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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군벌가 망나니-28화 (28/134)

28화

마력 폭풍에 의한 모리더스 대장의 치명상.

이것을 치료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진은 먼저 주의할 점을 알려주었다.

-너도 알겠지만 원래 인간은 마법을 쓰기에 적합한 종족이 아니야. 마력을 접한 역사가 짧고 육체도 연약한 편이지.

진은 지금까진 간단한 마법의 발현이었기에 내 몸에 큰 무리가 되지 않았지만, 이번 같은 경우엔 상당히 많은 마력을 써야 하기에 내 몸에 무리가 갈 수도 있음을 알렸다.

-그리고 주의할 점이 한 가지 또 있어.

‘뭐지?’

-중앙 말이야.

진은 중앙이 기술 만큼이나 신경 쓰는 것이 바로 마법이라고 했다.

이 부분은 제국 역사를 공부하며 나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제국의 초대 황제는 드래곤과 마법의 도움으로 무려 1500년을 넘게 살았다.

이 황제를 둘러싼 신비한 힘이 우주 시대에, 긴 시간 동안 제국을 통치할 수 있었던 이유였던 것.

초대 황제 이후로도 황실의 핏줄은 다들 수백 년 가까운 수명을 누렸으며 이들은 더욱 마법에 집착하게 되었다고 했다.

아마 내가 마법으로 모리더스 대장을 치료했단 사실이 알려지면 어떤 식으로든 관심을 끌게 될 것만은 분명했다.

‘그럼 어떻게 하지? 몰래 치료할 수는 없나?’

마법사라면 능히 떠올릴만한 일들.

병실의 사람들을 다 재우고 몰래 치료에 전념한다든지 하는 방법을 진에게 제시했지만 통쾌한 답변은 얻을 수 없었다.

-네가 말하는 것들은 일류 마법사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들이지만 네 몸은 일류 마법사와는 거리가 너무 멀지.

진은 병실의 사람을 모두 잠재울 정도의 실력이 되려면 어디 골방에 처박혀서 십여 년간 수련해도 될까 말까 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마법의 정령인 자신이 곁에 붙어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이다.

그만큼 인간이란 종족은 아직 마법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어떻게 한다···.’

상당한 갈등이 몰려왔다.

이대로 중앙에 불려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대우해주겠단 명목하에 어딘가의 연구소에 갇혀 종일 부려 먹히는 신세가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대로 모리더스 대장을 포기해야 하나?

눈을 감고 수차례 저울질을 하고 있을 때였다.

복도 바깥이 소란스러워지더니 영관 장교들이 병실로 뛰어와 외쳤다.

“엔테로 중장님께서 지금 긴급회의를 소집하셨습니다.”

“무슨 일인가.”

“소개를 중단하고 민간인들을 임시로 차출해 병력 전환을 하시겠다고···.”

대령은 말을 얼버무렸지만 이미 장성들의 얼굴은 흉악하기 짝이 없었다.

“가관이군.”

“안 되겠습니다. 가서 한마디들 하시죠!”

“민간인 차출이라니요. 그게 얼마나 부질없는진 이미 역사가 증명 하는데···!”

짜증에 찬 장성들이 우르르 병실을 빠져나갔고 마이클 준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삽시간에 병실이 썰렁해지자 나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것처럼 잽싸게 문을 걸어 잠갔다.

-몸에 상당한 부담이 갈 텐데. 그래도 할 거란 말이지?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잖아.’

이 찰나의 기회가 몇십 초가 될지, 몇 분이 될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즉시 팔을 걷어붙이고 진에게 치료를 시작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 손은 대장의 머리에, 한 손은 가슴에 올리고 의식을 집중해.

나는 진의 지시에 따라 마법 시전 준비에 들어갔고 이윽고 진의 기운이 내 몸을 장악하는가 싶더니 금빛 벼락이 튀며 모리더스 대장을 뒤흔들었다.

그러자 그의 몸은 제세동기를 맞은 것처럼 펄쩍 뛰었고 동시에 병실 기계들이 요란스레 경고음을 내었다.

바깥에서 이변을 알아차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덜컥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리지 않자 당황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빨리 끝내야겠는데.’

금빛 벼락은 끊임없이 계속되며 모리더스 대장의 전신을 타고 흘렀다.

번개가 지나간 자리엔 검은 무언가가 파직 거리며 타들어 가는 걸 볼 수 있었다.

한참 치료를 진행하던 그때,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적잖은 부담이 될 거라더니 전신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진의 집중하란 소리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쓰러지면 죽도 밥도 안 될 판이었다.

