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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군벌가 망나니-30화 (30/134)

30화

이후 양상은 대령의 말대로였다.

융족 모함은 폭풍으로 커다란 에너지를 소진한 뒤 이렇다 할 반격을 하지 못한 채 중앙 함대의 공격을 받아 최후를 맞이했다.

나는 이 광경을 특무함의 창가에 앉아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었다.

진의 말에 따르면 중앙군은 전투 불능에 빠진 융족 모함을 회수하고자 했는데 아쉽게도 융족이 자폭 버튼을 누르며 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후 나는 정비를 마친 전투기를 타고 무사히 마이더스호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오딘을 떠나 이틀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치러진 혈투.

마침내 연방군이 승리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

전투가 끝난 우주 공간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이 적막함 속에 가장 큰 소리는 병사들의 코 고는 소리였다.

각성제까지 맞아가며 버틴 조종사들은 죽은 듯 잠을 청했고 다들 사정은 비슷했다.

대다수 인원이 밀린 숙면을 하는 가운데 고위 장성들은 쉬지도 못한 채 회의를 진행해야 했다.

향후 작전을 어느 방향으로 펼치게 될 것인가에 대한 논의였다.

중요 관계자로서 회의에 참여한 베니건 후작은 다시 오딘을 탈환할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는 오딘이 융족의 침공을 최전선에서 감시할 수 있는 요충지임을 어필했다.

“베니건 후작님 말씀이 상당히 일리 있는 것 같습니다.”

일부 장성이 그의 주장을 지지하고 나섰다.

그들 중 상당수는 라파엘 가문의 영향력을 받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모리더스 대장은 그들의 의견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미 오딘은 쉬이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입었으며 당장 무리하게 탈환 작전을 펼치는 것은 아무 이득도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실제로 소개령이 시작되고 탈출을 감행했을 때, 빈집이 된 오딘은 융족에 의해 쑥대밭이 된 상태였다.

잿더미가 된 도시와 산업단지.

그것들을 전부 복구하자면 천문학적인 자금은 제쳐두고라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하지만 이런 대장의 의견을 후작측 인원은 쉬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제는 오딘이 이전처럼 가치 있는 곳이 아니란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것처럼 보였다.

쉽게 결판이 날 것 같지 않은 분위기.

하지만 회의의 열쇠를 쥐고 있는 건 중앙군이었다.

이들이 이대로 중앙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면 현재 남아있는 병력만으로 오딘을 탈환하는 건 어림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중앙군은 그 어느 쪽의 편도 들어주지 않았다.

“이대로 대기하며 황실의 명을 기다릴 것이오.”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이들은 황제의 명을 받아 나온 군사들이었다.

그렇게 차후 계획에 관한 결정은 잠시 뒤로 미뤄지게 되었다.

*

“저도 말입니까?”

<그렇다네. 이번 전투에 혁혁한 공을 세운 자네가 빠질 수는 없지 않겠나.>

군이 답신을 기다리며 쉬고 있던 때.

나는 모리더스 대장의 호출을 받게 되었다.

전투 승전 기념 축하연에 초청되었다는 것이었다.

<자네와는 나눌 이야기도 많을 것 같고 말일세.>

그리 말하며 대장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번뜩였다.

아마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물으려는 것 같았다.

파티는 중앙군 지휘선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마이더스호에서 축하연에 초대된 사람은 나와 마이클 준장, 리카르도 소령까지 셋.

우린 셔틀에 올라타 시간에 맞추어 지휘선으로 향했다.

“놀라운 크기로군.”

창밖으로 보이는 지휘선의 크기를 확인한 마이클 준장이 중얼거렸다.

쿠논급 전함인 마이더스호는 전장이 1800미터에 달했지만 이 녀석은 그보다도 훨씬 거대했다.

아마 2200미터도 넘을 것으로 보였는데 이 정도면 중전함이라고 불러야 마땅한 크기였다.

“충성. 여기부턴 저희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부탁하지.”

도킹에 성공하자 위관 장교들이 우릴 맞이했다.

도착하는 손님을 모시기 위해 분주한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그야말로 별들의 잔치군.”

파티장에 도착하자 리카르도 소령이 작게 중얼거렸다.

어딜 둘러봐도 온통 장성들뿐이었다.

각 전함의 사령관들이 최소 준장 이상 계급인 데다 이곳에만 수백 대 이상의 전함이 자릴 잡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 보는 파티장에 고갤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마이클 준장이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내 눈치 보지 말고 편히 돌아다녀도 좋네. 자네들도 이 파티의 주인공 아니겠나.”

“알겠습니다.”

소령과 나는 에이스 파일럿 신분으로 축하연에 초청받았다.

적당히 주인공 분위기를 낼 만한 자격은 있는 셈이었다.

