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휴가는 예정보다 일찍 끝났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건 오딘으로 집합 명령이 떨어졌단 거였다.
이는 오딘이 일시에 무너지지 않았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돌아가는 길엔 트라카 방위군 총책임자인 아빌리오 대령의 순양함을 얻어타게 되었다.
아빌리오 대령은 내겐 먼 친척으로 트라카에서 군 생활 말년을 보내던 중이었다.
순양함 안엔 동원령에 따라 탑승한 수많은 군인이 자릴 잡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선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이 엿보였다.
평생 안전한 곳에서 근무할 거로 생각했을 텐데 의도치 않게 전선으로 내몰리게 된 상황이니 말이다.
나는 오딘으로 복귀하는 동안 계속 통신을 붙잡고 상황을 전달받기 위해 노력했다.
전파 방해를 뚫고 어렵사리 이어진 통신에 의해 마이더스호가 무사하단 걸 알 수 있었다.
천만다행이었다.
런닝 차림으로 전함으로 복귀한 마이클 준장이 용케 뒷수습을 한 모양이었다.
<곧 워프가 진행됩니다. 전 인원은 자리를 떠나지 말고 안전수칙에 맞추어···.>
강렬한 파동이 함선 전체를 감싸는가 싶더니 눈 깜짝할 새에 도약, 무사히 워프가 종료됐다.
“제길 저것 봐!”
“이럴 수가···.”
창문에 다닥다닥 붙은 군인들이 손가락으로 오딘을 가리켰다.
오딘 상공의 우주 정거장은 반파되어 파편으로만 날아다녔고 지상 폭격까지 있었는지 대륙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전투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체 기습으로 얼마나 큰 피해를 본 걸까.
골디락스 존에 위치한 행성 중에서도 체급이 큰 편에 속하는 오딘엔 무려 160억 명에 달하는 제국 시민이 살고 있었다.
아마 지상의 참상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상황일 터였다.
순양함에선 곧 이동용 셔틀이 분리됐고 나는 곧장 훈련소 근처의 정비스테이션으로 향했다.
마이더스호는 폭발 등의 사고에 대비해 돔의 뚜껑 형태로 단단히 덮인 정비소에 들어가 있던 덕에 피해를 면할 수 있었던 것.
“존! 자네 왔군.”
팔코 소령이 분주히 지시를 내리다 나를 보고선 손을 흔들어 주었다.
“충성. 상황은 좀 어떻습니까.”
“일단 적이 물러나긴 했는데 그리 멀지 않은 영역에 자리 잡고 있네. 일촉즉발의 상황인 셈이지.”
팔코 소령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이번 기습으로 오딘에 정박해있던 600여 척의 전함 중 300척은 이미 폐기된 상황이라고 했다.
한 번의 교전으로 절반에 달하는 전력이 박살 난 것.
오딘은 이미 최전선 영역에 해당했고 항상 전투기들이 경계 근무를 철저히 했을 텐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자네도 알다시피 장기 작전으로 상당수 대형함이 크고 작은 정비를 받던 도중 아니었나.”
“예.”
“그 상황에 놈들이 모함을 끌고 나타났지 뭔가.”
융족의 거대 모함.
이는 연방군엔 존재하지 않는 함급으로 그 크기가 무려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마치 작은 별을 연상케 하는 초거대 전략 병기였다.
팔코 소령에 의하면 융족은 이 거대 모함으로 자연재해나 다름없는 우주 폭풍을 일으켜 오딘 상공의 정거장을 일거에 휩쓸었다고 했다.
“맙소사···그건 우리 연방군도 불가능한 일 아닙니까.”
“말도 말게. 그 위력은 정말이지 끔찍하더군.”
인류가 할 수 없는 일을 융족이 해냈다.
이 사실은 나를 비롯한 모두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대체 그런 걸 어떻게 막은 겁니까···?”
설명을 들을수록 오딘이 한 번에 함락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
대체 거대 모함을 어떻게 막았느냐고 묻자 모리더스 대장이 놀라운 지휘능력으로 모함을 지키던 적 전함을 차례로 격추해냈다고 했다.
“놈들도 호위함이 없으면 모함이 위험할 거로 생각했는지 전투를 주고받다 슬그머니 발을 빼더군.”
“정말 큰 고비를 넘긴 셈이군요.”
“고비를 넘겼다기엔 지금 오딘은 풍전등화나 다름없네.”
팔코 소령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조용히 내게만 귀띔했다.
총지휘관인 모리더스 대장이 전투 후 수도병원으로 이송됐는데 아무래도 소생 가능성이 없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몇 분 전에 소개령이 떨어졌네.”
“소개령이요? 그렇지만 오딘은 인구가 너무 많은···.”
