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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군벌가 망나니-34화 (34/134)

34화

귀를 쫑긋 움직이는 동물 친구들.

나는 그들에게 우릴 부른 이유에 관해 물었다.

[인간! 우리 도움 필요해!]

“도움?”

[우리 하이퍼에테르, 필요해!]

하이퍼에테르.

함선의 워프에 반드시 필요한 물질로 워프를 할 때마다 소모되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채워줘야 하는 물품이었다.

보통 양을 넉넉하게 들고 다니다 바닥을 치기 전에 충전하는 게 일반적인데 그럴 수 없는 사정이 있었던 듯했다.

“그건 좀 어려운데···.”

[왜 어려워?]

[우리 나쁜 종족 아니야!]

[시즈는 늘 정당한 대가 지급해.]

시즈일족은 자신들이 우주상인으로 통하며 온갖 우주의 비밀과 보물을 두루 알고 있다고 했다.

하이퍼에테르만 나눠주면 그에 걸맞은 대가를 주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하이퍼에테르가 연방군에게도 1급 군수물품으로 취급되어 중요하게 관리된단 사실이었다.

엔터프라이즈호는 구축함.

반면 시즈일족의 함선은 중순양함급 크기.

크기가 클수록 워프에 더 많은 하이퍼에테르가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이 필요한 양을 전부 내어주면 정작 우리가 작전을 진행하는 데 차질이 생길 게 뻔했다.

마이클 준장에게 허가를 받아 좀 나눠 받으면 해결될 문제지만 외계인에게 하이퍼에테르를 팔아도 되는지, 그것부터가 판단이 잘 서지 않는 문제였다.

“하이퍼에테르를 만약 줄 수 없다고 한다면?”

[안 돼.]

[그럼 우리 무척 실망해.]

[주포! 우리도 모르게 발사될 수 있어!]

-무서운 놈들일세?

귀여운 얼굴로 무서운 소릴 하는 놈들.

총만 안 들었지 순 강도나 다름없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상황을 솔직하게 밝히기로 했다.

나는 연방군 대위로 이런 중요한 일은 나 혼자서 결정할 수 없다.

상관에게 물어보고 허락을 구할 테니 기다려 줄 수 있느냐고 말이다.

그러자 시즈 일족은 다시 고갤 홱홱 저었다.

[우리, 황제와 약속했어.]

[인간하고 접촉하지 않기로.]

[약속 지켜야 해···. 황제 무서워···.]

[지금 비상 상황이야! 원래 이렇게 얘기! 못 해!]

사정은 몰라도 이들은 황제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하이퍼에테르, 나눠줘. 좋은 거 줄게.]

그리 말한 시즈 일족은 즉시 흥정을 시작했다.

한 번 워프를 뛸 수 있는 하이퍼에테르를 대가로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에 관해서였다.

[모든 우주 문명은 기술 좋아해. 레이더, 워프드라이브, 미사일, 방어막, 뭐든 말 만해.]

시즈는 자신의 기술을 자랑하고자 몇 가지 물건의 성능을 공개했는데 나는 매우 놀라고 말았다.

이들이 흥정용으로 내놓은 물건들의 기술이 하나같이 아득할 정도로 뛰어났던 것.

교환용으로 자신들의 주력 기술을 내놓지는 않았을 거고, 다운그레이드 된 기술이 이 정도면 시즈일족의 기술력이 정말 엄청나다는 뜻이었다.

“제품을 주겠다는 거야? 아니면 설계도를 주겠다는 거야?”

[완성 제품이야!]

[기술 이전, 황제가 싫어해!]

시즈일족은 중앙의 기술집착에 대해서도 소상히 아는 것 같았다.

물론 제품을 받으나 설계도를 받으나 내겐 그리 큰 차이가 없었지만 말이다.

“거래를 성사하기 전에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을까?”

[좋아. 빨리 물어봐!]

“이 근처에 전투의 흔적을 찾았는데 융족과 싸운 건 너희가 한 거야?”

이렇게나 뛰어난 기술을 가진 외계 종족이라면, 단일함으로 전함 3개 부대를 해치우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터였다.

그러나 시즈일족은 융족과 싸운 건 자신들이 아니라며 고갤 흔들었다.

[그거 우리 아니야.]

[우주 크라켄이야.]

“우주 크라켄?”

[그 녀석들, 하이퍼에테르 좋아해.]

[그래서 우리도 하이퍼에테르, 다 버렸어.]

그들의 말에 나는 고갤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저들의 설명에 따르면 우주를 날아다니는 거대 생명체가 있다는 모양이었다.

“거대 오징어 괴물이···융족의 전함을 터트렸다고?”

[맞아!]

[우주 괴수, 얕보면 안 돼!]

얕볼 리가 없지 않은가.

이토록 기술이 뛰어난 시즈 일족도 연료까지 버려가며 도망쳤다는 상대다.

이 순간, 내 머릿속에선 우주괴수라는 단어가 최고 위험 요소로 새롭게 등록되었다.

