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젠장. 돈 좀 벌면 아크 팩토리의 규모부터 늘려야겠어.’
전투기들이 도시로 지원을 나간 사이, 나는 마이더스호로 돌아왔다.
전함 방어 때문이 아니라 재보급을 위해서였다.
파이어 플라이 전투기는 헬파이어 미사일의 경우 4개, 샤프슈터 미사일은 최대 8개를 장착할 수 있었다.
문제는 실전을 몇 번 치러보니 이 양이 너무 적게 느껴졌다는 거다.
‘미사일 크기를 줄이면서도 화력을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미사일에도 마법이 응용되던데 못할 건 없지.
비행포드에 착륙하자 정비병들이 우르르 튀어나와 추가 미사일 장착을 완료했다.
<존! 오늘도 많이 잡았지?>
공교롭게도 같이 보급을 들어온 헨리가 내 킬수를 궁금해했다.
“월척이지.”
<젠장. 이러다가 동기를 편대장으로 모시게 생겼군.>
“넌 몇 대나 잡았어?”
<다섯 대.>
짧은 전투였기에 다섯 대도 적지 않은 성과였지만 마이더스호의 조종사들은 모두 베테랑인지라 상대적으로 부족한 전과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보급을 마친 전투기들은 9시 방면 크래프트 도시로 향하도록.>
“라저.”
오퍼레이터가 적절한 지원을 위해 방향을 지시했고 나와 헨리는 선임들의 뒤를 따라 대열을 맞추었다.
지상에선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융족은 나이오비를 정착지로 삼을 마음이 없었는지 곳곳에 불을 질러 사람들이 숨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아마 연방군이 일대의 융족을 몰아낸다 해도 행성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까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듯했다.
그때였다.
저 멀리, 목적지 방향에서 버섯구름과 함께 가공할 섬광이 터지는 게 눈에 띄었다.
전술핵이 틀림없었다.
<이런···!>
핵폭발을 육안으로 확인한 편대장은 재빨리 전함에 통신을 넣었다.
<핵무기다! 융족이 재래식 핵병기를 꺼내 들었다.>
우주시대에 이르러 핵무기는 과거의 유물로 취급되는 물건이었다.
진공 상태의 우주에선 물리적 충격이 지상보다 못한 데다 마법의 발달로 이보다 더 강한 파괴력을 선사하는 주포 형태로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지상 전투의 경우, 여전히 핵무기는 쓸만한 입지를 갖고 있었다.
특히 지금처럼 주변 환경보존을 개의치 않고 파괴할 요량이면 가성비가 좋은 무기에 속했다.
<자폭할 요량으로 터트린 모양이다.>
<미친 새끼들···.>
조금 전 폭발로 도시의 생존자들은 눈 깜짝할 새에 죽음을 맞이했을 터.
우리는 옅은 탄식과 함께 서둘러 목표지점으로 향했다.
<목표지점에 도착했다. 아군 전함은 무사하다. 반복한다. 아군 전함은 무사하다.>
이글거리는 열기, 녹아버린 건물들.
폭심지 주변으로 뼈대가 드러난 건물 위에 표면이 빨갛게 달궈진 아군 전함이 멈춰서 있었다.
대형함 중 가장 방어가 단단한 전함은 핵무기에 무너질 정도로 방어가 약하지 않았다.
문제는 다른 함들.
상대적으로 작고 장갑이 얇은 구축함 같은 경우는 핵폭발도 충분히 치명적인 위협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허리가 반으로 접혀 추락한 구축함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아마 직격을 피하지 못하고 선체가 두동강 난 모양이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마이더스호와 통신을 주고받았고 이곳에선 더 이상 구조계획을 실행할 수 없음을 알렸다.
여러 발의 핵폭탄이 터진 도시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고 생존자가 살아있으리란 기대를 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조종사들은 융족이 저지른 참상에 분노를 터트렸지만 우리에겐 슬퍼할 시간도 마땅치 않았다.
도시마다 전투가 시작됐다며 지원 요청이 쇄도한 탓이었다.
그렇게 나이오비 각지에서 산발적으로 터진 게릴라전을 지원하다 보니 예상보다 한참 늦은 시간이 돼서야 구출작전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나마도 적 전함이 안 나타났기에 망정이지 함대전까지 치러야 했으면 해가 다 질 때까지 공격을 주고받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이오비 시민 여러분. 지금 여러분을 구하기 위해 연방군 주력함이 도시 외곽에 착륙해있습니다. 이 방송을 듣고 계시다면 조속히 거리로 나와 군의 안내를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지상전을 위한 병사들은 거릴 돌며 확성기를 틀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필요한 일이었다.
전투기들의 교전이 끝나기가 무섭게 생존자들이 사방에서 나타나 살려달라고 뛰쳐나온 것이다.
대체 이 많은 사람이 어떻게 다 숨어있던 건지 실로 놀라울 정도였다.
