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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군벌가 망나니-25화 (25/134)

25화

브리하이트.

완전체 구축함 생산부터 대형함의 장갑 생산에 주력하는 군수 기업이었다.

남방 경계 군수 사업체 중에선 20위권 내에 꼽히는 초거대기업.

아크 팩토리는 이클립스 엔진 개발과 방열판 등의 사업으로 최근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군수 기업 순위는 기껏해야 100위권 밖이었다.

애초에 남방 경계만 해도 백작 이상이 관리하는 자치령이 무수히 많고 대귀족이라면 다들 한 번씩은 손대는 게 이쪽 계열이다 보니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갖추기만 해도 사업적으론 대성공이라 할 수 있었다.

종업원이 전채요릴 내오기 시작할 때, 진은 라말론 자작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구해주었다.

그는 오딘 자치령의 총책임자인 베니건 후작의 사위로 오딘의 로열패밀리에 속해있었다.

‘어쩐지 당당해 보이더라니.’

제국의 모든 기업은 뒷배가 든든해야지 살아남을 수 있다.

특히 수많은 이권이 걸린 방위 사업 쪽은 더욱 그러했다.

나 역시도 기업의 회장직을 맡고 있지만 이런 직함 따윈 진짜 권력이 받침 되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었다.

귀족의 콧바람 한 번에 무너지는 것이 일반 기업의 일상이었으니 말이다.

라말론 자작의 뒷배는 베니건 후작.

대령으로 전역해 자작 위를 단 그가 장성들을 사이에 두고서도 오히려 분위기를 압도하는 이유였다.

그와 간단히 악수를 주고받은 뒤엔 식사와 함께 가벼운 대화가 진행됐다.

이번에 마이더스호가 전방에 나가 고생했던 이야기,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서론이 긴데?’

이런 이야길 하려고 뜬금없이 자작이 자리하진 않았을 터.

가볍게 배를 채우며 언제 날아들지 모를 잽을 의식하자 이내 자작이 말문을 열었다.

“이야기 많이 들었네. 훈련소 창설 이래 최고의 기재라며?”

“과찬이십니다.”

신변잡기에 들어간 라말론 자작은 이내 사업파트에 관한 주제로 넘어갔다.

첫 주제는 순양함 ECU 개선 건이었다.

“사실 그건 우리가 2년 동안 공들이던 과제였다네. 알고 있었나?”

‘이거였군.’

“그런데 우수한 인재들을 모아 연구해도 끝내 결실을 보지 못하던 와중에 자네가 불쑥 나타나 골칫거리를 해결해주었지 뭔가. 덕분에 연방군은 큰 우환거릴 하나 덜게 됐고 말이야.”

자작은 정말로 큰 일을 해냈다며 웃었지만 그 웃음이 가식적으로 느껴진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안면 근육 상태를 보니 좀 빡친 걸로 예상되는데.

‘이 타이밍에 저런 초거대기업과 척을 지는 건 곤란해···.’

브리하이트는 로얄 머신 같은 애송이하곤 차원이 다른 상대였다.

대체 자작이 원하는 게 뭘까.

원하는 게 있기에 이 자리에 참석했을 터였다.

‘대놓고 기술 이전을 요구하는 날강도 짓을 하진 않을 테고···.’

이쪽이 뒷배가 없다면 모르겠으나 메이어 가문도 일단은 대귀족 가문이었다.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라는 걸 고려하면 그 정도로 막 나가진 않을 거로 생각됐다.

“자네의 그 천재성은 이쪽 방위사령관께서도 보증해주셨지.”

자작의 말에 마이클 준장은 멋쩍은 듯 에헴소릴 내었다.

아니 준장님···.

지금 그런 좋은 분위기가 아닌 것 같은데요.

라말론 자작은 내가 최근에 ECU 사업 보수로 받은 방열판과 팰렁스 진출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처음엔 눈앞에서 보수를 빼앗겨 파이를 나눠 먹자는 뜻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

“아직 미혼이라고 들었네.”

