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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군벌가 망나니-41화 (41/134)

41화

VV5610 점령 작전 개시.

사령부로부터 워프 좌표를 전달받은 주력군은 공간 도약 준비를 시작했다.

하이퍼 에테르의 영향으로 분홍빛 원을 두르기 시작한 대형함들.

사령부 통신에선 계속해서 작전에 관한 안내 사항이 전달되고 있었다.

워프를 대비해 먼저 정찰조로 투입된 함선들이 도약을 시작해도 좋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주력 부대에 앞서 워프 도착 장소를 확인하는 이유는 적의 대규모 매복이나 기습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적은 EMP 대함 미사일을 장착한 다수의 특수함을 운용 중일 것으로 예상한다.>

<각 함은 아군과의 거리를 유지하는데 각별히 신경 쓰도록.>

괜히 밀집해있다가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계속해서 주의사항이 내려왔다.

<제1군이 먼저 워프를 시작하겠다.>

<건투를 빈다.>

VV5610의 정면 공격을 맡게 된 건 제1군.

제국과 최단 거리 방향인 이곳은 가장 격렬한 전투가 예상되는 지점이었다.

레기온호는 당연히 제1군 방면에 배치되었으며 작전을 함께할 대형함의 규모는 총 4만여 척이었다.

그 외 나머지 부대는 2군, 3군, 4군으로 나뉘어 VV5610의 뒷면.

3개 지점으로 워프해 후방 기습에 돌입할 예정이었다.

11만 척이 4갈래로 나뉘어 VV5610을 감싸고 적을 일거에 소탕하는 작전이었다.

남부군에선 기껏 모인 대규모 부대의 화력을 분산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지만 결국 작전의 최종 결정 권한은 중앙군에게 있었다.

“폐하께선 다소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번 기회에 이곳을 지키는 융족 전력을 완전히 섬멸하길 바라고 계시오.”

“병력을 나누는 게 불만이라면 제1군은 중앙에서 도맡을 터이니 더는 왈가왈부하지 말게.”

혹 올바른 근거를 들어 주장한다 한들 황제 폐하의 명임을 운운하면 그걸로 끝.

그렇게 VV5610 포위 작전이 시작되었다.

거의 동시에 워프를 시작한 수만여 척의 연방군 전투함들.

분홍빛 원을 통과한 엔터프라이즈호도 이내 목표 지점을 향해 공간 도약을 마쳤다.

손톱처럼 작지만, VV5610이 맨눈으로 보이는 거리, 전 함대에 전진 명령이 떨어졌다.

푸른 불빛과 함께 미끄러져 나아감과 동시에 각 전함의 오퍼레이터들이 레이더 관측 결과를 알려왔다.

<적 함대 확인!>

<위성의 궤도를 따라 띠를 이루고 있습니다.>

<최소 3만 척 이상 확인!>

각 함급 중 가장 출력이 높은 전함은 모든 면에서 다른 함을 압도했고 레이더 기능 역시 제일 뛰어났다.

적도 우릴 발견했는지 궤도를 수정하며 대열을 갖추기 시작했다.

서로 마주 보는 일자진의 포격 형태로 첫 공방이 열릴 모양이었다.

나는 순간 이블리온 성계에서의 악몽을 떠올렸다.

적 주포 사거리가 조금 더 길어 먼저 쏟아진 공격에 아군 전열이 형편없이 당해버리고 말았던 기억.

게다가 이번 전투에서 레기온호는 전투의 선봉을 도맡고 있었다.

‘설마 또 얻어맞고 시작하는 건 아니겠지?’

-중앙의 기술을 믿어보자고.

융족 따위에게 밀릴 중앙이 아니겠지라며 상황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진.

그리고 거의 동시에, 제1군 총사령관 라이키니르 대장이 각 전함에 공격 준비 명령을 내렸다.

남방군이었다면 여기서 5할은 더 가야 사격 거리가 형성됐겠지만 중앙군의 기술력은 남방군과 큰 차이가 있었다.

