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모든 특기 중 진급 속도가 가장 빠른 조종 특기.
자고 일어나면 동료의 계급장이 바뀐 경우가 허다할 정도로 전선에선 수많은 조종사의 진급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그만큼 조종사들이 목숨을 걸고 전투를 치르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시즈 일족과 헤어지고 얼마 되지 않아 마이더스호는 호위 순양함과 구축함 한 대씩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융족의 반격이 다시 거세지고 있었다.
상부에선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적의 중요 행성이 있을 것이라 판단,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해 일대의 수색에 나섰다.
적 영토에서 무작정 워프를 뛰다가 협공이라도 당하는 날엔 손도 못 써보고 부대가 전멸할 수 있기에 작전 속도는 둔해질 수밖에 없었다.
전함 부대끼리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탐색 범위를 넓혀나가는 동안, 나는 시즈 일족에게서 받은 스텔스 장치 분석에 몰두했다.
‘흐음···.’
작업은 시작부터 난항이었다.
각종 제품의 성능 향상과 미사일 역설계까지.
이 시대 기술에 대해선 제법 지식을 쌓았지만 시즈의 스텔스 장치는 그 레벨이 남달랐다.
시즈의 스텔스 장치엔 화이트 옵테늄을 비롯해 현재 제국 남부에선 구할 수 없는 원료가 들어 있었다.
아마 아직 제국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역에서만 나는 물건인 듯했다.
‘기존 원료 중에 혹시나 일치하는 게 있나 찾아보는 것도 일이겠어.’
나는 아쉬움을 삼키며 스텔스 기술 해독에 몰두했다.
이토록 스텔스 장치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시즈 일족의 기술이 연방군보다 우월한 것도 있었지만 이 장치를 함부로 사용하기 힘든 탓도 있었다.
레이더뿐만 아니라 육안 정찰까지 완벽하게 피할 수 있는 진짜 은신 기술.
완벽에 가까운 스텔스 장치에 대한 정보를 아는 사람은 이곳에서 나와 지크가 유일했다.
마이클 준장은 내가 외계 종족과 조우했다는 사실만을 알뿐, 스텔스 장치나 자세한 내막에 대해선 알지 못하였다.
아무리 내게 우호적인 준장이라 해도 하이퍼에테르를 주고 전략자산을 받아왔다고 하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중요한 건 이 장치가 현시점에선 복제도 할 수 없는 오리지널이란 점이었다.
‘이건 힘이 없는 자가 공개할 만한 물건이 아니야.’
내가 외계 종족의 스텔스 장치를 받아온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단순히 물건을 압수당하는 건 아주 행복한 결말에 속했다.
십중팔구는 ‘저 새끼가 외계인과 내통하고 몰래 기술을 받아오더라니까요?’가 된 뒤 중앙으로 끌려가는 미래가 될 터였다.
이러한 생각들을 정리한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진짜 죽을 지경이 아니면 쉬이 쓰기 힘든 장치.
그렇다면 이 기술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 새로운 군수 물품을 생산해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이다.
‘함선이 아니라 사람만 어떻게 숨기는 정도만 돼도 대단할 것 같은데. 어렵군···.’
그렇게 스텔스 기술에 적용된 마법 술식부터 정리하던 어느 날.
정찰조로부터 통신이 들어왔다.
<■■ 감■가 이상■■. 아무■도 전파 방■■■에 진■■ 것 같다!>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통신.
이 정도로 상태가 불량하다는 건 인근 지역에 통신을 방해하는 무언가가 깔려있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연방군, 그리고 융족 모두는 통신 방해 장치를 미리 설치해 광범위한 지역의 통신을 마비시키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방해 현상은 대개 서로에게 중요한 거점, 혹은 기습을 위해 대규모 함대를 숨겨둘 때 자주 나타나곤 했다.
“조금 전까진 수신 상태가 양호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마지막 통신으로부터 몇 분이나 지났지?”
