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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군벌가 망나니-26화 (26/134)

26화

설계도가 존재하지 않는 물품을 역설계하여 어떻게 제조하였는지 알아내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그게 쉬웠으면 세상에 비밀 따윈 없었을 거 아닌가.

특히 마법이 제조업에 깊숙이 스며들기 시작한 이후부턴 더 어렵게 되었는데 이는 분해 시 마력이 새거나 회로가 변하는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부 기업은 마법의 특성을 이용하여 제품의 비밀을 감추는 데 적극적인 활용에 나섰다.

제품 스캐닝이나 정밀측정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 마법으로 함정을 심어두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특히 군수 산업 쪽에서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이들은 제조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거액의 돈을 뿌리는 것도 마다치 않았다.

마법, 온 우주를 누비게 된 인류에게도 아직 일부만 허락된 미지의 영역.

현재 제국에서 쓰이는 마법 대부분은 드래곤이나 엘프 같은 이종족으로부터 온 것이었고 애초 인간은 마법의 근간인 마력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제국 역사 5천 년.

긴 시간 동안 다른 종족과 융화하며 이제야 마력을 다룰 수 있는 인간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한 참이니 제대로 된 마법을 기업이 쓰기 위해선 막대한 양의 자금을 퍼부을 수밖에 없었다.

쓸만한 마법사의 숫자는 너무나 적었고 그마저도 대부분 중앙에 쏠려 있었다.

처음 아크 팩토리에 적용된 마법 수준을 보고 진이 조악하다고 평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트라카는 남부에서도 변방, 윌리엄 백작이 대귀족이라곤 하나 부르는 게 값인 마법사를 초빙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국 중앙의 마법사들은 다를지도 모르지만 변방 마법사 중엔 진의 마음에 찰만한 이가 아마도 없을듯했다.

“이건가? 겉모양은 똑같군.”

거치대에 가로로 걸린 미사일.

나는 역설계하여 완성된 헬파이어 미사일의 몸체를 쓰다듬어봤다.

전장에서 쓰던 것과 별반 다를게 없었다.

호위무사처럼 내 뒤를 지키던 수석연구원이 자랑스레 말했다.

“회장님이 기술 지원을 해주시지 않았더라면 절대 여기까지 도달할 수 없었을 겁니다.”

역설계의 가장 어려운 부분은 마법.

그 어려운 과정을 내가 손수 해결해주었으니 이건 땅짚고 헤엄치기 수준의 난도밖에는 되지 않았다.

물론 연구원들이 넙죽 월급을 받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최근 아크 팩토리는 역설계 외에도 미사일 소형화를 위해 새로운 합금 공식을 개발하는 데 박차를 가하는 중이었다.

크기를 줄이면서도 위력을 동일하게 가져가려면 핵심 부품 소형화와 이를 가능케 할 신소재가 필요했다.

이 모든 걸 연중 대부분을 함선에서 보내는 내가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테스트는 어디까지 됐지?”

“위력테스트도 2차까지 완료했습니다. 기존 모델과 99.9퍼센트 동일합니다.”

헬파이어 미사일은 군수 기업 메탈렉시온에서 만들어졌는데 이 미사일 개발로 메탈렉시온은 기업 순위가 3계단이나 올라 남방 경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군수 기업이 됐다.

듣기론 개발에 6년에 걸렸다고 하는데 모르긴 몰라도 기밀 유지를 위해 엄청나게 공을 들였을 것이다.

진도 썩 마음에 차는 건 아니지만 내벽에 두른 마법 설계를 보니 신경을 쓰긴 했다는 평을 남길 정도였다.

그런 귀한 물건을 역설계로 홀랑 탈취한 셈이니 아마 메탈렉시온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날 죽이려 들지 않을까 싶었다.

“회장님은 목표를 어디까지 잡고 계신 겁니까?”

“마음 같아선 이놈 크기를 반으로 줄이고 싶은데 말이지.”

“반으로 말입니까···?”

연구원들은 위력을 동일하게 맞추면서 크기를 반이나 줄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 될 것 같다며 차라리 전투기를 개조해서 폭장량을 늘리는 쪽이 더 낫지 않겠느냔 의견을 내었다.

물론 그쪽도 어느 정도 생각해둔 바가 있는 대목이었다.

“일단은 뭐든 해보자고.”

“알겠습니다.”

천릿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하지 않던가.

크기를 줄이는 게 어려우면 위력부터 높이면 될 일이고 하나씩 개선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결과물에 도달할 수 있게 될 터였다.

*

나는 헬파이어 미사일의 복제본 생산을 지시하는 한편 공장에 머무르며 미사일용 마법 공식 설계에 착수했다.

귀한 휴가를 공장에서 숙식하며 도면을 그렸다고 하면 동기들이 미쳤다고 했겠지만 나는 이 일이 재밌었다.