<전함은 공격을 개시하라!>

<공격 개시!>

융합로에서 뻗어 나온 강력한 에너지를 주포로 충전, 수천 척의 전함이 푸른 빛줄기를 뿜어내며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명중 확인!>

<공격 명중했습니다! 놈들이 속도를 올립니다!>

<전투기 사출 확인했습니다!>

<무장한 전투기들이 접근합니다!>

사거리 바깥에서 공격하는 적을 잡기 위해선 거리를 좁히는 수밖에 없었다.

융족 전투함과 전투기가 일제히 속도를 올리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는 충분히 예상되었던 움직임이었기에 중앙군은 주포 냉각에 들어간 전함을 물렸고 동시에 순양함을 앞으로 옮겨 사격을 개시했다.

<2열! 순양함 편대! 사격 개시!>

<사격 개시!>

순양함의 주포 위력은 전함보다 약하고 사거리도 좀 더 짧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융족과 비교하면 중앙군 순양함의 주포 사거리는 거의 엇비슷한 수준.

게다가 순양함의 숫자는 무려 전함의 세 배에 달했으니 이는 무시할 수 있는 화력이 아니었다.

더 크고 화려한 빛의 파도가 융족을 강타하자 융족 전투함 수백 척이 맥없이 고꾸라져 우주의 폭죽으로 산화했다.

<공격 명중 확인!>

<적 전투기 부대, 계속 접근중!>

미사일을 장착하고 무섭게 달려드는 융족 전투기.

은색 부메랑 형태를 띠고 있기에 마치 무수한 갈매기 떼를 연상케 했다.

<아군 전투기들은 대형함을 사수하라!>

출격 명령이 떨어지자 전투기들이 비행포드를 박차고 나가 적을 맞이하러 향했다.

구축함에 실리는 전투기 숫자는 보통 10대 전후.

순양함급은 약 70대.

전함은 무려 350대에 달했다.

게다가 제1군의 규모는 무려 4만여 척.

새카맣게 우주를 물들이며 부딪친 전투기들로 인해 일대는 순식간에 혼돈으로 물들었다.

-이제부터 시작이군.

첫 공격에서 제1군은 우위를 점했지만 양측 거리가 줄어든 상황에선 이점을 살릴만한 포인트가 마땅치 않았다.

주포 사격이 어지럽게 날아다니며 전투기가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은 전장에선 어떤 사고가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는 엔터프라이즈호의 실드를 최대로 끌어올리는 한편 진의 시야를 물려받아 전장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실드에 많은 에너지를 들이면 당연히 주포의 위력은 급감하게 되겠지만 나는 과욕을 부릴 생각이 없었다.

양측 수만여 척의 전투함이 얽히는 대혼돈.

이런 전장에선 살아남는 게 곧 정답이자 진리였다.

<적 부대 일부가 아군함을 타겟했다! 각 함은 호위에 전력을 다하라!>

베데리스 소장의 명령에 호위함대의 긴장감이 최고조로 치솟았다.

그라프 출격과 충전, 정비를 담당하는 레기온호는 이미 오랜 전투로 인해 그 중요도가 적에게도 잘 알려진 상태였다.

융족 입장에선 그 어떤 전투함보다 우선 순위로 잡아내고 싶어하는 목표였고 이를 증명하듯 전투함 수백 척이 레기온호를 잡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라프 발진!>

황금빛을 뿌리며 엔진을 점화한 그라프는 출격과 동시에 작은 점이 되어 사라졌고 이내 적함의 중앙에서 크고 작은 폭발이 시작됐다.

여느 때보다 컨디션이 좋아 보였으나 호위함은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그라프의 가동 시간은 평균 15분.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면 반드시 재정비 시간이 필요했고 진짜 전투는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카린 대령이 충전을 위해 레기온호로 귀환할 때, 분노로 눈이 뒤집힌 융족 전투 부대가 레기온호를 잡기 위해 이를 악물고 들이닥칠 터였다.