“오 분입니다.”
“오 분이라···.”
5분 동안 방해구역 안쪽으로 들어온 것인지, 아니면 갑자기 적의 장치가 가동한 것인지는 불분명한 상황.
정찰 나간 전투기들에 귀환명령을 내릴 때였다.
오퍼레이터가 적의 출현을 알렸다.
“적 대형함 확인! 후방에서 출현했습니다!”
“적 다수 출현! 적 구축함 세 척 확인!”
“전투기 사출됐습니다! 거리 300!”
연달아 터지는 보고에 순간 머리가 뜨거워졌다.
후방이면 마이더스호 본대가 있어야 할 방향인데 어떻게 예고도 없이 구축함이 나타났단 말인가.
아무리 통신이 방해된다 한들 쉬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설마 놈들이 본대를?’
얼마 전부터 전투가 격해지며 일대에 융족 병력이 늘어나고 있던 상황.
우주는 3차원 공간이기에 아무리 정찰을 꼼꼼하게 해도 지금처럼 빈틈이 생기는 경우가 있었다.
어쩌면 본대가 적의 주력에 공격받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함장님 명령을···!”
함교 내의 시선이 내게 쏠리자 나는 망설임 없이 결단을 내렸다.
“총원 전투배치! 목표는 적 구축함 세 척! 놈들을 뚫고 본대와 합류하겠다.”
“예!”
정찰조를 제외, 본 함에 남아있던 전투기 6대가 긴급 발진하며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무리하지 마라! 곧 정찰조가 돌아온다!”
<라저.>
적 구축함 3척에서 나온 전투기 숫자는 삽시간에 50대를 넘었고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쾌적한 근무환경 같은 건 개나 줘버린 건지 그야말로 압도적 숫자였다.
그러나 엔터프라이즈호의 조종사들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
남방 경계 최고의 조종사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클립스 미사일을 장착한 그들은 이내 적들 사이로 파고들어 화려한 불꽃놀이를 시작했다.
이따금 아군 전투기가 위험한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저곳에 내가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구축함은 구축함의 역할이 있는 법.
오퍼레이터가 상대 구축함이 일제히 주포 장전을 시작했음을 알렸다.
“회피하라!”
회피기동과 동시에 최대 출력으로 실드가 펼쳐졌다.
카이오 코퍼레이션의 최신 기술이 적용된 강화 실드가 푸른빛을 뽐내며 구축함에 둘러졌고 몇 초 뒤, 융족의 주포가 쏟아지며 구축함을 강타했다.
“으윽!”
충격에 신음하는 인원들.
세 발의 사격 중 한 발은 회피, 두 발은 실드에 명중해 커다란 진동을 자아냈다.
그러나 놀랍게도 주포 공격을 연달아 받은 엔터프라이즈호의 장갑은 생채기 하나 없었다.
강화된 실드가 주포 두 방을 완벽하게 방어해낸 것이다.
같은 등급의 주포를 두 번 방어하고도 오히려 잔량이 살짝 남았을 정도.
오퍼레이터들은 엄청난 실드의 위용에 환호하며 보고했다.
“데미지 이상 무! 적 구축함 냉각에 들어갔습니다!”
“반격한다! 목표는 적 중앙이다!”
적 구축함 중 중앙에 포지션을 잡고 있던 놈을 타겟으로 잡아 중앙 주포가 에너지 충전을 시작했다.
“충전 완료!”
마법적 개조로 기존 구축함의 2배 이상의 출력을 지니게 된 엔터프라이즈호.
에너지 융합로의 가공할 출력을 받아들인 주포가 적을 꿰뚫을 준비를 마쳤다.
“발사!”
“발사!”
이렇게 곧장 반격할 줄은 몰랐던 것일까.
주포를 대하는 적의 대응이 생각보다 둔했다.
결국 놈들은 회피기동을 포기하고 실드를 펼쳤는데 나는 이 순간 공격 성공을 확신했다.
