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아니, 왜 이러는 건데. 말을 좀 해 봐.
도무지 내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진은 설명을 요구했다.
-그래. 점령 작전이 성공할 거라고 보는 것까진 좋다 이거야. 본 적 없는 대규모 지원군이 오고 있으니까. 근데 대장의 경고는 왜 무시한 건데?
진은 내가 적절히 멈추긴커녕 영혼까지 끌어모아 베팅한 것이 상당히 못마땅했던 모양.
나는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진, 기회라는 건 말이야. 쉽게 오는 게 아니야.’
-기회는 쉽게 오는 게 아니다?
‘심지어 이 세계는 위로 빠르게 올라가려고 할수록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하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위였던 나는 모리더스 대장의 배려로 좀 더 일찍 구축함 함장이 되었다.
만약 대장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더라면 내가 구축함을 탈 수 있었을까?
한 척당 1조원이 넘는 물건이니 분명 자금의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터다.
그리고 만약 이게 구축함이 아닌 순양함, 전함이 필요한 상황이었다면?
내가 아무리 돈을 벌고 있어도 제때 필요한 자금을 모으지 못했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이뿐만이 아니야. 만약 이번 작전만 성공하면 제국은 지도를 새로 작성하게 될 거야.’
적의 주요 거점 행성인 VV5610.
이곳을 교두보로 삼아 안정화에 성공하면 제국 남부는 영토가 엄청나게 늘어날 예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아직 다 찾지 못한 수많은 자원지대와 행성이 새롭게 발굴될 것이고 이 보물들은 자치령을 받고자 하는 수많은 대귀족에게 나누어질 터였다.
-그 정돈 나도 알아.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인데. 우린 아직 자치령을 가질 수 있는 위치도 아니잖아.
‘자치령을 배분하는 건 의회의 역할이 크다는 건 알고 있지?’
-물론이지.
남부 평의회.
남방 경계의 지원군 확대, 병력 징집 같은 중요한 안건을 실행하며 황제의 손과 발이 되어 영토를 안정화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의회를 움직이는 의원들은 대귀족 중에서 선거를 치른 사람들만이 앉을 수 있다.
막강한 권력이 주어지는 자리인지라 선거를 한번 치르는데도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했고 힘이 없으면 절대 오를 수 없는 자리이기도 했다.
‘평의회 의원은 명예직 같은 게 아니야. 큰 권한이 주어지기에 자릴 차지하려면 막대한 출혈을 감수해야 하지.’
나는 진에게 말했다.
사람이 큰 대가를 치르고 자리를 차지하면 그다음에 할 일은 무엇일 거 같냐고.
정령인 진은 좀처럼 답하지 못했고 나는 간단히 말했다.
‘회수하는 거야.’
-회수한다고?
‘자신이 의원이 되기 위해 써버린 많은 것들. 대부분은 돈이겠지.’
커다란 희생을 치러가며 의원이 된 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이 쏟아낸 것들을 다시 회수하려 들 터.
이것은 내가 수십 년간 보아왔던 인간의 본성이었기에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그리고 의원들이 소모한 자금을 회수하는 방법은 어림잡아 수천 가지도 넘게 있겠지만 영토가 새로 개편될지 모르는 지금은 딱 한 가지가 눈에 띄지.’
바로 자치령 배분이었다.
‘대귀족은 누구나 하나의 행성을 자치령으로 받을 수 있지만 잘 생각해보라고. 하나의 행성이되 그 가치는 각각 제각각이야. 그럼 배정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겠어.’
-더 좋은 행성을 받고 싶다?
‘바로 그거야.’
수개월 동안 진행된 융족 영토 침투로 발견된 수많은 행성들.
VV5610은 그중에서도 엄청나게 높은 가치를 자랑했다.
아마 줄 세우자면 거의 첫손가락에 꼽힐 터였다.
단일 행성으로 조 단위에 이르는 제국 시민을 먹여 살릴 식량을 경작할 수 있고 주변엔 미카엘 스톤 광산을 포함한 대형 자원지대가 포진해 있는 행성.
그 누가 이런 귀한 행성의 주인이 되는 걸 마다하겠는가.
자치령을 원하는 귀족에게 있어 VV5610을 가진다는 건 그야말로 꿈 같은 일일 것이다.
‘비단 이곳뿐만이 아니더라도 가치가 높은 행성의 주인이 되기 위해선 평의회에 엄청난 돈을 부어야겠지. 자치령 결정엔 의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니까.’
의원들은 늘 돈을 갈구하고, 대귀족들은 그들의 주머니를 채워주며 원하는 것을 얻는다.
이는 누가 내게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간 얻은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무슨 말인지는 이해했는데 그게 이번에 네가 무리수를 두는 거랑 무슨 관계인지는 잘 모르겠단 말이지.
‘마법밖에 모르는 바보 녀석···.’
-자꾸 놀릴래?
‘VV5610처럼 가늠하기 힘든 가치를 지닌 행성을 차지하려면 군자금이 얼마나 필요할까?’
