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융족이 강력한 대함미사일을 소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전 부대에 전파되었다.
실드 능력을 갖춘 특수 EMP 미사일.
구축함은 사실상 버텨낼 재간이 없고, 순양함이라 하더라도 방어가 쉽지 않다는 사실은 연방군 전체에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만약 이 미사일이 전투기 전용의 공대공 미사일이었다면 연방군의 사기는 그야말로 땅에 처박혔겠지만, 융족도 특수 미사일을 많이 가지고 있진 못할 것이란 추측과 시시각각으로 불어나는 연방군의 규모는 아군에게 적지 않은 위안이 됐다.
어제까지 집계된 연방군 대형함 숫자는 중앙과 남부를 통틀어 자그마치 11만 척에 달했다.
이렇게나 아군 전력이 막강하다면 다들 비슷한 생각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재수 없게 미사일에 당하는 함선이 나오더라도 그것이 우리 함선은 아닐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코앞까지 다가온 작전 디데이.
나는 그동안 레기온호를 좀 더 자주 방문하고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카린 대령의 건강에 대한 염려였다.
나를 비롯한 엔터프라이즈호 승조원 모두의 목숨을 구해준 그녀는 이미 체력이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그나마 최근엔 대부대 집결을 위해 출격할 일이 없어져 한숨 돌릴 수 있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긴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어느 조종사가 코피를 물처럼 쏟는단 말인가.
이미 그녀의 속은 만신창이가 되어 생명의 불꽃을 태워가는 지경에 이르렀을지도 몰랐다.
‘늦기 전에 무슨 수를 내야 할 텐데.’
-정말로 그라프 개조를 노리려고?
‘손대면 중앙 연구실로 직행이겠지?’
-당연하지. 그것도 연구원이 아니라 해부대상으로 끌려갈 거 같은데?
‘······.’
중앙 기술력이 집대성되었다는 그라프는 확실히 대단한 물건이었다.
대령을 만나며 정보를 얻을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지만 보기만 하거나 손으로 만지는 정도로는 무슨 기술이,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가장 정보를 많이 얻어냈을 때는 그녀가 내게 그라프의 조종석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간단히 보여주었을 때였다.
상부 장갑을 열어 조종석으로 통하는 길을 열어주었을 때, 진이 최대한 많은 정보를 분석해 차곡차곡 내 머릿속에 정리해주었던 것.
사실 제국의 결전 병기라 불리는 그라프의 정보를 이렇게 수집하는 것은 아무리 같은 연방군이라지만 남방군 소속인 내가 해선 안 되는 일이었다.
누가 이 광경을 보고서 걸고넘어지면 재판에 넘겨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성을 알면서도 나는 그라프에 대해 더 알고 싶지 않다거나, 고개를 돌리는 식으로 회피하진 않았다.
이것이 더 늦기 전에 그녀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라프의 조종석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파장이 있어.
‘파장?’
-이 기체를 움직이는 동안엔 조종석에 엄청난 마력이 휘몰아치겠지. 그녀는 전투하는 내내 그 엄청난 압박을 견뎌야 할 테고, 몸이 멀쩡할 리가 없어.
진은 아무리 엘프라고 한들 이런 압박을 견뎌내는 게 경이로울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직접 그라프를 개조하는 건 내게도 너무 위험부담이 큰 상황.
하여 진과 머릴 맞대고 고민한 결과, 나는 최대한 중앙의 관심을 끌지 않으면서 그녀를 도울 방법을 찾아냈다.
“그럼 오늘은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즐거웠네. 곧 작전이 시작될 듯하니 조심하게.”
“예. 대령님도 몸조심하시길.”
그렇게 셔틀을 타고 엔터프라이즈호로 복귀한 나는 부랴부랴 어떤 물건을 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인맥을 총동원해 찾기 시작한 그 물건이란 바로 아티팩트였다.
아티팩트, 마법의 힘이 담긴 액세서리를 뜻하는 단어.
목걸이나 반지, 조각상이나 무기 등등.
형태에 구애받지 않는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으며 고위 마법사들만이 제작할 수 있다고 알려진 상당히 보기 드문 보물 중 하나였다.
보통 이런 진귀한 물건을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지만 마법의 정령인 진은 기존의 아티팩트를 손보는 것으로 충분히 우리에게 필요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예를 들면 그라프 파일럿에게 가해지는 마력의 압박을 감소시켜준다거나 하는 등의 효과를 말이다.
‘시간 내로 맞출 수 있을까?’
기껏 물건을 찾아도 작전이 시작된 이후라면 아무래도 그 의미가 퇴색될 터였다.
이번 전투는 융족 영토 침투 이후 가장 격렬한 전투가 될 확률이 높았다.
대령의 몸에 부담이 되기 전에 먼저 물건을 찾아 건네주고 싶었다.
그렇게 물건을 수소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아티팩트에 관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바로 마이클 준장이었다.
마이클 준장은 내가 아티팩트를 수소문하고 있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자신의 지인이 이번 작전을 펼치며 굉장히 귀한 보물을 손에 넣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 오랜 벗인 펠트 준장을 한 번 찾아가 보게. 미리 연락을 해두겠네.>
“펠트 준장님 말입니까?”
