 수 있는 엔터프라이즈호는 명백히 남방군 최고의 구축함이었다.

이런 함선을 굳이 팔기보단 휘하에 두는 것이 작전 수행 능력 면에서도 이득일 터였다.

“호위함으로 쓸 거라 이거지? 그럼 나는 어때?”

“어허. 욕심부리지 마.”

헨리가 엔터프라이즈호를 맡아 함장이 되고 싶다는 의견을 밝히자 로저가 소금을 뿌렸다.

헨리의 계급은 대위.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함선만 구해지면 충분히 함장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계급이었다.

나는 슬쩍 동기들의 얼굴을 살폈다.

지크, 찰스, 헨리, 로저, 미하일.

지크는 아무래도 관심이 없고 나머지 네 친구는 구축함 함장직에 제법 관심이 있는 눈치였다.

조종 특기 장교라면 누구나 전투기를 벗어나 더 큰 함선을 몰고 싶어했기에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지크, 너는 함장직에 관심 없어?”

“나는 어디든 상관없어. 군공만 많이 세울 수 있다면.”

척박한 고향을 발전시키기 위해 작위를 원했던 지크.

그는 군공을 빨리 쌓을 수 있는 위치라면 함장이든 조종사든 가리지 않고 뛰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지크의 대답은 내 머릿속을 한결 편하게 해주었다.

라다만의 강인한 신체, 지크는 탑 에이스 파일럿이었고 아직 함선에 꼭 필요한 존재였다.

순양함의 전투기 수는 최소 60대 이상, 지크가 선임 편대장을 맡아준다면 그보다 더 든든할 수는 없었다.

지크를 제외하고 남은 인원은 넷.

모두 대위로 계급이 같았다.

이들은 서로 실력도 비슷했고 어느 정도 함장직에 욕심이 있는 듯했기에 나는 알아서 승부를 보라고 말했다.

매티스 대위가 조종 특기였다면 일말의 고민 없이 그를 구축함 함장으로 보냈을 테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관제 특기 장교였고 결국 차기 구축함 함장직은 카드 게임으로 결정짓게 되었다.

한 시간에 걸친 숨 막히는 포커 접전.

“안 돼!”

“이런 제길!”

“내가 이겼다-!”

-보물의 주인이 정해졌구만.

헨리와 로저는 머릴 쥐어뜯었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승자는 미하일 워커였다.

나는 워커에게 위스키를 건네며 말했다.

“미하일, 축하해.”

“충성! 열심히 하겠습니다!”

사석에선 말을 놓고 지내왔지만, 미하일은 차려자세로 경례하며 자신의 기쁜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아 참, 구축함 이름은 새로 정해야 할 거야.”

“응? 왜?”

“엔터프라이즈라는 이름은 내가 계속 쓸 거니까.”

이제는 구축함 엔터프라이즈호가 아닌, 순양함 엔터프라이즈호가 될 시간이었다.

*

인계 작업을 진행하는 시간 동안 내가 신경 쓴 다른 부분은 바로 이단심문관의 존재였다.

그는 대체 왜 나를 지목해서 끌고 가려 했던 것일까.

엔터프라이즈호에 돌아와 흔적을 살핀 진은 스텔스 장치에 대한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았을 거라 확인해 주었다.

그렇다면 저들은 아직 내가 시즈 일족과 어떤 거래를 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그럼 나를 불온 세력과 내통하고 있다고 찍은 이유가 뭐지?’

-구축함이 너무 성능이 좋아서 그랬던 걸지도 모르지.

실제로 연회장에 가지 않았던 승조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날 구축함 주변을 배회하던 세력이 있었다고 했다.

검은 군복을 맞춰 입은 자들, 십중팔구 이단심문관의 명령을 받고 대기하던 무장 세력이었을 것이다.

날 구속하려던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진실은 당분간 알 수 없게 돼버리고 말았다.

대령의 경고 이후, 이단심문관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들이 아예 VV5610에서 떠났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애초 이단심문관은 한 자리에 오래 머무르는 존재가 아니었다.

제국 각지를 돌며 비밀리에 임무를 수행하는 자들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그들이 정말로 이곳을 떠났길 바랐다.

어딘가에 숨어 몰래 나를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 답답한 기분이 들었으니까.

그렇게 혹시 모를 감시를 신경 쓰며 얌전히 지내고 있던 어느 날, 카린 대령에게서 호출이 있었다.

다시 건강을 회복해 이전의 환한 웃음을 되찾은 그녀는 내게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중령! 허락이 떨어졌네.”

“무슨 허락 말입니까?”

“이번에 승진하면서 이제 순양함 함장을 맡을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예. 안 그래도 조만간 남부군에서 한 척을 인계해주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만.”

모리더스 대장은 마지막 귀환을 시작하기 전에 현재 남부군의 순양함 한 척을 빼내어 내게 전해주겠다는 말을 했었다.

엔터프라이즈호만큼 최신의 모델은 아닐지언정 이는 분명한 특혜에 해당했다.

순양함 한 척의 가격은 10조 크레딧 이상.

그것을 대기 기간 없이 바로 인계받는다는 것 자체가 내가 최고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다는 증거였다.

“순양함 인계는 필요 없으니 함선은 그대로 가지고 귀환하라고 말씀 올리시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번에 중앙군도 로테이션 인원이 제법 생겼거든. 그래서 내가 상부에 보고를 올렸다네. 귀관의 실력이 무척 출중하니 이번 기회에 중앙의 순양함을 내어주면 어떻겠냐고 말이야!”

“설마 제가 중앙의 순양함을 인계받게 되었단 말입니까?”

“그렇네!”

중앙제 순양함.

남부의 그 어떤 최신 순양함보다 성능이 우수한 것은 물론이고 그 성능을 따지자면 전함급과 맞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중앙의 폐쇄성을 생각하면 임시 호위함대 소속인 내가 중앙의 순양함을 지휘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대령의 영향력이 그것을 가능케 한 모양이었다.

-정실력 뭐야···.

조용히 감탄하는 진.

결은 조금 다르지만 나 역시도 그녀의 영향력에 적지 않은 감탄을 하고 말았다.

매번 눈치만 봤지 이렇게 중앙의 함선을 직접 몰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 말이다.

뭐라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이럴 게 아니라 지금 구경하러 가지 않겠나? 이미 함선을 대기시켜 두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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