존 메이어가 되기 전엔 이렇게 살기도 했고 이 모든 일이 나를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 줄 토대가 되리라 생각한 점도 있었다.

그렇게 이틀 뒤, 새로운 공식이 적용된 추가 시제품이 라인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이 모델에 이클립스란 이름을 붙였다.

이클립스 엔진에 이은 이클립스 미사일이었다.

본래 제대로 된 테스트를 하기 위해선 대기권 바깥으로 나가 실험을 해야 했지만, 보안을 위해 테스트는 인근 사막에서 진행되었다.

목표 거리는 200km.

우주에선 이보다 훨씬 사거리가 길어지지만 지상테스트로는 이 정도로도 충분한 편이었다.

목표지점엔 연식이 좀 된 전함의 장갑판과 실드 배터리를 이중 삼중으로 배치해 두었다.

마음 같아선 실제 움직이는 대형함을 배치하고 싶었는데 그랬다간 기밀 유지가 불가능할 터인지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테스트 개시.”

<테스트 개시.>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발사되는 신형 미사일.

관계자들의 시선이 목표지점에 준비한 스크린으로 향했다.

거대한 폭음과 미사일이 푸른 실드를 때리자 커다란 폭음과 진동이 일었다.

잠시 뒤, 위력 측정에 성공한 관측원이 흥분된 기색으로 답신을 해왔다.

<성공입니다···! 기존의 헬파이어 미사일보다 위력이 15퍼센트 증가 된 것으로 확인됩니다!>

임원들과 연구진이 벌떡 일어나 함성을 지를 때, 나는 그들을 진정시키며 2차 테스트를 지시했다.

이번엔 실드가 벗겨진 상황을 염두에 두고 순수 장갑을 타격할 차례.

삽시간에 날아간 미사일이 장갑판을 때리자 날카로운 소리가 화면 너머로 생생하게 전해졌다.

-성공이군.

관측원이 측정을 마치기도 전에 진이 먼저 테스트 성공을 알렸다.

<2차 테스트도 성공입니다! 이클립스 미사일의 관통력이 31퍼센트 이상 뛰어납니다!>

“맙소사!”

“31퍼센트···!”

관측 수치에 사람들이 흥분을 넘어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실드를 타격할 경우 15퍼센트의 위력 향상.

실드를 벗겨냈을 땐 전함을 마구잡이로 팰 수 있는 슈퍼 미사일.

곧 남방 경계의 모든 군에서 미사일을 공급해달라 아우성치는 미래가 훤히 그려졌던 것.

‘반쪽짜리 성공이군.’

하지만 기뻐하는 관계자들과 달리 나는 속으로 아쉬움을 삼키고 있었다.

이번 테스트에 참석한 인원은 아크 팩토리 관계자가 전부였다.

백작이 이 광경을 봤으면 두 손을 번쩍 들며 만세를 외쳤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시제품을 만드는 데까진 성공했는데 양산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어서였다.

이클립스 미사일.

모든 면에서 헬파이어 미사일보다 우수한 이놈은 시제품을 만드는 동안 내가 24시간 달라붙어 마법식을 깎은 물건이었다.

진의 도움을 받으면 내 손은 정밀 기계를 뛰어넘는 정확성으로 마력 도식을 새길 수 있었다.

문제는 양산이었다.

내가 미사일 하나 생산할 때마다 손으로 도식을 그릴 순 없지 않은가.

당연히 마력 기계에 제작을 맡겨야 하는 데 현재 트라카에 존재하는 기계들론 이것을 구현하는 게 불가능했다.

정밀한 회로를 새길 수가 없던 것.

진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정밀한 마력 회로를 새길 수 있는 기계는 현재 시판 중인 모델 중엔 존재하질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건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기계를 만들려면 거대한 아론다이트 광석이 꼭 필요했다.

마력을 정제해 낭비 없이 집중시켜주는 매우 희귀한 우주 광석.

현재 트라카에 있는 마력 기계들은 엄지손톱만 한 아론다이트를 사용하는데 진은 새 기계를 만들려면 최소 주먹만 한 크기의 아론다이트가 필요하다고 했다.

‘구할 수는 있을까?’

-이건 나보다 라이언 코멧이 더 잘 알겠지.

아크 팩토리의 자원탐사팀 리더, 라이언 코멧.

그에게 확인차 전화를 걸어 아론다이트를 구할 수 있느냐고 묻자 절망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주먹만 한 아론다이트요? 회장님. 저를 해고하시고 싶으신 겁니까?>

그에 말에 따르면 그 정도 크기의 아론다이트는 100년에 한 번 출토될까 말까 한 크기이며 부르는 게 값이라고 했다.

기술은 다 만들었는데 기반시설이 따라주질 않는다니···.

나는 조금 우울한 기분을 느꼈다.

괜히 라이언을 붙잡고 실적이나 가져오라며 화를 낸 나는 다른 방식의 접근을 시도했다.