<펠트는 일전에 융족 행성 점령전을 수행하며 작은 사원을 수색하는 기회를 얻었네. 아마 융족이 종교적 의식을 펼쳤던 곳으로 짐작되는데···.>
엔터프라이즈호가 레드옵테늄 소행성 지대를 발견했던 것처럼 연방군의 수많은 함선이 이번 작전 동안 크고 작은 행운을 마주하곤 했다.
펠트 준장 같은 경우에는 그 행운이 아티팩트였던 모양.
나는 소식을 전해준 마이클 준장에게 감사를 표하며 조만간 얼굴을 비추겠다고 인사했다.
물론 말로만 감사하는 게 아니라 물질적 답례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감사의 편지를 작성하는 한편, 순금으로 만든 크레딧 기념 카드를 동봉하여 마이클 준장 편으로 보내었다.
최근 나를 갑작스레 레기온호로 보내며 누구보다 가슴이 쓰렸을 인물이 바로 마이클 준장이었다.
에이스 전투기 파일럿을 거쳐 실력 있는 구축함 함장이 되기까지.
오딘 훈련소에서 배출한 역대 인재 중 최고라는 평을 받는 나 같은 인재는 함대 사령관이라면 누구나 탐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홀랑 이적하게 되었으니 가슴이 아플 수밖에.
-이거 완전 뇌물 아니야?
‘뇌물이라니.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 인사라고.’
이런 식으로 상관에게 선물을 보내는 것은 현 연방군 체계에선 흠이 될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렇게 선물을 보내며 자신이 능력 있는 귀족가의 일원이라는 것을 어필하는 행동이야말로 귀족의 참된 도리라고 이야기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렇듯 상관을 살뜰히 챙기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는 당장 진급 평가에서부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돈이 없으면 손해 보는 것이 연방군 장교의 삶인 셈이었다.
‘펠트 준장에겐 더 큰 선물을 준비해야 할 것 같은데.’
역대 최대 규모의 전투함들이 모인 상황.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선물로 쓰기 좋은 물건을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급히 준비한 선물을 들고 펠트 준장의 전함을 방문했다.
마이클 준장으로부터 이미 이야기가 되었는지 나는 지체 없이 준장의 개인실에서 그와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바쁜 사람이라고 하니 내 길게 시간을 끌진 않겠네.”
선이 굵고 체격이 커다란 펠트 준장은 고급 시가를 태우며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티팩트를 원한다고 하던데 어느 정도까지 낼 수 있겠나.”
대뜸 내가 얼마나 많은 돈을 내놓을 수 있는지를 묻는 펠트 준장.
언뜻 재물을 밝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겐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주머니 사정이 충분하다면, 이런 상대와의 거래는 크게 어려운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제가 찾는 물건이라면 준장님이 원하시는 선을 맞춰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그전에 어떤 물건인지 간단하게나마 알 수 있을지요.”
“그럼 직접 살펴보게.”
펠트 준장은 그리 말하며 옆에 놓아두었던 보석함을 집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잠시 뒤, 보석함이 열리고 푸른 빛이 영롱한 목걸이가 등장했다.
“블루 코어에 마력 문자를 각인한 것이라는데 간이 감정을 받아본 결과, 상당한 가치를 지닌 물건이라더군.”
그의 말에 진이 고갤 끄덕였다.
검지와 중지를 합친 크기의 타원형 보석.
진은 반짝이는 보석 속에 상당한 양의 마력이 녹아있음을 확인해주었다.
-아주 오랜 시간 공들여 제련한 물품임이 틀림없다. 심신 안정화 마법이 걸려있는 것으로 보이는군.
‘성능은 어때.’
-살짝 아쉽긴 하지만 우린 시간이 부족하니까. 당장 구할 수 있는 물건으론 합격점을 줄 만해.
진의 조언에 나는 이 물건을 받아가기로 마음먹었고 펠트 준장에게 원하시는 대가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다고 고갤 숙였다.
“내 원래라면 이런 거래에는 응하지 않을 것이나 친우의 부탁이라 들어주는 것이네.”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시가를 문 입술을 비틀며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쳐 보였다.
난 처음에 그것이 50억 크레딧을 뜻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금액은 무려 500억 크레딧.
목걸이 하나 값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비싼 감이 없지 않았다.
잽싸게 정보의 바다를 뒤적이기 시작한 진이 이내 시세보다 2배 정도 비싼 금액이란 이야길 해주었다.
‘급한 쪽은 이쪽이라지만 도둑이 따로 없군.’
-마이클 준장 소개가 아니었으면 세배쯤 불렀겠는데?
‘세 배가 뭐야. 네 배를 부르고도 남았겠다.’
나는 펠트 준장의 탐욕이 대단하다는 점에 동의하며 빠르게 제안에 응했다.
비싸긴 해도 내 목숨값, 그리고 벌어들이는 돈을 생각하면 충분히 지출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렇게 500억 크레딧이란 거금을 선뜻 내놓겠다고 하자 펠트 준장의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귀한 물건을 양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쪽은 제가 따로 준비한 선물입니다.”