그리고 곧 푸른 광선이 적의 실드를 강타했다.
‘온전히 실드에 에너지를 쏟았어도 막지 못했을 것이다.’
적 구축함은 이미 주포를 사격하며 상당한 에너지를 소비한 상황.
결국, 최대치의 실드보다 방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섬광과 함께 발생한 폭풍이 적 구축함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미사일 수십 발이 한꺼번에 터진 것 같은 충격.
이 광경에 함교는 놀란 반응으로 가득했다.
그도 그럴게 엔터프라이즈호는 조금전 최대치의 실드를 펼치며 주포를 두 방이나 막아낸 상태였다.
그런데도 이 정도 화력을 보여줬다는 건 함의 에너지 출력이 기존 구축함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의미했다.
“목표 완전 침묵!”
“적 구축함! 함교가 통째로 날아갔습니다!”
주포를 정면으로 얻어맞은 적 구축함은 전면부가 완전히 붕괴해버리고 말았다.
이 사실에 충격을 받았는지 남은 적 구축함 두 대가 전속력으로 거릴 좁혀오기 시작했다.
주포가 재충전 되기 전에 승부를 보려는 게 분명했다.
“플라즈마 포를 가동해라! 놈들이 실드를 충전할 여유를 주지 마라!”
MK-Ⅱ 플라즈마 레이저포.
순양함의 주력 타격 무기로 사용되는 광학 병기가 빛을 뿜으며 가동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번개처럼 날아간 붉은 섬광들이 적 구축함을 강타했다.
“적 실드 완전파괴! 외부장갑 손상 확인!”
“귀환 중인 아군 전투기들에게 명령한다! 적 구축함 격침을 우선하라!”
<라저.>
실드가 벗겨진 구축함이 이클립스 미사일의 강한 화력을 온전히 받아내긴 힘들 터.
나는 아군 전투기에게 구축함 사냥을 명령하는 한편 적 전투기들이 모인 중심을 향해 구축함을 밀어 넣었다.
아군 전투기와 도그파이트를 펼치던 융족 전투기들은 난데없는 구축함 난입에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평범한 전장이었다면 해서는 안 될 일 중 하나였다.
구축함의 실드는 순양함이나 전함급에 비해 훨씬 약하기에 전투기 미사일 몇 방에 허무하게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엔터프라이즈호는 다르지.’
기존 구축함의 출력을 훌쩍 뛰어넘는 에너지 융합로가 다시 한번 함선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푸른빛으로 완성된 두터운 실드.
엔터프라이즈호는 적의 미사일을 실드로 온전히 받아냄과 동시에 레이저포와 팰렁스를 가동해 적 전투기 격추에 나섰다.
순식간에 구축된 화망, 그리고 아군 전투기의 활약까지.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제공권을 잡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크 셉타누스 지금 막 복귀했다. 적 구축함 요격에 나서겠다.>
그리고 연달아 들려오는 희소식.
정찰 나갔던 전투기들이 적 구축함에 돌진해 미사일을 뿌리기 시작했다.
놈들은 다급히 대공포를 가동했지만 전함클래스의 촘촘한 대공화망도 피해내는 에이스들을 견제하기엔 한참이나 부족한 화력이었다.
“이클립스 미사일, 전부 명중했습니다!”
“적 구축함 완전 침묵!”
“대승입니다!”
구축함 3척의 협공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는 사실에 승조원 모두가 팔을 번쩍 들며 환호했다.
승리에 기쁘긴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분위기를 다잡았다.
“아직 전투가 끝난 게 아니다! 본대 쪽은 상황이 어떨지 모르니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
“예!”
나는 밖으로 나가 있던 전투기를 불러들여 재보급을 하는 한편 항로를 마이더스호쪽으로 고정했다.
‘부디 무사해야 할 텐데.’
이미 대규모 교전이 벌어지고 있다면 고작 구축함 한 대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본대가 위험하다면 어떻게든 그들을 도와야 했다.