100년에 한 번 나오는 광석이라면 이미 누군가는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 아닌가.

나는 진의 정보력을 이용해 해당 광석을 손에 넣은 세력의 리스트를 추리기 시작했다.

누가 가졌는지만 알면 어떻게든 거래를 성사시켜볼 여지가 있을 것 같았다.

내겐 남들에겐 없는 기술이 있었다.

분명히 이 기술과 광석을 맞바꾸고 싶어하는 곳이 있을 터였다.

*

휴가 5일째.

담배 대신 사탕을 물고 구축함에 탑재할 신형 캐논레이저 팰렁스 설계를 구상하고 있을 때였다.

진이 희소식을 가져왔다.

-최근에 우리가 원하는 크기의 광석을 가져간 곳이 있어. 크롬원이라는 군수 기업이야.

‘크롬원? 순위가 높은가?’

-남방 경계 군수 기업 순위로 32위쯤 돼.

아크 팩토리에 비하면 훨씬 거대한 기업이었다.

-그런데 여기 본사가 위치한 곳이 프랑크 가문 휘하에 들어있거든.

‘그런데?’

-모리더스 대장이 프랑크 가문 소속이야.

‘오?’

모리더스 대장이라면 지난 이블리온 성계 전투에서 확실히 눈도장을 찍어둔 양반이었다.

게다가 현재 모리더스 대장이 이끄는 주력군은 현재 오딘에서 대규모 정비를 받는 상황.

거듭된 전쟁으로 라인이 밀린 탓에 오딘은 이제 최전선 거점지역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중이었다.

이거 잘만하면 일이 쉽게 풀리겠단 생각이 들기에 나는 즉시 마이클 준장에게 연락했다.

고작 대위가 휴가 중에 준장과 통화를 나누는 건 가족관계가 아니고서야 굉장히 이상한 일이지만 애초에 휴가 때 연락을 달라고 한 게 준장이었기에 나는 통화에 거리낌이 없었다.

“충성! 안부 인사 드립니다. 사령관님!”

“우리 에이스 조종사 아닌가. 언제 전화 줄지 기다리고 있었지 뭔가.”

운동을 하고 있었던지 헬스장에서 수건으로 땀을 훔치던 준장이 의자에 앉았다.

“제 전화를 기다리고 계셨습니까?”

“당연하지! 어떻던가. 그 뒤로 그쪽 아가씨와는 조금 진전된 거라도 있나? 내 듣기론 굉장히 예쁘고 착하다더구만.”

아···. 갑작스레 다릴 놔준 게 준장이었지.

준장은 내 연애사가 굉장히 궁금했던 모양.

아쉽지만 아직 연락도 한 적이 없다고 답하자 준장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자작이 직접 사진까지 주었는데 연락도 안 했단 말인가? 자네 보기보다 무심하구만···.”

귀족 사회에선 부모가 점찍어준 상대와 결혼하는 게 흔한 일이었던지라 준장은 내 연애도 술술 풀릴 거로 기대했던 모양이다.

게다가 라파엘 가문은 메이어 가문보다 훨씬 크고 전통 있는 명문가.

준장의 상식에선 내가 이 혼담을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처럼 여겼을지도 몰랐다.

사내는 기회를 잡을 줄 알아야 한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 등등.

나는 준장의 일장연설을 한참 동안 듣고 난 후에야 간신히 용건을 꺼낼 수 있었다.

“그래서 전화한 용건은 뭔가 대위.”

“다름이 아니라 지금 오딘에 모리더스 대장님이 머물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지.”

“한 번 뵐 기회가 없을까 싶어 전화드렸습니다.”

“오호라. 대장님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긴 모양이로군. 그게 뭔가? 아무한테도 말 안 하겠네.”

신형 미사일을 제조하는 데 기계를 좀 만들어야 한다고 하면 순식간에 오딘에 소문이 날 것 같아 나는 직접 뵙고 말씀드려야 하는 사항이라며 에둘러 말했다.

“섭섭하구만. 자네와 내가 어디 보통 사인가?”

“아니 사령관님. 그게 아니고···.”

이 위기를 어떻게 넘겨야 고민하고 있을 때, 큰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내 쪽이 아니라 준장 쪽에서였다.

“사령관님? 사령관님!”

고갤 두리번거리며 다급한 표정을 짓던 준장의 모습을 끝으로 통신이 두절 됐다.

발끝부터 올라오는 오싹한 기분.

나는 군복을 입고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다.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최대한 빨리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별일이 아니어야 할 텐데.’

하지만 한 시간 뒤.

현실은 최악의 상황이 되어 돌아왔다.

<긴급 속보입니다! 오딘 후작령이 13시 35분, 융족 함대의 대규모 공습을 받았습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오딘 후작령이···.>

융족의 거대 모함과 함께 나타난 적의 주력군이 오딘을 공격했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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