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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군벌가 망나니-32화 (32/134)

32화

안타곤급 구축함.

전장 350미터, 전고 65미터, 승조원 최대 180명.

중앙 주포, 2연장 레이저포 4문, 팰렁스 4문, 16연장 미사일 발사기 2문, 함재기 수 12대.

생산을 시작한 지 10년이 채 안 된 메탈렉시온 사의 최신 함종이었다.

-안타곤 구축함? 안 타곤 못 배기겠는데?

‘······.’

진의 터무니없는 개그를 뒤로하고서 나는 홀린 듯 구축함을 바라보았다.

매끄럽게 빠진 동체.

단숨에 전투기를 요격할 수 있는 다수 무장을 보고 있노라면 심장이 두근거릴 수밖에 없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마음에 드는 모양이군.”

“정말 마음에 듭니다. 감사합니다. 대장님.”

덤처럼 받기엔 너무 큰 선물이었다.

생산이 오래된 표준 규격 구축함도 기본적으로 1조 크레딧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데 최신 함종은 최소 50퍼센트 이상은 비쌀 터였다.

“현재는 운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만 함교에 모여있을 것이네. 인원 충원은 마이클 준장이 도와줄 테니 잘 얘기해보게.”

“알겠습니다.”

“그럼 천천히 둘러보게. 함께 구경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나도 오늘은 스케쥴이 바쁘군.”

나는 경례로 모리더스 대장을 배웅했고 곧장 구축함 둘러보기에 나섰다.

이제는 전투기 파일럿이 아닌, 대형함의 함장.

서둘러 이 녀석에게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충성!”

내부로 진입하자 중사가 바짝 기합이 든 경례로 날 맞이했다.

“이름이···?”

“오웬이라고 합니다!”

“반갑네. 오웬 중사.”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마이더스호에서 오다가다 분명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아마 최소한의 인원은 마이더스호와 함께하는 편대에서 분리되어 나온 모양.

나는 중사의 안내를 받아 구축함의 내부를 쭉 둘러보았다.

-뭐야. 방이 너무 좁은 거 아니야? 식당도 작아!!!

처음엔 전투기보다 생존성이 높아졌다며 좋아했던 진은 내부를 둘러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많은 불만을 쏟아냈다.

‘여기서 지낼 건 나인데 왜 네가 화를 내고 그래.’

-계약자의 컨디션 관리는 나한테도 중요하다고. 그리고 실제로 좁잖아!

내부 마감은 신형이라 깔끔했지만 확실히 통로와 생활 공간이 협소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지냈던 마이더스호는 1800미터에 달하는 전함이었다.

겨우 350미터인 구축함과 비교하면 당연히 좁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빨리 진급해서 전함이나 타자.

목숨 아까운 줄 알면 연구직으로 빠지자고 할 땐 언제고.

이제는 전함을 타고 싶으니 진급 속도를 올려달란다.

하지만 이미 내 진급 속도는 유례없는 수준이었다.

‘아마 이번 작전 도중 진급하게 되겠군.’

길어도 2~3개월.

그때면 나는 계급장이 소령으로 바뀔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충성! 존 대위님의 부관을 맡게 된 매티스 중위라고 합니다.”

“잘 부탁하지.”

“예!”

이제부터 나와 함께 함교를 지키게 될 부관과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이동준비에 들어갔다.

생체 인식으로 인증을 마치자 엔진이 점화하는 진동과 함께 일대의 우주 지도가 펼쳐졌다.

“엔진 정상 가동되었습니다.”

“각 파트 이상 무, 출항에 문제없습니다!”

오퍼레이터들의 싸인을 받으며 마이더스호와의 합류를 지시하려는데 투명 스크린이 떠올라 내게 필기를 요구했다.

함명을 등록해달라는 구축함 시스템의 요청이었다.

‘이름이라. 뭘로 하면 좋을까.’

-또 이클립스라고 할 건 아니지?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나쁜 이름은 아니지 않나?’

-성의가 없잖아. 성의가.

첫 대형함의 이름.

고민하던 나는 문득 세계대전 당시 불침함으로 유명했던 항공모함을 떠올렸다.

-엔터프라이즈? 무슨 뜻이야?

‘좋은 이름이야. 행운을 가져다줄 이름이지.’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은 불침함.

나는 그 강한 행운이 내게도 깃들길 바라며 구축함에게 엔터프라이즈라는 이름을 달아주었다.

“출항하라. 마이더스호와 합류하겠다.”

“예!”

우주 정거장의 락 장치가 해제되고, 구축함 엔터프라이즈의 첫 항해가 시작됐다.

*

‘금방 작전에 뛰어들 줄 알았더니만.’

마이더스호와 합류 이후.

나는 구축함 운용에 익숙해지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였다.

하지만 정작 작전 시작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우린 그저 트라카 인근의 우주 공간을 유유히 배회할 뿐이었다.