나를 비롯한 전투기 조종사들은 상공을 배회하며 혹시 모를 적의 추가 공습에 대비했다.
‘뭔가 이상해.’
교전에서 연거푸 승리를 거두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찜찜한 구석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원인은 간단했다.
마주친 적이 전부 전투기밖에 없어서였다.
애초 전투기는 대형함과 달리 단기 전투에 최적화된 기종이다.
당연히 행성 간 이동이 자유롭지도 못했고 반드시 보급함이 붙어야 하는 특징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선 아직 전투기 외에 다른 함종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곳에 전투기가 있다면 최소 구축함이나 순양함도 있어야 했다.
대체 적의 대형함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전투기를 내려놓고 다른 전장으로 지원을 갔나?
‘전투기를 놓고 전장 지원을 나간다는 것 자체가 앞뒤가 맞질 않잖아.’
-그건 그래.
나는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생존자들이 모이는 속도는 생각보다 훨씬 느렸다.
생존자의 줄은 시간이 지날수록 길게 쌓였고 아직 더 태울 수 있는 데 이들을 놔두고 출발하는 것도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가장 먼저 구출 작업을 끝낸 것은 마이더스호였다.
각 도시의 생존자 수는 서로 달랐는데 아무래도 우리가 맡은 곳의 생존자 수가 가장 적었던 모양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게 아니다.’
나는 대대장에게 건의해 주변 정찰에 나서고 싶단 의견을 피력했다.
내가 사령관이었다면 다 같이 움직일 게 아니라 생존자를 다 태운 시점에서 먼저 출발하자고 했을 테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아직 소위에 불과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주변 정찰을 허락해달라는 요청을 넣는 게 전부였다.
“전투도 방금 끝났는데 무슨 정찰이야. 시팔.”
“사령관이 좀 예뻐해 준다고 더 저러는 거 아니야.”
여기에 눈치 주는 선임 놈들까지.
마이더스호엔 닉슨 대위나 리카르도 대위처럼, 인성면에서 훌륭한 선임들도 있지만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었다.
수백 명의 장교가 모인 전함.
일찌감치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나를 시기하는 자들도 얼마든지 있었다.
특히 귀족가문 출신 장교들이 그러한 편이었는데 그들은 대체로 나를 출세의 걸림돌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그러든지 말든지, 지금 중요한 건 일단 정찰을 나가는 거였다.
생존자 구출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을 보며 나는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어쩌면 이 상황 자체가 적들이 의도한 것은 아닐까?
일부러 적은 병력만 남겨 우리가 시민들을 구하게 하고, 그 사이 우주 바깥에서 연합 부대를 꾸려 이곳을 기습한다면.
우린 꼼짝없이 독 안에 든 쥐가 될 수 있었다.
“정찰 비행을 허락하겠다. 스텔스기도 내어주지. 다만 연이은 전투로 다들 지쳐있으니 지원자를 받도록.”
대대장은 부분적인 정찰 허가를 내주었다.
실제로 지친 조종사들이 제법 많은 편이었다.
각 도시를 누비며 연속으로 전투를 거들었으니 말이다.
진짜 전투가 벌어질 때를 생각하면 쉴 수 있을 때 쉬어야 한단 생각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지원자가 필요한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나는 그리 말하며 친애하는 훈련소 동기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도무지 쉴 틈을 안 주네···.”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던 녀석들은 구시렁거리면서도 다시 일어나 출격 준비를 시작했다.
“우리도 도와주지.”
“감사합니다.”
평소 나를 좋게 보던 선임들도 일부 합류, 전투기 20대로 구성된 2개 편대가 완성됐다.
마이더스호를 벗어난 우리는 곧장 대기권을 돌파, 우주로 올라갔다.
적들이 연합을 해 쳐들어온다면 그 시작은 우주 어딘가가 될 확률이 높았다.
아무리 봐도 나이오비엔 대규모 함대를 숨길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해당 위치 이상 없음.>
<이쪽도 이상 없다.>
전투기를 둘씩 나뉘어 정찰에 나서던 그때, 찰스 포트가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세한 전파 방해 신호를 포착했다. 지원 요청 바란다.>
소행성 지대였다.
즉시 지원을 가니 실제로 전파 방해가 들어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별다른 신호가 잡히지 않았던 지역이다.
이것으로 근처에 적이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매복하고 있다가 대기권 돌파를 하는 아군 부대를 노리거나···.”
<더 많은 병력이 모일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겠군.>
“좀 더 자세히 정찰하러 들어가 볼까요?”
<적의 규모를 모르는 상태에선 위험한 일이다.>
리카르도 대위는 일단 깊숙이 정찰하기보다 함대에 이 사실을 알리는 게 먼저라고 했다.
적이 우리 머리 위에 매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자 지상 부대에 대혼란이 일었다.
문제는 아직도 일부 도시에선 생존자들이 모여들고 있다는 거였다.
여기서 시간을 계속 끌다간 감당 불가능한 대규모 적과 마주하게 될지도 몰랐다.
