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우주엔 여러 종류의 옵테늄계열 광석이 존재한다.
블루, 레드, 퍼플, 블랙, 화이트 등등.
제국의 기술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옵테늄 광석들은 인류뿐 아니라 우주의 수많은 종족에게서 귀한 대접을 받았다.
가장 잘 알려진 옵테늄 중 하나인 블루옵테늄은 함선의 동체를 만들기 위한 각종 금속합금에 주로 사용되었다.
금속과 블루옵테늄을 섞는 것으로 초고강도의 합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반면 레드옵테늄은 사용처가 전혀 달랐다.
제국은 각종 무기에 레드옵테늄을 접목함으로써 사거리와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만약 제국이 레드옵테늄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연방군은 여전히 광학병기나 주포 대신 실탄 병기만을 사용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정확한 양은 알 수 없지만 헨리가 사방에 온통 붉은 빛이 가득하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양의 옵테늄이 밀집해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나는 헨리에게 조심스레 귀환할 것을 명했다.
헨리의 귀환 이후, 우린 몇 번이나 더 소행성 지대 정찰에 나섰고 마침내 제대로 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분석 내용은 실로 놀라웠다.
“함장님. 엄청난 매장량입니다.”
분석에 따르면 소행성 지대에 흩어져 있는 레드옵테늄의 양은 무려 250조 크레딧이 넘는 수치였다.
그야말로 우주에서 보물을 발견한 격.
이런 경우 부대원들도 상당한 보너스를 받게 되기에 구축함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자자, 아직 작전 중이다. 적들이 근처에 매복하고 있을지 모르니 지원군이 올 때까지 신중을 기하도록 한다.”
“예!”
나는 부하들의 흥분을 가라앉히는 한편 마이더스호에 대형 광맥을 찾았음을 알렸다.
마이클 준장 역시 반응은 비슷했다.
그는 융족의 기습을 경계하라면서도 기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곧 그쪽으로 합류하겠네.>
잠시 뒤, 마이더스호를 비롯한 순양함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지역 정찰을 위해 서로 거릴 두고 움직이다 신호를 받고 일제히 자리에 모인 것이다.
<존 대위.>
“예.”
<주머니는 좀 채웠나?>
“아닙니다. 본대의 합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좀 채우도록 하지.>
마이클 준장은 다시 상부에 보고를 올리기 전, 각 함의 창고에 레드옵테늄을 실어둘 것을 명했다.
이에 전투 부대 인원 모두가 크게 기뻐했다.
원래라면 광물에 손대기 전, 상부에 보고부터 올려야 할 테지만 발견부대가 미리 광물을 확보하는 건 다들 관습처럼 넘어가 주는 부분이었다.
그리하여 마이더스호 휘하 대형함들이 일제히 소행성 지대에 접근해 레드옵테늄 채굴을 시작했다.
광석 채굴엔 타란튤라 봇이 동원되었다.
본래는 임무 중에 장갑이 손상되거나 외부 수리가 필요할 때 사용하는 녀석인데 지금처럼 우주에서 힘을 쓰는 작업을 맡기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다리 끝에서 불꽃을 뿜는 거미 로봇들이 우주로 나가 소행성을 움켜잡더니 비행포드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참고로 이 작업은 전부 사람이 컨트롤을 해야 했다.
AI를 극도로 경계하는 제국의 방침 때문에 어지간한 유닛은 전부 사람이 조종하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차곡차곡 창고에 쌓여가는 옵테늄 광석들.
나는 이 순간, 내가 구축함 함장이라는 사실이 아쉬웠다.
만약 전함급 함장이었다면 훨씬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을 터였다.
그것을 증명하듯 마이더스호에선 수십 대의 봇이 튀어나와 광석을 일사불란하게 나르고 있었다.
‘쳇. 순양함 함장만 됐어도···.’
-앞으로 이런 일을 수도 없이 마주할 텐데 그때마다 아쉬워하려고? 게다가 지금도 사업이 잘 되고 있잖아.
‘사업 수익하고 이건 별개야.’
-인간의 욕심이란···.
수리용 장갑도 실어둔 터라 창고는 금방 가득 차게 됐다.
정리를 마친 타란튤라 봇이 다시 벽으로 가서 일렬로 줄을 맞췄다.
오늘 엔터프라이즈호에 채굴한 레드옵테늄의 가치는 약 3천억 크레딧.
채굴 한 번으로 얻은 수익이라기엔 아주 짭짤한 규모였다.
<다 챙겼으면 정리들 하게나. 난 상부에 보고를 올릴 테니.>
함대가 충분한 양의 보너스를 확보하자 마이클 준장은 상부에 통신을 넣었다.
