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VV5610을 향한 대규모 작전을 준비하는 동안 연방군은 부대를 뒤쪽으로 물렸다.
거리의 제약은 공간 도약을 통해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기에 안전한 후방에서 준비하는 것이 이롭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작전지휘부는 공격을 위한 지원군 충원에도 힘을 썼는데 중앙에서 추가 지원군을 요청하는 한편,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된 남부에 동원령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레기온호를 중심으로 한 중앙군이 영토를 확장하는 동안 융족도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썰물 빠지듯 군을 물렸고 덕분에 남방 경계가 빠르게 안정화된 덕분에 가능해진 일이었다.
동원령 선포 과정에서 나는 오랜만에 남부와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은하간 통신망을 활성화하려면 거리에 비례하여 퍼플옵테늄이 소모되는데 워낙 거리가 멀어 중단되었던 통신이 오랜만에 열린 것이었다.
<소령으로 진급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몸은 좀 어떠하냐?>
“저는 잘 지내고 있으니 염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곧 대규모 작전이 진행될 거란 이야기가 들리더구나. 늘 몸조심하도록 하거라.>
간만에 윌리엄 백작과 통신을 나누며 나는 메이어 가문의 소식을 일부 접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들은 건 장손인 하비 메이어에 관한 소식이었다.
그는 그동안 남방 경계에 남아 융족 잔당소탕작전을 치르고 있었는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이번에 중령으로 진급하게 되었다고 했다.
올해로 서른셋, 만약 내가 없었더라면 별문제 없이 가문을 물려받았을 인재였다.
그리고, 하비 메이어 이외에도 추가로 소식을 알게 된 이가 있었는데 바로 마르크였다.
내게 공장까지 빼앗기고 격분해 연방군에 입대했다는 이후로 처음 듣는 근황이었다.
<마르크가 중위 진급을 하게 됐다더구나.>
-거의 하늘땅만큼이나 차이가 나는군.
‘애초 특기부터가 상대가 안 되는걸.’
나는 이미 소령이고 녀석은 이제야 중위.
녀석은 지금 남방 경계 후방에서 군수 관리직을 맡고 있다고 했다.
애초 빠른 진급과는 연이 없는 보직이었으니 사실상 후계 구도에선 완전히 벗어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번에 동원령이 떨어져 하비도 그쪽으로 이동하게 됐다고 연락을 받았다.>
“하비 형이 말입니까?”
<그래. 남부 전역에 내린 동원령이니 어쩔 수 없다곤 생각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구나.>
나는 윌리엄 백작이 걱정하는 바가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 가주의 마음속엔 후계자가 나 아니면 하비 메이어 중 하나로 정해져 있을 터, 하지만 격렬한 전투 중에 우리가 둘 다 죽고 만다면 모든 것을 다시 그릴 수밖에 없었다.
‘마르크 놈은 우리가 둘 다 죽길 바라고 있겠군.’
-재수 없는 녀석이지.
그놈이 낄낄거리는 꼴이 보기 싫어서라도 어떻게든 살아남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주에게 꼭 살아 돌아가겠다고 안심시키며 통화를 마쳤고, 짧은 시간이나마 아크팩토리 쪽과도 통신을 이어갈 수 있었다.
내 연락을 받은 것은 사장이 아닌 자원탐사팀 리더 라이언 코멧이었다.
내가 사장은 어디가고 자네가 연락을 받았냐고 물어보니 그는 이미 한 달 전부터 내 연락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 달 동안이나 날 기다린 이유가 무엇이지?”
<회장님. 혹시 그쪽에 특정 광물 지대를 발견했다는 소식은 없었습니까?>
“어떤 광물을 말하는 건가.”
<아무거나 뭐든 좋습니다. 규모가 큰 광산만 확보했다면요.>
나는 그의 다급한 얼굴에서 익숙한 냄새를 맡았다.
그것은 한동안 전투에만 매달리느라 잊고 있던 부(富)의 냄새였다.
“짧고 간단하게 설명해 봐.”
라이언은 확실한 광산 확보 사실만 있으면 큰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바로 선물 거래를 통해서였다.
<이미 남부엔 이번 작전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이들이 많습니다. 작전이 성공하면 안전한 보급로가 확보 될테고 묶여있던 융족의 보물들이 대거 이곳으로 흘러들어오게 되겠죠.>
현재 시장의 소문에 의하면 정벌군이 대규모의 옵테늄 광산을 발견해 이미 남부는 물론이고 다른 경계의 옵테늄 가격까지 출렁이는 중이라고 했다.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면 곧 보급로를 통해 막대한 양의 옵테늄이 시장에 풀릴 테니 가격이 내려가는 건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문제는 사실 여부입니다. 옵테늄이 한두 푼 하는 물건도 아니고 잘못 베팅했다간 막대한 손해를 볼 수 있으니까요.>
“확실한 정보가 필요하겠군.”