“다는 못 살릴 걸세.”
소령은 나이오비 이상의 지옥도가 곧 이곳에 펼쳐지게 될 것이라며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정찰기들이 실시간으로 가져오는 보고에 따르면 지금도 적 모함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대규모 병력이 모여드는 중이라고 했다.
놈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곳 오딘을 파괴할 요량인 게 분명해 보였다.
“저흰 어떻게 합니까?”
“천만다행으로 정비는 거의 끝났네. 당장 전투에 나서는 건 가능해. 휴가 복귀 인원이 모이는 대로 우린 시민들의 탈출을 돕고 시간을 끄는 임무를 맡게 될 거야.”
팔코 소령은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 말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160억 인구의 탈출 작전.
이는 아무리 훈련을 받았어도 반드시 일이 꼬일 수밖에 없는 규모였다.
이대로라면···마이더스호의 운명은 장렬히 시간을 끌다 죽는 것뿐, 그 밖에 다른 미래는 좀처럼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저 뒤에 박스. 혹시 자네가 가지고 온 건가?”
“아, 그렇습니다.”
“대체 저기 뭐가 들은 건가?”
지게차를 이용해 옮길 정도로 무겁고 커다란 국방색 철제 박스.
팔코 소령은 내가 운반해온 물건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죄송합니다. 사령관님에게 먼저 보고드려야 할 기밀 물건이라서요.”
*
-운도 없지. 하필 모리더스 대장이 그렇게 되다니.
아론다이트 광석 건으로 꼭 만나고 싶었던 모리더스 대장은 생명이 위독한 상태.
머리가 지끈거렸던 나는 일단 마이클 준장을 찾기로 했다.
일단 순양함에 실어 가져온 철제 박스의 내용물에 대해 먼저 알릴 필요가 있어서였다.
저 안에 들어있는 건 실험용으로 제작한 여분의 이클립스 미사일 4발이었다.
원래라면 양산 불가 품목이라 외부에 가지고 나오지 않았을 테지만 오딘이 박살 났다는 상황에 혹시 몰라 가져온 것이었다.
어쩌면 저 미사일이 위기의 순간에 내 목숨을 살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보고를 위해 곧장 함교로 향했다.
부사관들의 인사를 받으며 들어선 함교는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특히 화상 통신을 나누며 분노를 터트리는 마이클 준장의 모습이 눈에 확 띄었다.
“이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시잖습니까!”
<중장님이 지역 방어를 하겠다는데 난들 어쩌겠나.>
“그럼 우리 모두 다 죽습니다!”
마이클 준장은 핏대를 세우고 악을 쓰며 얘기했는데 상대 역시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래도 상부와 의견충돌이 있었던 모양.
“다시 한번 이야기해서 후작을 설득해야 합니다. 이건 제국에 해악을 끼치는 행위입니다!”
<후작은 절대 오딘을 포기하지 않을걸세. 어떻게든 행성을 지키려고 할 거야.>
언성을 높이며 한참을 통화한 끝에 마이클 준장이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통화 전체를 들은 건 아니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모리더스 대장의 부재로 바통을 넘겨받은 중장이 베니건 후작의 설득에 따라 계속해서 오딘을 지키기로 가닥을 잡은 모양이었다.
이는 내가 생각해도 미친 짓이었다.
소개령이 시작된 시민들을 호위하며 오딘을 버려도 살까 말까 한 판국에 이곳을 지키겠다니.
심지어 적은 지금도 모함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워프해오고 있는 상태라고 하지 않던가.
이는 사실상 자살이나 다름없었다.
화를 이기지 못하고 씩씩거리는 준장에게 언제 미사일에 대해 보고해야 하는지 난감해하고 있을 때, 준장이 먼저 날 알아보고 한숨을 쉬며 손짓했다.
“이쪽으로 오게. 언제 왔나.”
“조금 전에 도착했습니다.”
“머저리 같은 양반들···. 방금 이야기 들었나?”
“조금 들었습니다.”
“끝까지 오딘은 포기 못 하겠다더군. 죽을 거면 혼자 죽을 것이지!”
마이클 준장은 한참이나 무능한 상관을 물어뜯었고 나는 어느 정도 그의 분노가 가라앉은 후에야 미사일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미사일 말인가?”
“사업용으로 미사일 개발에 착수해 나온 물건인데 실전 사용을 허가해주셨으면 합니다.”
“얼마나 가지고 왔나. 위력은? 혹시 최신형 미사일 그 이상인가?”
준장은 언제 화를 냈나 싶을 정도로 눈을 반짝이며 미사일 성능에 대해 궁금해했다.
나는 적당히 스펙을 조절하여 말할 수밖에 없었다.