리카르도 소령은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와인을 둘러보러 가겠다며 슬쩍 사라졌고 마이클 준장 또한 남부 연방군 장성 무리에 끼어 밀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불쌍한 존. 외톨이가 되어버렸군···.

‘시끄러워.’

나는 적당히 준비된 음식을 집으며 시간을 보냈다.

내게 용건이 있다던 모리더스 대장도 어딨는 건지 좀처럼 보이질 않았다.

‘맛있네.’

마이더스호의 음식도 물론 맛있었지만, 축하연의 음식들은 특별히 더 신경을 썼다는 게 느껴졌다.

부드러운 크로와상과 와인의 깊은 향기를 느끼고 있을 때였다.

근처에서 투덜거리는 장교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지루한 자리군.”

“그러게 말이야. 눈길 줄 만한 여군도 없고.”

중앙의 젊은 장교들로 보였는데 그들은 이 자리가 몹시 따분한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평소 즐겼을 사교 무대와 이곳은 성향이 다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적당히 배도 채웠겠다.

모리더스 대장을 찾던지 마이클 준장을 따라 귀동냥이라도 해야겠단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장교들의 이야기가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그래도 얼굴만 놓고 보자면 한 명 있잖아.”

“누구? 설마 대령을 말하는 건가?”

“이거 왜 이래. 솔직히 외모만 보면 나쁘지 않잖아.”

“그래봤자 그라프 파일럿이야. 황실의 노예라고.”

대령, 그라프 파일럿, 황실의 노예.

다양한 키워드가 머릿속에서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이야기를 조금 더 듣자 이들이 말하는 대상이 얼마 전에 봤던 엘프 파일럿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그 거대 로봇을 그라프라 부르는 모양이었다.

“인간 중에 그녀랑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꿈 깨.”

“나도 그냥 해본 소리지.”

나는 조용히 그들에게서 멀어져 파티장을 배회했다.

파티가 무르익자 다들 테이블을 잡고 앉아 식사하는 분위기였다.

서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줄어들 무렵, 나는 어렵지 않게 동석할만한 대상을 찾아냈다.

리카르도 소령이었다.

같이 식사나 하고자 아는 체를 하려던 그때, 소령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여성이 눈에 띄었다.

재주도 좋지.

여군이라곤 중앙 사람들이 대다수인 이곳에서 소령은 미모의 여성과 식사를 나누고 있었다.

‘끼어들면 실례겠지?’

-눈없새 소리 듣고 싶은 거야?

머리를 긁적이며 발길을 돌리려는데 이번엔 아주 특이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테이블마다 북적이는 파티장.

그 구석에 혼자 테이블을 차지하고 식사 중인 사람이 있었다.

혼자 고기를 썰고 있는 것은 예의 엘프 대령이었다.

중앙 사람들은 그녀의 근처에 접근하는 것 자체를 꺼리기라도 하듯 보이지 않는 벽을 치고 있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이번 전투의 영웅을 단 한 명만 꼽자면 누가 뭐래도 그녀를 뽑을 텐데 말이다.

그런 영웅에 대한 취급으론 너무 나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위님. 괜찮으시면 합석을 도와드릴까요?”

조용히 대령을 지켜보고 있을 때, 서빙하던 병사가 내게 제안했다.

나는 괜찮다며 손을 저었고 가볍게 옷매무새를 만진 뒤 가장 한적한 테이블로 향했다.

-어어 설마?

“안녕하십니까. 괜찮다면 잠시 앉아도 되겠습니까?”

“······?”

나이프를 멈춘 그녀는 놀랐다는 기색으로 날 바라봤다.

“다른 곳은 자리가 조금 붐비더군요.”

-갑자기 흥미진진해지네요.

나는 드라마 시청자로 빙의한 진에게 조용히 해 달라고 부탁하며 그녀의 허락을 기다렸다.

“···물론이지. 앉아도 좋네.”

“감사합니다.”

내가 자리에 앉자 주변 군인들이 이쪽을 보며 수군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식사를 주문했다.

그녀가 주문한 것과 같은 스테이크를 요청한 뒤 나는 가벼운 인사를 건넸다.

“저번엔 경황이 없어 미처 감사 인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아닐세.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이었어도 누구나 그렇게 했을 것이야.”

“그 로봇 말입니다. 그라프라고 했던가요? 남방 경계에선 처음 봤지만 정말이지 대단한 조종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평범한 칭찬이었지만 싫지는 않았는지 그녀의 반응은 제법 다채로웠다.

그리고 그녀의 반응을 지켜보던 때 진이 무언가를 깨달은 듯 말했다.

-이제야 알았다.

‘뭘?’

-다들 이 엘프 주변에 앉지 않으려고 한 이유 말이야.

진은 그녀의 주변에서 은은한 마력이 뿜어져 나오는 중이라고 했다.