[이제 궁금한 거 다 풀렸지?]

[빨리 거래를 마치자!]

녀석들은 어떤 제품을 선택하든 최고의 거래가 될 거라며 약을 팔아댔다.

하지만 나는 굳이 거래한다면 일찍이 점찍어둔 물품이 있었던 터라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너희 이 함선 말이야. 은신이 굉장히 뛰어나던데 레이더에도 안 걸리는 건가?”

[안 걸려.]

“탐나는걸?”

[근데 이건 교환 대상이 아니야!]

레이더 감시를 피해 완벽 은신할 수 있는 스텔스 장치.

이거라면 그 어떤 것보다 뛰어난 가치를 지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시즈 일족은 절대 교환해줄 수 없다며 버텼지만 여기선 나도 고집을 부릴 수밖에 없었다.

이 드넓은 우주에서 작전을 하다 미지의 종족, 그것도 당장에 무기를 쓰지 않고 대화가 가능한 초고도 문명 종족과 조우할 기회가 얼마나 되겠나.

나는 스텔스 장치가 아니면 절대 하이퍼에테르를 내주지 않겠다고 버텼다.

미어캣 놈들은 우리 진짜 쏜다! 라고까지 했지만 끝까지 버티자 녀석들이 결국 두 손을 번쩍 들며 인간 독하다를 반복했다.

[스텔스 장치, 우리에게도 매우 귀해.]

[하이퍼에테르로는 가치 안 맞아.]

“제국 크레딧은 어때? 제법 많이 줄 수 있는데.”

[그거 완전 쓰레기야.]

[인간 사기꾼이야···?]

역시 크레딧으론 안 되는 모양.

나는 적재함에 레드옵테늄이 상당히 많이 실려있다고 하자 시즈 일족은 코웃음을 쳤다.

[레드옵테늄, 옵테늄 중에선 흔해!]

[퍼플 이상은 돼야 해!]

‘이럼 정말 줄 게 없는데.’

우리보다 훨씬 발전한 종족이었기에 사실상 더 줄 수 있는 게 없는 상황.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진이 슬쩍 해결책을 내놓았다.

-존, 이놈들 함선의 에너지 융합로를 한 번 볼래?

‘벌써 이곳저곳 둘러보고 오셨구만?’

-방금 파악 끝냈어.

진은 시즈 일족의 함선 투시도를 내 머릿속에 보여주었다.

그와 동시에 내 머릿속에서 아이디어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진은 마법의 대가지만 기술 향상에 있어 완벽한 녀석은 아니었다.

공학, 설계, 기술 쪽은 오히려 내가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낼 때가 많았다.

마법적인 부분은 진에게 맡기되, 설계 공학에서는 천재라 불리었던 내가 장기를 발휘하는 것.

이것이 우리 둘의 시너지를 가장 극대화하는 방법이었다.

[인간? 왜 말이 없어?]

“새로운 거래를 제안하지.”

[새로운 거래?]

아마 우리에게서 받을만한 건 하이퍼에테르 말곤 없겠다고 생각했던 모양.

하지만 잠시 뒤, 내가 꺼낸 새로운 제안에 함교의 미어캣들이 모두 폴짝 뛰었다.

“이 함선의 에너지 융합로 출력을 5퍼센트 올려주겠다.”

[빼액-!!!]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내 주변을 우르르 맴돌던 녀석들이 외쳤다.

[거짓말하면 안 돼!]

[거래의 기본은 상호신뢰야!]

“난 거짓말이란 걸 모르는 사람이야.”

이쯤에서 지크가 날 슬쩍 쳐다봤지만 난 켕길 게 없었다.

지크랑 애들한텐 거짓말한 적 없거든.

“못 믿겠으면 지금 당장 증명해주지.”

나는 시즈 일족에게서 도면을 그릴 수 있는 도구를 건네 받아 즉시 작업에 착수했다.

목표 향상 수치는 5퍼센트.

내가 그간 작업했던 물건들에 비하면 수치가 조금 낮지만, 즉석에서 영감을 떠올린 점을 생각하면 절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그렇게 펜을 쥔 손이 스크린 위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오늘 본 건 전부 비밀이야.”

“아무에게도 말 안 할게. 애초에 내가 본 게 현실이 맞나 싶을 정도라고.”

돌아오는 셔틀 안에서 나는 지크에게 신신당부했다.

비밀스러운 외계 종족인 시즈와 만난 사실을 굳이 다른 이들에게 알릴 필요는 없었다.

시즈 일족과의 거래로 셔틀엔 사람 키만한 기계 장치가 실려있었다.

하이퍼에테르를 주고 받은 스텔스 장치였다.

구축함급 크기는 물론 순양함급도 문제없이 위장할 수 있는 출력을 지닌 물건이었다.

단점이라면 위장 기능을 이용할 때마다 화이트옵테늄이 소모된다는 점이었다.

화이트옵테늄은 모든 옵테늄 계열 광물 중 가장 희귀하다고 알려진 존재.

