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아론다이트.
군수 산업뿐만 아니라 마법을 응용하는 모든 산업에서 정밀 회로를 새기기 위해 꼭 필요한 자원.
모리더스 대장은 아론다이트라는 이름에 사정을 알겠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군수 기업을 도맡고 있다고 했던가?”
“순위권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작은 기업입니다.”
“그거야 기업이 너무 많으니 그럴 뿐이고. 아론다이트라···.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려는 모양이군.”
“예.”
“어떤 종류인지 알려줄 수 있겠나?”
모리더스 대장은 신형 기계를 손에 넣으면 개발할 아이템이 궁금했던 모양.
여기선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솔직하게 답해주었다.
“신형 미사일입니다.”
“미사일 말인가? 내 전문가는 아니네만 미사일엔 그 정도로 정밀한 회로 설계가 필요 없는 것으로 아는데···.”
“헬파이어 미사일보다 우수한 성능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나 말인가.”
“실드 방호시 타격 위력은 15퍼센트 증가. 순수 장갑 관통력은 31퍼센트 증가로 예상 중입니다.”
“맙소사.”
입가를 매만진 모리더스 대장은 진심으로 놀란 반응이었다.
10위 안쪽의 초거대 군수 기업인 메탈렉시온의 역작, 헬파이어 미사일.
융족과의 전쟁이 최고조에 달한 지금은 전선 이곳저곳에서 제발 보급 좀 해달라고 아우성인 제품이었다.
“그 정도 무기라면 군수 업계가 필시 요동치겠군···. 자네가 직접 개발한 건가?”
“그럴리 있겠습니까. 연구원들이 머리를 맞댄 결과물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대단하군. 근래 순양함 ECU 개선 작업에서도 성과를 낸 것으로 아는데···조종만 전담하기엔 아까운 재능이야.”
“과찬이십니다.”
“그래도 자네 재능이면 역시 조종사를 하는 게 백번 낫지. 연구자로 장성 진급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니 말일세.”
-어디서 비명횡사하지만 않으면 말이지.
진이 툴툴거리는 동안 모리더스 대장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자네가 원하는 아론다이트가 평범한 것은 아닐 테고, 크기가 중요할 테지?”
“그렇습니다.”
“우리 가문에 근래 대형 아론다이트가 들어온 것은 맞네. 하지만 그것의 처분은 나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네.”
-뭐야. 뭐든 다 도와줄 것처럼 하더니만···!
이 대목에선 나 역시 진과 생각이 같았다.
목숨을 살려줬어도 그건 너무 과하다고 선을 긋는 건가 싶었던 것.
하지만 아니었다.
“대형 아론다이트는 기술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재료지. 때문에 각 가문에서도 최고로 중요하게 여기는 자원 중 하나라네. 원래라면 도와주기 힘들었을 테지만 자네 부탁이니···어떻게든 해결책을 마련하고 싶네.”
-우리가 괜한 오해를 했군. 흠흠.
모리더스 대장은 내게 도움이 됨과 동시에 가문이 허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건을 제시했다.
“아론다이트 광석을 직접 내주는 것은 어렵지만 임대 형식이라면 어떤가.”
“임대 말입니까?”
“크롬원 군수 공장의 신형 라인을 제공하겠네. 자네가 원하는 최신 마력 기계를 배치한 공장이지. 기술 유출에 관련해선 신경 쓰지 않아도 좋네. 공장의 중책은 오랫동안 전부 가문의 일원들이 맡아 입단속이 잘되어 있네.”
모리더스 대장의 제안은 신공장 임대, 기간은 20년에 해당했다.
아론다이트를 영구 소유할 수 없는 건 아쉬운 일이나 20년이면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 정도 시간이면 대체재를 연구하거나 아론다이트 광석을 새로 구할 여유가 있었다.
게다가 트라카엔 공장을 새로 지어가며 라인을 확보하는 상황.
자금력이 문제였던 와중에 크롬원의 공장을 끌어다 쓸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신형 미사일 생산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공장의 생산량은 어떻게 됩니까.”
“원자재가 충분하면 하루에 1만 발 생산도 가능하네.”
‘엄청나군.’
-트라카에 짓는 거랑은 비교도 안 되는데?
하루에 미사일 1만 발 생산이라니.