휴가 중에 뜬금없이 헬파이어 미사일을 뛰어넘는 슈퍼 미사일을 만들어 가져왔다고 하면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었다.
게다가 성능에 혹해 실전 배치를 요구해도 양산이 되질 않으니 아무래도 문제가 많았다.
마이클 준장은 별문제 삼지 않고 무장 허가를 내주었다.
원래라면 비인가 품목에 대해 깐깐한 검증을 거치거나, 혹은 사용 거절 판정을 내렸을 일이었음에도 말이다.
그간 쌓은 신뢰가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감사합니다.”
“뭘 이 정도로. 그나저나 휴가가 끝나면 자네의 보직 변경을 의논하려고 했는데 일이 이렇게 돼버렸군.”
“보직 변경···말씀입니까?”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구축함의 지휘관은 보통 소령부터 시작이질 않나.”
“예.”
영관 계급의 시작인 소령.
소령이 되면 기본적으로 연방군에서 대형함을 지원받게 된다.
보통은 T.O가 비는 어느 정도 연식이 된 함선을 받게 되지만 그래도 전투기를 벗어나 대형함 지휘관으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원래는 순번이 밀려있기도 하고 군 상부에서 함선을 지급해줄 때까지 기다리는 게 일반적이지만 직접 함선을 구할 수 있으면 대위도 전투함 지휘가 가능하단 말일세.”
구축함의 대당 가격은 보통 1조 크레딧 이상.
특별 규정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그 정도로 현금에 여유가 있는 편이 아닌지라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있었는데 준장이 먼저 이야길 꺼낸 것이다.
“적은 돈이 드는 게 아니라 규정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지만 자네 가문은 그래도 대귀족에 어느 정도 역량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좀 일찍 함선 지휘관을 해볼 생각이 있는지를 물어보려 했네. 이렇게 된 마당엔 다 부질없어졌지만 말일세. 생각하니 다시 열이 받는군!”
마이클 준장은 짜증을 내며 연신 마른세수를 했다.
그는 모리더스 대장이 의식만 있었어도 이런 멍청한 계획에 동조하지 않을 거라며 그라데이션으로 분노를 발산했다.
“이럴 게 아니라 병원으로 가봐야겠네.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이라도 깨어나신다면 좋으련만···.”
“대장님께선 의식 불명이시라고 들었는데 위독하신 겁니까?”
“대장님의 전함은 상대 모함 근처에서 전투 중에 포격을 정통으로 맞았네. 살아계신 것만 해도 기적이야···.”
마이클 준장은 군복을 갖춰 입었고 나는 엉겁결에 그의 임시 보좌를 맡게 되었다.
본래라면 팔코 소령이 따랐을 텐데 그는 병기 선적으로 눈코 뜰 새가 없는 상태였다.
*
연방군 오딘 수도 병원.
철통 보안 속에 침울한 얼굴의 장성들이 통로에 모여 있었다.
“씹새끼들이 여기 다 있군.”
마이클 준장은 조용히 이를 갈더니 인사를 대충 건네고선 병실로 향했다.
본래라면 위독한 환자의 경우 면회가 되지 않지만 모리더스 대장은 역설적으로 병원에서도 더는 손쓸 방도가 없다며 손을 놓아버렸기에 얼굴을 보는 게 가능했다.
내가 처음 의식을 차렸을 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개인 병실.
피부의 절반이 짓이겨졌고 숨을 쉬는지조차 알아보기 어려운 모리더스 대장의 상태는 한눈에 보기에도 절망적이었다.
마이클 준장은 차마 보기 힘들었는지 고갤 돌리더니 병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준장뿐만이 아니라 다른 장군들 역시 다들 말없이 바닥이나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환자의 손을 잡아줄 수도 없고 병실에 앉을 곳도 없는 상황.
대령도 숨을 죽이고 잔심부름을 하는 판국에 이곳에 위관 장교는 나뿐이었다.
눈치가 보여 조용히 병실 밖에서 대기할 생각이던 그때, 진이 나를 멈춰 세웠다.
-모리더스 대장이 당한 저 상처, 마력 폭풍에 의한 것이 틀림없어.
‘마력 폭풍?’
-융족의 마법 실력이 제국보다 월등한 모양이다.
마법이라니.
그럼 우주 정거장을 덮친 폭풍도 마력으로 빚어낸 결과였단 말인가?
새삼 융족의 기술력에 놀라고 있을 때 진이 한마딜 더 보탰다.
-이대로 두면 얼마 못 가 숨을 거둘 거야. 하지만···.
‘음? 뭔데? 혹시 살릴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나는 묘한 기대감에 급히 물었고 진은 천천히 긍정했다.
-마력에 의한 것이니 손써볼 여지는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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