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우주 군벌가 망나니-45화 (45/134)

< 45화 >

-자신은 있는 거겠지?

‘물론이지.’

거대 군수 기업들이 뿜어낼 분노.

나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기술도입 생산을 제안할 예정이었다.

‘루바니 중령이 이미 남부 기술발전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시켜줬잖아.’

-미사일 실드 말이야?

‘그래.’

애초에 중령에게 아부해가며 확답을 받은 이유가 뭐였겠는가.

중앙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도 잔뜩 화가 났을 야수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미끼가 필요해서였다.

‘메탈렉시온은 헬파이어 미사일 개발로 기업 순위를 몇 계단이나 끌어올렸지. 하물며 모든 미사일에 쓸 수 있는 소형화 실드 기술이라면 좋은 사탕이 되지 않겠어?’

-이야. 여기까지 내다보고 움직였던 말이야?

진은 조금 감탄했다는 반응이었다.

‘기업 순위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작은 곳까지 포함하면 남방 경계의 군수 사업체는 수천, 수만 개에 달하지. 그 숫자를 고려하면 오늘 우리가 선물 계약을 체결한 대상은 지극히 한정적인 숫자고.’

-그렇지.

‘미사일 실드 기술은 우리와 미카엘 스톤을 거래하는 기업하고만 공유할 거야.’

-음?

설명을 듣던 진이 고갤 갸웃했다.

-그럼 나머지 회사들은 어쩌고? 네 말대로면 나머지 수천 개의 회사가 불만을 품을 텐데?

‘말했잖아. 우리와 거래를 해야지만 혜택을 나누겠다고. 라이센스 생산을 하고 싶다면 이미 계약을 맺은 다른 회사들에게 계약권을 받아오면 그만이야.’

-아! 그렇게 하면 화살이 이미 계약을 마친 기업에 돌려지겠구나. 그렇지?

나는 대답 대신 와인을 홀짝이며 고갤 끄덕였다.

‘기술 개발은 이제 시작이니까. 기술 우위로 아군을 만들어두면 앞으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큰 도움이 되겠지.’

-든든하구만.

진과 대화를 나누면 동안, 나는 장군들이 소개해주는 인맥들과도 정중히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 대부분은 이미 장성 계급이었으며 남부 연방군 내에서 요직을 차지한 이들이었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이 친구가 존 메이어 소령이네. 제1군을 위기에서 건져낸 남부의 영웅이지.”

“오오. 만나서 반갑네 소령. 한 번쯤 만나고 싶었는데 이렇게 인물이 좋은 줄은 미처 몰랐군.”

“반겨주시니 영광입니다.”

어깨에 별들이 주렁주렁 달린 장군들에게 둘러싸이자 기분이 좀 생소했지만 나는 한 명 한 명 시선을 마주치며 그들의 얼굴을 머릿속에 담았다.

이들은 모두 모리더스 대장과 같은 파벌에 속해 있었고, 앞으로의 군생활을 생각하면 이번에 번 돈의 상당 부분은 이들에게 가게 될 확률이 높았으니 잘 기억해둘 필요가 있었다.

커다란 테이블을 차지한 이들은 음식을 앞에 두더니 이내 진지한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어렵게 확보한 VV5610의 주인이 누가 될 것인가 하는 내용이었다.

“오리온 대장이 이번에는 양보하지 않겠다는 모양이더군요.”

“순서대로면 페르난드쪽 아니던가?”

“그렇긴 하지만 이런 보물은 순서에 예외를 두기 마련이니까요.”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선 장성들이 나누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대부분은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였다.

몇 명의 대장을 중심으로 연방군 내에 파벌이 존재하는데 다들 같은 파벌에 속한 장성을 VV5610의 주인으로 앉히고 싶어 욕심을 내는 상황이었다.

‘누가 주인이 될지 그야말로 혼전 양상이군.’

보통 이런 경우엔 최고 통수권자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갈 법도 하지만 현 남방군 통수권자인 오스카 원수는 남부에 대한 지지기반이 그리 크지 않은 자였다.

각 방면의 최고 계급인 원수는 황제가 직접 임명하게 되는데 황제는 일부러 지지기반이 없는 자를 원수직에 앉혀둔 것일지도 몰랐다.

역대 일어난 제국 반란을 살펴보면 지지기반이 튼튼한 원수, 명문가 출신의 장성이 일으킨 경우가 많았기에 황제로선 당연히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도 했다.

-기반이 약해야지 원수가 될 확률이 높다? 이거 완전 우리 얘기 아냐?

‘그건 너무 나갔고.’

-왜. 딱 봐도 명문가 출신 장성은 황제가 싫어하는 것 같은데. 우린 트라카 하나만 차고 있으니 바지 원수 시키기 얼마나 좋아?

바지 원수라니···.

그건 어감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아무튼, 이번 VV5610의 주인은 전적으로 평의회의 결정에 달려 있었다.

공교롭게도 각 세력의 파워는 엇비슷한 상황.