작전 개시가 늦어지는 이유는 중앙군 때문이었다.

그들은 저번 융족과의 전투로 상당한 양의 실탄과 미사일을 소모했다.

중앙군 대장은 그것을 다 채우기 전까진 꿈쩍 않겠다고 선언했고, 특수함에서 미사일을 생산하며 언제 끝날지 기약 없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이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베니건 후작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오딘을 탈환해야 복구에 들어갈 텐데 이렇게 머뭇거리는 동안 행성의 피해는 더 심해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소개 작전 동안 융족에게 받은 공격으로 후작은 라말론 자작을 비롯한 일가친척 상당수를 잃는 아픔도 겪었다.

나는 전투로 목숨을 잃은 전사자들의 합동 장례식에서 검은 옷을 입고 우는 베로니카 라파엘을 보았다.

자작의 사망으로 나와 영애 사이에 있던 혼담은 자연스럽게 없던 일이 된 듯했다.

전쟁으로 인해 오딘은 쑥대밭이 된 상황.

후작은 여전히 후작이었지만 오딘의 복구가 끝나기 전까지 그는 빈털터리나 다름없었다.

라파엘 가문이야 이름난 명문가이니 복구는 어떻게든 해내겠지만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시간과 재력을 들여야 할 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후작 입장에선 허망하겠군.

‘평생 일군 기반이 무로 돌아간 거나 마찬가지니까.’

만약 트라카가 저런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윌리엄 백작은 화병으로 쓰러졌을 거다.

라파엘 가문과 달리 메이어는 트라카 하나로만 일어선 가문이었으니까.

트라카가 무너지면 재기할 여력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좋았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남방 경계 곳곳에선 작위만 남은 귀족들의 피눈물이 매일같이 쏟아지는 형편이었다.

‘일단은 작전 개시까지 최대한 대비를 해보자고.’

중앙군의 늑장으로 미뤄진 출항이지만 내게는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덕분에 나는 구축함의 승조원을 여유 있게 엘리트로 채울 수 있었다.

지크 셉타누스, 찰스 포트, 헨리와 로저, 미하일까지.

나는 훈련소 동기 중 무려 다섯 명을 엔터프라이즈호로 받아올 수 있었다.

이들 모두는 마이더스호의 우수 조종사로 자리매김했던 상황.

리카르도 소령은 엘리트 파일럿 다섯 명이 이동하는 데 조금 불편한 기색을 보였지만 어차피 같은 함대 식구인지라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에 좋은 점은 한 가지 더 있었다.

즉시 생산에 들어간 이클립스 신형 미사일을 공수받을 수 있었다는 것.

덕분에 엔터프라이즈호의 무기 창고엔 헬파이어 미사일, 샤프슈터와 더불어 이클립스 미사일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

특히 이 신형 미사일 지급은 누구보다도 마이클 준장이 기뻐했다.

아직 전군에 지급할 정도로 물량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일 먼저 신형 무기를 지급 받은 것이다.

“이번에도 자네 업적인가?”

“운이 좋았습니다.”

“운은 무슨! 자네가 손만 댔다 하면 무기 성능이 널뛰는 건 이제 주력군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야.”

그 정돈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내 이름을 알아주는 사람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괜찮으면 출항 전에 이야기 한 번 나누자는 요청이 종종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어쩔 땐 장성급에서도 호출이 들어왔는데 쌓여가는 연락으로 일상생활이 불편한 지경에 이르자 나는 사령관의 이름을 팔아 만남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남들은 출항 대기로 한가하다는데 난 뭐 이리 바쁜지,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기에 불필요한 미팅으로 시간을 낭비할 수가 없었다.

‘왜 나만 바쁜 것 같지?’

-남들은 우리처럼 사업을 잘하지 못하니까.

이클립스 미사일 생산에 따른 공급 계약이 체결되며 내 통장엔 생각지 못한 거금이 꽂혔다.

라이센스 계약과 더불어 1차 거래로 무려 4조 5천억 크레딧이라는 거금이 입금된 것이다.

나는 이중 절반을 트라카 공장 운영과 기술 개발쪽으로 돌렸고 남은 돈은 구축함 업그레이드를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

“예산이 얼마 시라고요?”

“2조 크레딧 정도 생각하고 있네.”

“큰 금액의 투자를 결정하셨군요. 한번 업그레이드하면 안정성이 크게 향상되니 탁월하신 선택입니다.”

카이오 코퍼레이션, 남방 경계 군수 기업 3위에 해당하는 초거대 기업.

언제나 연방군의 좋은 파트너였던 그들은 큰손 고객들을 위한 찾아가는 세일즈에 늘 적극적이었다.

물론 1위와 2위도 방문 판매에 적극적인 건 마찬가지지만 아쉽게도 남부 은하 전역이 불타는 관계로 출항 전에 제품을 공급해줄 수 있는 곳 중에선 카이오의 순위가 가장 높았다.