갑작스레 내 결혼 여부를 묻는 자작.

내가 떨떠름하게 그렇다고 답하자 그는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사진 속엔 한 미인이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의자에 앉아있었다.

“내 딸이네. 올해 열아홉이 됐지. 어떤가? 서로 좋은 짝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물론 양가 웃어른들께 허락을 구해야겠지만 그래도 당사자들의 의견이 가장 중요한 거 아니겠나?”

‘······?’

-이게 대체···?

진의 반응이나 내 반응이나 비슷했다.

내가 고갤 좌우로 돌려 두 장군님을 살피자 그들은 어때 우리 잘했지? 하는 표정으로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브리하이트와 사업적으로 충돌한다면 분명 불편할 수 있었던 자리.

그런데도 두 사람이 흔쾌히 자릴 마련했기에 그 이유가 뭘까 했더니만···.

아마 그들은 몰랐을 거다.

내겐 사업보다 이런 쪽 주제가 더 어렵게 느껴졌으리란 사실을 말이다.

*

결혼으로 양 가문의 결속을 다지는 것.

귀족 사회에선 가장 확실한 동맹의 증표 중 하나였다.

사진을 받은 후엔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자릴 마쳤다.

사실 제안만 놓고 보면 이건 내게 크게 득이 되는 제안이었다.

사진 속의 여성.

베로니카 라파엘은 라말론 자작의 무남독녀였다.

하나뿐인 딸을 아무나 맺어주려 하진 않았을 터.

후작도 사위를 무척 아낀다 했으니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나는 단번에 오딘의 핵심 인물이 될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사업에도 날개를 달 수 있었다.

게다가 이건 그냥 날개도 아니고 초특급 합금 날개였다.

아무리 윌리엄 백작이 나를 아껴도 트라카에서 지원을 받는 것과 브리하이트의 지원을 받는 것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오딘의 라파엘 가문은 이미 그 역사가 수백 년에 달했고 가문 휘하의 행성만 열 개가 넘는 남부의 명문가였다.

이에 비해 메이어 가문은 아직 트라카 한곳에서만 영향력을 발휘했으니 두 가문의 역량 차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만약 내가 사업 쪽에서 뛰어난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더라면, 혼담 이야기가 오가는 게 오히려 이상한 수준이었다.

‘이거 참···.’

-왜. 상대가 마음에 안 들어?

‘마음에 든다 안 든다를 떠나서 난 지금 이 여자를 처음 봤는걸.’

트라카로 향하는 셔틀 안에서, 난 품속에 있던 사진을 다시 한번 꺼내보았다.

이 여자는 지금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런 격 떨어지는 남자를 왜 만나야 하느냐고 자작에게 악을 쓰고 있진 않을까?

그런 상상을 하니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어차피 결혼은 나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드라마에서도 그러지 않던가.

네가 감히! 라던가.

멋대로 할 거면 지원 다 끊고 혼자 알아서 살아봐라! 같은 장면들.

일개 재벌가에서도 그럴진대 제국 귀족이라면 한술 더 뜰지도 몰랐다.

‘이 문제에 대한 건 복귀 마지막 날로 미뤄야겠다.’

아마 후작가에서 혼담을 제안했다고 말씀드리면 백작은 좋아하지 않을까 싶었다.

반응이야 어찌 되든 간에 휴가 내내 이 문제로 들볶이고 싶진 않으니 나는 잠시 고민을 미뤄두기로 했다.

6박 7일의 짧은 휴가.

안 그래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

“대위님. 즐거운 휴가 되시기 바랍니다!”

“고맙네.”

군용 셔틀은 트라카 공항까지 나를 안전하게 데려다주었다.

휴가 나온 동기 중엔 나하고 같이 고향에 가고 싶다던 친구들이 많았다.