준장의 보고를 받은 모리더스 대장은 무척 기뻐했다.
사실 워낙 큰 광맥을 발견해서 그렇지 많은 함장들이 상부에 올릴 보고를 고의누락하고선 이것을 꿀꺽 삼키곤 했다.
회수할 방법이야 나중에 떠올리면 되니 일단 모른 체하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마이클 준장은 정당한 절차를 밟았다.
위에 잘 보이고자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원체 많은 도둑이 발생하는 점령전에선 기본만 지켜도 쉽게 돋보이는 법이었다.
<곧 그쪽으로 병력을 보내겠네. 계속 임무에 힘써주길 바라네.>
<예!>
나는 사령관들의 통신을 들으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 모리더스 대장의 지휘선엔 대체 얼마나 많은 보물들이 보고됐을까.
분명 양심을 속이지 않는 함장들은 열심히 보고를 올렸을 것이다.
그 중엔 오늘 발견한 레드옵테늄 지대처럼 알짜배기 보물도 있었을 터.
이 중 몇 개만 슬쩍 해도 군 수뇌부나 의회에선 절대 알 도리가 없을 것이다.
모리더스 대장의 양심은 깨끗할까?
그야 모를 일이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그는 천문학적인 수준의 비자금을 조성할 수도 있는 위치였으니 말이다.
*
융족 영토 침투 32일째.
엔터프라이즈호는 전자구름 지대를 마주쳤다.
이런 공간에선 레이더에 의한 적 발견이 제대로 되질 않기에 어느 때보다도 더욱 정찰의 중요성이 올라가곤 했다.
“정찰 인원은 각별히 임무에 신경쓰도록.”
<라저.>
나는 임무에 나선 정찰 전투기 요원들에게 한 번 더 집중해줄 것을 당부했다.
현재 우리는 마이더스호와 20분 이상 거리를 떨어져 앞서나온 상태였다.
아직 정보가 없는 영역을 통과할 때 연방군이 흔히 쓰는 방법의 하나로, 부대의 구축함 3척 정도를 먼저 전방으로 나서게 해 본대의 위험을 최소화시키는 전략이었다.
모든 본대가 뭉쳐 다니며 전투기 정찰을 할 때보다 구축함을 더 멀리 앞세워 전투기를 보내면 훨씬 더 먼 거리의 정찰이 가능했다.
이렇게 포메이션을 구축할 경우, 앞의 구축함은 적의 본대와 만나면 사실상 시간 벌이 및 본대에 위험을 알리는 전령 역할이 되어 생존율이 매우 떨어지는 상태가 된다.
당연히 구축함들은 이러한 역할을 맡고 싶지 않지만 장거리 작전상 전함이 격침하면 작전 자체가 불가능해지기에 10척의 구축함이 교대로 순번을 정해 이 위험천만한 포지션을 도맡는 중이었다.
나는 신경을 곤두세우며 함교를 지켰고 잠시 뒤 정찰 나간 전투기들이 정보를 전해오자 신경의 날카로움이 극에 달했다.
<여기는 찰스 포트 중위. 정찰 도중 전투의 흔적을 발견했다.>
“어떤 전투인가.”
<전투기와 대형함의 파편이 다양하게 얽혀있다. 이곳에서 대규모 전투가 있던 것으로 추측된다.>
“적의 반응은 없는가?”
<레이더는 전자기 구름 탓에 제대로 작동하질 않고 육안으로는 특별한 움직임을 찾지 못했다.>
나는 몇 대의 전투기를 그쪽으로 더 보내 정밀 정찰을 시도했고 조심스레 구축함을 전진시켰다.
적의 부대가 몸을 숨길 수 있는 소행성이나 위성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전자구름 안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영 꺼림칙했다.
레이더가 작동을 못 한다는 건 사실상 함대가 눈뜬장님이 되었다는 뜻과 같았다.
육안 정찰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맨눈을 통해 적을 찾는 덴 엄연한 한계가 존재했다.
<함장님. 융족의 전함입니다.>
“모두 정신 바짝 차리도록.”
강력한 무언가에 당한 듯 장갑이 관통당한 융족의 전함.
만약 이놈이 살아 움직였으면 더한 공포였겠으나 고철덩이가 된 전함을 보는 것도 충분히 무서운 일이었다.
전함급을 격침 시킬 수준의 화력을 지닌 세력이 이곳에서 전투를 벌였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파편은 전함 외에도 다양하게 펼쳐져 있었다.
순양함, 구축함, 전투기까지.
최소 3개 이상의 전함부대가 이곳에서 전투를 벌였고 파괴당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째 꺼림칙하군.”
그런데 이상한 건 잔해는 전부 융족의 것만 있다는 거였다.