<예. 단순히 광산을 찾아냈다 정도론 이윤을 창출하기 어렵지만, 매장량까지 알 수 있다면 그때부턴 진짜 전쟁이 될 겁니다.>
군수 산업 외에도 큰돈을 만질 수 있겠단 생각에 나는 정보를 확인하는 대로 답을 주겠다 말했다.
‘지금 시간이면 결례는 아니겠군.’
나는 곧장 통신을 돌려 신호음에 귀를 기울였다.
내게 필요한 정보를 가장 확실히 쥐고 있을 남자, 모리더스 대장에게 거는 통신이었다.
“충성.”
<자네···얼굴이 많이 상했군.>
“하하, 아닙니다.”
<아니긴, 정말로 몰라볼 뻔했지 뭔가,>
몰라볼 정도는 아니었겠지만 실제로 내 얼굴이 좀 상한 건 사실이었다.
지난 레기온호 호위 임무가 워낙 격했던 탓이었다.
모리더스 대장은 안 그래도 내가 중앙군 호위를 위해 보직이 바뀌었단 얘길 들었다며 막아주지 못해 미안하단 이야길 꺼냈다.
<그래. 어쩐 일로 연락한 건가.>
“대장님께 긴히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염치불구하고 연락드렸습니다.”
<소령이 내게 부탁할 일이 뭐가 있을까···. 혹시 옵테늄 광산에 관한 이야기인가?>
“······!”
역시 모리더스 대장이었다.
이렇게 눈치가 빠를 줄이야.
애초에 눈치가 없었다면 장성 최고 계급인 대장까지 오르지도 못했을 테지만 말이다.
솔직히 그렇다고 털어놓자 대장이 껄껄 웃었다.
<이거 잘하면 천하의 소령에게 빚 하나를 달아둘 수 있겠군.>
“천하의 소령이라니요. 과찬이십니다.”
농담 몇 마디를 주고받던 대장의 눈빛이 어느 순간 진지해졌다.
<지난 며칠간 내게 옵테늄 광산 확보에 관해 물어본 이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는가? 족히 백 명은 넘을 것이네. 다들 곧 전투가 일단락되고 안전한 보급로가 구축될 거로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이번 전투는 말처럼 쉽지 않을 걸세. 융족 놈들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올 확률이 높으니 말일세.>
중앙에서 추가 지원군이 도착한다고 했고 남방 경계에서도 주력 함대가 모이는 상황.
수월한 승리를 점친 것과 달리 모리더스 대장은 이번 작전의 성공 여부를 불투명하다고 여기는 듯했다.
<나라면 이런 불확실한 미래를 두고 어느 쪽에도 베팅하지 않겠네만, 자네가 원하는 답을 이야기하자면 아직 확보된 광산은 ‘없다’라고 할 수 있겠네.>
“꽤 많은 보고가 올라간 줄로 압니다만···그 중 옵테늄 광산이 하나도 없었단 말입니까?”
<보고를 많이 받은 것은 사실이네. 가령 마이클 준장이 보고를 올렸던 레드옵테늄만 해도 그렇네. 분명 적지 않은 양이었지. 하지만 남방 경계의 자원 시장에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었네.>
대장의 확인에 내 머릿속이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라이언 코멧은 이미 소문의 영향으로 옵테늄 계열 광석 가격이 완만한 하방 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대장의 말대로라면 이내 소문이 퍼질 테고 옵테늄 가격은 다시 상승세로 전환할 게 틀림없었다.
‘라이언에게 상승 랠리에 베팅하라고 지시해야 하나?’
투자를 고민하던 그때, 대장이 생각의 맥을 끊으며 들어왔다.
<단, 이건 어디까지나 내게 들어온 보고일세. 중앙군 대장들이 받았을 보고는 나로서도 알지 못하니 이는 반쪽짜리 정보인 셈이지.>
‘과연···.’
콧대 높은 중앙군 장성이라면 이런 고급 정보를 남부 연방군과 나누지 않을 법도 했다.
“하지만 대장님. 중앙군 손에 들어간 자원은 대부분 중앙으로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그들의 자원 확보 여부는 남방 경계 자원 시장과는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그게 정석이긴 하네. 자네 말이 틀린 것은 아니야. 하지만 이런 큰 전쟁이 있을 때면 중앙·외곽을 막론하고 자금 확보를 위해 야금야금 전리품이 풀리곤 했거든. 자네 말대로 그들이 그 물량을 온전히 중앙으로 가져간다면 상관없겠지만 혹시나 변심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모리더스 대장은 중앙군 고위 세력이 전리품을 남부 시장에 풀어 돈을 챙기는 경우에 관한 우려를 비추었다.
불확실한 미래를 두고 베팅하지 않겠다는 그의 말은 여기까지 내다보고 꺼낸 말이었던 것.
아무래도 정보를 선점하여 돈을 만져보긴 어렵겠다 싶던 그때, 모리더스 대장이 생각지도 않았던 정보를 공유했다.