이런 경우라면 최대한 많은 선물을 의회에 내놓을 수 있는 세력에게 그 자리가 돌아갈 확률이 매우 높았다.

‘이번 선정은 내게도 놓치기 아쉬운 기회인데···.’

그리 말하며 나는 슬쩍 시선을 돌려 마이클 준장을 바라봤다.

마이클 준장은 영 목이 타는지 계속 옷깃을 점검하며 와인을 들이켜는 중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게 이번 모리더스 대장의 파벌에서 자치령을 관리할 후보로 내세울 인물이 바로 마이클 준장이었기 때문.

이번 전투 최고의 보물을 차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저리 긴장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대체 의회에서 대가를 얼마나 요구할지 종잡을 수가 없군.”

“하지만 아무리 많이 요구해도 놓치기 아쉬운 건 사실입니다.”

“조금 전에 정찰 보고가 들어왔는데 융족이 이미 다 개발해놓은 철광석이며 은, 니켈, 블루 코어 광산이 엄청난 규모라고 합니다.”

“이만하면 위성이나 인근에 대형 광물지대가 없어도 본전은 충분히 남길 수 있을 겁니다.”

시가를 물기 시작한 장군들.

파티장에서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아무 상관 없는 모양이었다.

애초에 이 시가는 인체에 해가 없게끔 만들어진 물건이었으니 말이다.

“다행인 건 아직 시간이 꽤 남았다는 겁니다.”

“의회에선 이곳의 정확한 가치를 알기 전엔 주인을 결정하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VV5610의 가치가 치솟을수록 의회에 들이부어야 할 돈은 커지고, 의원들이 가져가게 될 몫도 늘어나는 상황.

시간은 의회 편이었고 우린 그사이, 열심히 돈을 모아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어쩌면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곳에 어떤 광산이 잠들어있는지 다들 알게 되면 감당 불가능한 수준으로 가격이 치솟을 수도 있기에 하는 말이네.”

“혹시 뭔가 들으신 거라도···.”

모리더스 대장이 장성들에게 미카엘 광산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하려 할 때였다.

연회장 외곽이 소란스러워지더니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흩어지기 시작했다.

분위기를 흐트러트린 이들은 검은 제복과 총을 들고 나타난 무장 세력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맨 앞에서 이끄는 인물이 있었다.

검은 로브와 두건을 쓰고 음침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내.

연회장 중앙에 선 그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주목!”

그가 두건을 젖히고 얼굴을 드러냈다.

민머리에 날카로운 안광, 붉은 표식을 이마에 새긴 그는 몹시 흉포한 기운을 드리우는 자였다.

“본관은 이단심문관, 제퍼슨이라고 한다.”

이단심문관.

그 짤막한 소개에 일대의 모든 인원이 숨을 집어삼켰다.

이단심문관이 어떤 존재인가.

그들은 황제 직속 기관인 이단심문소에 속해 있으며 비밀리에 제국의 적을 색출하는 자들이었다.

제국에게 해가 되는 일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응징을 가하며, 한 번 찍으면 대귀족도 축출해내는 자들이었기에 제국인 이라면 다들 만나길 꺼리는 존재였다.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자들이 여긴 왜···?’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끼고 있을 때, 이단심문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영관 장교 한 명을 찾고 있다! 직책은 소령이며 이름은 존 메이어라고 한다!”

이단심문관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오는 순간, 같이 테이블에 앉아있던 모든 이들이 깜짝 놀라며 나를 바라봤다.

다들 무슨 짓을 한 거냐는 기색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던 나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중앙으로 나아갔다.

연회장의 모든 시선이 내게 꽂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단심문관은 안광을 번뜩이며 나를 주시했다.

“그대가 존 메이어 소령인가?”

“그렇습니다. 무슨 이유로 저를 찾으셨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알고 싶다면 말해주지! 그대는 제국법을 위반하고 외계의 불온 세력과 내통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 시간부로 피의자 존 메이어를 구속하겠다.”

불온 세력과의 내통.

그 말을 듣는 순간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짐작 가는 게 없는 건 아니었다.

시즈 일족에게서 받은 스텔스 기술.

주변 함선이 다 다운된 상황이어서 눈치채는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꼬릴 밟힌 모양이었다.

지금보다 외계 종족과의 전쟁이 훨씬 잦았던 제국 초기.

그 당시 제정된 제국법에 따르면 황제의 허락 없이 제국 외 종족과 교류하는 행위는 최대 사형에 처할 수 있는 주요 범죄로 정해져 있었다.

시즈 일족을 돕기 위해 하이퍼에테르를 제공하고, 스텔스 장치까지 챙긴 나는 이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사형 확정이란 뜻이었다.

‘이미 들킨 건가?’

-스텔스 장치는 내가 인식 저해 마법으로 잘 신경 써서 처리했다고. 엔터프라이즈호를 완전히 분해하지 않는 이상은 못 찾을 거야.

진은 끝까지 잡아떼자고 했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단심문관이 괜히 공포의 대상이겠는가?