트라카 말고, 자기들 고향에 말이다.

나를 꼭 가족들한테 소개해 주고 싶다나?

정체가 뭔지 모를 그놈의 풀코스로 모시겠단 드립도 지겹도록 들었다.

그러나 이번 휴가는 꼭 트라카에서 보내야겠단 생각이 확고했기에 나는 곧장 이곳에 돌아왔다.

이 짧은 휴가 동안, 나는 군인 신분에서 잠시 벗어나 기업 총수로 돌아갈 참이었다.

당장 아크 팩토리로 향하고 싶었지만 일에도 순서가 있기에 먼저 메이어 가문의 본사 빌딩으로 향했다.

업무가 과다했는지 인상을 찌푸리던 백작은 나를 보자마자 환한 얼굴로 맞아주었다.

“우리 손주가 왔구나!”

저 환한 웃음을 보자 새삼 백작이 얼마나 나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단순히 근래에 내가 혁혁한 공을 세우고 다녀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백작은 어렸을 적부터 존을 사랑했고 그랬기에 그가 망나니로 수많은 사고를 쳤음에도 기회를 주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백작에겐 내가 아픈 손가락이었을 텐데 이제는 그 상황이 완전히 뒤바뀐 것.

연방군 신임 장교 중 가장 뛰어난 인물.

벌써 특진으로 대위 계급장을 단 불세출의 천재 조종사, 그게 바로 나였다.

백작으로선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셈이었다.

“이건 뭐냐?”

“할아버지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이거 술 아니냐?”

포장을 뜯어 내용물을 확인한 백작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남부 은하의 신성한 영지에서 자생한다는 만드라고라로 만든 술, 기력 회복엔 으뜸으로 치는 명주였다.

원체 생산량이 적어 귀족들도 구하기 쉽지 않은 걸 마이클 준장의 인맥을 통해 어렵사리 구한 것이었다.

“네게 이런 귀한 선물을 받는구나. 혹시 원하는 게 있느냐?”

“그럴 리가요. 저는 그저 할아버지가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만을 바랄 뿐인걸요.”

“허허허. 녀석.”

-연기 보소···.

진은 고갤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내가 백작에게 건넨 말들은 모두 진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갑자기 없던 효심이 생겨서 그런 건 아니고 내가 그리는 계획에 백작이 더 오래 사는 게 좋은 이유도 있었다.

그 계획이란 바로 메이어 가문을 대가문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누구나 인정하는 대가문의 조건이란 무엇일까.

그건 바로 가문 휘하의 행성을 여러 개 두는 것이었다.

하나의 행성을 자치령으로 복속시켜 관리하기 위한 조건은 백작 이상의 대귀족이 되는 것.

트라카 가문에선 아직 대귀족이 윌리엄 백작 한 명에 불과했지만, 만약 내가 자력으로 장성 계급에 도달한다면.

나는 세습 권한 밖에서 새로운 행성을 물려받음으로써 메이어 가문은 두 개 이상의 행성을 관리하는 게 가능했다.

단, 여기엔 한 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있었다.

그것은 누가 트라카를 관리하는 데 적합한지를 파악해두는 것이었다.

내가 떠난 뒤, 트라카를 엄한 놈이 다스리게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적당히 내 뜻에 따를 줄 알면서도 똑똑한 구석이 있는 녀석을 찾는 것.

이번 휴가를 트라카에서 보내기로 한 이유 중 하나였다.

윌리엄 백작이 건강히 오래 살고, 내가 원하는 후계자에게 트라카를 물려주어 가문의 세를 불릴 수 있다면 이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그림이 될 터였다.

*

백작과 만남을 마친 후엔 곧장 직원들을 호출해 나를 데리러 오게 했다.

본사로 가기 전, 이번에 흡수하게 된 로얄 머신의 라인 상황을 둘러보고자 함이었다.