직원이 건넨 전자 카탈로그.

진은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물품만을 골라내었다.

“CW실드 강화기랑 여분의 반응 장갑판 30개, 복구용 타란튤라봇 4대, MK-Ⅱ 플라즈마 레이저포로의 업그레이드를 원하네.”

내 주문에 직원이 자세를 다잡으며 안경을 매만졌다.

“선택하신 제품들은 당사 최고의 제품임이 틀림없으나 에너지 문제를 겪으실 것으로 예상합니다. 특히 MK-Ⅱ 플라즈마 레이저포는 순양함 급은 돼야 문제없이 운용 가능한 녀석이고요.”

판매원은 플라즈마 포를 다는 순간 현재 구축함 출력으론 동시에 최대 무장 가동을 할 수 없을 것이라 조언했지만 나는 상관없다고 답했다.

“괜찮네.”

동시에 모든 무장을 활용할 수 없으면 이건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다운그레이드가 되겠지만 여기엔 다 합당한 근거가 있었다.

-개조만 마치면 출력이 130퍼센트는 더 오를 거다.

이미 진과 함께 에너지 융합로의 개조를 시작한 상황.

구축함을 관리하며 정비도 주체적으로 맡게 됐으니 마구잡이 개조를 눈치를 안 보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손님이 원한다는 데 물건을 내주지 않는 판매원은 없다.

그는 알겠다며 계산기를 두드리고선 내 예산이 살짝 모자란 점을 전했다.

“주문해주신 제품을 전부 제공해드리자면 할인을 포함해 2조 3550억 크레딧이 필요한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맨 처음 잡았던 예산과는 상당히 차이가 나는 상황.

하지만 나는 아무 문제 없다는 듯 OK싸인을 했다.

모자란 돈은 빌리면 그만이었다.

마침 딱 좋은 대출처가 근처에 있지 않던가.

나는 돈 좀 빌려달라는 연락을 위해 통화를 걸었다.

“제인? 나야, 대출이 좀 필요한데. 어. 그래. 아니야. 많이는 필요 없고. 음. 4천억 크레딧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지금 바로 가능하지?”

*

5524년 11월.

중앙군이 가세한 모리더스 대장의 주력군은 파죽지세로 옛 영토를 회복했고 더 나아가 융족의 경계로 진입해 작전을 수행했다.

거대 모선의 격침이 원인이었는지 융족의 전투 대응은 생각보다 미약했고 우리는 손쉽게 적들을 격파할 수 있었다.

군은 보급 루트를 확보하며 계속해서 영토를 넓혀나갔다.

이제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우주는 한 번도 제국의 발길이 닿은 적 없는 미개척 지대.

연방군의 진격 속도가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모리더스 대장은 진격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우려했으나 한번 터진 기세는 마치 불꽃과 같아 말리기가 힘들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적의 영역에서 새로운 행성이나 자원을 확보하면 공로자에게 어느 정도 기여도를 인정해주는 제도 때문이었다.

이렇게나 넓은 우주지만 인류가 살기 적합한 행성은 늘 중요한 가치를 지녔고 희귀 광물이나 특수 자원을 품은 행성의 가치는 그중에서도 각별한 것이었다.

만약 이런 행성의 발견자로 등록될 경우.

향후 자치령의 주인을 결정할 때 얼마든지 목소릴 낼 수 있었다.

대귀족인 자신에게 해당 행성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이다.

똑같은 행성이어도 그 가치는 천차만별.

설령 행성을 관리하지 못할지라도 크레딧 등의 보상이 주어지기에 현재 주력군의 모든 군인은 눈에 불을 켜고 행성 확보에 달려든 형국이었다.

-그래도 너무 위험하지 않나? 이런 적대 세력 한가운데 자치령을 꾸린다는 게.

‘제국 영토가 계속 넓어질 걸 생각하면 노른자위를 일찍 선점한다고 봐도 괜찮겠지.’

진과 함께 미래를 의논하고 있을 때였다.

전방 순찰을 나간 헨리, 로저 페어로부터 통신이 들어왔다.

<■행성 지대를 ■■했다.>

수신 상태 불량에 오퍼레이터가 다시 답신을 요청했다.

“수신 상태가 좋지 않다. 다시 한번 말해주기 바란다.”

<소행성 지대를 발견했다.>

소행성 지대는 탐색하다 보면 밥 먹듯 발견하는 것들이니 굳이 보고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뭔가 특이사항을 발견했다는 것.

오퍼레이터가 긴장한 채 물었다.

“적기를 포착했나?”

<아니다. 연락한 이유는 이 소행성들 때문이다. 이 광경을 모두가 봤으면 좋겠군. 이 소행성들은 다들 빨갛게 빛나고 있다.>

“빛이 나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헨리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레드옵테늄이다. 소행성 상당수가 레드옵테늄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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