-글쎄?
‘그 정확한 답은 나도 몰라. 하지만 로비에 엄청나게 많은 돈이 필요할 것만은 분명하지.’
-언젠가 이런 고가치 행성을 차지하기 위해 돈을 왕창 벌고 싶다는 거야?
‘그게 목표냐고 물으면 영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당장 노리는 것과는 좀 다른 점이 있지.’
나는 그리 말하며 현재 자치령을 배정받을 대귀족들엔 누가 있는지.
가장 영향력이 크고 최상위 행성들을 가져갈 만한 인물은 누가 있는지 조사해줄 것을 진에게 부탁했다.
‘이번 점령 작전이 끝나면, 돈으로 치르는 또 다른 전쟁이 터질 거야. 그때가 되면 전쟁에 나서는 귀족들은 군자금 좀 빌려달라고 아우성을 칠 거고.’
-아! 이해했다! 그 사람들에게 돈을 투자하려는 거구나!
‘그래. 그러니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
나는 행성 지도를 펼치며 물음표로 표시된 VV5610을 콕 찍었다.
현재까지 발견한 행성 중엔 가장 가치가 높은 행성.
만약 그곳의 주인을 정하는 데 커다란 힘을 실어줄 수 있다면, 우린 미카엘 스톤 광산을 포함해 수없이 창출될 이권을 차지하는 데 아주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터였다.
‘이번 판은 반드시 우리가 가져가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
중앙에서 추가로 지원군이 도착했지만 정벌군의 분위기는 여전히 조용했다.
시시각각 올라오는 남부에서의 증원.
위에선 증원이 모두 끝나 완벽한 군세를 이루기 전까진 작전을 시작할 마음이 없는듯했다.
그렇게 병력의 크기는 하루게 다르게 거대해졌고 어느덧 일대에 집결한 대형함의 숫자는 5만 척을 넘었다.
연방군의 압도적인 위용.
아직 전투는 시작되지 않았으나 다들 이번 작전의 성공만큼은 의심치 않는 분위기였다.
그 시각, 나는 레기온호의 회의실에서 작전 브리핑을 듣고 있었다.
이번 작전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를 숙지하는 시간.
레기온호를 비롯해 각 호위함 함장들이 모두 참석하는 자리였는데 대다수는 지루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회의는 화상통신으로 해도 충분하지 않으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함대 사령관인 베데리스 소장은 사람의 얼굴을 직접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부류였다.
사령관이 까라는데 거기다 대고 사령관님, 좀 편하게 가면 안 되겠습니까? 하고 말대꾸를 할 간 큰 위인은 없었다.
물론 난 이 시간이 그렇게 지루하진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곳에 오면 중앙군에서 어떤 기밀이 돌아가는지를 직접 눈으로, 귀로 확인할 수 있어서였다.
회의를 마친 뒤, 베데리스 소장이 우릴 격납고로 데려갔다.
그곳엔 평소엔 보지 못했던 백색 가운을 걸친 연구원이 한 명 있었다.
루바니 중령.
그는 레기온호 휘하 연구선에서 외계 연구팀을 이끄는 인물이었다.
이 연구선이란 제국 바깥의 영토에서 확인되는 광물이나 생물체, 기타 정보와 데이터를 종합해 중앙에 보낼 연구와 보고 자료를 작성하는 임무를 지닌 함선이었다.
모두가 자리에 모이자 중령은 한 발짝 앞으로 나가서 격납고 구석에 천으로 덮여 있던 물건을 공개했다.
“이것이 이번에 융족에게서 탈취한 신형 무기입니다.”
천이 걷히며 드러난 것은 거대 미사일이었다.
그 크기가 어찌나 큰지 도저히 전투기에 달만 한 미사일이 아니었고 장교들은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 저거?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인 누구보다도, 나와 진은 이 미사일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엔터프라이즈호를 단 한 방에 다운시켜버린 EMP 미사일, 바로 그놈이었기 때문.
“이게 무엇인지 다시 한번 간단히 설명해주시겠소?”
베데리스 소장의 말에 중령은 고갤 끄덕였다.
“이것은 저번 융족과의 교전에서 확보한 신형 미사일입니다. 종류는 함대를 표적으로 한 대함 미사일이며, 특징으로는 강력한 전자기 펄스를 발생시켜 대형함의 주요 시스템을 다운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럼 평범한 EMP미사일 아닙니까?”
“그렇지 않소.”
질문을 받은 중령이 고개를 저으며 추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 미사일은 평범한 미사일과는 다릅니다. 크기가 워낙 커서 자체 내장된 실드발생기로 대공화망을 뚫어낼 수 있는 방어력을 갖추었고···.”
“세상에.”
“미사일이 실드라고?”
“여기에 고순도 블루코어를 넣어 강력한 마력 파동을 발생, 대형함의 EMP 방호를 상당 부분 무력화시킬 수 있기까지 합니다.”