-얼마 안 남았어. 이제 독기를 몸 밖으로 끄집어내도록 하지.

그와 동시에 내 손이 진의 의지에 따라 움직였고 곧 대장의 코와 입에서 검은 연기가 쑥 하고 빠져나왔다.

사람 몸에 이런 게 들어가 있다니.

새삼 마법의 무서움을 느끼고 있을 때 대장의 눈이 번쩍 뜨였다.

모리더스 대장은 좌우로 눈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고비는 넘겼어. 성공이다.

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다리는 힘이 완전히 풀려 주저앉았다.

극도의 탈력감.

마치 내 의식을 누군가 저 밑바닥에서 잡아당기는 것만 같았다.

나는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상태가 되어 대장에게 간신히 한마디를 전했다.

“대장···님. 비밀은 지켜주십···.”

그 말을 끝으로 내 의식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내가 정신을 차린 건 폭음과 진동 속에서였다.

거친 사이렌 소리 속에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진···.’

몽롱한 정신 속에서 나는 진부터 찾았다.

-여기 있다.

‘상황 설명을 좀 부탁해···. 여긴 어디야.’

-마이더스호 의료실. 이륙한 지 48시간이 지났고 바깥 상황은···그냥 최악이지.

‘최악이라고?’

나는 진에게서 모리더스 대장 치료 이후 있었던 일을 들을 수 있었다.

의식을 되찾고 몸을 일으킨 대장은 비록 부축을 받아야 했지만, 그 정신만큼은 매우 또렷했다고 했다.

그는 오딘을 중심으로 거점방어를 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작전을 낸 중장을 징계했고 즉시 소개 작전을 시작해 오딘을 버리고 후방으로 군을 물릴 것을 지시했다.

문제는 융족이 이를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는 것.

놈들이 다시 추격을 시작했고 무려 48시간이 넘는 전투가 이어졌다.

전투함이 대다수 갈려 나갔으며 이미 수억 명의 피난민이 포격에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던 것.

밖은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곧 트라카 인근에 진입한다.

‘대체 어디까지 밀리는 거야!’

나는 그제야 신음하는 환자들이 내 옆으로도 줄줄이 누워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이를 악물고 목발을 주워들고선 병실을 나섰다.

순간 커다란 진동이 함선을 강타했고 나는 꼴사납게 통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실드가 깨진 게 틀림없었다.

‘진! 내 전투기는?’

-출격하려고? 네 몸 상태를 보아하니 별로 추천하고 싶진 않군.

지금이 상태를 가릴 참인가?

간신히 격납고에 도착하니 붉은 피칠을 한 채 조종석에서 끌려 나오는 조종사들.

화재를 진압하는 정비병들이 눈에 띄었다.

남방 경계 최고의 전투기들이란 자부심을 가졌던 마이더스 호 편대는 완전히 만신창이가 된 채였다.

그때 팔에 붕대를 감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헨리가 날 발견했다.

“씨발! 존!”

그는 날 보더니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내게 달려들어 와락 나를 안은 녀석이 우린 다 죽었다고 울어댔다.

멘탈이 많이 나간 모양이었다.

나는 목발을 놓고 녀석의 뺨을 때린 뒤 동기들 안부를 물었다.

“지크랑 찰스, 애들 다 어딨어.”

“어어?”

“한 대 더 맞을래?”

기어이 뺨을 한 대 더 때리고 나서야 헨리는 볼을 파르르 떨더니 다들 전투 중이라는 답변을 들려주었다.

헨리의 전투기는 이미 성한 곳이 없었다.

이 정도면 살아 돌아온 것만 해도 기적이었다.

실제로 뺨을 때리는 사이, 보급을 위해 비행포드로 돌아오던 전투기 한 대가 착륙에 실패해 폭파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존 대위님!”

나를 알아본 정비병들은 그 몸으로 출격할 수 있겠냐고 물었고 나는 슈트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어차피 전함 안에서 죽으나 밖에 나가서 죽으나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미사일 한 번이라도 더 쏘고 죽는 게 덜 억울할 터였다.

나는 트라카에서 가져온 이클립스 미사일 장착을 요구하는 한편 그런 생각을 했다.

‘상황이 이 정도로 나쁘다면 중앙에 대한 걱정 따윈 사치였을지도···.’

이대로 죽으면 중앙이 나를 감시하든지 말든지 그딴 게 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오히려 중앙에 불려갔으면 목숨은 건졌겠지.