엄청난 대형 라인을 갖춘 공장인 건 분명했다.
이 정도면 만족스럽지 않으냔 눈빛으로 바라보는 모리더스 대장.
하지만 나는 한술 더 떠 추가 딜을 시도했다.
“20년간, 무상임대를 해주시겠단 겁니까?”
이 정도 규모의 공장을 무상으로 임대한다는 건 말 그대로 도둑놈 심보.
하지만 주력군 대장의 목숨값이면 이 정도는 충분히 제안해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크롬원의 신형 군수 공장을 무상 임대한다면, 이 한 번의 거래로 수십조 크레딧을 아득히 능가하는 이익 창출이 가능했다.
나는 이 제안에 모리더스 대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당황하거나, 혹은 불쾌해하거나.
하지만 대장의 반응은 내가 예상했던 그 어떤 것과도 달랐다.
그는 조용히 웃을 따름이었다.
“좋네! 무상임대 해주지. 단, 조건이 있네.”
반대로 조건을 달 줄이야.
역시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생산 물량의 공급권을 우리에게 주게. 수익은 자네가 가져가면 되고. 원하는 건 공급권뿐이네.”
미사일을 거래하며 나오는 수익은 내게 주겠다.
그저 누구에게 우선 공급할지 결정하는 공급권을 달라는 것.
이게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대장님이 리베이트를 노리는군.’
-리베이트?
헬파이어 미사일은 등장 이후 최단 기간에 남부 연방군의 핵심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없어서 못 파는 미사일.
군수 기업 관계자들은 헬파이어 미사일의 독주가 최소 10년은 지속하리라 예측했다.
융족과의 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각 자치령의 귀족들은 미사일 비축분을 확보하고자 무던히도 애썼다.
미리 전쟁을 준비하지 않는 세력은 이 험난한 우주시대에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만약 더 강한 위력의 이클립스 미사일이 시장에 풀리면 어떻게 될까.
전쟁이 치열해졌기에 헬파이어 미사일의 수요는 꾸준할 테지만 최전선에서 작전을 진행하는 함장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미사일을 손에 넣고 싶어할 것이다.
강한 전략 무기는 위기의 순간에 함대의 운명을 좌지우지한다.
만약 무기의 수량이 부족하고, 서로 물량을 원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공급을 받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뒷돈을 건네는 것이다.
실제로 군수 기업의 수많은 중진들이 이러한 거래를 통해 호주머니를 채워 왔다.
모리더스 대장은 우선 공급권을 손에 쥐고 무상임대로 인한 손해분을 메꾸려는 계획일 터였다.
“대장님. 그래도 공급권 전체는 조금 많지 않습니까? 공장을 무상 임대했을 뿐, 생산에 필요한 재료는 제가 준비해야 합니다.”
“이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정이 없구만! 말하지 않았나. 아론다이트의 소유권은 나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나도 가문을 설득할 무언가가 있어야 할 게 아닌가.”
모리더스 대장이 프랑크 가문의 가주가 아니니 충분히 이해는 되는 부분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대장님의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단, 마이더스 호와 트라카 방위군에 필요한 물량은 부족하지 않게 빼주시면 좋겠습니다.”
“그야 두말할 소린가. 꼼꼼하게 챙기겠네.”
내가 꾸벅 고갤 숙이자 모리더스 대장은 한시름 놓았다는 분위기였다.
“이만하면 늙은이의 목숨값으로 나쁘지 않은 거래라고 생각하네만.”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그나저나 이건 별개 이야긴데 말일세. 혹시 생산 라이센스를 추가 발급할 생각은 없나? 중앙군의 지원으로 적을 몰아냈다곤 하지만 여전히 남방 경계 전역이 전쟁으로 황폐해지고 있네. 만약 자네가 다른 대형 공장에서도 신형 미사일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이번 위기를 더 빠르게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게야.”
모리더스 대장은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 신식 마력 기계를 보유한 가문들에 계약을 주선해 보겠다고 했다.
이렇게 될 경우, 미사일의 전체 생산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모리더스 대장이 쥐게 될 우선 공급권의 가치는 오히려 떨어지게 된다.
오직 남방 경계의 안전이란 대의를 위해, 진지하게 부탁하는 대장을 보며 나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추가 계약 진행에 관해서도 부탁을 좀 드리겠습니다.”