제트 리무진을 대동한 임원진은 양껏 긴장한 얼굴로 날 맞이했다.

앞 좌석엔 익숙한 얼굴도 보였다.

“김대리도 있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김만식, 내가 정신을 차렸을 무렵엔 대리였던 직급이 이제는 과장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나는 내심 그가 차장, 부장, 상무를 넘어 쭉쭉 치고 올라가길 바랐다.

‘왠지 저 친구를 보면 정겨운 기분이 든단 말이지.’

그렇게 운행이 시작되려는 찰나.

내가 잠깐을 외치며 차를 멈춰 세웠다.

임원진은 화들짝 놀라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김과장에게 말했다.

“운전 자동으로 하지 마.”

“예?”

“수동으로 하라고.”

“아, 예···.”

그렇게 밀린 서류를 파악하며 아크 팩토리의 상태를 점검하는 사이, 리무진은 부드럽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저 친구 운전 잘하네. 차장으로 올려줘.”

“예?”

“만식이 승진시켜주라고.”

“예!”

운전 잘한다고 직급을 올려주는 게 부당하다고?

실리콘 밸리에선 이것보다 더 기괴한 일도 일상이었다.

엉겁결에 차장이 된 만식이와 임원들을 데리고 나는 신공장 부지에 들어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로얄 머신의 것이었던 이곳은 일부 라인을 뜯어내고 새로이 개조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돈이 좋긴 좋군.

‘통장에 돈이 안 모이는 점을 빼면 말이지.’

새 사업을 계속 벌이는 데도 내 통장의 돈은 조 단위에 도달할 듯 말 듯 잘 늘질 않았다.

회사에 여윳돈이 생기면 닥치는 대로 재투자를 감행했기 때문이다.

휴가 나오기 전, 일찍이 아크팩토리에 지시한 사항은 미사일 소형화를 위한 새 공정을 마련하란 것이었다.

원래는 발동에 한 시간이나 걸리는 워프 기관 개선을 제일 먼저 하고 싶었는데 이것만큼은 진도 쉽지 않은 문제가 될 거라고 했고 중앙에서도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는 품목이라고 하니 일단은 미사일부터 손을 대기로 한 것이다.

‘한 번 보급하는데 고작 미사일 네 발이 말이나 되냐고.’

내 목표치는 기존 폭장량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이었다.

미사일 크기를 조금 줄이고, 배터리 팩 등의 개선에 착수하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만약 미사일 소형화가 성공한다면, 지금껏 벌어들인 수입보다 훨씬 많은 이익을 거둘 수 있었다.

엔진이야 한 번 장착하면 수십 년도 더 쓰는 물건이지만 미사일은 소모품으로 요즘 같은 전쟁 시기엔 없어서 못 파는 물건이었다.

‘그 와중에 위력은 보존하고 소형화시킨 미사일이면 그 가치는 두말할 필요도 없지.’

라인을 둘러보고 있을 때, 구석진 곳에서 토론을 나누던 연구원들이 우르르 달려 나와 배꼽 인사를 건넸다.

트라카뿐만 아니라 행성 각지에서 불러들인 인재들이었다.

내가 처음 정신을 차렸을 때만 해도 아크 팩토리의 연구비는 연간 10억 크레딧에 불과했다.

지금 생각해도 뭐 이런 망나니가 다 있나 싶을 정도다.

군수 사업을 하면서 연간 개발비 10억을 누구 코에 붙이란 말인가.

열악함, 그 자체였던 아크팩토리가 지금은 연간 연구지원비가 8천억 크레딧을 돌파했고 계속해서 늘어나는 중이었다.

핵심 기술은 내가 지휘하고 잡다한 건 수백 명 연구진에게 맡기는 것.

우리는 지금 그 어느 기업도 따라오지 못할 속도로 생산품 성능을 향상시키고 있었다.

“헬파이어 미사일 역설계는?”

“거의 다 됐습니다.”

“한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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