<···여기까진 내가 다른 이들에게 해주었던 내용이고. 이제부터 하는 이야기는 아직 아는 이들이 없는 정보일세.>
“···경청하겠습니다.”
<시장에 영향을 끼칠만한 광산 하나를 내 직속 정찰 부대가 발견했네.>
모리더스 대장의 휘하 부대가 직접 광산을 발견했다는 정보.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그의 뒷말을 기다렸다.
이 정보를 알려주는 대가로 대장이 뭘 요구한다던가, 내게 무엇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같은 일차원적인 이야긴 없었다.
애초에 이런 기밀 정보는 듣는 것만으로 빚을 지는 것이고 응당 나도 대장에게 무언가를 답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해당 광물 종류는 미카엘 스톤이네.>
“미카엘 스톤이라 하시면, 실드 강화에 필요한 원석 아닙니까.”
<그렇네.>
전투함에 두르는 실드 크기와 강도를 키우는데 필수 재료인 미카엘 스톤.
그 대규모 광산 소재지를 모리더스 대장이 먼저 발견한 것이다.
<광산은 VV5610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네. 역대 최대 규모의 미카엘 스톤 광산이라더군. 점령 작전이 성공하고 주변 탐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면 금방 소문이 퍼질 것이네.>
실드생성기는 전투함 제조에 없어서는 안 될 부품.
모리더스 대장은 광산의 존재가 드러나면 미카엘 스톤 가격이 5분의 1까지도 폭락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한다면, 나는 적당한 가격을 잡아 선물 계약을 체결하는 것만으로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자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만 노파심에 경고하자면 너무 큰 이익을 거두려고 하진 말게.>
“조언 새겨듣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대장님.”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긴 다 해준 것 같군.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또 연락하시게.>
경례를 끝으로 통신을 마치자 진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내게 물었다.
-존. 이거 상당히 좋은 기회 아니야?
‘좋은 기회 맞아.’
-그런데 왜 적당히 이익을 거두라는 거지?
‘최고의 마법 정령인 진이 그걸 모른다고?’
-아, 뭔데. 재지 말고 알려줘.
이런 부분에선 진보다 내가 나은 모양이었다.
나는 왜 모리더스 대장이 내게 과욕을 부리지 말고 적당한 선에서 멈출 것을 경고했는지 설명했다.
‘미카엘 스톤을 쓰는 곳들이 어디겠어.’
-실드생성기 재료니까 군수 공장에서 사용하겠지.
‘그럼 이 정보를 가지고 우리가 거래해야 할 대상은 군수 기업이 되겠지.’
-아하.
라이언 코멧에게 일을 맡기면 아크 팩토리의 이름 대신 적당한 자원 상회를 앞세워 선물 계약을 체결하겠지만 규모가 크면 결국 꼬리를 밟힐 수밖에 없었다.
정보 우위를 바탕으로 가격이 폭락할 미카엘 스톤 거래를 제안한 것이 우리라는 게 들통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군수 기업 순위 100위 안에도 들지 못하는 아크 팩토리는 사방에서 들어오는 초거대 기업들의 압박을 견뎌야 할 터였다.
-근데 이거 애초에 재미를 보기 힘든 정보 아니야? 점령 작전이 실패하면 개발 자체를 할 수 없는 광산이잖아.
‘그러니 기다려야지.’
-기다린다고?
진이 내 말을 이해하는 데는 며칠의 시간이 걸렸다.
사흘 뒤, 엄청난 양의 하이퍼에테르를 소모하며 중앙에서 추가 지원군이 도착했다.
4개 주력군, 전함만 2천 척에 이르는 대규모 지원단이었다.
순식간에 대형함 4만여 척이 도열하는 광경은 그야말로 웅장함을 자아냈다.
심지어 아직 남방 경계군은 합류하지도 않은 상황.
이번 작전의 성공을 확신한 나는 곧장 트라카에 통신을 넣어 라이언을 찾았다.
“라이언, 네게 시킬 일이 생겼다.”
<연락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회장님.>
“지금부터 능력이 닿는 대로 미카엘 스톤의 선물 계약을 체결해라. 역대 최대 규모의 광산을 발견했다는 소식이다.”
기한은 연 단위, 거래 규모는 아크 팩토리에서 동원 가능한 모든 사내유보금과 이클립스 미사일 판매로 들어오는 내 사비, 그리고 백작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메이어 가문에서 지원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자금을 융통하라고 지시했다.
-이봐, 존! 이건 위험하다고···.
“이 정도면 군자금은 제법 탄탄해질 테지. 당연한 말이지만 레버리지도 적극 이용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시지요.>
-이런 미친···. 레버리지는 또 뭐야!
모리더스 대장이 들었다면 그야말로 기겁할만한 플랜.
남방 경계의 군수 업계를 바닥부터 흔들만한 폭풍이, 조용히 몸집을 키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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