-마력에 내성이 없는 인간들은 이 분위기를 매우 불편하게 느낄 거야.

‘나는?’

-넌 나랑 계약했으니 상관없지.

엘프는 인간과 달리 마법에 능숙한 종족.

은연중에 피어난 그녀의 마력이 사람들을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장벽이 되었던 것이다.

반면 아무렇지도 않았던 나는 그녀와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평범한 질문에도 눈을 빛내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그녀에겐 대화 상대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넓은 우주, 장기간의 작전.

아무도 말 걸어주지 않는 함선에서 고독한 파일럿 임무를 수행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전투기와 달리 로봇은 편대 비행조차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럼 제국에 단 두 대뿐이란 말입니까?”

“그렇지. 가히 제국을 지키는 검과 방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

‘기밀인 것 같은데 이렇게 쉽게 알려줘도 되나?’

-이참에 정보를 팍팍 캐내자.

그녀는 제국에 존재하는 그라프가 단 두 대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실전 배치된 지 불과 100년도 채 되지 않은 기종으로 재료를 구하는 문제가 있어 양산이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그런 그라프 파일럿이 된 것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제국에 단 두 대뿐인 기체를 조종하는 파일럿이라면 분명 그럴 자격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제 이름은 말씀드린 것 같은데 아직 대령님의 성함은 여쭙지 못했군요.”

“카린 아스트라드, 내 이름이네. 귀공의 이름은 존 메이어라고 하였지?”

“맞습니다.”

“이렇게 편히 대화해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는걸. 존 대위, 혹시 중앙으로 진출할 생각은 없는가?”

“···예?”

-어허! 스카우트 멈춰!

조금 전 대화로 대령은 내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와인 때문인지 살짝 뺨이 상기된 대령은 원한다면 특무함에 자리를 추천해주겠다고 했다.

특무함이라니.

그라프의 위용을 생각하면 생존율이야 크게 오르겠지만 사실 중앙을 가기 싫은 이유야 여러 가지였다.

지금이야 특수 상황으로 파견을 나왔지만 비교적 평온한 중앙의 근무조건을 떠올리면 전역하기 전에 준장은 달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녀의 제안을 부드럽게 거절할 때, 처음 보는 소위가 다가와 내게 인사를 건넸다.

“충성. 존 메이어 대위님 맞으십니까?”

“그렇네만?”

“모리더스 대장님이 찾으십니다.”

-올 것이 왔군.

“대령님. 약속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봐야 할 것 같습니다.”

“벌써 가는가···?”

-이봐요 주인장. 다음 편은 보여주고 가!

나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 뵙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서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대령의 시선이 네 뒤통수에서 2초 동안이나 머물렀어!

‘제발 좀 닥쳐줄래.’

소위를 따라 도착한 곳은 지휘선 한쪽의 개인실이었다.

모리더스 대장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신경 쓰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싶은 모양이었다.

“어서 오게. 몸은 좀 괜찮나? 그 이후로 쓰러졌었다고 들었네.”

“다행히 괜찮아졌습니다.”

“정말 다행이군. 앉게나.”

그리 말한 모리더스 대장은 직접 집게를 들어 얼음을 담아 위스키를 내주었다.

클래식 칵테일인 올드패션드였다.

‘쓰다···!’

나는 표정에 신경 쓰며 대장에게서 나올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내 개인적으로 자네에게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은데 말이야. 만약 답하기 힘든 것이라면 거절해도 좋네.”

“알겠습니다.”

“그날 병원에서···. 나를 고쳐주었던 게 혹시 마법인가?”

나는 질문에 침묵을 지켰고 대장은 이해한다는 듯 고갤 끄덕였다.

“좋네. 자네에게도 말 못 할 사정이 있겠지. 하지만 이 모리더스 프랑크, 은혜를 모른 척하는 무뢰배는 아닐세. 그날 있었던 일이 우연이건 필연이건 간에 자네에게 꼭 도움을 주고 싶네.”

모리더스 대장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힘닿는 대로 들어줄 터이니 편히 말하라고 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여기서 광석 이야길 꺼내면 대장이 어떻게 생각할지 염려돼서였다.

사실 이 상황에서 가장 편히 요청할 수 있는 도움은 진급이었다.

하지만 광석의 경우엔 아무리 생각해도 노리고 들어간 도움이란 느낌을 강하게 풍길 수밖에 없었다.

군수 기업인 크롬원을 콕 집어 아론다이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야 했으니 말이다.

잠깐의 고민.

결정을 내린 나는 살짝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대장님께 염치불고하고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뭐든 말하게. 반드시 도와주겠네.”

정면 돌파.

모리더스 대장을 통하지 않고선 언제 손에 넣을지 알 수 없는 물건이었기에 나는 이 기회를 꽉 붙잡기로 했다.

“아론다이트 원석을 구하는 데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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