5분, 10분, 15분···.

전장을 누비며 아군의 커버와 동시에 적함을 무자비하게 공격하던 대령이 귀환했고 레기온호는 그라프를 싣는 즉시 제1군의 후방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이는 이미 예정된 움직임이었다.

재충전에 필요한 시간을 아군함이 벌어주기로 전술이 준비돼 있던 것이다.

<제1군은 예정된 포메이션으로 적을 타격하라!>

총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V자 진을 꾸리기 시작한 전투함들.

만약 융족이 물러나는 레기온호를 잡기 위해 무작정 달려들면 좌우,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에 벌집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전술은 간단해 보이나 엄청나게 정교한 움직임이다.’

-중앙군은 밥 먹고 진형 짜는 연습만 하는 모양이군.

능수능란하게 진형을 조율하는 라이키니르 대장.

수만 척의 전투함이 한 몸이 되어 완벽하게 움직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중앙군 전술의 완성도를 본 순간 융족이 당할 수밖에 없음을 느꼈고, 아니나 다를까 적들은 변화무쌍한 중앙군의 움직임에 미처 따라가질 못했다.

에워싸기 좋게 펼친 중앙군 진형에 머리를 들이미는 형국이 된 것.

<사격 개시!>

진형 한가운데 적을 밀어넣고 일방적으로 때리기 시작한 상황.

우세를 점한 상황에 남은 위험요소는 적 전투기뿐이었다.

공방을 주고받아 실드 출력이 떨어진 전투함이 여기저기 많았다.

이런 상태에선 전투기가 쏘아내는 미사일도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는 지크, 지원이 필요하다.>

<이쪽에서 돕겠다.>

나는 아군 전투기의 움직임에 집중하며 혹시나 일어날 수 있는 비상상황을 경계했다.

엔터프라이즈호의 전투기는 총 열두 대.

나는 지휘관으로서 이들을 지킬 의무가 있었다.

“찰스 중위, 라인을 지켜라. 그곳에서 더 나가면 이쪽에서도 지원해줄 방법이 없다.”

<라저.>

늘 냉정한 지크와 달리 찰스 포트는 가끔 공격받는 아군함으로 움직임이 쏠리는 경향이 있었다.

자신의 손이 닿는 거리에 위험한 상황에 놓인 아군을 보면 그들을 구해주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드는 모양이었다.

찰스 포트의 전투기 조종 실력은 발군, 그대로 놔두어도 별문제는 없겠지만 나는 혹시나 벌어질 수 있는 사고를 원천차단하고자 했다.

만약 갑작스레 융족 전투기 다수가 방향을 틀어 찰스를 노린다면 그땐 어떻게 할 것인가.

엔터프라이즈호의 대공포 사거리 내에서라면 충분히 지원이 가능했지만 아군을 지키겠다고 라인이 벌어지면 아차 하는 순간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뛰어난 재능으로 남들보다 먼저 중위가 됐지만 결국 찰스도 임관 10개월 차의 젊은 장교였다.

닳고 닳은 베테랑이 아니었기에 이런 작은 실수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었다.

“각 전투기는 엔터프라이즈호와 150거리를 유지하며 본함 방어에 총력을 다하도록.”

<라저.>

그렇게 아군 전투기의 보조를 하며 레기온호의 호위를 도맡던 그때였다.

사령부로부터 비명에 찬 통신이 전군에 퍼졌다.

<적 증원! 초근접 워프 포착!>

<5천···1만! 아군 후방에도 지원이 늘어나고 있다!>

초근접 워프라니.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주 공간에서만 시도 가능한 공간 도약은 도착 지점에 그 어떤 방해물도 있어선 안 됐다.

행성의 강한 중력에도 영향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만약 그곳에 전투함이라도 있는 날엔 워프는 아주 효과적인 자살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단순히 도약이 불발되는 게 아니라 그대로 함선이 차원 경계 속에 흩어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도 융족은 초근접 워프를 시도하며 아군을 일순 당황케 했다.