만약 융족과 전투한 상대도 같은 조합으로 전투를 벌였다면 작은 전투기 파편 하나라도 나왔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융족과 싸웠을 미지의 존재는 그 어떤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풀리지 않는 의문에 나는 일단 빠르게 이곳을 벗어나기로 했다.
일단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 마이더스 호에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구름 지대 밖으로 나가 통신감도를 살리려 할 때였다.
진이 내 머리를 빠르게 두들기며 무언가 발견했음을 알렸다.
‘머리 아프니까 그만 때려!’
-11시, 700미터 거리에 뭔가 있다.
진의 목소리는 신중했다.
그는 레이더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는 존재였다.
‘마법으로 위장을 했단 말이야?’
-상당한 수준의 마법이다.
나는 식은땀이 나는 것을 느끼며 아무것도 모르는 척 전투기를 불러들였다.
이쪽에서 저들을 눈치챘다는 걸 알리지 않기 위함이었다.
진이 상당한 수준이라 평하는 존재.
완벽에 가까운 스텔스 기능을 갖춘 미지의 적과 단독으로 교전하긴 싫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이내 수포로 돌아갔다.
거대한 장막이 움직이더니 저쪽에서 먼저 몸을 일으킨 것이다.
그와 동시에 오퍼레이터들이 경계경보를 알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알 수 없는 함선이 출현했습니다!”
“크기 1400! 중순양함 급입니다!”
“거리가 너무 가깝습니다!”
동체를 칠흑 같은 검정으로 칠한 거대 함선이 초근접 거리에서 주포를 겨눈 채 우릴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젠장···.’
나는 순간 죽음을 직감했다.
구축함의 에너지 융합로를 개조해 실드 출력을 올려두긴 했는데 어디까지나 구축함 간에서 우위를 점할 정도지 중순급 주포를 막아낼 수준은 아니었다.
한 명이라도 살리기 위해 병사들의 탈출 포트 탑승을 지시하려는 데 상대 쪽에서 대화를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함장님! 신호가 들어옵니다.”
“내용은?”
“연방군 체계가 아닌지라 해석에 다소 시간이 걸립니다.”
잠시 후 오퍼레이터는 상대가 나와의 만남을 원하고 있다는 뜻을 알렸다.
“저들은 함장님이 저쪽으로 건너오길 원하고 있습니다.”
방법이 없기에 나는 지크 셉타누스와 함께 적함으로 건너가기로 했다.
함교 인원 일부가 나를 만류했으나 어차피 이것 말곤 뾰족한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지크는 왜 하필 나냐고 눈빛으로 쏘아붙였다.
왜긴 왜야.
네가 제일 싸움을 잘하니까 그렇지.
저쪽에서 누가 나올진 알 수 없지만 지크 같은 육탄전 고수는 드물 게 분명했다.
그렇게 셔틀이 적함을 향해 천천히 접근했다.
도킹을 마치고 상대 함선에 발을 디뎠을 때 나는 상당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눈앞에 나타난 함선의 주인은 인간도, 융족도 아니었다.
그것은 두발로 선 1미터 남짓이 안 되는 작은 동물이었다.
내가 보아왔던 동물 중 가장 비슷한 녀석을 꼽으라면 아마도 미어캣.
미어캣 머리 위에 여우의 삼각 귀를 얹으면 가장 흡사한 모습이 될 듯했다.
그들은 내게 따라오라는 듯 손짓하더니 이내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군인은 아닌 것 같은데?’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지크와 눈빛으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얌전히 녀석들을 따랐다.
그렇게 도착한 함교는 연방군의 것과 마찬가지로 대형 우주지도가 펼쳐져 있었는데 나는 여기서 한가지 특이점을 간파했다.
상대의 우주지도가 우리 것보다 훨씬 자세했다.
붉은 점이 수시로 움직이는 것을 보아 아마 융족이나 다른 세력을 마크하고 있음을 알았고 그밖에도 다양한 마커가 새겨져 있었다.
이 근방에서 잔뼈가 굵은 세력임이 틀림없었다.
[환영한다. 인간! 라다만도 있는 줄은 몰랐네!]
기계 특유의 음색이 진하게 묻어나는 말투로 상대 사령관이 인사를 건넸다.
통역기를 통해 의사를 주고받기 때문이었는데 서로의 뜻을 전하는 덴 별문제가 없을듯했다.
저들은 우리 정체를 잘 아는 듯했지만 우린 상대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적어도 제국 내에서 활동하는 종족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당신들은 대체 누굽니까?”
내가 그리 묻자 미어캣 친구가 폴짝 뛰며 말했다.
[우린 시즈일족이다. 인간, 만나서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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