‘됐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오딘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융족의 공세는 남방 은하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

남부 연방군이 우후죽순 밀리며 수없이 많은 민간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중앙에선 여전히 아무 소식이 없었다.

다른 구역을 압도하는 힘과 기술력을 갖췄다는 중앙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건 그들의 속내가 그저 추악하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다른 구역의 목숨쯤은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다는 거 아닌가.

그런 지독한 곳에서 연명할 바에야 이곳에서 나의 이상과 목표를 위해 발버둥 치는 게 백 배는 더 나았다.

출격 준비가 완료했다는 사인이 떨어지자 나는 통신 채널을 열었다.

“존 메이어 대위. 출격한다.”

전투기 파편을 피해 비행포드를 빠져나가자 사방에서 불꽃이 터지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에이스가 돌아왔나!>

비행 대대장 리카르도 소령이 나의 합류를 크게 반기며 도움을 요청했다.

평소였다면 비행 포드에서 출격 지휘를 맡았을 텐데 사정이 워낙 급하다 보니 그도 전투기를 끌고 나온 모양이었다.

그는 이미 여섯 대의 융족 전투기에 둘러싸여 곡예비행을 하는 중이었고 사정은 다른 대원들도 비슷했다.

나는 즉시 출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며 지원에 나섰다.

평소보다 몸은 무거웠지만 정신만큼은 또렷했다.

수직 낙하하며 융족 전투기를 떼어주자 엇갈리며 올라간 아군 전투기가 날개 끝을 흔들며 나를 환영했다.

<존! 무사해서 다행이다!>

훈련소 빵 동기, 찰스 포트였다.

나는 살아서 돌아가자고 답신한 뒤 계속해서 전투를 이어나갔다.

소개령에 차출된 대형 화물선이 힘없이 날고 있었고 아군 대형함들은 이들을 중심으로 퍼져 각개전투를 펼치는 중이었다.

저 수많은 화물선 안엔 시민들이 가득 타고 있는 상황.

포격이 떨어지면 실드를 편 아군 대형함이 몸으로 공격을 받아내던 때.

붉은 섬광 수십 발이 날아와 순양함을 꿰뚫더니 화물선까지 그대로 녹여버렸다.

적 전함부대의 주포 공격이었다.

비명 한번 질러보지 못하고 사라진 시민들.

이 끔찍한 광경이 수십 시간째 계속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머리에 열이 바짝 올랐다.

‘아군 전함은 뭘 하는 거야!’

-수적 열세라 어쩔 수 없어. 병력 격차가 거의 열 배에 달한다고.

전투기 싸움이라면 어떻게 해볼 수 있겠는데 문제는 전함의 주포 사격이었다.

놈들은 수적 우위를 이용하여 아군을 말 그대로 사냥하고 있었다.

‘제길···.’

거친 욕설을 하던 그때였다.

군 전체 통신이 열리며 모리더스 대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군들, 조금만 더 버텨다오! 중앙에서 보낸 지원군이 곧 도착한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그의 발언에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도 궁둥이가 무겁던 중앙이 드디어 움직여준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원군이 대체 어디서 얼마나 올 것인가.

적 전함은 물경 수천 척에 달했다.

1개 주력군이 온다 한들 방어할 수 없는 규모였고 가장 중요한 건 제시간 내에 와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잔혹한 추격전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지원이 도착할 거란 소식에 희망이 생겼던 건 잠시뿐, 적 포격이 계속되자 아군은 반항할 의지를 완전히 상실한 것처럼 보였다.

백수십 억 명에 달하는 시민을 태운 화물선 행렬.

적에겐 우리가 커다란 샌드백처럼 보였으리라.

-젠장. 마이더스호가 위험하다.

정신없이 전투하고 있던 때, 진이 경고를 날렸다.

실드는 진즉에 깨져 간신히 비행만 하고 있던 마이더스호를 적함이 겨냥한 것이다.

몸을 던져야 하나?

어림없는 소리였다.

주포에 전투기 따위가 뛰어들어봤자 마이더스호를 살리는 건 불가능했다.

해결책을 채 떠올리기도 전에 발사된 붉은 섬광.

마이더스호의 최후를 떠올리던 그때,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졌다.

적의 공격이 마치 거울에 반사된 것처럼 튕겨 나간 것.

‘대체···저게 뭐지?’

거대한 무언가가 적의 공격을 막아냈고 곧장 마이더스 호를 밟고 도약했다.

그 반동에 선체가 휘청이는 마이더스호.

동시에 우주에 금빛으로 빛나는 쌍원이 점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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