워프에 필요한 시간은 무려 한 시간.
이미 올가미가 쳐진 상황에선 혼자 살아나가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
나는 동기들과 지휘선이 무사하길 빌며 구축함의 속도를 최대로 끌어올렸다.
*
<기습을 당했다고? 자네 다친 곳은 없나?>
“이쪽은 괜찮습니다. 오히려 아무 일도 없으셨다고 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구축함 3척을 잡아낸 이후, 서둘러 합류한 본대.
그러나 정작 마이더스호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당연히 본대가 공격받아 뒤를 잡힌 게 아닌가 했더니 내 착각이었던 것.
그리고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는 한 시간쯤 뒤, 위에서부터 내려온 통신에 의해 밝혀졌다.
<적의 특작부대가 전선을 돌며 무작정 워프를 시도하고 있다고 하네. 놈들의 목적은 촘촘하지 못한 아군 한복판에 파고들어 통신 방해를 일으키는 것이고.>
상황이 불리해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
융족은 구축함을 제물로 삼아 무모한 작전을 벌이고 있었다.
적 배치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워프를 시도하며 통신 교란을 노렸다는 것.
나는 그제야 우리가 재수 없게 뒤를 잡혔음을 깨달았다.
융족이 워프로 도착한 자리가 하필 본대와 엔터프라이즈호 사이였던 것이다.
‘다른 구축함 함장이었으면 정말 억울했겠어.’
수적 열세였던 전투.
압도적인 출력과 무장을 통해 쉽게 승리를 거두었지만 내가 아닌 다른 함장이었다면 반대의 결과가 나왔을 확률이 높았다.
-출력 개조가 없었으면 주포 공격을 연달아 받은 시점에서 빨갛게 익어버렸을걸.
‘그럼 덕분에 살아난 건가?’
-당연하지! 그러니까 이 몸의 위대함을 더욱 칭찬해 달라고.
‘정말 고마운걸?’
-아잇! 진심을 담아서 해 줘!
진과 농담하는 사이, 마이클 준장에게서 추가로 통신이 들어왔다.
<이보게. 그런데 이번 보고를 그냥 올려도 괜찮겠나?>
“무슨 말씀이신지···?”
<단신으로 적 구축함을 세 척이나 잡아내지 않았나. 이는 엄청난 군공이 될 테지. 문제는 자네 함선인데···.>
마이클 준장은 내 함선이 특별 개조되었음은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했다.
물론 여유가 되면 함선 개조를 하는 것이 함장들 일과이니 이상할 건 없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그 정도가 조금 심하단 게 문제였다.
<일대다 전투를 하면서 작은 손상조차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중앙군도 나와 있는데 혹시나 자네에게 해가 될까 싶어 이야기한 것이네.>
기술 초격차 유지를 위한 중앙의 탐욕은 익히 알려진바, 나는 준장의 뜻을 충분히 이해했다.
-눈치가 보여서 군공을 줄여야 한다고?
‘갑자기 시찰하겠답시고 여길 뒤집는 것보단 낫긴 해.’
결국, 준장의 조언을 받아 이번 전과는 적 구축함 세 척 격침이 아닌 두 척 격침으로 수정하기로 했다.
이 정도면 뛰어나긴 해도 크게 시선을 끌 수준은 아니었다.
-매번 중앙 눈치를 봐야 하니 너무 불편한걸. 그냥 이참에 중앙으로 가자. 가서 황제를 갈아치우는 거야. 어때?
‘어허. 위험한 말 그만해.’
그렇게 이번 일은 별문제 없이 일단락되는가 싶었다.
청천벽력 같은 보직 변경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진 말이다.
<존 메이어 소령, 그대는 현 시간부로 중앙군 특무함 호위대 소속으로 보직 변경되었다. 명령을 확인하는 대로 함선을 이끌고 신속히 합류하기 바란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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