“오오. 이건 그랑 베르체 아닌가.”
이 우주 시대에도 와인은 훌륭한 기호품 중 하나.
병당 1억을 호가한다는 최고급 와인을 선물하자 펠트 준장은 이를 기쁘게 받아주었다.
“자네에 관한 이야긴 익히 들었네. 근래 임관한 장교 중 단연 독보적이라지?”
“과찬이십니다.”
“과찬은 무슨, 일전에 모리더스 대장님을 뵈었을 때도 자네에 관해 말씀하시는 걸 내 들었는데 말이야. 난 대장님이 젊은 장교를 그렇게 칭찬하는 걸 처음 봤거든.”
거래 성사에 기분이 흡족했는지 펠트 준장은 앞으로도 나를 소개할 자리가 있으면 최고의 젊은이를 보았다고 말하겠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돈이 좀 들긴 했지만 이렇게 또 한 명의 장성을 포섭하는군.
그렇게 거래를 마치고 돌아온 나는 곧장 아티팩트 개조에 들어갔다.
마력 기계도 없이 마력을 새기는 것은 내게도 무척 큰 부담이 되는 일이었으나 이번엔 어쩔 수가 없었다.
갑자기 공작함을 찾아가 기계 좀 빌리자고 사정을 설명하고 주변의 눈을 물리는 번거로운 작업을 할 바에야 이게 더 낫다고 진이 추천했기 때문이다.
-그럼 작업을 시작하지. 조금 고통스러울 수 있으니 집중해.
‘고통스러울 테니 집중하란 건 너무한 거 아니야?’
-마력 회로가 터져 반신불수가 되는 것보단 낫잖아.
반신불수라니···.
이게 정령이 계약자한테 할 소리란 말인가.
나는 부디 사고가 터지지 않기만을 바라며 아티팩트를 손에 쥐고 정신을 집중했다.
-집중할수록 아티팩트의 효과가 극대화될 거야. 그녀를 위해 힘을 내라고.
푸른 광채가 번뜩이고, 방 안에 화려한 빛이 밤하늘을 수놓듯 내리기 시작했다.
*
<전군은 전투태세를 유지하고 언제든 출정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라!>
마침내 그 날이 도래했다.
제국의 힘을 융족에게 보여줄 시간이었다.
전투태세를 준비하란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각 함은 워프 드라이브를 예열하며 전장에 나설 준비를 했다.
빠르게 전군의 긴장감이 치솟던 그때.
그라프 탑승을 준비하던 카린 아스트라드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존 메이어였다.
“소령?”
그녀는 존의 얼굴을 보자 저도 모르게 반가운 마음이 들었으나 이내 표정을 관리하며 말했다.
“곧 출정 명령이 떨어질 텐데 이 시간에 여긴 무슨 일인가.”
“연락도 없이 급히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대령님. 그, 일단 뒤로 좀 돌아주시겠습니까?”
“뒤로···말인가?”
뒤를 돌게 하고 무슨 짓이라도 하려는 걸까?
자신이 아는 존 메이어는 그럴 남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왠지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자신의 기운으로 인해 이쪽을 주시하는 이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소령에게 등을 돌렸고 잠시 뒤, 생각지 못한 촉감에 목을 매만졌다.
“이게 무엇인가?”
“제 선물입니다.”
“······?”
다시 뒤돌아 소령의 얼굴과 자신의 목에 걸린 선물을 바라본 카린의 머릿속엔 물음표가 잔뜩 피어났다.
전투를 앞둔 상황에 건네받은 목걸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서였다.
‘소령이 나를···?’
그녀의 머릿속이 어지러워졌음을 간파한 소령이 다급히 말을 이었다.
“대령님. 이 목걸이는 그냥 목걸이가 아닙니다. 대령님의 목숨을 반드시 한번은 지켜줄 것이니 부디 소중히 여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말에 카린은 깨닫는 바가 있었다.
확실히, 어떤 묘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 보통 목걸이가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설마 아티팩트인가? 이렇게 귀한 물건을 어찌 받겠나. 안 되네. 도로 가져가게.”
그녀가 목걸이를 풀려하자 존이 냉큼 그 손을 붙잡으며 말렸다.
커다란 손이 그녀의 손을 덮자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
“무슨 말씀입니까! 대령님은 저뿐만 아니라 제 부하들의 목숨까지 구해주시지 않았습니까. 이 정도 선물도 드릴 수 없다곤 생각지 않습니다.”
단호한 말투와 흔들림 없는 눈빛.
카린은 알겠다며 고갤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실례했습니다.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저도 함선을 살펴야 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대령님. 몸조심하십시오. 무운을 빌겠습니다.”
“알겠네. 자네에게도 무운이 깃들길···.”
그렇게 소령은 경례하며 잰걸음으로 셔틀을 향해 돌아갔다.
다시 엔터프라이즈호를 향해 멀어지는 셔틀.
목걸이를 손에 쥔 대령은 창가를 통해 한참이나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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