“맙소사, 그렇다면 지금 전장의 함선들이 이 미사일 하나만으로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거 아닙니까?”
“이 미사일을 융족이 얼마나 양산해냈느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루바니 중령의 답변에 모두가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이것이 보통 일이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대책은 있습니까?”
“지금으로선 아직 불완전한 대책뿐입니다. 이 미사일이 만들어내는 실드 출력을 뚫으려면 전함급 대공화력은 되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럼 구축함이나, 순양함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오.”
“아군이 특수 미사일에 당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곧장 가까운 전함 근처로 피하는 수밖엔 없겠지요.”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한 중령의 반응에 호위함 함장들은 똥 씹은 얼굴이 되었다.
전장 한가운데서 EMP에 당해 시스템이 나가버리면 사실상 사망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무책임하게 전함 뒤로 숨으라는 걸 대책으로 들고 왔으니 다들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안심하시오. 그래도 연구선 지휘관으로 나도 대비책을 준비했으니.”
“오···.”
기대하는 함장들에게 중령은 다음과 같은 대책을 제안했다.
레기온호를 지키는 순양함급 이상의 호위함엔 에너지 융합로 업그레이드 기술을 적용해주겠다고 말이다.
이렇게 하면 각 함의 에너지 병기의 위력이 크게 증가하고 미사일의 실드를 뚫고 저격할 확률이 올라갈 것이란 내용이었다.
중앙의 기술을 적용해준다는 말에 순양함 함장들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이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기술이었으며 세팅을 마치고 나면 자신들은 남부 최강의 순양함을 손에 넣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반면, 구축함 함장들의 안색은 여전히 불안했다.
“그럼 저희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구축함은 구조와 출력에 태생적 한계가 있어 조정한들 큰 기대는 하기 어렵소. 이 대함미사일이 날아들거든 근처 전함이나 순양함 근처로 피하시오.”
결론은 간단했다.
순양함까진 방호능력을 끌어올려 커버할 수 있게 해주겠다.
대신 구축함은 알아서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
소령 이하 장교들이 대놓고 불만을 터트렸다.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전투 부대의 5할가량이 구축함인데 이들을 전부 총알받이로 세울 참입니까!”
“이 미사일을 개발한 건 내가 아니네. 그러니 나한테 따지지 마시게.”
소령들이 잔뜩 성이 난 가운데 나는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미 한번 당해본 물건이라 어느 정도 대책을 세우기도 했고 적어도 엔터프라이즈호 만큼은 이전처럼 쉽게 당해주지 않을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잠자코 분위기를 살피던 나는 슬쩍 앞으로 나섰다.
“중령님.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하게.”
“이 미사일, 우리가 카피해서 쓸 순 없겠습니까? 중앙의 제조선은 미사일 공정도 수시로 변형해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제조선이란 주력군 규모라면 반드시 따라붙는 특수목적함으로 원료만 집어넣으면 우주에서 미사일을 생산하는 대형함이었다.
“기술은 상당수 해독이 되었네. 하지만 실전 배치까진 조금 시간이 걸릴 듯하군. 이번 작전에 카피 제품을 생산하는 건 어렵다고 봐야겠지.”
“벌써 기술 해독이 되었다니. 중앙의 분석력은 정말 대단하군요.”
“음? 하하. 뭐 그렇지. 아무리 부정해도 다른 경계보다 중앙의 기술력이 우월한 것은 사실이란 말이야.”
“그야 당연한 말씀 아니겠습니까.”
내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중령은 입가에 미소를 그렸고 이를 지켜보던 호위함 함장들은 상당히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게 남방경계 출신인 내가 지금 같은 상황에 중령과 하하호호 하는 장면은 누가 봐도 아첨하는 모양새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내가 중령의 비위를 맞추며 칭찬을 거듭할수록, 남방 경계 출신 함장들의 시선엔 경멸의 빛이 어렸으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토록 쉽게 기술을 해독하셨다면 융족의 기술도 생각보다 별 건 아니로군요.”
“그야 당연한 말이지. 우린 그라프를 만들었을 만큼 뛰어난 기술력을 지니고 있단 말일세. 전 우주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럼 중령님이 보시기엔 남부에서도 이런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겠습니까?”
“이 EMP 대함 미사일 말인가?”
“예.”
“음. 견본을 다수 확보해서 노력하면 십수 년 내로는 되지 않겠나? 하하.”
“다른 분도 아니고 중령님께서 가능성을 좋게 평해주시니 남방군 출신으로서 희망이 샘솟는군요!”
“음! 그런 자신감으로 정진하면 남방군도 이 정도 기술력을 갖추기엔 문제없을 것이네!”
저렇게까지 하고 싶을까라며 뒤에서 수군대는 장교들.
그러나 중령에게서 원하는 답을 얻어낸 내 머릿속은 그저 기쁘기만 했다.
-이거로 뭘 하려고?
‘야수 조련.’
중령이 남부의 가능성을 확인해준 이 순간, 베팅을 위한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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