주먹만 한 화이트옵테늄 하나면 두 종족이 멸망을 각오하고 전쟁을 일으킬 정도라고 하니 그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를 어렴풋이 짐작게 했다.

시즈 일족이 스텔스 장치를 내어주지 않으려 했던 이유에는 바로 이 화이트옵테늄이 포함되어 있던 것도 큰 역할을 했던 것.

녀석들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장치에 적용된 카트리지로 60시간가량의 스텔스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적의 감시를 완벽히 피해 60시간 동안 움직일 수 있는 구축함.

이건 그야말로 상식을 뛰어넘는 미래 기술이었다.

[인간! 이름을 알려줘!]

“존 메이어다.”

시즈 일족과 헤어지며 우린 이름과 명함을 주고받았다.

녀석들이 건넨 명함엔 다소 특이한 문구가 담겨 있었는데···.

<♚♚신뢰☆정직 ¥우주 최고 시즈 상회¥♚♚오파츠 항시 거래중☜☜ 단골 서비스100%증정※>

오히려 거래 의욕이 떨어지는 명함이 아닌가 싶지만 이 명함은 전 우주적으로 굉장히 가치가 높은 물건이라고 했다.

이 명함을 통해 시즈 일족과 우주 어디서든 연락할 수 있으며 사용은 간편하게 퍼플옵테늄을 부으면 된다고 했다.

좀처럼 새 거래를 트지 않는다는 그들이 내게 명함을 준 이유는 간단했다.

내게서 아주 높은 기술 자질을 엿봤다는 게 이유였다.

[존 메이어! 앞으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거래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제국 바깥에서라면 언제든 호출에 응답할게!]

그렇게 일을 마치고 함선으로 무사 복귀하자 대원들은 우릴 격하게 환영했다.

웬 정체 모를 적에게 주포 찜질을 당하는 게 아닌가 싶던 와중에 무사히 함장이 돌아왔으니 말이다.

거래를 마친 시즈의 함선은 유유히 사라졌고 그렇게 기뻐하던 것도 잠시.

부관이 다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함장님. 이건 어떻게 할까요···.”

매티스 중위는 바닥을 친 하이퍼 에테르 수치를 내게 보여주었다.

1급 군용 자산인 하이퍼에테르를 몽땅 내주었으니 마이클 준장에게는 시즈 일족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알려줄 수밖에 없을듯했다.

“사령관님껜 내가 직접 보고하겠다.”

처음 보는 외계 종족을 만나 하이퍼에테르를 강탈당했다고.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부하가 그리 말하면 준장도 크게 문제 삼진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쪽으론 전진할 수 없다는 정보도 얻었으니 방향을 틀도록 하자. 마이더스호에 통신을 전하고 최대한 빠르게 합류한다!”

“예!”

*

마이더스호에 합류해 지난 몇 시간 동안 있었던 일을 대면 보고하자 마이클 준장은 다친 곳은 없느냐며 날 걱정해주었다.

“제국 바깥에 다른 문명이 많다는 이야긴 들었지만 자넨 운이 정말 좋았네.”

맨 처음 제국이 확장하기 전.

초대 황제가 전쟁을 벌인 대상엔 인류를 간식으로 즐기거나 무자비한 살육을 일삼는 종족도 있다고 했다.

그런 놈들에 비하면 시즈 일족은 그야말로 천사, 운이 매우 좋았던 것만은 틀림없었다.

하이퍼에테르 문제에 관해서 마이클 준장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보급을 해줄 테니 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는 오히려 내 잘못보단 내가 올린 성과를 크게 칭찬했다.

“믿기 힘든 일이지만 자네가 직접 들었다고 했으니 사실이겠지.”

나는 그에게 정찰을 통해 찍은 전투기 사진을 보여주었다.

융족 전함을 두부처럼 뚫어버린 미지의 존재, 우주 크라켄의 존재를 알리기 위함이었다.

“대체 괴물의 촉수가 얼마나 단단하면 전함 장갑을 뚫는단 말인가···.”

사진을 보던 마이클 준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만약 내가 이 정보를 가져오지 않았더라면, 마이더스호 역시 융족 전투 부대와 같은 운명을 맞이했을지도 몰랐다.

마이클 준장은 대처하기 힘든 적이 일대에 있음을 주변 함대 사령관들에게 전하는 한편 상부에 우주괴수에 대한 보고를 정리해 올렸다.

주력군 전체에 중요하게 취급될 이러한 기밀 정보는 당연히 군공의 일환으로 취급되었으며 이번 일에 있어 나의 기여도는 제법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틀 뒤, 나는 마이클 준장에게 축하 메시지를 받게 되었다.

<축하하네. 존 메이어 소령! 내가 직접 본 군인 중 가장 빠른 진급 속도로군.>

“감사합니다!”

거의 끝까지 차 있던 군공에 우주 괴수에 대한 보고가 막타를 친 것.

연방군 장교 임관 7개월 차.

마침내 위관 장교를 벗어나 당당히 영관 장교 대열에 합류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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