“염려 말게.”
어느새 빈 술잔.
모리더스 대장은 잔을 채우는 대신 은하간 통신망 접속을 택했다.
“모리더스일세. 가주께 전할 중요 사항이 있다고 전해주시게.”
*
융족과의 전투를 마치고 대기 상태에 들어간 지도 어느덧 꽤 시간이 흘렀다.
중앙의 대처는 생각만큼 빠르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서야 입장을 들을 수 있었고 중앙의 선택은 기존 제국 영토의 수복, 그리고 역으로 융족의 심장부를 향해 진격하는 결정을 내렸다.
“폐하의 용덕(勇德)이 높으신바, 그라프와 우리 중앙군이 그대들과 함께할 것이오.”
그라프.
전함 사이를 누비며 실드를 눈 깜짝할 새에 파괴했던 제국의 결전 병기.
여기에 제국 최신함으로 구성된 2개 주력군이 동참하는 형태라면 충분히 융족의 영토로 밀고 들어갈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현재 전쟁은 남방 경계 전역에서 치러지고 있었다.
이미 무너진 오딘을 비롯해 다른 방면의 전투는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은 상태였다.
중앙에서 제대로 된 세력을 지원해준 곳은 이곳이 유일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수많은 남방 경계군 장성들이 우려를 표했다.
“진격하기 전에 남방 경계의 안정화를 도모해야 하지 않겠소?”
“이대로 적의 영토로 들어가는 것은 무모한 작전이 아닌가 싶습니다.”
“맞습니다. 방어를 견고히 하고 움직이는 것이 상책일 듯합니다.”
장성들은 남방 경계 내부에 있는 적을 먼저 처리하길 원했다.
언제 끝날지 모를 긴 원정을 떠난 사이, 자신의 가문과 행성이 융족에 의해 불타 없어지는 걸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앙군의 의지는 확고했다.
“남방 경계의 방어는 오스카 원수께서 힘써주실 터이니 그대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소.”
오스카 원수.
황제의 명을 받아 남방 경계를 지키는 남부 연방군의 최고 정점에 선 자였다.
그의 휘하엔 경계군이 편성되어 있는데 이는 전함만 5천 대가 넘게 포진된 대규모 전투 부대로 남방 경계 전력의 핵심 부대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설명에도 장성들의 불안함은 여전했다.
지금껏 오스카 원수가 놀고 있어서 전황이 불리했던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경계군의 힘은 분명 막강했다.
수십만에 달하는 대형함이 일제히 주포를 쏘아내면 그 어떤 적이라도 분쇄할 수 있을만큼 말이다.
하지만 경계군은 병력을 쪼개어 운용할 수 없었다.
이는 경계군이란 덩어리가 쪼개져 스스로 전력을 약화, 각개 격파당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황제의 칙명에 의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남부 전역이 불타는 상황에선 경계군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모든 지역을 커버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장성들은 경계군이 모든 곳을 커버할 수 없다며 어려움을 토로했지만 중앙군 대장은 더는 듣고 싶지 않다며 반발을 일축했다.
“이는 지엄하신 폐하의 명이니 더는 왈가왈부하지 마시오.”
이러한 결정에 나는 비교적 마음이 편한 쪽이었다.
적의 모함이 포함된 대군을 트라카 주변에서 완벽히 소탕한 데다 크롬원의 군수 공장은 남방 경계 깊숙한 후방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긴 원정을 나서는 동안 고향이 불타거나, 사업에 차질을 빚을 확률은 거의 없는 셈이었다.
그렇게 연방군이 대규모 반격 준비를 진행하고 있을 때, 내게는 또 한 번의 새로운 변화가 있었다.
“이게 뭡니까?”
“아론다이트 건과는 별개로 내가 자네에게 주고 싶어서 마련한 것이네.”
-이야. 우리 대장님. 통이 크시네!
도킹 스테이션에서 바라보는 우주.
모리더스 대장의 호출로 함께한 동행 목적지는 놀랍게도 트라카 우주 정거장이었다.
그리고, 정거장에서 대장과 함께 마주한 건 출격 준비를 마친 은색의 신형 구축함이었다.
“마이클 준장에게도 설명해두었고 이전 작업도 마쳐놨네. 이 구축함은 이제 자네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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