저놈이 악마 들렸단 소릴 하는 것으로 없던 죄도 만들어 씌우는 게 그들의 특기였다.

게다가 얼마나 극악무도한지 이단심문소 지하엔 핏물이 마를 날이 없다는 이야기가 늘 뒤따랐다.

그런 무서운 놈들이 내게 가할 고통을 얼마나 잘 버틸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순순히 따라와라.”

좌우로 내 팔을 붙잡는 병사들.

이대로 제2의 인생을 마감하게 되는 건가 싶던 그때, 구원의 손길이 내려왔다.

그 정체는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카린 대령이었다.

챙- 하고 검집에서 날카롭게 뽑힌 장검.

이단심문관을 향해 검을 겨눈 그녀가 외쳤다.

“감히! 이단심문관이 황제의 명을 받고 움직이는 특무함의 장교를 겁박한단 말이냐!”

마력을 담아 울린 외침에 일대의 장교들이 몸을 감싸며 물러났다.

분노에 가득찬 그녀와 마주한 이단심문관은 고갤 숙이며 예를 갖췄다.

“기사님께서 이해해주시지요. 이 자는 불온 세력과 내통한 혐의가 있습니다.”

“시끄럽다! 혐의가 있다 해도 그것은 이쪽에서 알아서 할 일이다! 특무함의 군인이 저지른 잘못은 이쪽에서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란 걸 모르지는 않을 터!”

-오 제발. 엘프 친구···우리 좀 도와줘!

이단심문관과 맞서기 시작한 대령을 보며 진은 두 손을 꼭 모았다.

“하지만 기사님. 이미 이 자는 특무함 소속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미 수 시간 전에 남방군에 관한 소집은 해제되었고 다들 귀환 예정인 것으로 압니다만?”

“틀렸다! 존 소령은 특무함 호위에 혁혁한 공을 세운바, 이곳에 남아 좀 더 임무를 계속하기로 합의했다! 그렇지 않은가? 소령?”

대령의 푸른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여기서 내가 해야 할 말은 하나뿐, 나는 그녀가 내린 동아줄을 냉큼 붙잡았다.

“···예. 확실히 그런 제안을 해주셔서 그리하겠다고 답을 드렸습니다.”

“거짓말!”

이단심문관은 믿고 싶지 않은 듯 거짓말을 외쳤으나 이내 실언했음을 깨닫고선 입을 틀어막았다.

상대는 황제가 신뢰하는 근위기사단 소속, 그것도 절대 거짓을 고하지 않는다는 엘프였다.

황제가 인정한 기사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은 아무리 이단심문관이라 하여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진 것이었다.

그리고 표정이 좋지 않기는 대령 역시 마찬가지.

그녀는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상대를 노려보았다.

“네놈이 근위 기사의 명예를 모욕하는가···?”

“실언했습니다. 부디 용서를.”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내 눈에 띄면 그때는 주저 없이 목을 칠 것이다.”

말없이 고갤 꾸벅 숙이는 이단심문관.

그리고 대령은 엉거주춤 포박에서 풀려난 나를 끌고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모두가 우르르 비켜났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죄송합니다. 대령님. 괜히 저 때문에···.”

한참을 말없이 내 손을 잡고 끌고 가던 그녀.

레기온호로 향하던 그때, 갑자기 걸음을 멈춘 그녀가 무릎을 꿇고 쓰러져 우웩 하는 소릴 내었다.

-으악! 우리 엘프 토한다!

눈물 콧물과 함께 구토하는 카린 대령.

나는 깜짝 놀라 손수건을 꺼냈고 그와 동시에 엘프의 특성에 대해 떠올렸다.

엘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진실을 밝혀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침묵을 고수할지언정 절대 말을 지어내진 않는다고 알려진 종족이었다.

그런데 조금 전, 그녀는 나를 구해주기 위해 없던 합의를 만들어냈고 내가 중앙군에 더 남아있을 것이란 거짓말을 했다.

그것이 엘프에게 있어 어떤 의미였는지, 또는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지금 그녀가 몹시 고통스러워하는 것만은 분명했다.

나는 누가 볼세라 그녀를 부축해 서둘러 레기온호의 의무실로 향했다.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 한숨 돌리며 옆에 앉았을 때였다.

천천히 눈을 뜬 대령이 나를 바라보더니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네.”

“아닙니다. 대령님은 미안한 일을 하신 적이 없으니까요.”

“집에 돌아갈 수 없게 되지 않았나···.”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말입니다.”

-그렇지. 어디에 있든 죽는 것보단 낫잖아?

하지만 내 말에도 그녀는 연신 미안하단 말만을 되풀이했다.

“집으로 갈 방법은 어떻게든 내 알아볼 테니 조금만···.”

-조금만, 조금만 뭐요. 자니?

‘충격이 심했나 봐.’

그 말을 끝으로 대령에게선 가는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다 조용히 의무실을 빠져나왔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이곳에서 좀 더 지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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