<추가 정찰을 지시한다. 적의 대략적인 규모를 파악해야 한다.>
<···라저.>
자칫하면 개죽음이 될 수도 있는 정밀 정찰.
그러나 우리는 할 수밖에 없었고 소행성 지대 더 깊은 곳으로 비행을 시작했다.
스텔스기 조종은 노련한 닉슨 대위가 맡았다.
그는 우리보다 한참 앞에서 움직였고 마침내 적들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적을 육안으로 확인했다. 전함만 서른 척이 넘는 대규모 병력이다. 워프를 마친 대형함이 하나씩 늘고 있다···.>
예상대로였다.
적은 우리가 구출 작전을 펼치는 동안 대규모 병력을 모으고 있었다.
이제 지상의 함대가 택할 움직임은 두 가지 중 하나였다.
이대로 구출 작전을 중단하고 이륙하여 집단 전투를 꾀하거나, 먼저 구출을 마친 부대는 따로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나는 일 초라도 빨리 의견이 통일되길 바랐지만, 사령관들 사이에서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의견이 갈리는 모양이었다.
‘대체 뭣들 하는 거야! 한시가 급한 상황인데.’
-사령관들 계급이 같다 보니 의견 통일이 안 되는 모양이군.
결국 참다못한 마이클 준장이 먼저 나이오비를 이탈하겠다고 결단을 내렸다.
<모든 전투기는 본함으로 귀환하라.>
이러한 결정에 다른 전함들은 마이더스호를 향해 원색적 비난을 퍼부었다.
아군을 버리고 도망가는 겁쟁이라느니, 제 살길만 찾는 비겁자란 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포착한 적 전함만 30척이었다.
아군 전함을 모두 모아 전투를 걸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데 의견 통일도 제대로 되지 않으니 마이클 준장만 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정찰 나갔던 전투기들이 모두 돌아오자 부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함대 내부가 크게 소란스러워졌다.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이쪽은 제국 반대 방향이잖아!”
“방향을 잘못 잡은 거 아니야?”
적 본대에게서 도망치기 위한 도주.
그런데 오히려 적진 깊숙이 향하고 있다는 걸 안 승조원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쪽으로 가면 제국과는 영영 이별이고 옛 경계선을 지나 융족 본진과 마주하게 될 판이었다.
모두가 당황하는 사이 나는 마이클 준장의 뜻을 깨닫고선 작게 손뼉을 쳤다.
‘과연 사령관은 다르군!’
이는 아주 전략적인 움직임이었다.
남방 경계 후방, 제국 중심을 향해 가자면 필시 적이 매복한 소행성 지대를 지나야 한다.
마이클 준장은 먼저 적과 마주했을 때 우선 타겟이 되는 것을 염려했기에 오히려 적의 허를 찌른 셈이었다.
적진 깊숙이 파고든다 해도 일단 워프에 성공하면 살아남을 확률은 크게 올라갈 테니 말이다.
아군 함대와의 통신까지 원천차단한 오딘 부대는 그렇게 조용히 옛 제국 경계선을 향해 미끄러져 나갔다.
아직 나이오비에 남은 아군이 어떤 선택을 하였는지까진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들이 무사히 도망칠 수 있길 속으로 바랐다.
*
나이오비를 떠난 지 두 시간째.
외딴 별의 위성 근처에 도달한 마이더스호는 즉각 워프 준비에 들어갔다.
워프란 공간을 뛰어넘어 단숨에 먼 지점까지 도약하는 항해 기술로 장거리 우주여행의 필수 기술 중 하나였다.
<하이퍼에테르 주입 완료.>
<카운트다운 시작. 워프 개시까지 60분 남았습니다.>
연료가 주입되며 워프에 필요한 필수 요소가 충족된 상황.
이제 남은 건 워프 기관 활성화를 위해 60분의 시간을 무사히 버티는 것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마이클 준장의 판단은 탁월했다.
만약 제국 방면으로 향했다면 워프를 채 마치기도 전에 덜미를 잡혔을 확률이 높았다.
어디 그뿐인가.
워프 대기 중인 함선은 주포를 쏠 수도 없고 사실상 무방비 상태가 되기에 진즉 우주 폭죽 신세가 되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함 내엔 적막만이 감돌았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이 시간이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고 있었다.
10분, 20분, 30분, 40분···.
남은 시간이 10분이 채 안 남았을 때, 격납고는 침 삼키는 소리까지 조심스러울 정도로 긴장감이 감돌았다.
모두의 시선이 시계에 집중돼있던 그때.
붉은 경고등이 요란스레 울리며 인근 부대 전체에 경계경보가 발령됐다.
조종사들 사이에선 갖은 욕설이 터져 나왔다.
<이런 제기랄···!>
<좀 살려달라고!>
<각 함대 전투기는 긴급 발진하라!>
위성을 돌아 나타난 융족 전투기들이 매서운 속도로 날아들고 있었다.
────────────────────────────────────
────────────────────────────────────