그리고 정점은 분홍색 원과 함께 아군 한가운데 융족의 검은 구축함이 나타났을 때였다.

<적들이 아군 사이로 워프를 시도하고 있다!>

<충격에 대비하라!>

<각 함은 적 워프함 제거를 최우선 순위로 대응하라!>

이 순간, 제1군 통신 채널은 거의 마비가 될 정도로 폭주했고 그 혼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적 구축함에서 거대한 빛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자폭?

구축함을 통째로 개조한 우주 폭탄?

그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마주하기 싫은 일이 벌어지리란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잠시 뒤, 거대한 빛과 함께 구축함을 본체로 한 강렬한 파장이 아군을 덮쳤다.

스파크가 튀며 갑자기 굳어버린 전투함들.

순식간에 400척이 넘는 전투함이 다운되었고 이것을 본 오퍼레이터들이 앞다투어 상황을 보고했다.

<적들이 구축함을 본체로 삼아 EMP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전함으로도 막을 수 없는 위력이다!>

<각 전투기 부대는 최대한 많은 움직임으로 적의 워프를 막아야 한다!>

적 워프를 막는 것은 단 하나의 전투기만으로도 충분했다.

명령이 떨어지자 전투기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아군 전투함 근처를 벌떼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효과는 확실했다.

눈에 띄게 적 워프 성공률이 줄어들었다.

전투기에 가로막혀 워프가 실패한 융족 구축함은 그대로 차원의 미아가 돼 생을 마감했을 터였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융족은 끝까지 초근접 워프를 노리며 상황의 반전을 꾀했다.

게다가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아군이 샌드위치로 둘러싸여 앞뒤로 공격을 받고 있었다.

아군 후방으로 워프를 성공한 융족 전투함이 맹렬히 주포를 뿜어대며 살기를 드리우고 있었다.

<호위함은 레기온 호를 지켜라!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악에 받친 베데리스 소장의 통신이 호위함대에 날카롭게 퍼졌다.

하필 후방으로 이동했던 레기온호에겐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다시 앞쪽으로 이동하자니 이미 워프를 막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는 전투함과 전투기로 혼란스러움이 극에 달해 있었다.

<그라프 재출격까지 1분이다! 1분만 더 버텨다오!>

지옥의 1분.

실드를 펼치고 몸으로 레기온호를 지키던 순양함들이 하나씩 적의 주포에 떨어져 나갔고 일초일초가 호위함대에겐 그야말로 영원처럼 느껴졌다.

-존! 2시 방향 포격이다!

전함인지, 순양함인지, 혹은 구축함인지.

사격의 주체도 확인하지 못한 채 나는 실드를 최대로 펼쳐 레기온호의 사선을 방어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실드를 타격하는 적의 주포.

충격과 함께 터진 벼락이 엔터프라이즈호의 장갑에 회복 불능의 손상을 남겼다.

전함 급이었던 게 틀림없었다.

단 한 번의 공격에 엔터프라이즈호의 장갑이 뚫렸고 각 격벽이 폐쇄되며 함선이 전투불능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전함의 주포 공격을 구축함이 받은 상황.

엔터프라이즈호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허리가 부러져 폭사하고도 남았을 공격이었다.

‘···남은 시간은?’

-17초다.

그래도 어찌어찌 지옥의 1분을 버텨낸 듯 보였다.

아직 컨디션이 괜찮은 아군 순양함이 엔터프라이즈호 주변을 맴돌며 지켜주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아마 베른 중령이었을 것이다.

이 전투에서 살아 돌아간다면 선물을 꼭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던 그때, 베데리스 소장의 비틀린 신음이 채널로부터 흘러나왔다.

<이런 제길···.>

끝내 막지 못한 초근접 워프.

레기온호 머리 위로 도약한 검은 구축함이 전자기 펄스를 터트리며 일대를 암흑으로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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